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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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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늘 가게에서 매일 아침 제일 먼저 온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거저 준다고 했습니다. 그랬을 때에 매일 아침 열심을 다하여서 제일 먼저 나타나는 사람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조금 늦으면 새 치기를 해서라도 제일 앞자리에 섭니다. 조금 더 늦으면은 울며불며 읍소를 하면서도 반드시 제일 앞자리에 서서 자기의 원하는 것을 받아 갔습니다. 이 사람은 금고를 가져가기도 했고 출세의 상자를 가져가기도 했고 성공의 상 자를 가져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쾌락의 상자도 가져갔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어느날 아침에 검은 테를 두른 상자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검은 테를 두른 상자를 가져간 뒤에는 다시는 그 가게 에 나타나지를 안았어요. 상점의 점원이 가게의 주인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 그 개걸스런 소유자가 이제는 왜 오지 않습니까? 어제 가져간 것은 무엇이 였습니까?"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때 상점 주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 니다. "무엇이나 가져가겠다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줄 것이 무엇이겠느냐 죽음의 상자를 주었더니 그것도 넙쭉받어 가더구나" 그러면서 이런 말을 덧 붙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오늘 만 있지 내일이 없었던 사람이다. 이런 얘 기를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내일을 잊어버리고 오늘 눈에 보이는 것에게 집착하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노예로 전락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람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살아온 어제도 존재하는 것이고 살아가는 현 재도 존재하는 것이고 그리고 살아야 할 내일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사람은 내일을 향하여 열려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로 어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은혜로 오 늘도 허락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일도 은혜로 허락하여 주실 것 이라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인생이야말로 지나간 어제와 살고 있는 오늘과 돌아올 내일을 살아가는 존재가 인간이라 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인간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시간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 보면은 40년동안 계속 되었던 광야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가나안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본문에 말씀에서 볼 수 있습 니다. 이 신명기라는 말 자체가 의미가 무엇인가 하면은 두 번째 율법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신명기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서 두 번째 주시는 말씀입니다. 첫 번째 말씀이 무엇입니까? 첫 번째 말씀은 40년동안 광야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서 하시는 말씀이 첫 번째 말씀이 라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 말씀에서 시작되는 신명기는 40년을 결 산하고 점검하면서 다가올 가나안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고 그곳에서 어떻게 생활해야 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 이 신명기의 중심 내용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신명기의 말씀은 어제를 위하여 주시는 말씀이 아닙니 다. 오늘의 위하여 주시는 말씀도 어떤 측면에서 아닙니다. 이 신명기의 말 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내일을 위하여 주시는 말씀이라고 우리는 이 말씀 을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내일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을 오늘 말씀으로 들려주고 있 는 하나님의 음성이 신명기 인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36년동안 일본의 압제하에서 살았습니다. 이제 일본에서 살았 던 세대들이 거의 다 이 세상을 떠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모 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은혜로 815해방을 허락하여 주셨 고 우리에게 나라를 되찾는 큰 은혜를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8· 15광복절이 54년이 되는 역사의 길을 걸어 왔습니다. 그리고 2000년을 바로 눈 앞에 둔 이때에 과연 무엇을 해야 되겠습니까? 이 민족이 이때에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를 본문을 통하여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재의 상황은 남북이 양단 되어졌습니다. 저 이북에는 복음이 증거되지 못하고 복음이 활화산같이 타올랐던 저 이북의 지역의 교 회가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들은 먹지를 못해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의 남한과 북한이 왜 하나되지 못합니까? 왜 통일의 문을 열지 못합니까? 민족이 하나가 될 수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 겠습니까? 이 원인과 이유를 이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서 생각해 보고자 하 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호렙 산에서 세일 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 까지 열 하루 길이었더라" 이 본문에 말씀에 나오 는 호렙 산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 제일 처음 도착한 산입니다. 그 리고 가네스바네아라는 곳은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하여 12정탐꾼을 보내 었던 가나안 땅과 경계지역이지요? 