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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저자 이름인데도 영어로 써놓고 보니 뭔가 있어 보이긴 한다. 읽어보면 어려운 글자도 아니다. 『싯다르타』라는 책 제목과 저자인 「헤르만 카를 헤세」를 원문대로 쓴 것이다. 헤르만 헤세(1877.7.2.∼1962.8.9.)는 남부 독일 칼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신학교에 입학했지만, 기숙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망치기도 하고, 자살을 시도해 정신요양원에 입원하는 등 파란만장한 청소년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고향의 시계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던 22살일 때인 1899년 첫 시집 《낭만적인 노래》를 발표하고, 1904년에 《페트 카멘친트》를 발표하면서 전업 작가가 되었다. 자신의 성장기를 모델로 한 《데미안》으로 스타덤에 올랐고, 『싯다르타』는 1922년에 발표했다. 1943년 소설《유리알 유희》를 발표하고 노벨 문학상과 괴테 문학상을 수상했다.
빛과 어둠, 이상과 현실 등 양극적 대립을 통한 자아 성찰의 길을 섬세하게 그려낸 그의 작품들은 고독한 현대인들의 삶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준다. 동양철학에 심취해 『싯다르타』와 《유리알 유희》같은 소설을 발표했는데 『싯다르타』는 불교의 영향이 짙게 깔린 석가모니의 일대기나 마찬가지고, 《유리알 유희》는 고대 유가 사상과 도가 사상의 색채가 강한 소설이다. 그러면서 서양의 고대 영성 철학에도 깊은 관심을 가졌던 그는 《데미안》을 통해 영지주의와 초기 기독교 사상을 담기도 했다.
소설 『싯다르타』는 ‘고타마와 싯다르타’가 친구 ‘고빈다’와 출가를 결심하기 시작한 데서부터 구도 과정, 이후의 행적을 사실적이면서 영적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의 시작은 “싯다르타는 브라만의 아들이자 젊을 때 수려한 청년이었다. 그는 고향의 그늘 아래, 배들이 모여있는 강가, 사라수 그늘 아래, 무화과나무 그늘 아래에서 역시 브라만의 아들인 친구 고빈다와 함께 성장했다.”로 시작한다.
싯다르타는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모두에게 기쁨의 원천이었고,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정작 스스로에게는 기쁨의 원천이 되지 못했고, 자신 안에서는 아무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다. 자아, 가장 내적인 부분, 가장 궁극적인 부분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현자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그것은 살이나 뼈도 아니고, 사상이나 의식도 아니다. 바로 그 원천, 자아 속에 있는 그 원천을 찾아내어 내 것으로 삼아야 한다. 그 밖의 모든 것은 탐색, 우회, 방황에 불과하다. 이것이 싯다르타의 생각이었고, 그의 목마름이자 고뇌였다.
싯다르타에게는 하나의 목표, 오로지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그것은 비우는 것, 갈증을 비우고, 소망을 비우고, 꿈을 비우고, 기쁨이나 고통을 비우는 것이었다. 자아를 죽이는 것, 자아로 부터 벗어나는 것, 마음을 비운 상태로 안식을 얻는 것, 자아를 초월하는 묵상을 하면서 경이의 세계를 접하는 것, 그것이 바로 그의 목표였다. 일체의 자아가 극복되고 소멸될 때, 마음속의 모든 욕망과 충동이 침묵할 때, 그때 비로소 가장 궁극적인 부분, 자아를 초탈한 존재의 가장 심오한 부분, 그 위대한 비밀이 깨어날 것이었다.
싯다르타는 사색에 잠겨 더욱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네가 스승들과 가르침으로부터 배우려 했던 것이 무엇이며, 네게 그토록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그들조차 도저히 가르쳐줄 수 없던 것이 무엇이었는가?’그리고 그는 답을 찾아냈다. ‘바로 자아다. 나는 자아의 의미와 본질을 배우려 했던 거야. 나는 다름 아닌 자아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고, 그 자아를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아를 극복할 수는 없었다. 다만 기만할 수 있었을 뿐이고, 자아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을 뿐이며, 자아를 피해 숨을 수 있었을 뿐이다. 정말이지 세상 그 어떤 것도 나의 자아만큼, 내가 살아 있다는 이 수수께끼만큼, 내가 다른 모든 사람과 구별되는 남다른 존재라는 수수께끼를, 내가 싯다르타라는 이 수수께끼만큼 나를 그토록 많은 상념에 빠지게 한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싯다르타에 대해, 이 세상 어떤 것보다도 모르고 있다니…!’
