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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6:19-34, 딤전6:3-19
주님... 어느새 3월도 마지막 한 주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산과 들에는 개나리꽃과 진달래 꽃을 보면서 봄이 왔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적 마다 주님의 말씀과 같이 세월을 아껴야 할 때임을 깨닫습니다. 때가 악한 만큼 주님이 주신 소중한 시간을 복음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데, 이 종은 시간을 허투루 허비하였던 자이기에 주님 앞에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숙입니다. 모든 시간이 내 것인 양 허비했던 나를 주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하루하루 시간이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선물임을 깨달아 매순간 주의 자녀로 살게 하여주소서. 주님의 뜻을 외면하며 살았던 지난날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을 주의 십자가에 못 박으며 주의 보혈로 나를 정결하게 씻어 주시고 오늘도 정결한 신부로 온전히 설 수 있도록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제 4.10총선도 2주정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나라를 바로 세우느냐 아니면 무너지게 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선거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현 거대 야당인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는 과거 친북좌파이념으로 국가를 전복시키고자 하였던 이석기 동부연합에 있던 잔당들을 민주당 비례대표 10위 안에 배정해 놓았기 때문에 총선 이후에는 국회에서도 미군철수나 교회폐쇄법인 반국가정책을 법제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걱정입니다. 이재명이는 지금 전국을 다니면서 한미일 동맹을 무효화 시키고 친중, 친북 좌파이념으로 국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그가 지난번 대선후보로 나왔을 때 국민을 놀라게 한 것은 대장동사건이 아닌가? 실적도 전혀없는 지분 1%인 화천대유는 하나은행컨소시엄을 민간 사업자로 선정한 화천대유로 하여금 3억5천을 투자해서 3천5백억을 넘게 벌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사기성이 충분한데 현재 이 재명을 제외하고는 관련된 자들은 다 구속되지 않았는가? 이 화천대유사건으로 말한다면 이재명이가 성남시장으로 있을 때 성남시가 토지 수용권을 발동하여 원주민에게 돌아갈 막대한 토지대금을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1조원의 수익이 발생한 것이라며 거기 참여한 실적도 없고 지분1%인 규모도 작은 화천대유가 받은 배당금만도 577억을 챙겼다는 것이 대장동 사건의 이슈이었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이런 사실을 처음부터 인지한 상태에서 관·민 공동사업 구조를 설계했기 때문에 명백한 배임이라는 것이다. 이재명이는 지난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자신이 성남시장으로 있었을 때 개발된 대장동개발은 단군 이래 최대 치적이라고 자화자찬한 대장동 비리가 밝혀지면서 대장동 개발로 조사를 받던 유한기(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본부장)가 2021년 12월10일 자살했고 두 번째로 대장동 개발 특혜 핵심인물 중 한명인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개발사업1처장이 숨진 채 발견되었을 때 이재명이는 김문기 “얼굴도 모른다” 등으로 말했다는 허위 사실 공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고 세번째는 이재명 변호사비 납비 의혹을 제공했던 이병철기자도 사망하였고 네 번째 는 이재명 부인 김혜경의 '법인카드 불법유용 의혹' 사건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전직 경기도 5급 공무원도 숨진 채로 발견되었던 이런 전대미문의 사건을 우연의 일치로 봐야 할 것인가? 이런 한 사람의 비리 때문에 검찰 수사를 받다가 사망한 사람들이 네명이나 나왔어도 전혀 눈도 깜짝하지 않는 이런 자가 지금은 민주당대표로 전국을 누비며 친중, 친북좌파이념을 선동 하는데 일반 국민들이 그들을 택한다면 나라가 무너지는 것은 어쩌면 자업자득일지도 모른다. 이런 돈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는 중 돈 때문에 자살을 하며, 돈 때문에 패륜을 저지르며, 돈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인생을 죽음으로 끝을 맺든 결과는 돈을 사랑하는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나 역시 돈이 좋다. 돈이 없으면 살기가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교회 사역도 선교사역도 공히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필요하다고 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돈의 노예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된다면 이런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이처럼 돈을 좋아하는 것이 나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기 위하여 예수를 내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수단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산 사람들의 결과는 성경에 이렇게 된다고 답이 나와 있다.
