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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맛
로제 그르니에Roger Grenier. 1919~2017
「1919년 프랑스 캉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서남부 피레네 산맥 근처 도시 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리 소로본 대학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44년 ‘파리 해방’에 참여 했다. 알베르 카뮈의 추천으로 레지스탕스 신문<콩바>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프랑스 수아르>를 거쳐 20년 넘게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에세이 <피고의 억할>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이후 사십여 편의 작품을 출간했고, 페미나 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소설 대상, 알베르 카뮈 상 등 프랑스 문학의 굵직한 상들을 석권했다. 1985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하여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 대상이 수여되는 영예를 안았다. 196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일했다.」
[시인들의 나라]
범죄는 행위의 이행이다. 그러나 신문이나 라디오 혹은 텔레비전을 통해 전해지는 범죄 뉴스는 행위를 이야기로, 언어로 전환한다. 그 전환은 쉽지 않다. 사회 뉴스를 소비하는 대중에겐 시작과 중간과 결말을 갖춘 이야기가 필요하다. 허구 같은데 사실이이어서 더 짜릿한 짧은 소설이 필요하다. 현실이 그리 아름다운 논리를 갖추고 제시되는 경우는 드물다. 대개, 비극의 긴 탄생 과정이 언제 시작되었는지 알기란 불가능하며, 당사자들과 증인들의 말에서 일관성을 찾는 것도 불가능하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모호함이 동기와 정신 상태를 가린다. ~~
프로이트도 오이디푸스 이야기를 다루면서 다르게 행동하지 않았다. 그는 상당히 복잡하게 뒤얽힌 이야기를 단순화하고 거기에 자신의 질서를 부여했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사회 뉴스는 독자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 이야기이다. 적어도 그것은 독자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 나쁜 해결책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자기 자신을 죽여야만, 아니면 둘 다를 죽여야만 빠져나ㅣ갈 수 있는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파멸에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삶의 함정들이 우리를 어떤 절망의 구렁텅이 속에 붙들어줄 수 있는지를.
롤랑 바르트는 <비평 에세이>에서 사회 뉴스가 어떤 면에서 단편소설과 유사한지 보여준다. 둘 모두 모든 것이 주어진다. 상황, 원인, 과거, 결말....조금 더 나아가면 사회 뉴스가 단편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기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1554년 롬바르디아 출신 도미니크회 수도사 마테오 반델로는 범죄와 난폭한 죽음에서 영감을 얻고 현실에서 길어낸<노벨레>를 출간한다. 얼마 뒤인 1559년 프랑스에서는 피에르 보에스튀오가<비극적인 이야기> 모음집을 출간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단편소설의 시조로 여겨지는 보카치오의 <데카메론>과 마르그리트 드 발루아의 <엡타메론>의 정신과의 결별을 의미한다. 이후 이 장르는 두 갈래로 분리된다. 한쪽에는 유쾌하고 가벼운 이야기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비극적이고 감정적인 사회 뉴스가 있다. 17세기 초에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 가운데 하나인 프랑수아 드 로세의 작품은 <많은 사람들의 애통한 죽음을 다룬 우리 시대의 비극적 이야기 들>이라는 웅변조의 긴 제목을 달고 있다.
[기다림과 영원]
나는 순수한 상태의 기다림을 경험해보았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 말이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는 기다림,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아마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기다림은 군인들이 경험하는 기다림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군인이다. 그리고 이런 명령을 받는다. “집결!” 그들은 당신을 줄 세우고, 병영의 다른 구역까지 걷게 한다. 거기까지 가면 이렇게 말한다. “대기!”무엇에 대기하라는 걸까?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엔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렇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고된 사역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아무 일 없을지도 모른다. 결국 군인의 삶에서 최고의 순간은 정렬해서 점호를 하고 “대기!” 소리를 듣게 될 순간을 기다리며 침대에서 설핏 잠든 순간이다. 기다림에 대한 기다림의 순간이다.