그는 내면의 소리가 추구하라고 명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고자 했고, 내면의 소리가 머물라고 한 곳 외에는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자 했다.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오직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과 이런 자세를 갖추는 것은 좋은 일이었고 필요한 일이었으며,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는 강물로부터 가르침을 얻기를 바랐고, 강물에 귀를 기울이고자 했다. 강물과 그 비밀을 이해하는 사람은 또다른 많은 것, 수많은 비밀, 모든 비밀을 이해하게 될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함께 어우러지고, 모든 소리, 모든 목표, 모든 동경, 모든 고통, 모든 쾌락, 모든 선과 악, 모든 것이 모여 이 세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모여 사건의 강을 이루었고, 삶의 음악을 이루었다.
이 책은 동서양을 아우르는 정신적 스승, 헤르만 헤세가 그려내는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길을 보여준다. “나는 부처를 수년간 흠모했고 어린 시절부터 인도문학을 읽어왔다. 그들의 사상과 학문에 비하면 내가 인도를 여행한 일은 그저 하찮은 부록이나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말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힌 작가이자 20세기 독일을 대표하는 헤르만 헤세의 아버지 요하네스 헤세는 선교사로,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한 적이 있었고, 외조부 역시 선교사이자 저명한 인도학자였다. 이러한 집안 환경에서 헤세는 자연스레 동양 문화를 접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경건주의적이고 엄격한 기독교적 가풍 속에서도 책 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외조부의 서재에서 많은 책을 읽었다. 『우파니샤드』『바가바드기타』같은 힌두교 경전과 불교 경전을 읽었고, 노자의 『도덕경』을 읽고 아버지와 논할 정도로 동양 문화와 관련된 책들을 탐독했다. 헤세는 명문 신학교에 진학할 만큼 수재였으나, 학교의 억압적인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했고, 보수적인 집안 분위기에도 괴로움을 느꼈으며 양친과 관계도 원만하지 못했는데 그런 그에게 동양사상은 치유제가 되어주었다.
대표작인 『데미안』과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은 작품들에서 보이듯 그는 주로 자전적 경험을 담은 성장소설로 전 세계 청소년들을 사로잡고, 또 위로해주었다. 『싯다르타』는 헤세가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오로지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써 내려간 작품이다. 인도와 동양 문화에 오래 심취했던 헤세가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응축시켜 그려낸 “더없이 단순하고 명료하며, 순수한 탐색과 구도에 관한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싯다르타는 산스크리트어로 ‘목적을 달성한 자’라는 뜻이다. 부처의 본명인 고타마 싯다르타에서 가져왔으나, 작품 속 싯다르타는 실제 부처와는 다른 소설적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에서는 싯다르타와 고타마가 각각 깨달음을 얻으려 투쟁하는 자와 깨달음을 얻은 자, 두 인물로 분리되어 등장한다. 브라만 계급(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집안에서 태어난 싯다르타는 어릴 때부터 주위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모두에게 ‘기쁨의 원천’이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자신 안에서 아무 즐거움도 찾을 수 없었으므로, 근원적인 고뇌를 벗어나 본질적인 깨달음을 얻고자 고행길에 나선다.
사문들과 함께 생활하기도 하고, 이미 열반에 도달한 고타마를 만나 그의 가르침을 듣기도 하며,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창부와 성공한 상인을 만나 사랑의 쾌락과 부의 만족감을 맛보기도 하지만, 그러한 것들로는 생의 허무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없음을 깨닫고 절망하기도 한다. 이후 싯다르타는 강의 소리를 듣고 강물 소리로부터 가르침을 얻고자 오랜 시간 그 소리를 주의 깊게 귀기울이다가 마침내 삶과 죽음의 두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그리고 세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궁극적 진리, 즉 세계의 대립점들을 하나로 잇는 단일성이 존재함을 깨우친다. 깨달음을 얻은 싯다르타의 얼굴에는 ‘평생동안 사랑했던 모든 것, 삶에서 가치 있고 신성했던 모든 것’을 환기시키는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이제는 사랑이야말로 내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라네. 이 세상을 완전히 이해하는 일, 세상을 설명하고 세상을 경멸하는 일, 그것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하는 일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것, 세상을 경멸하지 않고 세상과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 세상과 나와 모든 존재를 사랑과 경탄의 마음, 외경심을 품고 바라볼 수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네.”라고 그는 말한다.
