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년 2월 19일)
지금 눈시울이 좀 시큰시큰하다. 조금 있으면 우리 피아노를 데리러 일꾼들이 올 것이다. 그렇다. 우리 피아노가 나가는 날이다.
우리 피아노는 소풍가는 것도 아니고, 피아노 연주회에 뽑혀가는 것도 아니고, 동네 집에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남의 집으로 이사가는 날이다. 비좁은 우리 집보다 훨씬 넓은 집으로...
(이 대목에서 옛날에 먹을 게 부족하야 눈물을 삼키며 자식을 친적집으로 보내던 이야기가 생각나는 건 왠일이람..-.-. 나는 왜 자꾸 가구를 사람대접할까?)
오늘 아침에 복사할 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갔다가 운전하는 도중에 기분이 팍 가라앉아 집으로 돌아왔다. 콧등이 시큰해지고, 내 머리 한 구석에서 '이런 일로 질질 짜지 말아라!' 하는 명령이 없었다면 눈물도 날 거 같아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시간 반 내로 집을 떠날 피아노 곁에서 글을 쓰고 싶어서였다. (강마담...정말 심각하구나...쯧...)
우리 피아노.. 낡은 피아노이다. 나사가 떨어져나가 악보대가 건들거리고, 조율을 했어도 먹통 키보드가 "침묵권"을 행사하는 피아노이다. 키가 좀 작고 아담하다 좋은 집에 있었어면 고가구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그런 진한 고동색인데, 후진 집에 있으니 똥색 피아노로 둔갑하고 말았다. 그래도 소리를 꽤 곱다. 내 사랑을 꽤 많이 받았었다.
이 피아노가 언제 것인지 나도 잘 모른다. 나의 형부의 누나께서 남편과 사별한 후 열심히 간호원 일을 하면서 무지 많은 가족들, 친척들을 돌봤는데, 그 없는 살림에 아드님게 사주었던 피아노였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아드님은 공부 마치고 집을 떠나게 되었고, 누님은 자녀들이 다 독립한 후 집을 줄여서 이사하시고, 그래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피아노를 형부와 언니네가 물려받았다.
나는 독신 시절 언니네 집에서 뚱땅거리던 그 낡은 피아노가 내 차지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너무 낡은 것으로 보였으니까. 나는 낡은 거 싫어했었거든..
그러다가 결혼하고 임신한 후, 언니가 피아노를 나에게 주었다.
우리 집에 피아노가 오던 날, 그렇게 큰 가구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에, 그렇게 무겁고, 그래서 쉽게 버리지 못할 가구가 생긴다는 사실에 감격했던 기억이 있다. (그 전에 나의 삶의 방식은 언제 버려도 좋은 가구들만 사용해서 언제든지 떠나고 싶을 때는 쉽게 떠날 수 있게 하자! 였었다...(울 남편은 우리집 가구는 지금도 그 수준이라고 하더라.-.-)
피아노가 온 후에 에릭더러
'에릭, 당신이랑 나랑 무지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이 되었네. 우리, 정말 너무 가부장적 가정의 모습이야. 엉엉. 아빠, 엄마, 피아노,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 선전용으로 사진 찍어가면 딱이겠구만..'
(에릭은 이런 코멘트에는 노코멘트로 일관한다. 현명하다.)
어느 날, 형부의 조카, 즉, 원래 피아노의 주인이 형부 집에 놀러왔다가 우리 집에 피아노를 보러 들른 적이 있었다. 그는 오랫만에 자기 피아노를 보니 감개가 무량한 듯, 숨을 크게 들이키더니 조심스레 건반을 어루만지면서 피아노를 쳤다. 명곡 하나...그리고 Billy Joel 의 노래 몇 곡. 남자가 자기가 사랑하던 피아노를 보고 기뻐하는 모습이 좀 생소하기도 하고 아름답게도 보였었다.