전투복 차림의 졸병은 겉모습은 다를지라도 이탈리아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인물들을 닮았다. 차가운 모습 그 자체로 과거도 미래도 없는 인간의 영원한 순간을 살고 있음을 보여 주는 인물들, 그들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대상 없는 기다림의 순간들을 아우르는 군인 상태의 언저리는 매우 긴 기다림의 기간, 우리가 살아볼 만하다고 여기지 않는, 나중에 다시 시작하거나 다시 살게 될 진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괄호 속에 집어넣는 삶의 전형적인 파편 가운데 하나이다. 어디였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 두 졸병은 병영의 막사 주위에 화단을 파는 잡일을 맡고 있었다. 내 동료는 코르시카 섬의 목동이었는데 얼마나 원시인 같았는지 우리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그가 삽자루에 턱을 얹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하사관 한 명이 지나가다가 그에게 물었다. 뭘 기다리고 있나? 그러자 엄청난 분노가 목동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는 웅변하듯 외쳤다. “내가 뭘 기다리느냐고! 내가 뭘 기다리느냐고 묻다니! 빌어먹을. 삼 년째 제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기다림은 우리가 실존에서 지우는 무엇이다. 한 동화가 놀라운 방식으로 보여주듯이,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을 속인다. 어린아이에게 마법의 실패를 준다. 자기 삶을 빨리 흐르게 하고 싶으면 아이는 실을 살짝 감기만 하면 된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해지거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알고 싶을 때 아이는 실을 감는다. 그러면 아이는 빨리 늙고, 곧 실이 다 풀려(감겨?)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된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날들을, 기다림의 시간을 중시하는 것을 거부할 때 우리에게 닥치는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 조급증은 기다림의 가장 친근한 짝이다. 조급증은 오디션을 보는 배우나 구술시험 지원자가 느끼는 긴장보다, 판결을 기다리는 피고나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는 환자가 느끼는 불안보다 더 자주 기다림을 동반한다.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뫼로소는 자신이 얼마나 진짜 이방인인지 드러낸다. 선고를 앞둔 기다림이 그에게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일 뿐이다. 그 기다림엔 어떤 감정도 깃들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기다려야 했다.... 무척 오랫동안. 아마도 사십오 분 가까이 기다렸다.”
반면 미슈틴 공작에게 죽음을 기다리는 사형수의 기다림은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는 확신에 차서 이런 역설을 주장한다. 고문당하는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통증, 상처, 육체적 고통이 정신적 고뇌를 달래줍니다. 그래서 환자는 죽는 순간까지 육체적 고통만 겪습니다. 그런데 가장 잔인한 형벌은 상처가 아니라, 한 시간 뒤, 십 분 뒤, 일 분 뒤 영혼이 육신을 떠나가리라는 확신, 인간의 삶이 끝나고 돌이킬 수 없게 되리라는 확신입니다. 끔찍한 것은 바로 이런 확신입니다. 가장 무서운 순간은 단두대의 칼날 아래 머리를 집어넣고 단두대가 미끄러져 내리는 소리를 듣게 될 찰나입니다.
공작은 이런 말로 결론을 내린다. “어쩌면 세상 어딘가에 사형을 언도받고 그런 식으로 고문을 받은 뒤, 가라, 넌 사면이야!”라는 말을 들은 사람이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자신이 느낀 바를 직접 이야기 할 수 있겠지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런 고통, 그런 불안입니다. 안 됩니다! 우리에겐 인간을 그런 식으로 다룰 권리가 없습니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그 사람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사람은 바로 도스토엡스키이다.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1849년 12월 22일에 사형의식을 모두 치렀다. 그리고 그 경험을 자신의 미하일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세메놉스키 광장으로 끌려갔어. 거기서 사형고문을 읽더군. 그리고 우리에게 십자고상(十字苦像)에 입 맞추게 하더니 우리의 머리 위에서 우리 칼을 부러뜨렸고, 죽기 전에 몸단장을 해주었지(흰 셔츠로). 그런 다음 우리 가운데 셋이 처형대에 매달렸어, 셋씩 불려나갔지. 난 둘째 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살 시간이 일 분 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어.”
어떤 삶들은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는 착각 속에 지나간다.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장편에서 소냐는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안식하게 될 겁니다! 천사들의 소리를 듣고, 경이롭게 빛나는 하늘을 보게 될 거예요. 지상의 온갖 악이, 우리의 모든 고통이 우주를 가득 채울 긍휼 속으로 쓸려가, 우리의 삶이 평온해지고 마치 어루만지는 것처럼 감미롭고 따스해지는 모습을 보게 될 거예요. 저는 믿어요, 믿습니다. 가련한 바냐 아저씨, 울고 계시는군요. 세상을 사는 동안 기쁨을 모르셨죠. 하지만 기다리세요. 바냐 아저씨, 기다리세요. 우리는 안식하게 될 겁니다. 안식할 겁니다. 안식할 거예요!”
체호프가 등장인물들이 내뱉는 문장을 미래 시제로 설정하기만 해도 그 문장들은 절망적인 말이 된다. 체호프의 희곡과 단편 소설의 등장인물들은 대표적인 기다림의 주인공들이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될 때, 그들은 외친다. 모스크바로! 그러나 떠날 수 있는 인물은 거의 없다.
