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순방기 (6)---사해 편
聽林, 李和燮
동 예루살렘 성지를 뒤로 하고 나오니 서쪽 성벽 언덕에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일행은 예루살렘을 벗어나 유대광야로 접어들었다. 광야에는 석회석이 많은 돌산과 계곡에 풀이 자라서 양을 치는 곳이 간혹 있었다. 산의 7부 능선쯤에 계단처럼 생긴 길이 있는데, 원주민이 치는 양떼들이 오랜 세월 지나다녀서 생긴 길이라고 한다. 유대광야는 예수님께서 성령의 인도로 나가시어 40일을 밤낮으로 단식하신 뒤에 악마의 유혹을 받으신 광야라고 한다. 마태오복음서 4장3절에 의하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는 유혹에 대하여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라는 대답으로 유혹을 물리치셨다.
어느덧 해발 0m 위치의 도로를 지나고 유대 광야는 계속 되었다. 루카복음서 10장30절에 예수님께서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시는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난 이야기를 하셨는데, 이 지역이 그 옛날엔 그럴만한 지역이었다. 매점과 식당이 있는 여행 휴게소에 들러 노천에 있는 파라솔 식탁에서 쌀밥과 찌개가 준비된 도시락으로 점심을 맛있게 먹으면서 귀가 멍멍함을 느꼈다. 차를 몰고 고지에 오르면 기압차로 귀가 멍멍해지듯이 해발 아래 지역에서도 그와 같았다. 점심식사 후에 사방을 둘러보니 저 멀리 보이는 도시가 예리코이며 그 도시 서쪽에 맨둥맨둥한 산이 보였다. 마태오복음서 4장8절에 의하면, 악마는 다시 예수님을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라고 유혹하였는데, 그 높은 산이 저 맨둥맨둥한 산이고 그 나라와 영광이 예리코 도시라고 한다.
버스는 도시 간 1번 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내려가다가 도시 간 90번 도로로 바꿔 남쪽으로 달리니 사해 해변 가 도로이다. 사해는 세계 유일한 곳으로서 해발 -400m이기 때문에 바닷물이 빠져 나가는 곳은 없고 비가 오면 주위의 소금기가 흘러 들어오고, 오늘처럼 햇볕이 좋은 날에는 물이 증발하여 소금기가 농축된다. 소금은 보통 물에 11%정도 녹는데, 사해는 약 30%의 소금이 물에 과포화 되어 있다고 한다. 여행안내자는 사해 소금물이 눈에 들어가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하며 주의를 당부하였고, 1회에 30분 이내만 바닷물에 있도록 안내하였다.
위의 사진은 사해 해변 가의 탈의실 영업점에서 서쪽에 있는 산을 찍은 것인데, 우기에 산사태가 난 흔적이 보인다. 빗물에 소금 성분은 녹아서 사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 영업점에는 생활소모품 판매점도 있고 유황탕도 있고 그에 연결된 탈의실도 있었다. 옷을 벗어 보관하는 옷장들은 겉이 녹색으로 칠해져 있는데, 오래 되어서 낡고 깨끗하지 않았다. 옷장 열쇠가 있긴 하지만 주요 소지품을 넣기에 마땅하지 않았다. 여권과 카드 지갑을 조그만 가방에 넣고서 그 가방을 들고 해안가로 나갔다. 일행 대부분이 모자와 색안경을 착용하였으며 까만 사해 진흙으로 온 몸을 바르는 회원도 있었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려고 맨발로 차량으로 이동한 후 모래 위를 걸었다. 곧 이어 위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모래 위에 하얀 소금 결정이 뾰족뾰족 자라나 있는 부분에서 발바닥이 아팠다. 어제 밤에 매점 점원이 슬리퍼를 권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발바닥과 소금 결정과의 접촉을 적게 하려고 절름거리며 걷다가 드디어 사해 바닷물 속에 들어서니 물은 깨끗하게 보였으며, 바닥에 소금 결정 덩어리가 타일처럼 깔려 있었다. 다행히도 바닥의 소금 결정 덩어리는 뾰족한 부분이 없어서 발바닥의 통증은 가셨다. 위 사진에서 오두막같이 판자로 지은 시설물이 두 곳인데, 바닷물 수위가 가슴정도 오는 곳에 설치하여 놓았다. 그 곳에 매달려 햇볕을 피하기가 좋았다. 눕는 자세는 안정하게 둥둥 뜨지만 엎드리는 자세로 전환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안정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무릎정도 차는 깊이에서 하늘을 보며 누우니 둥둥 뜬다. 그 정도 깊이에서도 엎드리는 자세로 전환하기가 불안정하였다. 사진의 왼쪽에 통처럼 보이는 것은 수돗물 공급 시설이다. 나와서 세안을 하기도 하고, 눈에 바닷물이 들어가면 빨리 씻으라고 고무파이프를 오두막까지 연결하여 놓았다. 짧은 시간이지만 사해 체험을 하고 나니 死海라고 명명하기보다 염해(鹽海, 소금바다)라고 명명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이곳에서 나오는 광물질로 화장품이나 비누를 만든다고 하는데 효과가 좋다고 한다.
사해는 가운데에 이스라엘과 요르단 간에 국경이 정해져 있다. 이스라엘에 속하는 사해 부근에 서기 73년까지 있었던 Masada 항전으로 유명한 Masada유적지가 있다. 이 유적지는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과 마찬가지로 유대인과 로마군의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의하면, “이곳은 AD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뒤 유대 저항군들이 마지막까지 로마군에 항전했던 곳이다. <유대전쟁사>에 따르면 당시 자결한 유대인의 수는 967명이다. 이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수도를 정한 뒤로 1000년 동안 이어진 이스라엘 왕국이 사라지고, 이후 2000년 동안 나라 없이 세계를 떠돌게 되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시대가 시작되는 시점을 비감하게 장식한 사건이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나는 유대 저항군들의 길, 그리고 그들과 같은 유대인이었던 예수님의 길을 비교하여 묵상하였다. 지배자인 로마와 피지배자인 유대인과의 관계에서 예수님은 평화의 길을 주장하신 반면에 유대 저항군들은 독립 투쟁의 길을 택하였다.
예수님의 평화의 길은 마태오복음서 5장41절, 44절 그리고 루카복음서 6장31절에 기술되어 있다.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그리하여 지배자에게 내는 세금을 거절하지 않으셨고, 로마군 백인대장, 왕실 관리, 세리 그리고 유대인들을 가리지 않고 그들의 청(請)을 들어 주셨다.
어느덧 버스가 숙소인 텔아비브 힐튼 호텔에 도착하였다. 이미 해가 져서 어둑어둑하였다. 호텔 승강기는 모두 4대가 운행되는데, 한 쪽 구석에 위치한 1대의 승강기 입구에 shabat 이라는 안내 글이 있었다. 금요일 일몰 후에 안식일이 시작되었는데,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차 운전도 안하고 금식하고 집안일도 하지 않으며 승강기 버튼을 누르는 것도 안하고 쉰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승강기를 타면 맨 위층까지 쉬지 않고 올라갔다가 한 층씩 한 층씩 내려오면서 문이 열린다. 나도 오늘 저녁 금식하기로 하였는데 호텔에서 안식일 기념으로 초콜릿을 주어서 먹으니 입 안에서 슬슬 녹는다.
이스라엘 순방기 (7)이 다음에 이어집니다.
첫댓글 청림공께서 쓰신 글을 읽노라면 옆에 앉아서 속삭이는 느낌이 있어 참 편안해서 좋아요.여행 제7회 연재가 기대 됩니다,감사해요.앉아서 이스라엘을 여행하게 해줘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