1. 돈을 사랑하면 믿음에서 떠나 멸망에 이르게 된다
(딤전6:9-10)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온 우주의 주인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부귀와 장구한 재물과 의가 충만하신 분이시므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시기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하시고(사55:1) 또 시온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값없이 팔렸으니 돈 없이 구속을 받게 되리라(사52:3)고 하셨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하시며 종이 결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주인을 미워하고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한 주인을 떠받들고 다른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설길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마6:24, 눅16:13).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에 마귀가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자기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하였으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단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을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시며(마4:8-11),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자와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는 일을 시작으로 오직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시고 돈을 벌어 부자가 되려는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의 제자들도 주님 교훈을 듣고 세상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하여 일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멸망할 영혼들을 구원시키는 일로 오직 경건에 착념하여 먹고 입을 것이 있은즉 족히 여기면서(딤전6:8) 부하려 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어 충성스럽게 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돈이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하여 만들어낸 화폐인데 하나님께서는 세상사람들에게 돈이 어떤 무기인가를 말씀하셨는데 돈이 악의 뿌리가 되어 곧 부하게 되려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미혹을 받아 해로운 정욕에 떨어져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되어서 결국은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하셨습니다. 돈을 사랑한 결과 경건에 착념하지 못하고 교만하여져서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게 되면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에게는 다툼이 일어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들이 맘몬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부귀와 재물로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잠8:17-21) 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18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19 내 열매는 금이나 정금보다 나으며 내 소득은 천은보다 나으니라. 20 나는 의로운 길로 행하며 공평한 길 가운데로 다니나니 21 이는 나를 사랑하는 자로 재물을 얻어서 그 곡간에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는 자들을 제자로 삼아 성령으로 그들이 나가 사역을 할 때마다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나게 되므로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미하였던 것이 초대교회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짝지워 내보내시며 그들로 하여금 세상사람들에게 회개하라는 복음을 전파하게 하고 돌아온 자들이 제자들에게 돈을 연보함에 넣게 하시고 그 돈을 가룟유다가 관리하게 하셨는데 (요12:6) 가룟유다가 그 돈을 도적질하므로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대적하여 내 발꿈치를 들었다(시41:9)는 성경을 이루시려고 (요13:21-30) 가룟유다에게 빵 한 조각을 찍어주시므로 사단이 들어가 예수님을 파는 일을 하게 하시므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을 보고 스스로 목메어 죽게 되었다는 것은 결국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는 말씀이 응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이와같은 일을 목격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대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세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게 된다(딤후3:1-5)는 예언대로 의인의 세대가 끊겨지고 악인의 세대가 임하게 되었고 마지막 때는 하나님의 사랑이 끊겨진 교회들은 많은 돈을 거두기 위하여 건축 헌금 등으로 건물을 짓고 하나님의 축복받은 교회인 것처럼 자랑하지만(사13:22) 결국은 예언대로 사단에게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성경에는 돈을 탐내지 말라고 하였는데 유명인사들의 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돈이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말라진다’(쇼펜하우어) ‘돈이란 힘이고 자유이며 모든 악의 근원이기도 한 동시에 한편으로는 최대의 행복이 되기도 한다’(칼 샌드버그)
‘돈은 무자비한 주인이지만 유익한 종이 되기도 한다’(유대 격언)
‘돈은 최선의 종이며 최악의 주인이다’(프랜시스 베이컨)
‘돈은 바닥이 없는 바다와도 같은 것이다. 양심도 명예도 거기 빠져서 결코 떠오르지 않는다’(벤자민 프랭클린) ‘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고 합니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돈은 확실하게 유용한 것이지만 돈은 사용의 대상이지 결코 섬김의 대상이 아닙니다. 돈을 탐내는 자들은 예외 없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근심으로 자기를 찌른다고 하였는데 그 실례를 보고자 합니다.