『싯다르타』의 집필은 순조롭지만 않았다. 헤세는 이 작품을 쓰며 창작의 위기를 겪었는데, 이를 자신의 진정한 체험 부족 탓이라 여겼다. 그는 일 년 정도의 자기 체험을 거치고, 몇 주에 걸친 정신분석 치료를 받은 후에야 다시 집필에 착수해 마침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렇게 완성된 소설의 1부를 프랑스 문인 로맹 롤랑에게, 2부는 일본학 학자인 외사촌 빌헬름 군데르트에게 헌정했다. 헤세의 인도 문화와 힌두교와 불교 사상에의 관심은 소설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드러난다. 헤세는 『싯다르타』의 1부를 4장, 2부를 8장으로 구성했는데,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네 개의 성스러운 진리, 즉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와도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양의 종교에 심취해 서구 종교에 배타적인 입장을 보였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동양과 서양의 가교를 놓는 작가로 여기며 여러 다양한 종교의 공통성을 추출해 이를 하나의 세계종교로 통합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나는 모든 종파, 인간의 모든 경건성의 형태에서 공통적인 것, 모든 민족적 다양성을 넘어서는 것, 모든 인종과 모든 개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을 규명하고자 했습니다.”고 말하고, 가정이나 학교 같은 안정된 세계에서 부자유스러움과 괴로움을 느끼고 삶의 권태를 예민하게 감각했던 헤세지만, 평생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했고, 언제나 인간 본성과 심리적 영역에 주목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는 내적 갈등은 헤세 작품의 일관된 주제였다.
『싯다르타』는 선과 악, 기쁨과 고통, 삶과 죽음이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삼라만상을 관통하는 단일성이 존재함을 직시하면서, 한 인간이 우주와 자신을 하나로 보는 범아일여(梵我一如)를 깨닫고, 완전한 자기실현에 도달하는 모습을 그려낸다. 정신의 세계에서 출발해 감각의 세계를 거치고 마침내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싯다르타의 삶을 통해 이미 깨달음을 얻은 부처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독자적인 길을 개척해나감으로써 비로소 구원과 완성에 이르는 삶을,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의 삶의 방향을 모색하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 나아가야 함을 일러준다. 인터넷 교보문고 서평을 참고해 적은 것이다. 간단하고 단순한 싯다르타의 행적일지 모르지만 읽는 독자로 하여금 깨달음의 길, 그 길이 결코 순탄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설의 줄거리는 고대 인도의 고위 성직자 계급인 브라만의 아들이던 싯다르타는 한 나라 왕이었던 아버지로부터, 그 밖의 스승들로부터 배우고 또 배워도 어딘가 채워지지 않음을 느낀다.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친구 고빈다와 함께 출가해 떠돌며 수행하는 사마나(사문)들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 달라고 간청한다. 이렇게 싯다르타는 사마나가 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익히고, 수행하고, 무아가 되어 또 다른 존재가 되어 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가슴속 깊은 곳에는 채워지지 않는 게 있음을 느낀다.
그 즈음 싯다르타와 고빈다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고타마에 관한 소문을 듣고, 사마나들에게 이별을 고하고 또 길을 나선다. 고타마의 가르침에 깊이 감명받은 고빈다는 곧바로 고타마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하지만, 싯다르타는 고타마의 가르침만으로 자신이 해탈할 수 없다고 생각해 고빈다와 헤어지게 된다. 이후로 싯다르타는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자아를 알아 가기를 결심하고, 방탕한 생활을 시작한다. 창녀 카말라를 알게 되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태어나기도 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제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싯다르타가 아닌 또다른 싯다르타를 알게 되고, 그는 고뇌하고 방황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튼
『 SIDDHA RTHA』- Hermann Karl Hesse 는 작년인 2025년 헤세 탄생 149년을 맞아 새로 나온 책으로 읽을 가치가 있었다고 나는 생각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