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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주문화연구교사모임 원문보기 글쓴이: 월성
또 살펴보면 대정 20년 경자(1180)는 고려 명종 11년인데 처음으로 만어사를 세웠다.
동량 보림이 위에 글을 올려 아뢰었다.
"이 산중의 기이한 자취가 북천축 가라국의 부처의 영상에 관한 일과 서로 맞는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산 가까운 곳이 양주 경계의 옥지인데, 이 못 안에 또한 독룡이 살고 있다는 것이요.
둘째는 때때로 강가에서 운기가 일어나 산꼭대기까지 이른느데, 그 구름 속에서 음악 소리가
난다는 것이 그것이요.
셋째는 부처 영상의 서북쪽에 반석이 있어 늘 물이 고여 끊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부처가 가사를 씻던 곳이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상은 모두 보림의 말인데 지금 와서 예를 갖추고 보니, 분명히 믿을 만한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골짜기 속의 돌이 거의 3분의 2는 모두 금과 옥의 소리를 냄이 그 하나요,
둘째는 (미륵전 바위에 부처의 얼굴이) 멀리서 보면 나타나고 가까이서 보면 보이지 않으며,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아니하기도 함이 또 하나이다.
-<<삼국유사>> 제4 탑상편 <어산의 부처 영상(魚山佛影)>
ᅠᅠ萬魚寺 만어사
西竺金身影震丘 서천축국(인도) 부처님 몸이 우리나라에 그림자 지고,
釋門靈異此間留 불교 집안의 신이함 여기에 머무네.
千年棟宇雲生角 천 년 법당 모서리에 구름 일고,
萬介魚鱗石點頭 돌들은 만 마리 물고기 일세.
首露遺蹤香樹老 수로왕의 발자취 어린 곳에 향나무가 늙었고,
懶翁遊處古臺幽 나옹대사 노닐던 곳, 옛 대는 그윽하여라.
停筇半日探形勝 지팡이 세우고 반 나절을 좋은 경치 더듬는데,
絶頂名區政是秋 산마루 명승지에 계절은 가을이구나.
-東溪集
*나옹대사는 밀양 영원사로 향하다가 여주 신륵사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였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세력에게 살해된 것일 것이다.
*영원사지에는 중국 초당사 구마라습의 당대 조성 승탑과 닮은 승탑, 석불 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태허당 동계 스님(1636-1694)의 법휘法諱는 경일敬一, 건당建堂 도호道號는 태허太虛, 거호居號는 동계이고,
구미 인동현 약목에서 출생하여 금강산 유점사 벽암대사碧巖大師 문하로 출가 수행하였다.
寄題萬魚寺幷小叙
余與李幼淸諸人。約遊萬魚寺。君芳言宿昔一遊。而寺名萬魚。誕漫無憑。故有問石蒼茫際名魚幻化邊之句云耳。
噫吾濟勝具。
與子不相如。
金華牧兒眼。
濠濮丈人書。
海上新羅寺。
山頭太古魚。
滄桑重換日。
啣尾下歸墟。
-太乙菴文集卷之二 詞歌
萬魚石歌
天地萬物中。石爲最頑物。小石不復大。古石不亡滅。一受其成形。不變千萬刦。此乃理之常。理外言詭弔。言是邃古世。湧地出彌勒。玄鳧泛東海。白馬回西域。名山敞道場。神僧住卓錫。王公㝡先好。翠華來駕洛。蜿蜿老龍伯。聽經參晨夕。是爲鱗蟲長。率來萬魚族。龍入小井隱。水旱不盈縮。魚皆蛻鱗甲。堆着化爲石。不白亦不靑。不黃亦不赤。莫黑匪烏色。淺黑猶魚脊。無穹然而立。無窪然而鑿。無如盤而圓。無如鉤而曲。無廣而蟠礴。無尖而刺矗。雖無鱗與甲。又無鬐與鬣。大者大魚若。小者小魚若。後先若啣尾。左右若比目。或若躍而浮。或若潛而伏。磷磷衆維魚。於牣縱大壑。聞言及目見。足令衆庶惑。荒唐幻誕事。吾儒所不說。然猶理殊萬。不可拘執一。人皆有是眼。見物不同各。神眼與俗眼。相遠隔幾驛。荊山一塊石。俗眼但麤惡。獨有和氏眼。洞見中有玉。金華山上石。俗眼白錯落。獨有初平眼。叱起羣羊牧。穀城山下石。俗眼黃硉兀。獨有子房眼。恭進丈人舃。自有空洞眼。魚石始分別。嘗見高山頂。巖罅有螺殼。滄桑迭萬變。道眼俄一瞥。會見此山石。躍鱗或點額。洋洋得其所。下歸歸虛國。此理欲問石。不語請對臆。雖潛在江海。亦匪魚極樂。網者截水漁。叉者撑波入。釣者香其餌。弋者緻其繳。禽有鶖與鳧。浮泳恣搜索。獸有獺與犀。出沒分敺逐。弱肉強之呑。同類有鮫鰐。與其復爲魚。爲石在此谷。天荒海上山。終古無用積。磊磊象鱗鱗。化翁一戲劇。爲石無所用。似魚不可食。不爲明堂礎。不爲長城築。石色黑不艶。不可爲碑碣。石理生不熟。不可施追琢。諛墓無直筆。去思成謟俗。瞻彼他山石。石面多愧色。古人強解事。擊之響淸越。響者稱古鍾。厥數三十六。誰知亂石䕺。自有眞磬匿。於皇世宗朝。磬石錫貢密。執策非伯樂。安可拔尤得。遂令泗濱石。未和淸廟瑟。空山歲月長。樵牧來敲擊。山矸石爛歌。千載想甯戚。擊拊八音諧。勛華一夔足。沉淪不遇歎。石乎豈爾獨。
-太乙菴文集卷之一
*태을암은 1795년에 생원시에 합격한 밀양인 신국빈.