그렇다고 한다면 호렙산은 이스라엘 백 성들이 방황했던 광야의 제일 남쪽 끝이고 가데스바네아는 광야의 제일 북 쪽 끝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광야 남쪽 끝에서 광야 북쪽 끝까지 가는데 사람이 걸어서 열 하루길이 되는 거리라는 말씀이 본문의 말씀에 내용입니 다. 그렇다고 한다면은 애굽에서 가나안까지 가는 시간은 통합해서 계산해 보면 넉넉히 잡아도 한달이면 애굽에서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까지 가는 데 넉넉한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달만에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갔습니까? 들어가지 못했지요. 오늘 분문에 말씀에 얼마나 걸렸습니까? 이광 야의 길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이 광야의 길을 돌고 또 돌았던 것 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 3절에 보면은 제 40년 11월 그 달 초 1일이 라는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하던 그 달이 1년 1월 1일로 잡 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언제가 되었느냐 40년 11월 1일이 되었다는 말이 지요. 정확하게 말하면 39년 11개월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거의 만 40년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 광야에서 방황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겠습니 까? 신명기서 1장, 2장 그리고 신명기서를 자세히 읽어 보십시오. 왜 이스라 엘 백성들이 한달만에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하는 데 40년동안 방황한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 신명기서는 분명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라는 것을 잊어 버 렸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이라는 내일을 약속을 허 락하여 주셨는데 그들은 그것을 믿지 않는 불신앙에 빠져 버렸습니다. 그리 고 이들은 수없이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애굽에 있었으면 고기가마 곁에 있었을 텐데 잘 살고 잘 먹었을 텐데 우리를 광야에서 주려 죽게 하는 구나" 하나님이 주신 내일을 향하여 서는 닫혀져 버렸고 하나님이 떠나라고 하는 애굽으로 기어코 가겠다고 했 던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였습니다. 내일을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은 드디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 을 섬기기 시작했고 광야에 있는 온갖 토속 신들의 우상을 드디어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리신 만나를 입에 물고 있으면서도 하나 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구름기둥 아래에서 더위를 피해가면 서도 모세를 향하여 우리를 광야에서 죽게 하는 구나 라고 불평을 했던 것 이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 이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40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 하는 이유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시 단적으로 설명 드리면 내일을 향하여 열려있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고 닫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어떤 말씀을 제일 먼저 하고 있는 것입니까? 이제 너희들은 내가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가야 한다. 내가 너희들에게 허락해 준 내일의 땅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무엇이 죄입니까? 하나님이 가라고 하는 곳 가지 않는 게 죄입니다. 하나님이 걸으라고 하는 길을 걷지 않는 것이 바로 죄라는 것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해 야 될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잘못 되어진 모든 죄를 철저히 회개 하라는 명령이 신명기서의 중심 내용입니다. 하나님을 원망한 죄, 우상에게 절 해버린 죄 그리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죄, 이 모든 죄를 회개하고 성 결하여 깨끗하게 되라 이게 하나님의 첫 번째 명령 이였습니다. 여호수아서 3장에 보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 로 가는 장면이 나타나는 데 가나안으로 가는 요단강을 건너기 전 날 밤에 여호수아는 모든 백성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아십니까? "너희는 스스로 성 결케 하라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리라" 이스라엘 백 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기 전에 제일 먼저 해야 될 하나님의 음성이 성결케 하라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되라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의 은총을 체 험하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결의 예식을 지킴으로 말미 암아 요단 강을 육지처럼 건너는 놀라운 기사를 일으켰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리고 성이라는 튼튼한 성을 하나님의 은혜로 점령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아이 성 전투에서 는 실패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그런 겁니다. 그들이 힘이 없고 무기가 없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가운 데 죄가 있었기 때문에 아이 성 전투에 실패를 했습니다. 이 실패에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어떤 명령 을 했습니까? 여호수아서 7장 13절에 보면은 "너는 먼저 스스로 성결케 하 고 내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성켤케 하고 내일을 기다 리라 여기에 아간의 죄 문제를 완전히 회개하고 해결했을 때에 아이 성 전 투에서 승리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저 북한을 불쌍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복음이 증거 되지 않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저 이북을 불쌍히 여기지 않기 때문에 굶어 죽는 고통 을 겪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 통일의 문이 열리지 않습니 까? 