임신 중, 나는 피아노를 많이 쳤었다. 별로 잘 치지 못하는데, 그냥 치는 걸 좋아한다. 피아노의 특징이라면, 잘 못치는 사람이 쳐도 그 소리다 유쾌하고 듣기 좋다는 데 있다. (그 반대는 바이올린. 초보자가 낑낑거리면서 연습할 때의 바이올린 소리란 지옥이다...) 그러니 무지 많이 쳤다.
임신 중에 피아노를 치면서 많이 했던 생각들... 앞으로 내 인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을 영원히 안 가게 되는 것인가.. 정말 이 사람이랑 나랑 평생 사는 건가.(임신 하고도 이런 생각 했다.-.-) 내가 엄마가 된다니..(이 아가, 참 용감한 애다. 날 믿고 나올 생각을 하다니..-.-) 엄마에게 여성주의란? 전업주부에게 여성주의란? 아니, 내가 정말 전업주부를 하면서 미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저 인간 (갑자기 남편에 대한 분노가 불끈!)이 날 무시하는 거 아냐? 근데..아기가 또 발로 찬다. 히...기분 좋다. 기저귀는 어떻게 갈지? 엄마랑 아버지가 온다니 참 다행이다. 근데, 부모님이 날 보고 실망하지 않을까? 부모님은 내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니, 정말 주부 해볼 거야? 정말? 그거 선택할 거야?
친 곡을 또 치고, 또 치고, 또 치면서 내 머리속은 누구와 함께 속시원히 나눌 수 없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와 나누고 있었다. 불안과 희망, 그리고 나 혼자 삭여내고 생각해내고, 정의해야할 여러가지 주제들에 대한 골몰함이 내 임신 기간의 주제였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 피아노가 함께 했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기숙사...내 옆집의 부부는 무지 많이 싸웠고,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끔은 남편이 폭력 행사까지 했다) 나는 혼자 덜덜 떨었다. 부부싸우는 소리는 무척 잔인하게 들린다. 임신 중, 아이에게 들려줄 필요가 전혀 없는 싸움 소리...그래서 옆집에서 싸우면 나는 피아노를 치곤 했다. (뭘 쳤냐구요? 맨날 똑같은 거라니까요...-.-) 에밀이 태어난 후 초기, 잘 먹고, 잘 잔 후에도 가끔 울 때가 있었다. 그럴 때 내가 임신 기간 동안에 즐겨 치던 음악을 치면 금새 울음을 끄치곤 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피아노는 좋은 장난감이 되었다. 손가락 힘이 없는 애들은 주먹으로 피아노를 내려치면서 놀았고, 좀 큰 후에는 엉덩이로....그리고 가끔 미친 듯이 놀 때는 발로 밟으면서 하하호호 거리고 놀았다. 내가 그런 걸 보고 가만히 있으면 사람들이 '엄마가 참 마음이 좋으세요' 했는데,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 피아노가 대단하지 않아서이다. 내 생각에 낡고 허접한 가구, 낡은 집에서 살면 부모가 저절로 마음이 좋아지는 거 같다. 그래서 애들이 어릴 때는 좀 후진 집에서 사는 게 부모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아주 좋다고 믿는 바이다.
피아노는 기숙사를 나와 터스틴의 아파트로 이사를 같이 갔고, 현재의 집에도 같이 왔다.
그리고 에밀이 작년 9월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에밀은 피아노치는 걸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왜...갑자기 피아노를 내보내는가?