기다림은 희망(에스파냐어로 기다림은 espera, 희망은 esperanza)인 동시에 체념이기 때문이다. 알베르 카뮈는 <결혼>에 실린 에세이 중 한 편인 <알제의 여름>에 이렇게 썼다.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모든 악이 담겨 있던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에 희망이 나오게 했다. 마치 희망이 그 모든 악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한 악인 것처럼. 나는 이것보다 더 감동적인 상징을 알지 못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희망은 체념과 동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산다는 것은 체념하지 않는 것이다.”
카프카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쓰면서 모든 기다림의 결과가 낳는 실망을 표현하지 않는가. “결국 우리는 오히려 원치 않는 곳으로 가고,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고, 어떠한 보상의 희망도 없이 결코 원치 않는 방식으로 살고 죽는다. ”
내일 등대로 가나요? 버지니아 울프의 유명한 소설 첫머리에서 한 아이가 묻는다. 우리는 그들이 십 년 후에나 그리로 가리라는 것을 안다. 각 인물이 산 덧없기 짝이 없는 의식의 순간들이 쌓여 거대한 시간 더미를 이루고, 하찮은 인물들이 아닌 몇몇 주인공이 이미 죽고 난 뒤에 말이다. 그러나 버지니아 울프 예술의 풍요로움과 시간을 다루는 대단히 독창적인 방식은 십 년 동안 기다린 산책을 이야기하는 이 소설을 우리의 흥미를 끄는 말로 단순화할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이 시대가 기다림에 부여하는 가치에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제목을 사뮈엘 베게트에게 빚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 세계에서 시간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면 기껏해야 영원히 회귀하는 돌고 도는 시간이다.
모리스 블랑쇼는 분절된 제목이 붙은 책<기다림 망각>에서 기다림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임을 암시한다. 기다림의 대상이 아무리 중요해도, 기다림이라는 행위는 언제나 대상을 무한히 추월한다.
기다림이 짜증스럽고 아무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지상의 양식>의 들뜬 서정성 이후로 우리는 진전했다. 기다림이여, 얼마나 길어지려는가? 기다림이 끝나면 우리에겐 살아갈 이유가 남아 있을까? -기다림이라! 무엇에 대한 기다림이지? 나는 외쳤다. 우리 자신에게서 생겨나지 않은 무엇이 닥쳐올 수 있었던가? 우리가 미리 알지 못하는 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던가?
(소설과 이야기들)
<내일에는>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콘래드의 단편소설 <투-모로우>는 기다림의 도착을 주제로 다룬다. 예전에 뱃사람이었던 홀아비 해그버드 선장은 아들 해리가 실종된 뒤로 “내일에는 올 거야”라는 말을 매일 되뇐다. 선장은 콜브룩이라는 작은 항구도시에 자리를 잡는다. 아들이 그곳으로 돌아오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웃에는 맹인 카빌이 딸 베시와 함께 살고 있다. 카빌은 항상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딸에게 폭군처럼 군다. 그곳 사람들은 괴짜요 진짜 미치광이인 해그버드를 조롱한다. 해그버드에게 친구는 베시 뿐인데, 그녀는 점차 그의 헛소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베시는 해그버드의 실종된 아들을 사랑 하게 되고, 그가 돌아오면 그와 결혼하리라 생각한다. 이 생각이 자신을 못살게 구는 아버지를 견디도록 도와준다. 해그버드 선장은 베시에게 말한다. 베시, 너는 참을성 없는 여자가 아니구나.
그러던 중 웬 청년이 나타나는데, 그 청년은 분명 선장의 실종된 아들 헤리가 맞다. 그러나 선장은 청년을 맞아들이길 거부하고 내일 올 아들을 기다린다고 말한다. 심지어 그 침입자의 머리를 삽으로 내리치기까지 한다. 베시 역시 기이하게도 헤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일 올 사람이 바로 당신이군요. 아버지와 그 여자의 광기 앞에서 그는 이렇게 응수한다. 그런데 왜 오늘은 안 되죠? 결국 그는 깨닫는다. 모든 게 이상해! ....날짜도 모르고 항상 내일이라니....