앨런 스탠퍼드(Allen Stanford)는 미국의 금융가이자 프로 스포츠 후원자였습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22억 달러의 재산을 자랑하며 전용기와 요트를 마음껏 즐겼습니다. 그러나 2009년, 그의 재산은 역사상 다단계일종의 하나인 폰지 사기를 통해 부당하게 얻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012년, 그는 100년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현재 무일푼으로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2011년 오브리 맥클렌돈(Aubrey McClendon)은 원유 및 천연가스 산업에서 신기술을 사용한 선구자 체사피크 에너지의 공동 설립자로서 12억 달러의 순자산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2016년 3월, 원유 및 천연가스 임대 입찰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되면서 수십억 달러를 잃었으며 포브스지는 그를 ‘미국에서 가장 무모한 억만장자’로 선정했으나 그는 다음 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버나드 매도프(Bernard Madoff)는 증권회사 버나드 L. 매도프 투자 증권에서 잘나가는 재정 자문으로 일하며 수십억 달러를 벌었습니다. 그러나 2009년, 그는 약 650억 달러 상당의 투자 자금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되어 유죄를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20년 이상 진행된, 역사상 최대의 폰지 사기였습니다. 그는 최고 등급의 보안이 유지되는 감옥에서 150년형을 선고받았으며 그해 4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그 재물로 하여금 이웃을 사랑하며 선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돈에 대해 어떤 대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돈이 주인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종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부를 소유하게 되었다면 당신은 돈에 대한 애정을 버리고 그 부를 이웃을 위해 사용한다면 그 돈이 당신을 장래에 영생으로 인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자족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딤전6:3-6) 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4.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말씀과 경건의 교훈은 곧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며 이 가르침은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길을 보여준다. 따라서 주의 가르침을 바르게 전하지 않는 자는 교만한 자며, 그리스도에 관하여 뭔가 아는 것 같으나 실상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자로써 그는 변론이나 언쟁만 일삼는 이런 일은 시기 다툼 모욕 같은 악한 생각만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런 악한 마음이나 자신의 이익의 방편으로 생각하고 다투는 사람들은 이미 마음이 부패하여 져서 진리를 잃어버린 자이며 이처럼 경건 곧 주님을 섬기는 일을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 곧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가진 것에 늘 만족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 있어서 경건은 큰 유익이 된다는 것이다.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 우리가 세상에 올 때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이 빈손으로 왔고 또한 세상을 떠날 때도 아무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부자가 되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사람은 시험과 함정에 빠지게 되어 결국 자신을 망치는 파멸의 구덩이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이 돈에 대한 욕심을 가진 자들은 악의 유혹을 받아서 결국 믿음에서 떠나 파멸에 이르게 될 뿐이라는 것이 말씀의 핵심이다.
(빌 4:13)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오해를 많이 하는 구절이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면 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는 것은 있는 믿음마저 빼앗아 가버리는 욕심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 빌립보서의 말씀은 믿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많은 경우 욕심과 연관이 되어 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사업에 성공하려고 하는 마음이다. 학생들의 경우 공부하지 않고도 하나님이 능력만 주시면 좋은 성적도 낼 수 있으며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은 욕심으로 하는 기도는 믿음을 잃게 되고 경건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은 다름 아니라 자족의 능력이다.
(빌4:11-12)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바울은 그런 자족의 능력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돈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삶의 도구이다. 그래서 이를 얻기 위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이는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동일하다. 중요한 것은 돈이라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돈을 목적으로 삼을 때 사람은 괴물로 변하게 된다.
