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월
류윤모
세모시 두루마기 차림의
훤칠한
젊은 선비가
이리오너라 하면
그리운 정인의 목소리에
반가운 버선발로
달려나와
한달음에 안겨올 듯
아리따운 기생 이름같은
애월
바다에 가로막g고
파도가 갈라놓았을
애타는 사랑도 가고
남 몰래
꽁꽁숨겨둔 그리움도
허망하게 멀어져가고
화무는 십일홍이라고
글썽이는 밤하늘에
고운 님의
버선 한짝
세월의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차갑게 버려져 있을 애월
사랑 잃고
홀로 찾아든 누군가의
눈물 속에 사무쳐 올
애월 涯月
내소사 설경
류윤
제대로
일생일대의 반가운 눈맞이를 하려면
내소사 전나무 숲길 쯤은 가야 한다
이미 어둑어둑한 폭설 예감이
짙게 드리워진
먹장의 하늘에서
겅성드뭇한 눈발 날리다
백묵으로
죽죽
금을 내리긋듯
폭력적인 함박눈
소리소문없이 퍼부어대고
내소사 전나무 숲길에
아늑하고
고요한
신방같은
터널을 만들어
서먹햇던 사이도
손잡게하는
고즈넉한 분위기
불화는 이미
축복같은 눈발에
뒤덮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고
흰 눈의 아치 속을
걷고 걸어
내소사 안 마당에 들면
날렵하게 틀어올린
기왓골이고
절 마당이고 대웅전이고
온통
흰눈으로 도배를 해버린
정결한 기운
때마침
범종 치는
웅장한 소리속까지
마구 들이치는
눈발
백지 한 장 받아들고
좋아라!
눈이불 위에 찍힌
천진난만한
점 두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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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비 열도
ㄹ ㅇ
격렬과 비열을 한묶음으로
지명 화 해 놓은 뜻은
브레이크 잡히지 않는격렬은
자칫 비열해질 수도 잇으니
잘 헤아리라는 뜻은 아닐지
물불 앞뒤 안가리고 격렬하다보면
그 종착역이 비열로 귀결될 수도잇으니
격렬도 악셀과 브레이크를
번갈아 밟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선견아니겠는가
뒤돌아보면
사랑이란 이름의 속도 위반으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허물을 짓던가
격렬비 열도
ㄹ ㅇ
바람 불고
격렬한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열도는
조각 난 퍼즐처럼
산산조각
쪼개질지도 모르겠다
찢어놓는 것이
얼마나아픈
일이라는 걸 모르는
부모라면 태풍주의보 속에
섬에 들어
우산이고
우비고 집어던지고
전신으로 울며
격렬한 빗발속에 서서
어린 손목을 놓는 아픔
온몸으로
체감해 볼일이다
열도가
격렬한 빗발과
악마의 혓바닥같은
파도를
이를 악물고
감내하는 것처럼
내일은
내일이 태양이 떠오르듯
이 거센 빗발도
머잖아 잠들테고
평화로운 날들
거짓말처럼 찾아들테니
먼 곳
류윤
밥그릇 수를 쌓아가면서
원시안이 되어 가는지
먼 곳으로
시선을 던지는 날들이 잦다
망연한 그 소실점 끝에
머틀거리는
아프게 긁힌 별 하나
나뭇가지 끝에 대롱거리는
단풍잎
어딘가로 쏜살같이
제 마음을 둔 곳 향해
직행으로 날아가는
새한마리
나이의 역방향으로
되짚어가는
눈시울의
흑백의 세월
그리움이란 단어는
그리우다
마음이란 물질로
화상을 재생해
그린다는 뜻 아니겟는가
아득히
먼곳을 그리는
회오의 날들 잦다
허물 많은 나도
과연 누군가의 먼 곳이 될
자격이나 있는지
생각하면 부끄러워진다
쓸쓸
ㄹ ㅇ
귀뚜리 한 마리 귀뚫어
제발 귀 좀 뚫고
내 말좀 들어 ..한다
쓸쓸하다고 한다.