어떤 이들은 일어나지 않을 일을, 일어날 수 없는 일을 기다리길 좋아한다. 알랭 푸르니에는 1910년 10월 19일 여동생 이자벨과 매제 자크 리비에르에게 자신의 괴로운 사랑을 털어 놓으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여자가 돌아왔어. 그녀는 하루 저녁, 이틀 저녁, 열흘 저녁이나 길가의 벤치에 앉아 나를 기다렸어. 그녀가 말했지. ’기다리는 사람이 오지 않을 거라 확신할 때 시간은 길게 느껴지지 않아요.‘ 한번은 잠이 들었다더군. “
사실 마조히즘의 형식은 기다림이다. 마조히스트는 순수한 상태의 기다림을 체험하는 사람이다 라고 들뢰즈는 썼다.(자허-마조흐 소개). 캐서린 맨스필드의 <소녀>에서 래딕 부인의 딸은 응석받이의 변덕을 드러내지만 결국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나는 괜찮아요, 나는 기다리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갑자기 소녀의 뺨이 붉어지고, 눈빛이 침울해졌다. 순간 나는 소녀가 울음을 터뜨릴거라 생각했다. 그, 그냥 여기서 기다릴게요. 괜찮다면요. 소녀는 뜨겁고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리며 말했다. 나는 좋아해요. 기다리는 걸 좋아해요! 진짜예요, 정말이에요. 그렇다니까요! 난 온갖 장소에서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는 걸요... 소녀가 이 말을 한 곳은 어머니가 도박을 하러 들어간 카지노 층계이다. <소녀>, <가든파티>
체호프의 <지루한 이야기>에서 스쳐 지나가는 존재일 뿐인 카챠가 떠날 때, 니콜라이 스테파노비치는 그녀에게 이려게 물으려 한다. “그러면 넌 내 장례식에 안 오겠네?”
예전에 내가 알고 지내던 동료가 있었다. 그는 입이 무겁고 건실하며, 결혼해서 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장례식이 끝난 직후, 한 여자가 연구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죄송한데 G 선생님 안 계신가요? 오늘이 수요일인데요. 수요일마다 저희 집으로 점심 식사를 하러 오시는데.....” 그 여자는 남몰래 수요일을 기다리면서 한평생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시를 쓰면서 시간을 속인 모양이었다. 시간을 속이다! 멋진 표현 아닌가! 그릭ㅎ 시간을 죽이다!.... 이젠 기다릴 필요가 없어졌는데, 누가 그 말을 그녀에게 해줬겠는가? 그녀는 신문에서 부고조차 읽을 수 없었다. G 씨의 연인은 맹인이었던 것이다!
프레드릭 모로(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 <감정교육>의 주인공)는 평생 아르누 부인을 기꺼이 기다린다. 아르누 부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브르타뉴로 은둔해 바다를 바라보며 시간을 보낸다. “저기, 내가 프레데릭 벤치라고 이름붙인 벤치에 앉을 거야.”
누군가가 우리를 기다린다고 그토록 확신할 수 있을까? 그건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의 꿈에 불과하다.
이 모든 책들.... 나에게는 독서야말로 기다림과 분리될 수 없는 으뜸 행위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눈은 글자를 따라 나아가고, 정신은 더 멀리에서 일어날 일을 알고 싶어 안달하며 눈이 나아가길 기다린다. 그러나 기다려야만 한다.
전제군주들은 기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루이 14세는 말했다. “하마터면 기다릴 뻔했어.” 그의 마차 이야기이다. 기다림은 권력의 언어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 자신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흡족해하며 기다리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낚시꾼에게 기다림은 스포츠이다. 매복한 사냥꾼에게 기다림은 죽음과 일체가 되는 일이다. 그는 제물이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을 노린다.
기다리는 것을 자기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교황의 노새(알퐁스 도데의 단편소설<교황의 노새>에서 칠 년 동안 복수의 때를 기다리는 노새)가 그렇다.
포크너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원초적인 인물인 밍크 스놉스는 파크맨 감옥에서 조금도 조급해하지 않고 삼십팔 년을 기다린다. 삼십팔 년이 지나면 할 일이 있고 자신이 그 일을 하리라는 것을, 복수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그의 시간을 고스란히 채운다.
인간의 조건: 월요일부터 주말을 기다리고, 일요일엔 월요일을 기다리느라 기진맥진한다. 휴가를 기다리고, 휴가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겁내면서도 은퇴를 기다린다. 곁에서 너무나 오래 기다려온 인생 동반자의 죽음을 꿈꾸듯 기다린다. 죽음은 기다리지 않는다. 기다려야 하고, 심지어 바라야 합당한 유일한 것이 바로 죽음이지만.
전쟁 후에 한 가지 통계가 떠돌았다. 본국으로 송환된 포로들 가운데 80%가 이혼했다는 통계이다.
종교는 기다림을 엄청나게 활용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유대교 신앙에 따르면, 심판의 날은 사막 계곡 또는 법령 계곡이라고도 불리는 여호사밧 계곡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마음 급한 사람들은 죽은 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부활하려고 그곳에 묻혔다. 예루살렘에 갔을 때 나는 그 거대한 묘지를 찾아 거닐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던지는 돌멩이 세례를 받았다. 인티파다, intifada, 달리 말하면 돌로 쳐 죽이는 오래된 형벌이다. 하마터면 나도 내가 기다리지 않는 날을 위한 일등석을 차지할 뻔했다.