왜 북한 동포들이 먹지 못하고 죽어가야 하고 복음을 듣지 못하고 그들 의 영혼이 죽어야 하는 합니까? 지금 여러 가지 보도와 여러 가지 방송을 통해서 보면은 전쟁의 위기가 점점 더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정치하는 사람이 잘못 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경제하는 사람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아니면은 이 북의 마성적인 권력이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나 아닌 너가 잘 못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런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오늘 8·15기념예배를 드리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정직하 게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됩니다. 나의 죄 때문에 내가 하나님 앞에 지은 죄 때문에 이 54년을 방황하며 남북이 분단된 고통 속에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얼마나 교회 안에서 분열을 일삼아 왔습니까? 이 사회 속 에 빛이 되지 못하고 온갖 탐욕과 죄로 얼룩져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을 보지 말고 내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오늘 정직히 드려다 보시기 바랍니다. 내 죄 때문에 남북이 양단 되어 있습니다. 내 죄 때문에 저 이북이 복음이 증거 되지 못한다는 자기의 죄를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으면은 하나 님께서는 내일 남북의 문을 여는 것을 허락하여 주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의 눈에 티를 보지 말고 네 눈에 들보를 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남의 눈에 티만 비판하고 남의 눈에 티만 잘못되었다고 정죄 하기 때문에 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 다. 우리는 내 눈에 들보를 보아야 합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여 러분들 다시 한번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서 내 죄가 남과 북의 문을 막고 있는 철창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으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신 우리의 죄를 다 회개하고 성결하고 깨끗하게 되는 은혜를 체험하 시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하신 첫 말씀입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 으라"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 오늘 이 시간 이때야말로 이 시 간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베드로처럼 밖에 나 가서 심히 통곡하고 회개하는 역사가 교회공동체와 온 성도들의 기도가 울 려 나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남북의 문을 열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 다. 저와 여러분들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서서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보고 스스로 성결케 되고 회개의 은혜를 체험 할 수 있는 여러분들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어제의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회개하고 성결케 되 었으면 오늘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6절과 7절 말씀을 다시 한번 봉독 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호렙 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산에 거한지 오래니 방향을 돌려 진행하여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고 그 근지 곳곳으로 가고 아라바와 산지와 평지와 남방과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과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가라 하셨 나니" 너희들이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되었으니 너희들의 방향을 바꾸 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가야할 방향이 어디라고 본문 말씀이 설명하고 있습니까? 아모리 족속의 산지 아라바 광야와 가나안 땅까지 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하나님 앞 에 회개하고 스스로 성결케 되었으면 이제 방향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이 광 야를 40년 동안 맴도는 것이 너희들의 방향이 아니라 가데스바네아에서 바 로 들어갔으면되는 데 그렇지 못해서 광야을 헤매는 그 길이 아니라 이제는 그 당시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하여서 들려주셨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 여 방향을 돌려 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회개했으면 우리의 방향이 바꾸 어져야 됩니다. 실컷 눈물 흘리며 회개해 놓고 삶의 현장에 오면 그대로입니 다. 방향을 바꾸지 않습니다.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새로운 내일의 약속이 허 락되어지지 않습니다. 94년 아시안게임에 한 마라토너가 참석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캄보디아 대표로 나온 사람이였습니다. 그 당시에 캄보디아가 아시아대회에 나올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청년은 캄보디아를 대표해서 마라톤에 참석을 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는 여자선수들 보다도 한시간이나 늦은 시간 으로 42.195Km를 완주를 했습니다. 이 젊은 청년은 킬링필드를 경험한 사 람이였습니다. 시체들이 나 뒹구는 극심한 공포롤 느꼈고 먹지 못하여 굶주 림으로 고통을 당했던 청년이였습니다. 이 청년은 여기서 빠져 나와 낮에는 공장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국립체육학교에서 열심히 운동을 연습했습니다. 마침내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예선을 하는데 당당하게 우승을 했습니다. 42.195Km를 완주하고 나서 기자들이 질문을 했을 때 이 젊은 청년은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매달은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나는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할 때는 죽음의 공포와 굶주림에서 자유하기 위해서 열심히 운동했습니 다. 