목회를 한지 얼마 안되는 어떤 목사님이 심방을 갔는데 심방 받는 가정에서 봉투를 주는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 써도 된다고 하였다. 그는 극구 사양을 하면서 이런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하였으나 상대방이 오히려 더 완강하게 주기에 그는 그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그가 다른 집에 심방을 갔는데 그 마음속에 “이 집에서는 봉투를 안 주나?” 하는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들었던 것이다.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돈 봉투를 받아보니까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 받게 되었다고 한다. 상대편에서는 “목사님, 책 사보세요.”라고 하면서 주기 때문에 나 역시 “그래 책 사보면 서로에게 유익이지.”라고 하면서 자연스레 받곤 하였다. 이런 일이 여러번 반복되면서 내 양심은 전혀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일상이 되었다가 어느 날,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돈 때문에 심방하는구나. 내가 예수님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구나. 이것은 교역자로써 사례를 받는 것이 나의 목적이 되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고백이다. 이것은 딤전 5:18절의 말씀처럼 곡식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고,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한 차원이 아니라 본말이 완전히 전도되어 목적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 목적으로 바뀌고만 것이 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돈을 수고비로 받고 나니 정말 부끄러웠고 주님께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후로 그는 어떤 경우에도 돈봉투를 받지 않았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은 그래서 진리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돈을 사랑함이 악의 뿌리라고 하는 것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전라도에 사는 어느 부부가 가난하여 아들을 일본으로 입양하여 보냈다. 어느 덧 25년이 지나서 아들은 양부모를 만나 잘 자랐고 좋은 직업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자기를 낳은 친부모를 찾고자 양부모의 이해를 얻어 친부모의 주소를 갖고 전라도 태어난 마을을 찾아갔다. 이미 해는 넘어가고 캄캄한 밤이라 그 청년은 그 마을의 이장집을 방문하여 주소를 보여주면서 그 분이 우리 부모님라고 하니 그 이장은 그 청년에게 저 넘어 높은 곳에 사는 집으로 가라고 일어 주었다. 마침 노부부는 밤에 노부부의 집을 찾아가서 하룻밤 쉬고 다음날 환한데서 얼굴을 뵙고 인사하고자 그 집에서 쉬게 되었다. 그 노부부는 그 청년에게 등잔불을 켜서 방에서 자라고 안내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 노부부는 그 청년이 어떤 사람인가 의심을 하고 사랑방에 문구멍을 통해 보니 그 청년이 가방에서 돈을 꺼내 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광경을 목격한 그 부부는 그 청년이 잠들기만을 기다렸다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한 후 부엌에서 칼을 갖고 들어가서 그 청년을 살해하고 그 시체를 대나무 밑에 묻었다. 밤에 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는데 새벽에 동네 이장이 올라왔다. 아니 웬일이냐고 물으니 어제 밤에 한 청년이 올라오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그 청년은 자기 부모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길래 혹시 이집이 아닌가 하고 알려 주었는데 그 청년이 오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 노부부는 얼굴이 굳어지면서 아니 누군가가 왔는데 저 위집으로 가보라고 하면서 얼며버렸다. 이장이 가고 난 후 대나무 밑에 묻어둔 청년이 혹시 아들이 아닌가 하고 확인을 하는데 그 아들이 어렸을 때는 오른쪽 겨드랑이에 점이 하나 있었던 것이 기억났는데 확인해 보니 그 점이 너무 커져 뚜렷하게 보고 자지러졌다는 것이다.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악의 뿌리라고 하면서 그 돈이 자기를 찔렀다는 것을 말씀하는데 어쩌면 그 말씀이 그 노부부에게 일어났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딤전6:9) 부유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느니라.
(딤전6: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3.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는 것 중에 가장 큰 하나가 행복을 누리는 것을 뺏아가는 조용한 살인자라는 것입니다. 돈을 위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고 해서 행복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얼마나 모여야 그 행복해 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모릅니다. 돈에 대한 욕심은 그치지 않고 어느 선에서든지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결론은 돈은 결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것은 돈에 욕심이 있다는 것인데 이 욕심은 사람들의 생활을 모두 파괴시킵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돈은 은사이고 사명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족장들이 부자인 경우가 많았고,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모든 부나 은사가 어느 축복의 잣대가 아니고 사명의 잣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나 은사가 있을 때는 책임과 사명이 따르는 것입니다. 부가 있다고 해서 나만을 위해서 축적한다면, 바로 누가복음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나 은사를 주신 것을 남을 섬기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해서 책임과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라는 것은 섬김의 도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자에게 일용할 양식은 주신다고 하셨으므로 그 이상의 재물은 섬김이고 사명입니다. 남을 섬기기 위하여 부도 주시고 넘치는 재물도 주신 것입니다. 희랍어에 필은 사랑한다는 뜻이 들어있다. 필-하모니, 내가 사랑하는 하모니, 필-로소피, 내가 좋아하는 지혜, 필-레오, 친구의 사랑, 필-라구리아, 돈을 사랑함을 뜻합니다. 이런 필사랑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뜻하므로 제한된 사랑, 이기적인 사랑일 수도 있습니다. 남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자기중심적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자기중심적으로 돈을 사랑하고 돈을 쌓아두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경고하였는데 가장 큰 것이 행복을 가로막고, 행복을 못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에서 떠나면 매순간 돈이 있음에도, 더 얻고자 근심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눔은 돈을 사랑하는 일만 악을 해독하는 것입니다. 