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道)와 과(果) >
왜 도와 과를 나누어서 말하는가?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열반으로는 들어간다고 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열반에 들면 의식이 없습니다. 열반은 특수한 정신적 상태이기 때문에 들어가도 들어간 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이 상태에서는 몸의 자세가 바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들에게 좌선 중에 혹은 좌선이 끝난 후, 몸의 자세를 보라고 하는 이유는 다 열반에 들어가기 위한 훈련이라고 보면 됩니다. 집중의 상태에서는 몸의 자세가 바릅니다. 그리고 호흡이 있다가, 마음이 있다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보다가, 마음마저 없어지는 열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실 열반이라는 것은 그 과정만으로 볼 때는 그렇게 간단합니다. 몸과 마음이 없어지면 열반입니다.
그러기에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열반에 들 수가 없습니다. 이 상태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른 자는 있어도 들어간 자는 없다, 혹은 이른 자는 있어도 얻은 자는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의 정신적 상태이고 그냥 그 당시의 정신적 상황일 뿐입니다. 무슨 자격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열반이 한두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이렇게 되풀이 됩니다. 3법인을 통찰해서 집착이 끊어지면 특, 하고 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과로 나옵니다.
이렇게 각각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과를 지향하고(道), 결과(果)가 있게 되어 있는데 이를 4쌍팔배(四双八輩)라고 합니다. 이것을 수행의 세계에서는 매우 자세하게 분석해 놓았습니다. 들고, 나오고, 들고, 나오고, 그 중간에는 의식할 수 없다는 것 등 열반 그 자체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승들은 들어갈 때의 상태와 나왔을 때 상태에 대해 질문합니다. 수행자는 들어가는 것밖에 모르고 나왔을 때밖에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스승들은 열반에 들어갔다, 아니다에 대한 이야기를 절대로 해 주지 않습니다. 왜? 아만심이 생길까봐 인정을 안 합니다. 수행은 그런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까 그러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 자신이 깨달았다고 말한다면 그런 자는 실제로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적어도 우리가 말하는 4념처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완전한 깨달음이라고 한다면 그렇습니다. 지혜가 성숙되어서 집착이 끊어져 얻어지는 열반의 상태에 이른 깨달음은 완전한 깨달음입니다.
그러니까 깨달음이란 ‘집착이 끊어져서 열반의 들어갔다가 나온 것’이라고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리고 열반에 도달한다는 것, 이것은 목적 지향점입니다. 부처님께서 45년간 법문하신 것은 오직 열반에 들어가라는 한 마디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실상 열반이라는 이야기는 빼놓습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제시되어야 할 것이 아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다보면 결과로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열반을 목표로 한다면 전도(顚倒)된 것입니다.
그것은 세간에서 출세간으로 가는 하나의 완성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오직 부처님만이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열반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열반은 오직 불교에만 있습니다. 부처는 오직 이것을 말하려고 출현하셨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집중의 상태에서는 몸의 자세가 바릅니다. 그리고 호흡이 있다가, 마음이 있다가,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보다가, 마음마저 없어지는 열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몸과 마음이 없어지면 열반입니다.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보지 않으면 열반에 들 수가 없습니다.또한 열반이 한두 번에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들어가고 또 들어가고 이렇게?되풀이 됩니다.? 3법인을 통찰해서 집착이 끊어지면 특, 하고 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과로 나옵니다.이렇게 각각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의 도과를 지향하고(道), 결과(果)가 있게 되어 있는데 이를 4쌍팔배(四双八輩)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