萬魚石
萬魚山洞。在密陽縣東二十里。洞中巖石。大小悉有鍾磬聲。世宗朝。採之作磬。不中律。遂廢。
魚山之精。
萬石之空。
織襹冄曳。
微風澒洞。
然大鳴。
鍾磬震動。
豊山不諧。
泗濱矣往。
叶尹切。
泠然天質。
謝彼推挏。
來人仰止。
出雲滃滃。
-洛下生集冊六 [嶺南樂府]
*낙하생은 서울 출생 인천 거주한 이학규(1775-1835).
세종대왕이 여기 돌을 가지고 악기 편경을 만들려고 하였는데,
음정이 맞지 않았다고 한다.
<만어산 경석(萬魚山磬石)>
- 산중에 한 동굴이 있는데, 동굴 안에 있는 크고 작은 바윗돌이 모두 종과 경쇠 소리가 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화했다.” 한다. 세종 때에 채굴하여 경쇠를 만들었으나 음률에 맞지 않아 드디어 폐지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밀양도호부
*동굴이라고 한 것은 오역이다. 골이라고 번역해야 한다.
토산(土産)은 경석(磬石)과【부(府) 동쪽 만어사동(萬魚寺洞)에서 난다.
-<<세종실록>> <지리지>, 밀양도호부
오늘 가서 두드려 보니 과연 맑은 쇳소리가 났다.
새벽 예불 때 법당 안에 걸어두고 스님이 치는 작은 종에서 나는 종소리가 울려 나왔다.
안내한 차재환 선생님의 착상대로, 손순이 캐어내 매달아놓고 친 석종 소리가
궁중의 임금님 귀에까지 들렸다고 하는 이야기에서 그 석종은 여기 만어사와 같은
소리가 나는 석질의 종이었을 지도 모른다.
돌을 자른 흔적이 완연하다.
만어사의 너덜겅은 천연기념물 제528호
만어사 창건 시기에 조성된 이 탑은 절대연대(1180)가 확실하여
고려시대 탑 양식 변화의 하나의 기준을 제공하는 귀중한 유산이다.
안내판에는 왜 1181년이라고 하였을까?
단순한 오기일까? 삼국유사에 나오는 고려 명종 11년과 착오가 일어난 것일까?
최근에 조성한 마애아미타불상.
얼굴이 좀 갸름한 편이지만 그래도 수작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 21세기의 문화재로 인정될까?
지붕 물매 라인이 곡선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일본의 전통 목조 건축의 지붕을 연상케 한다.
삼국유사에서 말하는 양주는 양산이고,
옥지는 낙동강 주변의 우각호일 것이고,
독룡은 해마다 일어나는 홍수로 농경지와 인명 피해를 주는 강의 범람일 것이다.
구름 속에서 음악이 났다는 것은
낙동강과 주변 산들에서 운무가 자주 일어나고
바위들에서 석경, 종소리가 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고려시대에 이 자리에 만어사를 창건하고 탑을 세운 것은
강의 범람이라는 자연재해를 물리치려는 비보 풍수 내지 양재攘災와
관련 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서 부처의 가사를 씻었다고 하는 물이 고인 반석은
약수가 수도꼭지에 흘러나와 고이는 석탑 옆의 만어약수 반석이 아닐까?
만어약수 곁에 있는 바위에 새긴 '靈'자와 해와 달, 산의 무늬는
도교문화의 영부靈符이다.
5월 빙산사지 빙혈에도 영부가 있었다.
1월 중국 여행 중에도 태산이나 화산을 상징하는 오악 상징 영부가 있었다.