돈이 있어서 나누는 것이 아니고 긍휼이 있어서 나누는 것입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긍휼은 더 커지게 되고 일만 악을 이루는 것으로부터 우리를 해독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을 치유하기 위하여 돈을 나눌수록, 근심도 나누어지고, 긍휼은 더하여 져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나눌 것이 없다는 것은 거짓이며, 긍휼(불쌍히 여기는)마음으로 시작하면 더 나눌 것이 생기고, 더 긍휼은 깊어지고, 근심은 줄어들고, 하늘을 향한 기쁨은 더욱 충전하여 하늘을 찌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돈에 노예가 되지 않고, 더 없는 자들을 향하여 나누는 긍휼이 우리들에게 은사로 주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돈은 최선의 종이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주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열심히 노력해서 정당하게 부자가 된 사람들은 다음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딤전6:17-19) 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부자들에게 돈은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라는 것이다. 나누어주기를 많이 하라는 것이다. 다른 말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 땅에서 마지막 말씀도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이였다. 이런 자들에게는 주님이 오실 때 칭찬받게 될 것이고 천국의 기초석을 쌓아두는 일로 결국은 자기를 위한 선한일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사람들은 미래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현재 우리 모두가 가진 문제점은 바로 미래에 대해서 걱정합니다. 돈이 적은 사람은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걱정하고 또 돈이 많은 사람도 '이 돈을 어떻게 지키고 어떻게 더 불려나갈까?' 끊임없이 걱정을 하죠. 직장이 없거나, 직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어떻게 하면 직장을 얻고, 더 나은 직장을 얻을까?' 고민하고요. 또한 안정적인 수입을 보장하는 직장이 있는 사람도 '내가 이 직장을 잃지 않을까?' 매일 두려워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집이 없어서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입니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에게 집 장만을 해주지 못함'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죠.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이 없어서 결혼할 수 없고, 또 돈이 많은 사람은 또 나름대로 더 나은 배우자를 찾지 못해서 혼기를 놓치는 경우도 흔한 세상입니다. 한국의 젊은 남녀들에게 '왜 결혼하기 힘드냐?'는 질문을 했을 때 남자들은 '내가 돈이 없어서 결혼하지 못합니다' 라고 대답했어요. 근데 여성들은 '괜찮은 사람이 없어서 결혼하기 힘듭니다' 자 무슨 말이죠?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면서 외모가 마음에 드는 분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요즘 젊은 부부가,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를 들을 때, 대다수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를 '경제적 불안정'으로 꼽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이해합니다. 자 유치원부터 시작되는 경쟁...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물가와 집값을 생각하면 젊은이들이 왜 그렇게 비관적으로만 생각하는지.. 이해가 어느 정도는 되지요. 또 측은한 마음이 생기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낮은 출산율이 오직 경제적 문제에서만 기인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를 살펴보면,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살기 힘든 나라들이라도, 출산율이 1 이하를 기록한 나라는 없다는 겁니다. 2012년 이후 경제적으로 끝없이 추락한 베네수엘라는 경제적으로 얼마나 파탄이 났던지, 2019년에만 인구 3천만 명 중에 15%에 해당하는 500만명이 나라를 버리고 외국으로 떠났던 나라인데 그 나라의 출산율이 2.25예요. 그러니까 두 사람이 애를 최소한 두 명 이상은 낳는 나라가 베네수엘라입니다. 한국이 아무리 살기 어렵다고 해도, 한국의 출산율이 2018년에 1명 이하로 떨어지고, 2023에는 0.7명으로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이 수준의 출산율은 14세기 흑사병으로 인한 인구 감소를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사실 한국의 낮은 출산율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2021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Pew Research Center는 한국을 포함한17개국 선진국들의 성인 2만명 가량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이 살면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 조사가 흥미로운 이유는, 정해진 객관식 대답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주관식 문제였다는 거예요. 조사 결과, 17개의 나라 중 14개 국가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가장 의미 있는 것이 '가족'이라고 대답했는데 흥미롭게도, 3개 국가는 가장 가치 있는 것을 가족이 아닌 다른 것을 말했다는 것입니다. 스페인은.. '건강'을 가장 최우선 순위에 뒀는데 스페인이 사실 건강의료보험이 발달했으므로 그들의 정서가 건강에 꽂혀 있어요. 대만은 중공의 위협을 받기 때문에 '국가'가 자신의 삶의 가장중요하다고대답했는데 한국은 '돈이 최고'라고 대답한 유일한 국가입니다. 17개국의 선진국 중에서 한국만이 '경제적 풍요'를, 자기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저는 이 조사가 한국인들 사이에 만연한 물질만능주의를 명백히 보여준다 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돈이 없으니 결혼도 힘들고요. 돈이 더 많이 드는 애 낳고 기르는 건, 당연히 엄두도 못 되는 것이 현실이 되는 거죠. 자 그렇다면, 세상과는 다르게 우리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하냐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생각을 지배하는 것이 돈이 아니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들이 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기준이 있습니다. 내가 가장 염려하였던 게 뭔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세요. 또 어젯밤에 내가 고민했던게 뭘까? 