[떠나다]
인권선언은 일정한 자유의 공간을 규정했다. 그 선언에는 17개 조항이 들어 있다. 자기모순에 빠질 권리와 떠날 권리를 보장하는 18조와 19조를 만들어낸 보들레르의 재담을 내가 강조하는 것은 농담 취미 때문이 아니다.
떠나다. 이것은 대단히 흐뭇한 이미지이다. 말 없고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사람, 절대 항의하는 법이 없고, 절대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 어느 날 문을 열고 떠난다. 이런 생각만 해도 우리는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보들레르의 글을 끝까지 읽으면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친구 로맹 가리는 자살하던 날 가기로 되어 있던 제네바로 전화를 걸어 공항으로 마중을 와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여자 간호사에게 어떤 약을 가져가야 하는지 물었고, 출판사 대표 클로드 갈리마르와 점심 식사를 하며 세금 문제를 의논했다. 이 평범했던 오후 끝 무렵에 그는 자살했다. 자살은 벼랑이다. 우리는 그 벼랑 가장자리를 따라가며 날에 따라, 그리고 기분에 따라, 약하게 또는 심하게 현기증을 느낀다.
파베세가 말하는 부조리한 악벽으로 번민하는 이들에게는 떠날 생각을 가지고 노는 것이 하나의 생활방식이 된다. 파베세는 이렇게 썼다. 자살 생각은 삶에 대한 항거였다. 더 이상 죽기를 원치 않는 것, 멋진 죽음 아닌가! 그리고 르네 크리벨은 이렇게 말한다. 자살 강박증이야말로 자살에 대한 최고의 치료제가 아닐까? 그러나 그도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말라르메라면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나는 단 하루도 철로 다리 위로 몸을 던져 삶을 끝내고 싶은 유혹을 느끼지 않고 로마 거리를 거닌 적이 없다. 죽거나 죽음을 유예할 이유들을 스스로 찾게 되면 자기모순에 빠질 권리와 떠날 권리가 한데 뒤섞인다. 살아야 할 가치는 없지만, 타인들에 대한 의무가 우리를 이 눈물의 계곡에 붙들어둔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가리켜 우리는 책임을 진다고 말한다.
나는 헤밍웨이를 생각한다. 그의 자살은 흔히 안락사에 속하는 자살로 분류된다. 병이 들자 그는 쇠약해지는 것이 두려워 죽음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도 자살했으며, 그가 아버지 헤밍웨이 박사가 사용한 총으로 자살했다는 사실을 떠올려볼 수 있다. 그가 단지 고통과 쇠락하는 삶의 굴욕을 피하려 한 걸까? 어쩌면 아버지가 한 일을 하려 했던 것을 했던 것은 아닐까.
점점 길어지는 인간의 수명은 사랑의 수명보다 훨씬 길다. 우정의 수명, 문학, 음악, 예술에 대한 취향의 수명보다 길다. 나는 예전에 큰 열정을 느꼈던 작가들에 대해 지금은 전혀 관심이 없다. 내 관심사가 달라졌거나 아니면 그 작가들이 표현하는 관심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이미 그 작가들을 두루 섭렵했기 때문에 그들과 만나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좋아하게 되어 내가 그 작가들과 맺고 있던 조금은 독점적인 우정( 썩 좋은 감정은 아니다)이 훼손된 건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면 내 변덕이 그들의 작품을 다시 읽을 용기를 앗아가, 그냥 멀리서 그들을 존경할 뿐인지도 모른다.
나는 어린 시절에 알퐁스 도데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 애착에 대한 기억이 어찌나 강한지, 집에서 항상 보아온 갈색 장정의 낡은 책 한 권을 집어 들기만 해도 기억이 떠오른다. 내용은 잊었다. 첫인상은 오늘의 독서보다 훨씬 강하다.
모순 끝에는 침묵의 유혹이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글을 쓸까? 누구를 위해? 소통의 욕구를 느끼지 않고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소통은, 혹은 소통 거부는 개인에게 제기되는 가장 까다로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아닌가? 조르주 마타유는 이렇게 T^jT다. “소통 거부는 한결 적대적이지만 가장 강력한 소통방법이다....” 그러나 자신의 고독이나 절망을 말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리쇼 블랑쇼는 말한다. “ ‘나는 혼자다’라고 쓰는 작가 혹은 랭보처럼 ‘[사실 나는 무덤 저편에서 왔다’라고 쓰는 작가는 자기 자신을 꽤나 웃긴 사람으로 평가하는 셈이다. 자신의 고독을 의식하면서 독자를 상대로 말하는 것이, 인간이 혼자이길 막는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우스운 것이다.”
