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는 육류나 패류보다 역병으로부터 자유롭지만 가격 문턱이 높다. 웬만한 복어 전문점은 대도시의 중심 상권에 자리한다. 아무래도 지방 읍 소재지에 입점하기엔 무리가 있는 업종이다. 그래서 경산의 <복어세상>은 대중적 복어 전문점을 지향한다. 마침 주변에 대학과 중소기업이 많아 작은 모임이나 손님 접대 수요가 끊이지 않는다.
비싼 고깃집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접대나 모임이 가능한 메뉴들을 준비했다. 접대하고 접대 받는 사람 모두 부담스럽지 않고 고기보다 건강식이면서 별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인지 찾는 이가 제법 많다. 복 요리 코스인 복샤부구이(1인분 2만4000원)와 참복샤부구이(1인분 3만5000원)가 대표적인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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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껍질무침 등 복어요리
복샤부구이와 참복샤부구이는 복어를 구워먹거나, 푸짐한 채소와 함께 샤브샤브로 먹을 수 있다. 여기에 각종 요리를 곁들이고 마지막에는 식사로 마무리 한다. 복샤부구이는 일반 복어를, 참복샤부구이는 참복을 사용한다. 좀 더 고급 코스로 구성한 복어세상 스페셜(1인분 5만원)도 있다.
이 집은 식사 공간이 모두 방이다. 인원에 따라 크고 작은 방에서 다른 이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다. 부서 단위 회식이나 손님 접대, 혹은 아늑하고 오붓한 가족외식 공간으로 적당하다.
참기름에 구워 먹고, 육수에 데쳐 먹고
예전 충무로 인쇄 골목에 편집 업무 차 자주 갔었다. 가끔 철야작업을 했고, 그런 다음날은 복국 집을 찾아갔다. 연만하신 할머니가 운영했던 작고 허름한 복지리 전문점이었다. 미나리를 넉넉히 넣고 끓여 ‘스뎅’ 대접에 담아낸 복어 국물은 저절로 엄지를 치켜들게 했다.
가격이 무척 헐했는데 다 먹어갈 때쯤이면 주인 할머니께서 미나리를 자꾸 넣어주셨다. 자리에 앉자마자 내오던 복껍질무침도 새콤달콤 맛있어 날름 먹어댔다. 선배 손에 이끌려 처음 갔던 이 집은 한동안 내 안목의 수준을 과시할 근거가 돼줬고, 몇몇 지인들에게 으스대며 소개하기도 했다. 참복샤부구이(1인분 3만5000원)는 <복어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메뉴다. 반찬이 차려지고 복어가 나오자 충무로 할머니네 복 집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지방인 점을 감안하더라도 저렴한 가격, 우직하고 친절한 주인장 김씨 형제, 실속 있는 메뉴 구성, 그리고 개운한 복어 국물이 할머니네 복국집을 떠올리게 했다.
샤부구이의 냄비가 마치 서울식불고기 불판처럼 가운데가 일정 부분 위로 돌출됐다. 주변부는 국물이 고일 수 있도록 움푹 들어갔다. 독특한 형태의 냄비 구조 덕분에 구이와 샤브샤브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가운데 볼록한 부분에 먼저 참기름을 두르고 복어 살을 올려 구워먹는다. 그 사이에 움푹 들어간 가장자리 부분에는 육수와 함께 미나리, 표고, 팽이, 복어김치만두 등이 맛있게 익어간다. 익으면서 저마다의 성분과 맛이 국물에 스며든다. 온갖 채소의 진액을 받아들인 국물은 점점 맛이 깊고 묵직해진다.
복칠리 등 각종 복어 요리도 맛볼 수 있어
잘 익은 복어 살은 생 고추냉이를 넣은 장에 찍어먹는다. 버섯, 묵은지, 울릉도산 명이나물 등 입맛에 맞는 재료에 싸서 먹으면 풍미를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어떤 재료와 먹더라도 탄탄한 육질과 담담한 복어 살의 깊은 맛은 변함없다. 복어 살 일부는 뜨거운 국물에 익혀 먹는다. 가끔씩 냄비 속 맛난 육수가 밴 채소들도 생 고추냉이 장에 찍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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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샤부구이
함께 내오는 요리와 찬류도 정갈하고 맛깔스럽다. 장아찌는 봄동, 마늘종, 명이 등으로 담갔다. 요리는 구운 가지, 닭가슴살 샐러드, 착한송이회, 복껍질무침, 황태껍질튀김, 복칠리 등을 구비했다. 이 가운데 복칠리는 튀긴 복어 살에 칠리소스가 들어간 탕수육 소스를 부은 복어탕수육이다. 매콤하면서 복어의 담백한 맛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복어와 여러 요리를 먹고 나면 남은 국물에 밥을 볶아먹는다. 밥에 김가루와 각종 채소를 넣고 볶아준다. 배가 불러도 볶음밥의 고소한 유혹에 다시 수저를 들게 된다.
짧지 않은 세월에 충무로 복국집은 기억에서 사라졌다. 몇 년 전, 충무로에 간 길에 찾아봤지만 어디쯤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주인 할머니의 인자한 웃음도 아스라하다. 다만 끝 모를 시원함이 식도를 쓸어 내렸던 복어 국물 맛은 또렷하다.
연초에 우린 수많은 복을 주고받았다. 불과 몇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많은 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언 땅이 훈풍에 몸을 푸는 계절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참복이 연중 가장 맛있는 계절이다. 가까운 이들과 함께 복어로 속을 확 풀어보는 건 어떨지. 새 복이 들어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복어세상> 경북 경산시 진량읍 공단 1로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