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전라도닷컴>
<김진수의 약초산책 46>
탈락피부염 · 홍피증 · 건선 - 지치(紫根)
탈락피부염 또는 홍피증은 피부를 보호하는 각질층이 윤기를 잃어 마르고 얇아지고 트면서 탈락하는 인설과, 온몸이 붉어지는 홍반이 특징인 염증성질환을 말한다. 심장박동이 빨라지며, 심한 가려움증으로 깊이 잠들지 못해 피로하고, 식욕이 없어 허약해진다. 고령자에서 호발하며 피부에 나타나는 열과 달리 몸에는 냉감이 도는데 염증, 하지부종, 탈모로 이어지기도 한다. 건선 역시 두꺼워진 피부에 홍반과 인설을 주 증상으로 하지만 홍피증에 비해 홍반의 경계가 뚜렷하다. 서양의학은 발병 원인으로 암, 림프종 같은 다른 질환의 이차적인 반응이거나 인체 면역을 억압하는 특정 화학물질이나 약물 부작용 등을 제시한다. 치료는 항히스타민제, 항생제, 스테로이드제 적용의 대증요법이다.
인체의 가장 큰 기관인 살갗은 주로 풍한서습조화(風寒暑濕燥火)와 같은 외부환경에 대하여 몸의 내부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피부 1㎠에 보통 3개의 혈관, 65개의 모근, 100개의 피지선, 650개의 땀샘, 1,000여개의 멜라닌세포, 1,500여 신경수용체가 분포한다고 한다. 선천적으로 피부조직이 얇은 사람의 열은 외부환경에 민감하여 아토피성 피부염, 알레르기성 비염, 몸살감기 같은 폐 관련 질환에 이환되기 쉬운데, 두터우면 체내에서 발생된 비정상적인 열이 피부를 통해 잘 배출되지 못하므로 내부에서 오래 열이 쌓여 만성습진이 되거나, 비색(鼻塞, 코막힘)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습(濕)․열(熱)․조(燥)가 합세한 담과 어혈(과산화지질 등)이 피지선을 막아 멍울(피지낭종)이 형성되기도 한다.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폐(肺)는 피모(皮毛)를 주관한다’ 하였다. 폐는 체표와 상응하여 피부호흡을 담당한다. 외기(外氣)에 의한 백 가지 병사는 인체의 진액이 스민 피부로부터 시작하여 낙맥(絡脈, 체표에 드러나는 가늘고 얕은 분지)을 거쳐 경맥(經脈, 장부와 연계된 기혈 운행의 주요 간선)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장부에 미친다. 경락체계는 에너지를 유통시키고 전신의 각 부위들 간의 정보를 교환하는 역동적인 순환체계를 말한다. 즉 폐의 기가 충분하지 못하면 기, 혈, 진액을 경맥과 낙맥의 길을 통해 피부에 원활하게 조달할 수 없게 된다. 폐기가 약해지고 허열이 폐에 가득해지면 이번엔 허한 위(胃)의 열이 심장의 화를 끼고 폐경에 들어가 비장의 청기 대신 위장의 탁기(습담)가 전신의 피부에 영향을 끼친다. 피부는 정상을 유지하지 못한 채 엷어지고 피가 흩어지는 듯 붉은 반점으로 얼룩진다.
<입문>에 만일 발반의 색이 자흑(紫黑)하고 아프면서 섬어(譫語)하고 번조(煩燥)하면 자설(紫雪)을 쓴다고 하였다. ‘자설’은 황금, 석고, 현삼, 감초 등 11가지 본초의 배합인데, 발반·경련·번열(煩熱)·구설생창(口舌生瘡)을 주치하는 방제이다. 또 분비물이 많고 가려움이 심한 완고한 피부병에 적용하는 소풍산(消風散, 형개 감초 각 4g, 인삼 백복령 백강잠 천궁 방풍 곽향 선퇴 강활 각 2g, 진피 후박 각 1.2g)을 쓰기도 한다. 탈락피부염, 홍피증, 건선은 모두 열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청열(淸熱)이 필요하지만 고령자의 경우 다만 체력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체온을 조절해주는 부드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내경>에서 ‘모든 가려운 증세는 허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니 피가 기부(肌膚, 살갗)를 번영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 하였다. 따라서 건조를 낀 전반의 피부병은 모든 혈증을 다스리는 사물탕을 기반으로 청열, 청혈, 해독, 구어혈, 자윤, 화담, 거풍하는 것으로 치료의 방향을 잡는다.
『자근(紫根·紫草)』은 자초과에 속한 다년생초본 ‘지치’의 뿌리를 그늘에서 말린 것이다. 약재의 뿌리가 유난히 붉은색을 띠므로 자초(紫草)라 하였는데, 봄에 첫 잎이 돋아날 때 채취한 무겁고 큰 뿌리를 자용(紫茸)이라 하여 귀하게 썼다. 성미는 달고 짜며 차다. 간과 심경으로 들어간다. 피를 식혀 잘 돌게 하고, 해독하며, 습진이 붉거나 검은 것, 음부의 가려움증을 치료한다. 자근의 주요 구성성분은 붉은 색소인 시코닌(Shikonin)으로 혈관생성억제를 통해 항암활성을 가지며, 표피 암세포의 증식과 관련된 단백질을 감소시킨다. 자근 추출물은 피부 구성 지방인 세라마이드 분해 억제작용을 통하여 아토피에 대한 치료활성을 보이며, 표피의 과잉증식을 억제한다고 보고되어 있다. 건선이나 홍피증, 아토피의 건조는 표피에 세라마이드 함량이 부족하다는 의미이다. 세라마이드는 각질세포 사이에서 진피의 진액(수분과 지질) 손실을 막고 외부의 유해균으로부터 내부를 지키는 장벽의 기능을 수행한다.
탈락피부염 ․ 홍피증 ․ 건선 치료를 위한 약초 구성은, 황기 당귀 천궁 생지황 작약 구기자로 보기 보혈해서 얇고 위축된 피부의 상태를 개선하고, 맥문동을 더하여 심을 맑히고 폐를 적셔 완만하게 열을 낮춘다(각 3). 후박 백출로 행기(行氣) 보비(補脾)하고 방풍 형개로 풍과 가려움을 완화하며 현삼으로 보습인자와 지질의 생합성을 증가시킨다(각 2). 우방자와 선퇴로 피부의 재생을 돕고 피지분비촉진작용이 있는 의이인과 체표의 풍열을 흩는 금은화(각 1)로 구성하여 자근을 맨 위에 올린다.
한편 약국에서 판매되는 ‘자운고’는 자근과 당귀를 중심으로 하여 열독을 배출하고 피부 보습과 항염을 밖에서 보조할 수 있는데 탈락피부염, 홍피증, 건선을 비롯하여 습진, 화상 및 각종 진균 감염증에도 다양하게 적용되는 한방연고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