문체의 아름다움과 조화를 이룬 절망은 왅너한 절망이 아니다. 불랑쇼의 말처럼 “자신의 비참을 표현함으로써 자신을 감탄할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건 뭔가 수상쩍다.
침묵에는 그 어떤 말보다, 그 어떤 글보다 더 전복적인 gal이 있다. 마르셀 아를랑에게게 “가장 보기 드문 대담함은 파괴가 아니라 거부다. 말하는 것보다 더 큰 폭력, 그렇다, 그건 침묵이다.”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침묵의 유혹을 받으면서도 글을 너무 많이 쓴 나는 파스칼 피아(피에르 뒤랑)라는 인물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젊은 시절 그는 시를 썼다. <쐐기풀 꽃다발>. 이 시집이 갈리마르 출판사에 출간되기 직전에-1924년이었다-그는 책을 회수했다. 그는 문학 위에 침묵 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았다. 그의 거부에는 반사회적 태도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할 게 뭐 있겠는가? 소설 <출신지>에서 비알라라는 이름으로 그를 대단히 충실하게 그려낸 에디 뒤 페롱은 그로 하여금 이런 말을 하게 한다. 아마도 그가 실제로 한 말로 보인다. “재능은 인간이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인간을 거세한다. 당신의 책들이 꽤나 아름다워서 적수마저 감탄할 정도라면, 또는 당신에게 상이라도 안겨준다면 끝장이다. 당신은 문학을 순배하게 되고, 앞으로는 민족 예술의 지고한 영광만을 위해 일할 것이다. <출신지>.
[사생활]
미디어의 발달은 작가를 조명 아래 세운다. 요즘 글쟁이들이 사회에서 위엄과 신망을 잃긴 했지만, 어떤 작가들은 스타들이나 받는 요란한 대접을 받는다. 대개는 자신들이 자초한 결과다. 미셸 콩타는 “누군가에 대해 공인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알 권리를 제공하는 미디어 전체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뮈세와 조르주 상드, 단테와 베아트리체, 페트라르카와 라우라, 바이런이나 샤토브리앙 같은 자기연출가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만 생각해봐도 이 현상은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욪므엔 인물이라는 qaj주에 이름이 올랐다고 작가 행세를 하는 엉터리 문인들도 눈에 띈다.
한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그의 사생활을 아는 것이 중요할까? 이 논쟁은 마르셀 프루스트가 쓴 <생트뵈브 반박>에서 떠들썩하게 시작되었다. 프루스트는 교양 있고 세련된 사람인 생트뵈브가 동시대 작가들의 가치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줄기차게 잘못 생각했다고 주장한다. 왜일까? 질투심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이다. 그가 스탕달이나 보들레르처럼 그다지 인정받지 못한 작가들을 질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제는 그의 방법론이다. 생트뵈브는 과학적인 태도를 갖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쓴다. 내가 보기에 문학은 인간의 나머지 부분과 별개일 수 없거나 적어도 분리될 수 없다..... 한 인간, 다시 말해 순수한 정신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한 인간을 알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방식과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혼자 내심으로일지언정 한 작가에 관해 상당수의 의문을 제기하고 그 의문들에 대답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를 온전히 알아냈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 의문들이 그가 쓴 글의 특성과 아주 묘하게 닮았을지라도, 그는 종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 자연경관에서 어떤 영향을 입었나? 그는 부유했나, 가난했나? 일상을 살아가는 그의 방식은 어떠했고, 생활태도는 어떠했나? 그의 악습이나 약점은 무엇이었나?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저자와 그의 책을 판단하는 데 무의미하지 않다.
프루스트는 그런 지식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고, 심지어 독자를 길 잃게 만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책이란 우리가 습관 속에, 사회 속에, 우리의 악덕 속에 표현하는 자아가 아닌 다른 자아의 산물이다. 내면 깊은 곳에 그 자아를 다시 만들어내려고 애 쓸 때 우리는 그거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이 내적 노력은 무엇으로도 면제될 수 없다.” 프루스트는 이렇게 쓰기도 했다. “스탕달의 친구였다는 사실이 어째서 그를 더 잘 판단하게 해줄까?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을 텐데.”
프루스트는 발자크의 사생활을 알고, 발자크가 자기 가족과 안스카 부인에게 쓴 편지들을 알기 때문에 그를 저속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작가 발자크에 감탄한다.
