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19:31-39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일 것이다. ‘분수’란, ‘자기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를 의미한다. 분수를 지키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쉬운 일도 아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분수를 알면 겸손, 모르면 교만) 세상의 기준을 따라 세상이 인정하는 스펙을 가지지 못했다 해도 (배경이 없어도...) 자기 분수만 알면 그 사람은 실패하지 않고 성공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롬12:3에 보면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생각이 열쇠 - 그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리고 이끌어 감 - 부정은 부정을 낳고 긍정은 긍정을 낳음) 오늘 본문에 보면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이 나오는데 그 사람이 바로 ‘바르실래’다. ‘바르실래’는 이스라엘의 요단 동편 길르앗 땅에 살던 부자로 피난길에 오른 이스라엘 왕 다윗을 도운 사람이었다.
삼하17:26-29에 “이에 이스라엘 무리와 압살롬이 길르앗 땅에 진 치니라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에 암몬 족속에게 속한 랍바 사람 나하스의 아들 소비와 로데발 사람 암미엘의 아들 마길과 로글림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침상과 대야와 질그릇과 밀과 보리와 밀가루와 볶은 곡식과 콩과 팥과 볶은 녹두와 꿀과 버터와 양과 치즈를 가져다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에게 먹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 생각에 백성이 들에서 시장하고 곤하고 목마르겠다 함이더라.” (다윗을 반역한 압살롬과 그의 군대가 길르앗에 진을 침 - 그런 상황에 다윗을 도와 줌 - 곤하고 배고픈 다윗과 그 군대를 위해 목숨 걸고 대접함) 바르실래는 큰 부자였다. 그가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는지 다윗에게 행한 그의 반응을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바르실래는 모든 상황 속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였기에 하나님이 그에게 큰 부를 허락해 주신 것이다. 삼상2:7에 보면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하셨다. (바르실래는 인본주의 신앙을 가지지 않음 - 감단고토로 계산하지 않음)
그렇다. 큰 부자는 하나님의 주권 섭리 속에서 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노력해서 작은 부자는 될 수 있지만, 큰 부자는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르실래와 같이 자기 분수를 아는 자들은 범사에 하나님을 신뢰하므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며 하나님의 지도를 받고 나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큰 부자가 되는 것이다. 잠3:5-6에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셨고 잠22:4에도 보면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말씀하셨다. 바르실래는 범사에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정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기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복을 받아 큰 부자가 된 것이었다. 바르실래의 이름은 ‘무쇠처럼 강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정말 무쇠처럼 강한 사람이었다. 강하고 담대한 사람이었다. 그는 삶 속에 나타난 모든 상황에 흔들리고 무너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경외하므로 무쇠처럼 강건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강철 같은 신앙 - 중심을 잃지 않음 - 형통해도 불통해도.... 변함없이 반응함 - 이런 자에게 하나님이 큰 부를 주심 - 요동치 않기에... - 욥처럼 반응 - 부해도 가난해도 하나님을 경외함 - 갑절의 복을 주심)
욥1:21-22에 보면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모든 상황에 무쇠처럼 강하게 반응 - 타협안 함 - 큰 부자가 되는 비결, 인생 성공비결이 여기에 있음 - 중심을 잃지 않음 - 하나님 중심) 바르실래는 자기 분수를 아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큰 부자가 되었는지를 알았고, 그 부를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신할 수가 있었다. 32절을 다시 보면, “바르실래는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 그는 큰 부자이므로 왕이 마하나임에 머물 때에 그가 왕을 공궤하였더라.” 바르실래는 전에 다윗이 다윗 왕을 반역한 압살롬과 그의 군대를 피해 피난을 가게 되었을 때, 친히 길르앗 땅 로글림에서 마하나임까지 와서 다윗 왕을 공궤하였고 (지속적인 공궤)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다윗 왕이 왕권을 회복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또 다시 길르앗 땅에서 요단까지 내려와 다윗 왕을 만났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음 -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반응함)
그렇다. 바르실래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을 따라 배고픈 다윗 왕과 그의 군대를 공궤한 것이었다. 32절에 보면 바르실래를 소개하면서 매우 늙어 나이가 팔십 세라고 하셨다. 이렇게 바르실래를 표현한 이유는 그가 다윗 왕이 있는 요단까지 내려올 처지가 못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인간의 관점으로 보면 힘든 상황 - 나이에서 오는 무게감이 큼) 31절을 보면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가 왕이 요단을 건너가게 하려고 로글림에서 내려와 함께 요단에 이르니...”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처음 바르실래에게 다윗 왕을 공궤하라는 감동을 주셨을 때, 바르실래는 나이를 이유 삼아 내가 늙고 힘이 들어 마하나임에 갈 수 없다고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을 보내 다윗을 공궤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지난번 마하나임에는 내가 직접 가서 공궤를 했으니 이번 요단에는 다른 이를 보내도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르실래에게 있어 하나님은 주인이셨고,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에 내 처지와 형편을 이유 삼아 거절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나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 - 바르실래는 노가 없었음 - 말씀에 아멘만 있음 - 하나님 기뻐하심) 그는 범사에 하나님 중심주의, 하나님 제일주의, 신본주의 신앙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반응한 것이었다.
