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요13:12-17)
2021.5.16 스승의 주일,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사람은 누구나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19세기 전반 미국에 무디(D. L. Moody)를 필적할 수 있을 정도로 유명한 빌리 선데이(Billy Sunday)라는 복음 전도자가 있었다. 빌리 선데이는 생전에 백만 명에게 복음을 전했고, 삼십만 명 이상을 결신 시켰던 복음 전도자이다. 그는 한때 ‘시카고 화이트 삭스’라는 팀에서 메이저 리그 야구선수 생활도 했었고, 어린 시절에는 고아원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에 주일학교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들은 권면을 실천하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매일 15분씩 말씀을 읽고, 15분씩 기도하고, 15분씩 전도하고, 15분씩 사랑을 실천하라. 그러면 너는 훌륭한 하나님의 종이 될 것이다”
좋은 스승과 멘토를 만나는 것이 이처럼 중요하다. 빌리의 선생님이 해주었던 권면은 지금도 우리들이 눈여겨보고 실천할 만하다. 오늘은 부부주일이자 스승의 주일이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로 결정한 사람은 또한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을 배우고, 그 가르침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스승의 날이나 스승의 주일은 단지 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날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좋은 제자가 되기로 결심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 서두에 언급한 빌리 선데이의 주일학교 선생님은 제자에게 평생 동안 가야할 제자의 길과 인생의 방향을 알려준 것이다.
오늘 설교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앞두고, 스승으로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섬김의 본을 보여주시는 내용이다. 보통 이것을 세족식(洗足式)이라고 부른다(요13:12-15).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2-15)
그렇다면 예수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하필이면 왜 발을 씻어 주시는 본을 보여 주셨을까? 이것을 이해하는 것이 본문 말씀의 핵심이자, 오늘 스승의 주일에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확신한다. 이스라엘은 건조한 날씨 때문에 먼지가 많다. 그래서 집에 손님이 오거나 주인이 외출하고 돌아오면 종들이 발을 씻겨 주는 것이 손님이나 주인에 대한 예의였고, 관례였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다는 것은 곧 종의 자리까지 스스로 낮아지셨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주님의 이 모습을 통해서 주님이 가르쳐 주시기 원하셨던 참된 스승과 주님의 제자들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낮아져서 서로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발을 씻어 주는 사람이다. 예수님의 리더십은 섬김의 리더십이다. 십자가는 낮아짐으로 높아지는 역설의 복음이다. 낮아짐과 섬김 없는 열매를 기대하면 안된다. 만약 교회나 사회에서 리더의 위치나 직분을 가진 사람들(목사, 장로, 권사, 교사, 회장, 사장, 의원, 단체장, 대통령 등)이 겸손과 섬김의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그가 가진 권위는 권력으로 변질 된다. 존경과 변화는 권력이 아니라, 권위와 섬김에서 나온다. 이처럼 예수님처럼 낮아져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가장 좋은 교육방법고, 가장 좋은 전도방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더 낮아지자. 더 낮아져서 서로 발을 씻기며, 섬기는 우리들이 모두가 되자.
계속해서 이어지는 본문 16-17절 말씀을 보면, 주님은 왜 이렇게 우리들이 낮아져야 하는지에 대해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말씀해 주셨다. 그것은 우리들은 주인이 아니고 종이기 때문이다. 16-17절을 함께 읽자.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요13:16-17)
이 말씀처럼 종(우리들)은 보냄을 받은 자이고, 하나님은 보내신 분이시다. 우리는 단지 일꾼이고 청지기일 뿐이다.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예수님이 주인공이시다. 종이 주인 행세하면 안된다. 교회든 사회든 국가든 특정한 사람들이 사심(私心)을 품고 권위를 이용해서 권력을 행사하면서 주인행세하려고 하면, 그때부터 그 공동체는 급격한 혼돈 속으로 빠지게 된다. 우리는 이미 교회나 한국사회나 세계 역사 속에서 이러한 실례를 많이 보았다.
다만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낮아져서 서로 섬기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섬긴 후에 조용히 주님 뒤로 사라지면 된다. 우리는 사나 죽으나 오직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면 된다. 이것이 전부다. 이것이 영적인 질서이고 원칙이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가 이것을(영적질서)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고 까지 말씀하셨다. 이것이 이 시간에 우리 모두를 주님의 마음이라고 확신한다.
19세기 초에 스코틀랜드의 어느 교회에 말썽꾸러기 소년이 있었다. 이 소년의 부모는 그 교회의 장로님 이었지만, 그 소년은 부모의 기대와는 달리 다른 불량한 아이들과 어울려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 성격도 무척 난폭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아이를 멀리하고 경계했다. 그런데 그 아이의 그런 모습을 아파하던 주일학교 여선생님이 어느 날 옷 한 벌 사들고 소년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선생님을 향해 난폭스러운 말을 하면서 그 옷을 갈기갈기 찢어서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이 일로 선생님은 엄청난 충격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우리들도 어린이들을 지도하거나, 전도현장에서 이와 유사한 일을 당하는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여선생님은 주일학교 부장을 찾아가 ‘이제 더 이상 그 아이를 맡을 수 없다’ 말했다. 그러나 주일학교 부장은 오히려 그 선생님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선물들을 사들고 소년을 찾아갔지만, 그것들도 역시 쓰레기통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은 여선생님에게 “저 아이는 구제불능이며, 더 이상 사랑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 여선생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제자를 찾아가서 권면하면서 눈물로 호소했다. 그래서 결국 선생님의 헌신에 감동된 소년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성장해서 중국 선교사로 헌신하게 된다.
그 소년이 바로 최초의 중국 선교사였던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1782~1834)이다. 모리슨은 청나라 가경황제 12년, 아편전쟁이 일어나기 33년 전, 기독교 선교사로서는 첫 번째로 중국 땅을 밟았다. 모리슨은 중국에서 27년 동안 사역하면서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하고, 중국어 사전도 출판했다.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성경을 이용해서 유명한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가 중국에서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할 수 있었다(사진 - 모리슨 선교사가 번역한 한문성경).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성경은 우리나라 선교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866년 영국인 토마스 선교사는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 성경을 들고 미국 상선 제너널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입국을 시도했다. 그러나 조선군에 의해서 배는 불타고 토마스 선교사는 “야소 야소”를 외치면서, 모리슨이 번역한 한문성경을 대동강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던지고 순교를 당했다.
그때 토마스 선교사가 던진 성경책을 회수하는 일을 맡았던 평양 안주골의 주사였던 박영식은 한문으로 된 성경책을 모조리 뜯어서 자기 집의 도배지로 사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자신의 방에 누워있을 때 온통 방안에 도배된 성경책의 내용을 읽으면서 감명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후에 그는 자기 집을 교회로 개방하였는데, 이 교회가 바로 평양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교회이다. 바로 이 널다리골교회가 부흥이 되면서 후에 장대현교회로 개명하였는데, 이 교회에서 한국교회는 물론이고 세계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1907년 대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사과나무의 사과는 셀 수 있어도, 사과 씨 속에 있는 사과의 개수는 셀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하나님께서 스코틀랜드의 어느 시골교회 여선생님에게 낮아짐과 섬김의 마음을 주실 때, 이미 하나님의 눈은 극동 조선 땅에 까지 보고 계셨다. 이 모든 과정들을 보면 정말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우리들도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더 낮아지고, 더 섬기고, 서로의 발을 씻기자. 그래서 이 지역이 복음화 되고, 이 땅의 어린생명들을 주님께 인도하여,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꿈을 이루어 드리자. 주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