현재 대타로 사용할 수 있는 키보드가 하나 있다. 작년 연말에 '산타클로스'가 내게 선물한 키보드이다. 내가 뽕짝 음악을 만들고 있는데 (네...유행가 뽕짝이요.-.-) 에릭이 그걸 웹에 올리려면 키보드가 필요할 거라면서 일년 전부터 벼르다가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키보드가 좋아서 피아노를 처분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키보드이지, 그리 좋은 건 아닐뿐더러, 사실,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에게 피아노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좋은 키보드보다는 후진 피아노가 훨씬 낳다. 그런데 좁은 집에서 한 면의 벽이 아쉬운 판인데, 피아노와 키보드가 같이 있으니 너무 불편해졌다. 그래서 피아노를 처분하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
내가 만화를 그리면서 작업대가 필요하게 되었다. 글 쓰는 컴퓨터 책상은 책과 종이들로 어지러워 치워봤자 며칠 가질 못하고, 그래서 주로 부엌의 식탁에서 작업을 한다. 그런데 식탁을 사용하면 몇 시간 내로 그것을 다 치워야하는 단점이 있다. 밤늦게 일하다가, 조금만 자고 일찍 일어나서 마무리 짓고 싶다는 욕심이 들어도, 애들 아침 먹이기 위해서 아예 치우고 자야하는 때가 많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완전히 치워지지 않은 밥상, 자와 지우개, 색연필 몇 개가 놓인 식탁에서 아침을 먹기 마련이다.)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식탁에서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하다보면 아이들 데리러 갈 시간....나의 고민은 시작된다.
아이들 데리고 온 후에 그냥 계속 식탁에서 그림 그려? (그럴 경우에는 저녁식사가 엉망이 된다.)
그냥 치우고 가? (그럴 경우에는 그리다가 멈춘 그림을 다시 완성짓기까지 시간이 무척 오래 걸릴 수 있다. 밥 먹고, 치우고 하다보면 그 후에 다시 식탁에 미술 재료들을 다시 늘어놓는 일이 아주 지겹고 고단한 일로 느껴지니까... 그래서 나는 만화들을 한번에 그려버린다. 막판에 서둘러서 망치는 일이 있어도 한 자리에서 끝내버리려고 한다.)
만화를 통한 storytelling 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뒤, 나에게는 이전에 없던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작업대 하나만....항상 물감과 색연필, 자, 마아커 등을 늘어놓을 수 있는, 그리던 그림, 하던 생각의 흐름을 끊지 않고, 치우지 않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작업대가 있다면...
(에릭은 한층 더 크게 "우리에게 방이 하나 더 있다면~~" 하고 꿈꾸더라. 나를 위해서 그런 소리라고 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가 내심 조용하고 단정한 침실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른다 의심하고 있다.^^ 부인이 책과 컴퓨터, 물감, 종이쪼각들로 지저분하지 않은 침실에서 잠을 자고 싶겠지..)
작업대를 놓을 공간..... 우리 상태에서는 그것은 가구 중 뭔가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피아노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오늘.. 피아노가 나가는 날... 나는 마음이 허전하다. 내 고민, 꿈, 눈물, 그리고 수많은 웃음들 (애들이 피아노 '위'에서 뛰어놀고, 친구들이 와서 피아노를 치면서 웃던 웃음들...)의 기억이 얼룩, 먼지, 그리고 낙서의 모습으로 담고 있는 피아노... 나는 내 기억을 담고 있는 이 커다란 덩어리를 이제 포기하는 것이다. 이제는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피아노 없이, 그저 머리 속으로만 기억을 담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갖고 싶은 것 (작업대), 하고 싶은 거 (그림연습)를 위해 과거의 유물을 포기하는 거..
피아노를 내보내면서, 나에게 피아노를 줬던 언니 생각이 난다. 언니도 나와 비슷한 이유로 피아노를 포기했었지.
언니가 나에게 피아노를 줬던 때가 바로 언니가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리고 형부가 공부하면서, 언니가 미술 공부하면서 방 두개짜리 기숙사 아파트가 좁아서였었다.
언니는 혼자 방구석에서 낡은 천조각을 사용해서 작품을 만들었었다. 변변한 재료없이, 넉넉한 공간없이, 그리고 살림 중에 쪼각 시간으로 작품을 만드느라 고생하던 언니...