그러나 이제는 내 꿈이 아닙니다. 내가 이제 42.195Km를 완주 한 것은 캄보디아의 청년도 42.195Km를 완주 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보여주 고 내가 이 길을 달리므로 말미암아 온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 서 달렸습니다."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는 처음 마라토너가 된 것은 자기를 위해서 마라토너가 되었습니다. 아 시아경기대회에서 42.195Km를 완주한 것은 자기 나라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 을 주기 위해서 마라토너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였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방향이 어디입니까? 여러분들의 인생의 목적이 거듭나 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방향을 바꿔야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방향 으로 바꿔지지 않으면 54년이 아니라 100년도 광야를 맴도는 이스라엘 백성 처럼 철의 장막 속에 남북이 분단되어 있을 지 모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새로워졌으면 방향을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누가복 음 19장에 보면은 삭게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이 사람 의 인생의 방향은 물질과 권세였습니다. 그는 그것을 위하여 민족을 팔았고 신앙을 저버렸고 양심을 포기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 이 삭게 오는 어떻게 되어 졌습니까? 회개한 것으로 끝났습니까? 주님을 만난 죄 용 서의 기쁨으로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방향이 바뀌어졌습니다. "가난 한 사람에게 내 재산의 반을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습니다." 그의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 졌습니다. 예수님이 이때의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이 집에 오늘 구원이 이르렀다는 말 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들의 인생의 방향이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가나안 땅에 가지 못하고 광야를 맴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 우리의 방향 이 아닌지요? 오늘 하나님께서 새로운 말씀으로 내일의 약속을 허락해 주신 그 말씀의 방향으로 거듭나고 변화되고 방향을 바꾸는 역사가 여러분들에게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을 가만히 보면은 이 방향을 바꾸는 길이 어떤 길입니까?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가라 아라바 산지로 가라 가나안 족속의 땅으로 가라 이 길은 험한 곳입니다. 방해하는 민족이 있는 곳입니다. 험악 한 길 어렵고 핍박과 환난과 눈물이 있는 그 길을 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통일이 된다는 것 단순한 유토피아가 아닙니다. 통일이 되면 더 큰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도 문제가 생길 겁니다. 그러나 이 험악하고 어렵고 힘든 통일의 길이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주시는 새로운 내일의 약속이라면 우리는 힘들고 험악하고 어려워도 그 방향으로 갈 수 있 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십니다. 바울이 3차에 걸친 전도 여 행에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모든 사람이 말 리는 예루살렘으로 갔고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로마로 갔습니다. 이 바울을 통하여 로마가 복음화 되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 개개인에게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아니 한국 교회에게 하나님 이 가라고 하는 곳은 어디이겠습니까? 내일의 약속은 어디에 있습니까? 가 나안 땅의 약속은 우리에게 어디이겠습니까? 그것은 통일의 장소일 수 있습 니다. 그 길이 험하고 어렵고 문제가 있고 눈물이 나도 그 길로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한국의 교회 또 그리스도인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통일의 은혜를 허락해 줄 줄로 믿습니다. 오늘 8절 말씀을 제가 다시 한번 읽어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사 그들과 그 후손에게 주리라 하신 땅 이 너희 앞에 있으니 들어가서 얻을지니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 속하신 가나안 땅 너희들 들어가기만 하면 그 땅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하나 님이 내일 우리에게 주신 약속의 방향으로 말씀의 방향으로 가기만 하면 하 나님이 반드시 주실 줄로 믿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왜 주시지 않겠습니 까? 그런데 우리들은 아예 그 방향으로 가지 아니하고 자기의 방향으로 가 니 54년 동안 맴돌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 소리에 무 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지 못했네. 나는 언제나 바 로 내 곁에 계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인생의 길을 잃어버리고 달려왔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들! 하나님께서 광야의 40년이 될 때에 이스라엘 백 성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니 그리로 가라고 명령하셨습 니다. 54주년 8·15기념예배를 드리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너희들에게 통일 의 은혜를 줄테니 그 방향으로 문을 열고 그 내일을 향하여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우리에게 들리고 있습니다. 분단의 아픔이 나의 죄 때문이 아닌가를 정직하게 눈을 열고 보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방향을 바꾸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통하여 서 하나님께서 이 이 민족을 하나되게 하고 저 이북의 교회를 새롭게 회복 하게 되고 하나님의 복음이 확장되는 역사를 일으킬 수 있는 주님이 쓰시는 귀한 그릇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