문맹자들 계층에서 보낸 알베르 카뮈의 비참한 어린 시절을 알면(그는 첫 책<안과 겉>과 마지막 책 <최초의 인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했다), 문학을 대하는 그의 엄밀하고 경건한 태도와 격조 높은 문체를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바다와 태양 가까이에서 보낸 그의 청소년기며 그를 줄곧 위협한 질병은 그의 작품에 담긴 정신을, 그의 사상을 상당 부분 설명해 준다.
젊은 소설가의 첫 책은 대개 자전적이다. 그러나 그 순간은 가장 경험이 적은 순간이다. 다른 소설가들, 어쩌면 최고의 작가들은 가장 사적인 것, 자기의 삶이나 자기 가족 이야기 중 가장 내밀한 것은 나중을 위해 간직해둔다.
한 인간의 삶에는 세상 무엇을 주어도 결코 말할 수 없는 비밀 한두 가지는 항상 있다. 비밀스러운 해변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작가라면 소설 속에 감춰진 그 해변들을 아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디킨스는 매우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부모의 방종과 이기주의가 문제였다. 말이 많았고 빚 때문에 자주 감옥을 들락거렸던 그의 아버지는 미코버 씨의 모델이 된다. <데이비드 코퍼필드>의 11장에는 디킨스가 열두 살 때 겪은 체험이 거의 그대로 실려 있다. 그는 주급 6~7실링을 벌기 위해, 상상하기 힘든 수모와 비참한 조건을 견디며 악취 나는 창고에서 왁스 병 포장 하는 일을 했다. 디킨스는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위해 그 경험을 활용하는 것을 망설이지는 않았지만 그 기억을 최대한 비밀로 묻어두려 했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을 거부했다. 런던에서는 너무도 불행한 기억이 있는 장소를 피해 가려고 길을 우회하기까지 했다.. 자전적인 어떤 글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어린 시절의 이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결코 말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그걸 털어놓기 위해 그 시절에 내린 커튼을 걷어 올린 적이 없다. 내 아내도 예외는 아니었다. 헝거포드의 오래된 시장이 쇠락할 때까지, 헝커포드의 오래된 계급들이 파괴될 때까지, 그 땅의 본질 자체가 바뀔 때까지 나는 결코 나의 굴종이 시작된 그 장소를 다시 찾아갈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곳에 다시 가지 못했다. 그곳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스트랜드에서 로버트 워렌스 가까이로 가면 나는 왁스 뚜껑에 바르던 유약 냄새를 피하기 위해 반대편 인도 쪽으로 길을 건너곤 했다. 예전의 나를 떠올리게 하는 냄새였다. 내가 챈더스 스트리트를 거슬러 올라가며 기쁨을 느낄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내 맏아들이 이 말을 하게 되었을 때도 나는 버러에 가기만 하면 눈물이 났다.” ~~~모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견뎌내지 못하는 감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많은 책에 영감을 주었다.
-소설과 기억
알베르 카뮈는 첫 책<안과 겉>의 영감을 되찾길 갈망하며 이렇게 썼다. “모든 예술가는 (....)내면 깊이, 평생 동안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하는 말에 양분을 제공할 유일한 샘 하나를 간직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한두 가지를 말하려는 것인데, 대개는 이 책이나 저 책에서 언제나 같은 이야기를 한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이것을 예술작품의 단조로움이라고 불렀다. 대개 우리는 기억에서 이미지들을 길어와 그것들을 예시하고, 옷 입히고, 심지어 가장한다. 이미지들은 아주 먼 과거에서 올 수도 있다. 플래너리 오코너가 말하듯, “어린 시절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라면 누구나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갖게 된다.”
기억 자체가 이미 소설가이다. 이제 우리는 기억이 저장장치가 아니라 과거를 끊임없이 재구성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기억은 재상하기보다는 지어낸다. 기억은 역동적이며, 우리의 상상을 재생하기보다는 지어낸다. 기억은 역동적이며, 우리의 상상을, 우리의 개성을, 우리의 열정을, 우리의 상처를 먹고 자란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며, 작가에게는 더더욱 사실이다. 작가에게는 기억의 창의력이 기억의 충실성보다 훨씬 더 유용하다. 그러기에 소설 속 인물의 모델은 소설 속 인물과 결코 똑같지 않다. 그들은 그저 작품의 소재가 되었을 뿐이다.
늙어가면서 인간은 일부 기억들을 완결판 이야기로 굳히려는 경향을 보인다. 달달 외워서 한 마디 한 마디 그대로 재생해낼 수 있는 이야기로. 이런 점에서 모든 인간은 어느 정도 소설가이다.
