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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화섬연맹 울산본부 / 화섬노조 울산지부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비정규직 없는 집 없을걸요” “회사와 지역경제에 도움 될 텐데” | ||||||||||||||||||
[르포] 울산시민들 '현대차비정규 파업' 어떻게 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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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파업?’, ‘월급 많다던데’, ‘불법파업 안 돼’, ‘불안하다’, ‘파업 때문에 지역경제 악화’. 의아했다. 울산에 사는 사람이라면 가족, 친구, 이웃 중 적어도 한 명은 현대차 비정규직과 관련이 있을 텐데. 조중동이나 경제지, 지역 언론들이 얘기하듯이 울산 시민들은 정말 ‘비난’만 하는 걸까.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시작된 지 10일째인 지난 24일. 시민들의 생각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 울산으로 향했다.
“통화하는 거 들으니 울산에 집회하러 가나 봐요”. 울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만난 이동희(39․ 가명)씨는 대학졸업 뒤 고향인 울산에서 학원강사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이번 파업에 대해 “한 마디로 안타깝다”라며 운을 뗐다.
“그 분들이 정규직 시켜달라고 떼쓰는 걸로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을 잇는 이 씨. 언론보도에 대한 생각을 물었더니 그는 “울산에 자동차나 중공업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가족 없는 집 없을거다”라며 “오히려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언론에서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말했다.
울산역에서 5002번 버스를 타고 40 여분 달렸더니 현대자동차 정문 앞이다. ‘몽구산성’으로 불리는 정문 앞 컨테이너 박스는 차가운 초겨울 바람을 더 스산하게 한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 근처 식당을 찾았다. 주문을 한 다음, 소속과 울산행 이유를 밝혔다. 주인아주머니는 “1남 3녀인데, 아들과 딸은 현대차 비정규직, 사위는 정규직”이라며 현대차와의 특별한 관계를 소개했다.
"언론보도, 이해가 안 된다" “여기 만날 와서 엄마, 이모 그러던 애들이 지금 공장에 들어가 있는 거잖아. 며칠 전에 누가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 그 얘기 듣고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오늘도 아침부터 경찰버스들이 와서 공장 둘러싸는 거 보고 무슨 일 터지는 건 아닌가 내내 걱정하고 있었어" .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파업 때문에 화난 음식점 사장’들과 달리 ○○분식 주인아주머니는 밤마다 농성장 천막으로 어묵 국물을 나르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는 “저 건너 감자탕집 주인은 누룽지 끓여서 갖다 줬다더라”며 “공장으로 먹을 것 좀 충분히 넣어주면 정말 좋겠다”면서 안타까워했다.
“우리 애들이 비정규직으로 10년 넘게 일해서 잘 안다. 그러니까 욕 못한다. 뭐하러 욕하겠노”. 바로 자기 아들, 딸의 문제라는 아주머니. “밥 먹으러 오는 비정규직 아들들 말이 결혼하고 싶어도 애인한테 얘길 못한대. 내 새끼들이 다니는데 당연히 회사가 번창하길 바라고, 그러니까 정규직 시켜주라는 거야. 정규직 되면 사람들도 더 열심히 일하게 되고, 그게 결국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아무쪼록 다치지 말고, 이번에 잘 돼야지”. 아주머니의 간절한 바람이다.
식당에서 나와 근처를 걷다가 미용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외관. “뭐할라꼬?”. “뒷 머리 정리 좀 해주세요”. 사르륵 머리카락이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고, 약간 뜸을 들이다 말문을 열었다. "왜 파업하는지 아세요?".
"정규직 되면 회사도 더 잘되지 않을까" “애 아부지도 현대차 다닌다. 근데 우리는 정규직”. 근속 27년 현대차 정규직 남편을 둔 미용실 사장님은 “남의 일이라고 생각 않는다. 가슴에 딱 와 닿지. 딱 우리 애들 또래니까”라고 말한다. “그래도 회사 사람들 얘기 들으니까 밥은 꼬박꼬박 넣어준다고 하던데. 뭐라꼬, 턱없이 부족하다고? 아이고, 날도 추운데 배도 고프고, 우짜노”.
생각지도 못했던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 이야기도 듣게 됐다. 1998년 외환위기와 현대차 경영실패의 고통은 온전히 노동자의 몫이었고, 현대차 노동자 약 1만명이 정든 일터를 떠나야 했다. “나도 여기서 20년 넘었지. 이번에 공장 점거했다는 얘기 들으니까 1998년 정리해고 싸움 때 생각나대. 그 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끼리 마음 많이 상했다. 누구는 남고, 누구는 떠나고, 그러니까 형님, 동생 그러던 사람들이 원수처럼 돌아서고. 회사에서 그렇게 한 건데 왜 죄없는 불쌍한 사람들끼리 남남되고 미워하고”. 그녀는 지금도 마찬가지라면서, “같이 일하는데, 누구는 정규직이고 누구는 아니고. 이상하다”라고 말한다.