한번 곰곰히 돌아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걱정이 '내가 어떻게 돈을 더 벌까, 어떻게 하면 내 사업을 더 번창하게 할까, 어떻게 하면 내 노후 자금을 최대한 마련할까?'는 생각하였다면 안타깝게도 여러분은 신앙이 없는 여느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사실 돈에 대한 걱정은, 한국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전 인류가 돈 때문에 많이 고생해 왔고요 계속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잘 아셨던 예수님은 이 문제에 해답을 오늘의 말씀에서 알려주셨습니다. 마6:24-33절까지 보십시오.자 오늘 말씀의 결론은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는, 세상의 재물이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돈에 대한 성도의 자세가 중요합니다. 우리의 충성은 재물이 아닌, 아버지 하나님께 충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 바로 전에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마6:19-21) 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20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4절에서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죠.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돈을 향한 태도를 상고해 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이 땅 위에 살면서, 물질을 향한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타락된 죄에 물든 우리의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탐심으로 가득찬 채로 태어납니다. 탐심이 가득한 우리마음에, 재물이라는 보화가 들어오면, 우리 마음은 그 재물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이 불타오르는 거여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마6:24)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재물에 대한 탐심은, 우리를 재물에 대해 충성하도록 만든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시죠. 우리의 충성이 재물을 향할 때, 우리의 재물과 시간과 열정을, 재물에 대해 쓰게 됩니다. 자 우리가 돈을 사랑하고 충성하기 시작할 때 하나님께 향해야 할 사랑과 충성이, 돈을 향하므로 우리가 이제 하나님을 더 이상 사랑하지 못하고, 충성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그래서 골3:5절에 '탐욕이 우상숭배다' 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돈을 우리의 맘몬신으로 여기고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하나님이 아닌 이방인들을 섬겼던 이스라엘이, 어떤 결말을 맞았느냐? 그들의 끝은 파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배하기보다 재물을경배하는 이들은, 자신의 혼의 파멸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디모데의 전서 6장은 말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9-10). 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문제인 겁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 삶을 파멸과 멸망에 빠뜨립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쫒다가 믿음에서 떠나기도 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신을 찌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기록되어 졌을 1세기에는 사실 돈이라는 것이 아주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현재 대한민국 교회와 미국 교회를 본다면 교회들이 자본주의와 인본주의 중심에 서서 돈을 하나님보다 더 섬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은 성적인 죄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높은 경각심을 갖고 그리스도인의 경우 성적인 죄가 큰 문제가 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에 대한 탐욕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경은 돈을 향해 충성하는 사람이나 성적으로 문란하게 사는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즉 둘다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엡5:5)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부정한 자나 탐욕을 부리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결코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상속유업을 받지 못하느리라.하나님께서는 음행하는 자나, 돈을 사랑하는 자가 다 똑같은 사람이라고모두가 우상숭배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유업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풍성한 삶을 누리지 못할 뿐더러 나중에 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말을 깨달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들어가지 못한다고 지금 바울 사도가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충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론 그리스도인도 생계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에요. 다만 우리가 참된 그리스인이라면, 생계 자체가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은퇴 후에 안락한 삶을 위해, 돈을 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삶의 최우선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삶이 아니라, 돈에 충성하는 삶이죠. 재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재물은 단지 하나님을 더 잘 섬기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죠. 여러분 돈을 벌지 말라는게 아니라 돈을 벌되 그 돈이 수단이 되어서, 더 큰 목적을 이루어야 된다는 거죠.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죠. 이 목적과 수단의 자리가 뒤바뀔 때,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재물을 섬기게 된다고 성경은 경고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단 한 주인만을 섬길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여러분의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맘몬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의 본문을 통해 돈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하는 것에 대해 우리의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가 먹고 마시지않으면 내일 굶어죽을 수 있는 사람들과, 오늘 옷이 없어, 오늘 밤에 추위 속에 얼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있던 사람들은 대다수가 당시에 아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직업은 농부 아니면 어부 아니면 무직이었는데, 하루에 두 끼 먹으면, 많이 먹는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소작인들은, 농사지어서 주인에게 다 갖다 바치고, 또 로마당국에 세금도 내야 했으므로, 다들 대단히 가난했다고 합니다. 