동학의 궁을기弓乙旗, 13자 주문도
도교문화일 것이다.
바위에 새긴 무늬 중에서 아래쪽에 산들이 있고 그 위로 빛을 내며 솟는 아침 해는
만어사 아래 펼쳐지는 낙동강과 산들 위로 솟는 아침해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명문은
(문월성과 고면재가 주승 양운경과 나란히 새겨져 있기에 인명으로 볼 수 있다면)
문월성과 고면재가 뜻이 있어서 기해년 봄에 산사를 찾아 왔는데
당시 절의 주지승이 양운경梁雲耕이었다.
언제 조성되었는지 명확치 않지만,
원이 수학책에서 보는 것 같은 완전한 동그라미이다.
영자의 획이 직각으로 붓글씨가 아니고
오늘날의 인쇄물 고딕체나 수학책에서 보는 것처럼 직각이다.
산 위로 태양이 솟으며 빛을 내는 그림은
일본의 욱일승천기를 연상하게도 하며
요즈음 우리의 아침해 솟는 모습 그림과 같다.
주지승 이름이 양운경이라고 하여 법명 앞에 속성인 양씨를 붙인 점이
승려에 대한 일본식 호칭이다.
또한 본래 미륵전 가는 산 비탈에 있었다고 하였는데,
조선시대 만어사 방문자들의 문집 등에 이 영부에 대한 언급이 없다.
글자나 그림을 새긴 것이 마멸이 그렇게 오랜되지 않았으며
2009년에 방문한 김해 정암사 법상 스님은
암각된 글자에 붉은 칠을 한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면 기해년이 1935년으로 판단된다.
만어사 미륵전의 자연 바위
포항의 장기 고석사 보광전에도 이와 비슷하게 응회암 바위가 있다.
고석사 바위에는 삼국시대(삼화령 미륵삼존불)와 고려시대(법주사 마애미륵불)를 잇는
통일신라시대 유일의 미륵불 의상(倚像-의자에 앉아 두 다리를 내린 모습)이 새겨져 있다.
태현 스님 계열의 법상종 신행단체가 조성하고 신앙한 것이라고 한다.
동해바다 일만 마리 물고기(뭇 생명-중생)가 돌로 변한 것이라면
이 바위는 용화수 아래서 부처가 된 미륵불이다.
억만겁토록 미륵불이 일만 중생들에게 설법하고 있다.
미륵전의 바위는 형상이 새겨지지 않은 자연석이다.
말 없는 한 덩이 바위 덩어리에서
내 마음이 부처의 모양을 지어낼 뿐이다.
만어사까지 포항에서 버스 타고 오면서 돋보기 안경끼고 읽은
책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유마 거사의 묵묵부답이 불이법문不二法門이 될 수 있는 오직 한 가지 경우는
모든 세상사에 대한 이론적이고 분석적인 답변이 전제되었을 때만이 존재한다.
아무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 무언에는
불이법문은 물론 그 어떠한 가치관도 거기에서 유출해 낼 수 없다.
......
번뇌 망념에 고통스러운 사람은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다 쓰게 마련이다.
답을 찾기 위해 방법을 찾고, 스승을 찾아 길을 나섰지만, 방향을 잃고 이곳저곳
헤매며 답은 쉽게 찾아지지도 않는다. 답답한 심정에 날은 어둡고 비바람은 몰아치며,
갈 곳이 없어 허둥대는 스스로의 처지를 무심히 바라보다, 우연히 연못가에 우두커니
놓여 있는 기암괴석을 바라보고 홀연히 깨닫는다. 허둥대는 스스로의 초라한 모습과,
똑같이 비바람을 맞고 있는 기암괴석의 의연한 모습이 서로 비견되었을 때,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기암괴석의 천만마디보다 더한 무게의 가르침,
즉 무념무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것이다.
번뇌 망념에 대한 무념무상이요, 대립에 대한 무언일 때 불이법문은 이루어진다.
현실세계의 고통에서 또 다른 세계의 이상향을 찾는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가 고통스러운 원인은 그 세계를 고통스럽게 하는
나에게 기인한 것이니, 그 원인의 제공자인 스스로가 원인을 제거한 순간
현실세계가 바로 이상세계라는 것이 유마경의 기본적 가르침이다.>
-화공, <<유마경과 이상향>>(민족사, 2014)
화공 스님은 범어사에서 출가하여 해인사 강원을 거쳐서
일본 쿄오토오의 하나조노대학, 불교대학,
미국 죠지아주립대, 하바드대, 위스칸신대에서 유학하고
미국 벨로잇칼리지에서 오랜 동안 교수 생활하다가
30년 만에 귀국하여 동국대 경주 캠퍼스에서
학생을 지도하다 퇴임하였다.