언니는 새벽 시간 만이 유일하게 방해받지 않고 뭘 할 수 있는 시간이라 3시, 4시에 일어나 작업을 하곤 했다. 그리곤 아이들을 먹여 학교 보내고, 다시 혼자 종이 컴컴한 방구석에서 작업을 했었다.
커다란 작품, 재료비가 많이 드는 작품을 할 수 없는 주부인 언니. 언니는 남편이 운전을 하는 동안 옆에서, 동네 아줌마들이랑 이야기하는 동안, 전화로 이야기하는 동안, 내내 손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주먹에 잡히는 조그마한 작품들, 크게 펼쳐놓을 필요 없이 가지고 다니면서 쪼물락 거리면서 만들 수 있는 작품들을 만들고 있었다. 언니의 작품전에 갔을 때, 그 쪼물닥 작품들이 하나 둘 모여서 커다란 하나의 주제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고, 가슴 한구석이 콱 맥혀오고, 눈물이 났었다. (한 예로, '천 개의 눈물방울'이란 작품이 있다. 그 눈물 하나 하나, 언니가 손으로 조물락 거려서 만든 것인데, 나는 언니의 삶을 잘 알고 있는 나는 그 작품 제목의 '눈물'이 하나의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그냥 진짜, 짠 맛나는 눈물 방울로 느껴진다.)
난 언니랑 호박부침 같이 부쳐먹는 그런 따뜻하고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다. 주로 얻어먹니는 많이 했는데, 우리 둘이 같이 부엌에서 호호거리면서 뭘 같이 만들어먹는 일은 거의 없었다. 언니나 나나 쪼각 시간이 있으면 눈에 불 켜고 뭘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식으로 여유있게 사는 이야기하면서 같이 놀아보질 못했다.
그런데 나는 언니가 무척 좋다. 점점 더 좋아진다. 옛날에는 '평범하지 않은 언니'에 대해 아쉬움을 느낀 적도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내 스스로가 이기적이어서였다. 나는 평범한 동생이 아니면서 언니에게는 둥글둥글하게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다 받아주는 그런 '맏언니'의 모습을 기대한 것이니까...
그런데 언니가 점점 좋아지는 것은 내가 언니를 한 여성으로 존경할 수 있게 되면서이다. 언니가 언니라는 이유로 나는 언니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언니가 컴컴한 거실 구석에서 절 하듯이 굽히고 혼자, 손의 지문이 문드러질 정도로 열심히 맨날 뭔가를 만들고 있는 걸 봤었다. 세일과 쿠폰만 이용하면서, 남이 버린 거, 줏어온 거, 얻어온 거 만으로 살면서, 피곤과 수고에 절어 살면서 뭔가를 계속 만들어내던 걸 봤었어. 그리고...그것이 어떤 작품으로 승화되는 과정을, 승화된 작품을 봤다.
나는 요새 언니를 생각하면서 많은 용기를 얻는다. (언니는 이제 멀리 이사가서 살고 있다. 우리는 아주 가끔 통화한다. 아주 가끔...)
밤 새워 작업하고서 아침에 그것을 깨끗이 다 치워놓아야했던 언니. 남들이 버리는 옷과 천조각을 모아 그것만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던 언니. 가사와 창조, 가정과 예술, 헌신과 자기 표현의 두 가지 극단 속에서 자기만의 목소리를 찾아낸 언니.
멀리 살고 있는 나의 언니 언니는 지금 현재의 나의 삶에서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여성 중의 하나이다.
피에쑤---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 피아노가 실려 나갔다. 피아노는 내가 사랑하는 동생, 명희네 집으로 간다. 명희가 전화로 말한다. "언니, 섭섭하지? 우리 집에와서 많이 쳐." 결혼 후 10년 동안 피아노를 갖고 싶어 했던 명희에게 우리 피아노가 간다는 것은 커다란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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