정말 입에 풀칠이나 하면 다행이었을 사람들이었어요.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지금 예수님이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음식이 없어서 고통받는 불쌍한 사람들 같은 그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아라!' 우리는 먹을 것이 없을 때, 마실 것이 없을 때, 또 입을 것이 없을 때 그것들에 대해서 염려하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게 당연한게 아니다!' '그건 믿음이 부족한 것이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던 갈릴리 사람들에 있어서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없을 때에도 물질에 대해 염려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모습이라면, 오늘날 우리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있음에도 미래에 대해 염려하는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더 어리석은 모습일까요? 여러분 저를 비롯하여 집에 가서 보면, 냉장고 열면 먹을 것이 가득 찼어요. 또 옷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러 벌 있죠. 그러함에도 우리들이 돈에 대해서 걱정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00야, 너는 너무 어리석구나!' 라고 말씀하신다는 겁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런 가난속에서도, 우리 생명을 유지시켜줄 생활 필수품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할까요?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과 몸을 소중하게 생각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6:25 마지막에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자 하나님께서 음식보다 소중한 목숨을우리에게 주셨고, 또 옷보다 소중한 몸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당연히 음식과 옷 또한 허락해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지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과 몸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십니까?(마6:26-28)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28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여러분, 우리가 그때 예수님의 표정을 알 수는 없지만 예수님이 지금 이말씀을 하실 때, 제자들을 참 측은히 여기시는 표정으로 말씀하셨을 것 같아요. 자 공중나는 새들과 또 꽃들도 하나님께서 먹이시고 입히신다면새보다 더 귀한 자신의 백성인 우리는 얼마나 더 신실하게 먹이시고 입히실까요? 그런데 무위도식하고 게으르게 빈둥거리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채워주시지는 않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가운데, 그리고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성도가 필요한 것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죠. 자 하늘의 새와 들의 꽃도, 신실하게 돌보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신 사람들을 얼마나 더 신실하게 돌보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러한 말씀들을 알면서도 물질에 대한 염려하는 우리들을 향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꾸짖으십니다. (마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우리의 진짜문제는 우리의 믿음의 부재, 즉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필요 이상의 것들을 원한다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데 내가 그것을 만족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만 내 기대치가 너무 높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시장에 길들여진 우리는 부의 축적이 당연한 것이라 여기며 살아가지만 성경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디모데전서 6장8절에 말씀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 말고도, 다른 것이 있어야 풍족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6.25 때보다 더 어려울까요? 그렇지 않죠. 근데 지금 우리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살면서도, 여전히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만족한 가운데 살았던 사람들이 역사 속에 끊임없이 존재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진짜 문제는 우리의 고달픈 상황이 아니에요. '우리의 진짜 문제는, 우리가, 자녀(성도)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그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시작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염려할 것은 우리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있나, 아닌가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매일 잊지 말고 살아야 하는 진리는 정말 우리가 매일매일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면서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이죠. 즉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있느냐?' 는 것입니다. 진짜 문제는 내게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느냐 입니다. 풍족하면 성도들이라도 '딴 짓'으로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이래 저래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게, 꼭 필요만 채워주신다는 거죠. 성도들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풍족한 삶을 바라지만, 정반대로 하나님은 성도들이 세상적으로는 좀 가난해도 영적으로 부유하기를 바라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실상은 네가 부요한자니라(계2:9)‘. 우리의 목숨과 몸을 소중히 여기시는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채워주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