쪼그만 것이 뭔 쓸쓸 ㅋㅋ
너보다 수백배,
수 천배는 더 큰 나도
쓸쓸 이란 걸 깔보고
애써 무시하며
평생을 거뜬히 살아냇는데
자꾸자꾸 마음 약해지게 .
마음 여려져
쓸쓸의 방벽 허물어지게
바늘 구멍만도 못한
미세한 바람구멍을
귓속에
줄기차게 뚫어대나
언제는 내 곁에 무슨
사치스런 위로가 있었던가
위로의 목을
아주 비틀어 버리고
까만 밤을 하얗게
잠들어버리고 싶다
퇴행성 슬픔
류윤
사람 떠나고
못살것같아
숨이 턱턱 막히고
시도때도 없는
눈물 솟구치던
슬픔도
후진 기어를 넣듯
뒤로 뒤로
멀어져
이젠 가뭇이
잊혀져 가는
퇴행성 슬픔
퇴행하는 것이 어디
몸 뿐이랴
경주 서출지
류윤
목덜미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땡볕 여름이면
수반에 잠긴
편지를 찾아 읽으려
서출지를 찾아가야 한다
왕비의 통정을 고하며
‘거문고 갑을 쏘라’는
못에서 나온
노인의 서찰을 읽고
궐로 돌아와
거문고 갑을 향해
화살을 당기니
안에 숨어잇던 승려가 쓰러지며
소지왕이 위기를 모면햇다는 전설의
서출지
천년전의 꽃같은 화랑들과
어여쁜 원화의 넋들이
살아 오기라도 하는 듯
서리서리 서리
배롱나무 가지마다 전설이 감겨있고
7월의 수반에 담긴
아리따운연꽃 벙그는소리
칠월이면
고막으로 가득 할
경주 서출지를 찾아가야 한다
찔레꽃
류윤
긁히고
상채기 진 마음
덤불로 뒤엉킨
쓰라린 날이면
식물성의 고요가 끓는
좁장한 찔레꽃 길로
걸어가야 한다
벌떼 잉잉대는 시간의
봄날의 입구로
하염없이
걸어 들어가야 한다
아련한 몽환 속에서
일순
퍼들껑 날아오르는 꿩이
낳아놓은
아직 온기 식지 않은
새알 몇 개쯤은
눈으로나 매만지며
먼 먼 기억 속의
하얀 찔레꽃에 어리는
해정한 낯빛 하나쯤은
가만히 떠올려야 한다
아직도
입속말로 호명할
이름 하나 쯤
뇌리에 남아 있다고
불면 ㄹ o 빈 절깐에 와서 낯선 하룻밤 청하느니 예민한 청각을 비벼 스윽스윽 칼날을 갈아대는 두려운 뒤란 대숲에서는 그 무슨 천장만장, 하늘로 솟구쳐 사무칠 한이라도 있어 음산한 밤 푸르르 쑥대머리 풀어헤치고 피묻은 입에 시퍼런 은장도날이나 잘근잘근 씹어대면서 마디마디 서러운 뼈를 부딪쳐 득음을 꿈꾸는가 잠 못 이루는 길손 또한 그 무슨 헛된 망상 뒤척이며 한사코 잠을 바깥으로 쓸어내는 한 오라기 달빛 올올이 풀어 베겟머리 환한 한국화 병풍 한폭 펼쳐내는가
당초문
류윤
당초문이 없는 자개장은 과묵하다
번쩍번쩍 오색 광휘의
자개가 빛난다해도
장롱에 불과하다
허나 그 과묵에 과유불급의
한줄기
생명력을 새겨넣으면
무생물에서 생물을 떠올리듯
등가가 새롭다
흙에 발을 디디지 않고
살아가는 사대부 아녀자들도
잊지 말라는 무언의 교훈
목숨줄인 대지야 말로
하늘 아래 땅위의
모든 생명력의 근원
대지에서 마음속으로 건너온
상감의 당초문 무늬
언제부턴가
장롱에서
마음에 물을 주는
당초문이 사라진 뒤
가화만사성이 무너져 버렷다
카페 게시글
┌………┃류윤모詩人┃
애월
류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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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06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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