“요즘 조끼 입은 사람들이 머리 짧게 해달라면서 가끔 오거든. 오늘 아침에도 누가 와서 6미리로 해 주세요 그러기에 ‘니도 파업하나. 정규직 돼도 니 몸 상하면 그게 무슨 소용 있노. 싸우더라도 몸은 다치지 마라’ 그랬어”. 그녀는 그 비정규 노동자에게 정규직 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물어봤단다. “지금 사내놈 하나인데, 딸내미 낳고 싶다 그러대. 저출산 때문에 난리인데, 정규직 되고 월급 제대로 받아야 결혼들도 하고 아도 많이 낳을 거 아이가”.
집회가 시작됐다. 구호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머리손질이 끝나 미용실 문을 열고 나가 집회장으로 가보니 대오 끝이 매우 멀다. 참석정도만 확인한 채, 집회장을 벗어나 한참을 돌아다녔다. 날이 어두워져 다시 집회가 열리는 정문 앞으로 돌아와 보니 벌써 퇴근시간이다.
쏟아져 나오는 현대차 노동자들로 인해 정문 앞이 더 혼잡해졌다. ‘원풍’, ‘대덕기업’...... 현대자동차가 아닌 다른 이름의 회사 작업복을 입은 사람 수가 만만치 않다. 서너 명을 붙잡고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다들 황급히 사라진다. 낯선 회사 로고가 찍힌 점퍼 차림의 한 시민이 정문 앞 버스 정류장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현대차에서 일하냐고 물었더니 그는 “현대중공업에서 일한다”라고 자신의 소속을 밝혔다.
"이겨라. 하지만 몸은 다치지 마라" 김승진(40.가명)씨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이다. 그는 "버스타고 집에 가다가 집회 하기에 보려고 내렸어요”라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 물었더니 김 씨는 “좀 다른 느낌”이라고 심정을 털어 놓았다. “이런 얘기하면 사람들이 오해할 텐데, 솔직히 부러워요. 현대중공업에도 사내하청지회가 있는데 아직도 몰래 활동하거든요. 우리는 생각도 못하는 일을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지금 하고 있으니 참 많이 부럽죠”.
말을 이어가는 김씨, “현대중공업이 1987~1988년 한창 싸울 때 많은 사람들이 힘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공장 사람들, 대학생들이 당시에 정말 조건 없이 현대중공업 노동자들 도와준 거잖아요. 현대중공업 정규직들이 현재의 노동조건을 그저 자기들이 애써서 얻은 것처럼 행동하는데, 아니잖아요”.
김씨는 이제 그 힘을 비정규직에게 줘야 하는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속상해 했다. “중공업 정규직들 작업복에는 은색야광줄이 있거든요. 작업복부터 시작해 정규직, 비정규직은 모든 게 달라요. 이번 싸움,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꼭 이겨서 승리의 기운이 널리널리 퍼지길 바랍니다. 자동차 분들 잘 되시길. 이기면 와~ 진짜 좋겠네” .
금속노조 결의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현대차 공장 인근의 재래시장, 식당, 다방, 당구장 등을 들러 시민들 얘기를 들어봤다. 인근 고등학교에 들러 하굣길의 학생들도 만나봤다. 물론 파업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고,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다.
시장에서 채소를 팔던 한 아저씨는 “왜 파업하냐. 나는 하루에 만원 팔기도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업 좀 작작해라. 나쁜 XX들” 이라며 차창을 내리고 소리를 지르는 운전자도 있었고, 공장 정문 앞 편의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모르겠다. 관심없다”라고 말했다.
반면 “비정규직들이 대화 요구할 때는 모른 척 하더니, 이제와 점거 풀고 나와서 대화로 해결하자고 하냐”며 회사를 비난하는 시민도 있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에 대해 울산 시민들의 반응은 한 마디로 ‘다양’했다.
"비정규직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박맹우 울산시장이 “공장 점거사태로 기업의 생존과 지역주민의 생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라며 우려를 표했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울산행 기차에서 만난 이씨의 말이 떠올랐다. “파업과 상관없이 울산경제는 계속 나빴어요. 그런데 정규직 되면 소득과 소비가 늘테고, 당연히 지역경제에 도움 되지 않을까요. 울산에서 만든 차로 돈 많이 버는데, 현대차가 지역사회를 위해서 그 분들 정규직 시켜주고 정규직 많이 채용하고 그러면 두루두루 좋겠네요”.
살기 위해 공장에 들어간 노동자의 절박한 마음을 헤아리는 정치는 언제쯤 가능할까. 공정하지 못한 기업을 향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정치가 그리도 어려운 걸까.
막막하고 힘든 싸움을 벌이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몸 건강히 집으로 돌아가길, 그리고 그들이 정규직 노동자로서 공장 정문을 드나들게 될 날이 하루 빨리 오길 고대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