스님의 위의 책 강의는
경주는 송화도서관에서 수요일 7시에 일반인 대상 강의가 있고,
포항은 장성동
포항실내테니스장, 삼도뷰엔빌 아파트(포항 온천 북쪽 100미터 지점) 사이의
침촌문화회관에서 금요일 7시에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교수, 변호사, 의사, 교사, 주부, 시인, 서예가, 학생 등이 모여
저자 직강을 듣고 있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에게 열린
강의이다. 많은 분들이 좋은 강의를 놓치지 말기를!
책의 서장부터 인도불교의 역사와 불교 교학에 대한 심도 있는 강의가 펼쳐진다.
학문의 강국인 일본, 미국의 최신 학문 성과들을 바탕으로 하는 스님의
통찰력 넘치고 재미있는 강의가 나에게 배움의 희열을 선사하고 있다.
유마경 외의 다른 불전은 물론이고
유교 경전, 노자, 한비자, 순자 같은 중국 고전들이나 기독교 성서 같은 지식도
스님은 자유롭게 인용한다.
인문학의 향연이 펼쳐진다.
우리 문화 유산, 특히 불교문화유산을 공부하는 우리들에게도 더 없이 좋은
교양의 원천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다른 분들에게도 이 책과 강의를 추천해 드리고 싶다.
제 머리속에서 선을 연결하여 그려낸 바위 표면의 사람 얼굴 윤곽인데....일연 스님도 이 얼굴 윤곽선을 보셨는지?
둔황에서 발굴된 석가모니 41세 때 모습이라고 하는데
부르나 존자가 그렸다고 전한다.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오늘 미륵전 안의 바위에서
미륵 부처의 얼굴을 찾아내는 데 성공한 것이 참 즐겁다.
일연 스님도 이 절에 와서 직접 돌을 두들겨 보고 종소리를 들었고,
미륵전 바위벽에 닥서면 사라지고 떨어지면 그림자처럼 나타나는 부처의 얼굴을 보았는데,
700여 년 뒤에 나도 오늘 보고 왔다는 것이 감개무량하다.
바위가 법당 뒤로 튀어나와 있다.
만어사 풍광은 신비롭고 넉넉하고 낙동강과 산 봉우리들이 첩첩이 펼쳐지는 툭 트인 시야가 좋다.
이 돌들은 삼국유사에 실린 전설대로 정말로 동해 바다의 일만 마리 물고기들이 돌로 변한 것일까?
상상력이 이 풍경을 잘 표현한다.
바다 가까이의 사찰인 오어사, 범어사처럼
낙동강이 내려다 보이는 만어사에도 물고기가 등장한다.
불교에서 물고기는 고해苦海의 뭇 생명을 상징하는 말일 것이다.
일연 스님이 <<고기>>를 인용하며, 아야사가 마야사, 곧 물고기라고 하고,
가라국이 만어산 곁에 있으며, 수로왕이 등장하고, 만어산에 나찰녀, 옥지의 독룡,
나찰녀의 오계, 재해를 물리침, 동해의 고기와 용이 골짜기에 가득 찬 돌로 변하여
쇠북과 경쇠 소리가 난다는 현존하지 않는 <<고기>>의 내용은
김해 수로왕릉의 파사석탑, 쌍어문, 가락국기의 내용,
인도의 가야국, 가야산(보드 가야의 상두산), 아요디아와 연결되고
(이종기, 김병모의 연구)
남방 해양 루트를 통해 불교가 가야에 전파된 흔적으로 여겨진다.
가야시대의 불교문화의 흔적 위에
고려시대에 와서 자성산이라는 이름이 부여된
만어산에 비보풍수, 양재 목적으로 만어사가 1180년에 조성된 것은 아닐까?
백합과에 속하는 나리꽃, 만어사 오르는 민가의 담장에 심어져 있어서 초여름의 아름다운 정취를 만끽하게 한다.
만어사 오르내리며 어릴 적 먹던 오디와 산딸기를 몇 알 따 먹어보기도 하였다.
만어사에서
어릴 적 삼국유사를 읽으며 아득히 신비롭고 그리웠던 절.
내 마음의 갈피 속에
지난가을 주워다 꽂아두었던 붉은 단풍잎같은
그런 절.
지천명의 나그네가 되어
좋은 분들과 함께 간 비구름 속 만어사 첫 소풍 길,
꿈 속에 한 마리 물고기 되어 헤엄쳤어.
가을이 오면 나 홀로 다시 가고픈 절.
수로왕과 일연 선사와 나옹 대사, 동계 스님의 숨결 어린
만어산 만어사에서 댕댕댕 석종을 울리고 싶다.
내 마음 따라 그림자 지는 바위 속 부처를 만나고 오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