바르실래는 그렇게 하나님의 주시는 감동에 순종하였고, 그렇게 지난번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늙은 몸으로 길르앗에서 요단까지 와서 다윗의 왕권 회복을 축하하고 예루살렘으로 가는 왕을 배웅한 것이었다. 다윗 왕은 이렇게 변함없이 하나님 안에서 반응한 바르실래를 보면서 바르실래에게 상을 주려했다. 33절에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르되 너는 나와 함께 건너가자 예루살렘에서 내가 너를 공궤하리라.” 다윗 왕이 바르실래에게 “이제는 내가 너를 공궤하겠다”고 하며 예루살렘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 얼마나 큰 영광인가? 이제 바르실래가 그동안 헌신과 충성에 대한 보응을 받게 된 것이다. 다윗 왕을 따라가면 왕과 함께 왕의 식탁에 앉아 먹으면서 남은 생애 왕이 주는 대접을 받으며 호사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모두 O,K 하지 않을까?) 그런데 바르실래는 다윗 왕의 호의를 거절하였다. 34-36절에 “바르실래가 왕께 아뢰되 내 생명의 날이 얼마나 있사옵겠기에 어찌 왕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리이까 내 나이가 이제 팔십 세라 어떻게 좋고 흉한 것을 분간할 수 있사오며 음식의 맛을 알 수 있사오리이까 이 종이 어떻게 다시 노래하는 남자나 여인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사오리이까 어찌하여 종이 내 주 왕께 아직도 누를 끼치리이까 당신의 종은 왕을 모시고 요단을 건너려는 것뿐이거늘 왕께서 어찌하여 이같은 상으로 내게 갚으려 하시나이까...”
바르실래는 ‘여기까지...’ 라고 말한다. 바르실래는 ‘자기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가 여기까지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다윗 왕과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한다. 자신은 80의 나이로 왕이 주시는 음식이나 대접에 어울리지 않으며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면 왕에게 누를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은 왕을 이렇게 모시게 된 것 그 자체가 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하며 같이 가기를 거절하였다. 다윗 왕이 자신의 거절을 용납하지 않자 왕명을 뿌리칠 수 없어 아들 김함을 데려가라고 한다. (다윗 왕에게 도움이 됨 – 다윗 왕이 죽을 때 솔로몬에게 김함을 챙기라고 유언 함 – 부모의 헌신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자녀에게 은혜와 복을 주심 - 바르실래가 충성하고 헌신할 때는 나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왕이 주는 상을 받을 때는 나이를 문제 삼음 - 훌륭한 신앙의 인격자 -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바르실래를 통해 깨닫게 됨) 사랑하는 여러분, 바르실래는 “내가 마땅히 할 일을 한 것 뿐 인데 무슨 상이냐고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다윗 왕의 상을 거절한 것이었다. 자신의 분수를 알면 이렇게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바르실래의 나이가 매우 늙은 80이었지만 그의 신앙은 28청춘이었다. 바르실래를 통해 주신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이 시대에 바르실래 처럼 반응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