문학 창작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생각해보면, 과거와 현재의 현실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인물 혹은 하나의 이야기 앞에서 우리는 자문한다. 그것이 나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이 아닌지. 다시 말해 그것이 나의 감수성에, 삶을 이해하는 나의 방식에, 하나의 미학에, 거기서 발산되는 일정한 음악에 부합하는지 말이다. 기억은 명백히 그 선택에 순응한다. 어쩌면 기억 스스로 이미 그 선택을 한 건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의 기억과 맺는 관계, 그 불가사의한 관계를 매우 조심스럽게 관리한다. 그 샘을 흐려놓을까, 그 샘이 마를까봐 늘 겁을 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에게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들의 과거 속에는 그들을 사로잡았던 사건들, 인물들, 장소들이 있다. 그들은 그것으로 책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자신이 상상한 것과 기억해낸 것을 구분하기가 점점 더 힘들어진다. 불가능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플로베리는 1866년 11월 이폴리트 텐에게 쓴 편지에서 이런 말을 한다. “시간이 조금만 흘러도 현실이 나에게 제공한 것을 내가 덧입힌 미화나 변형과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일단 책에 쓰이고 나면 그토록 오랫동안 우리를 떠나지 않던 그 과거의 조각은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지고 만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 것을 가리켜 카타르시스라고 부른다. 정신이 정화된 것이다. 이렇듯 역설적이게도 소설은 과거의 일부를 살리는 데 쓰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파괴하는 데도 기여한다.
- 나, 우리, 그
많은 독자들은 소설 속에 ‘나’가 등장하는 것을 속내 이야기나 고백의 동의어로 본다. 그러나 ‘나’는 대개 문학적 기법에 불과하다.
<이방인>에서 우리는 세상에 부재한 인물 뫼로소의 이야기가 3인칭으로 이야기되리라 예상한다. 그러나 카뮈는 뫼로소로 하여금 ‘나’라고 말하게 해 우리를 그 인물의 사막 같은 내면으로 끌어들인다.
-회상록과 고백론
셀린이나 헨리 밀러의 작품처럼 자서전에 가깝다고 주장되는 소설들 속에도 대개 많은 부분 창작이 들어 있다.
-실제 모델들
소설가는 화가처럼 어떤 인물의 정확한 초상화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소설가가 겨냥하는 것은 훨씬 더 보편적인 주제, 바로 삶이다. 물론 소설가는 눈에 띄는 곳에서 쓸 만한 재료를 취한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차용한 오만 가지 자잘한 세부사실들을 이용한다. 말하ㅑ자면 쪽매붙임하듯 작업한다.
-읽기
읽기는 더도 말고 적어도 글 쓰는 일만큼이나 사생활에 속하는 행위이다. 책 한 권 들고 혼자가 되는 시간,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페이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참으로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을 문득 이해할 것만 같다. 한 편의 허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현ㅅ리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과거의 작가들과 전적으로 사적인 관계를 창출한다. 그들을 결코 보지는 못하지만 소중히 여긴다. 수 년, 수 세기 세월이 그들과 우리를 갈라놓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가족보다, 혹은 우리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우리와 더 가깝다. 그들은 우리의 유일한 위안이 될 수 있다. 엘리오 비토리니는 이렇게 말한다. “문학의 위대한 순간들에는 언제나 체호프 같은 인물이 있었다. 혼란과 폭풍으로 고립된 그 시대 패자들의 고립된 영혼을 마음 깊이 감동시키기 위해, 소설 및 모든 형태의 자기 시대의 재현이나 (명료한) 해석을 거부하는 사람 말이다.”(공개 일기)
-진짜 사생활
자기 사생활에 관해 털어놓는 이들은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서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다. 마치 글이 사생활보다 훨씬 더 사적인 것인 듯하다. 자신과의 문제를 종이 위에 털어놓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사적인 일이다. 진짜 사생활은 글쓰기이다. 버지니아 울프는 유명한 책에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사람에겐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자기 글과 홀로 대면하는 장소가 필요하다. 그곳은 자신의 사생활에서 가장 사적인 장소가 될 것이다.
[사랑에 대해 쓴다. 여전히....]
사랑하는 것은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일이지만, 그래도 사랑은 문학적 영감의 영원한 주제가 되고 있다.
체호프는 <대초원>을 쓸 때 이런 걱정을 했다. “여자가 나오지 않는 단편소설은 증기 빠진 기관차나 마찬가지다.”
[치과에서 보낸 반시간]
젊은 시절 내 눈을 사로잡은 책이 한 권 있었다.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49편을 모은<49편의 이야기>이다. 단편소설을 49편이나 썼다니! 나는 결코 그러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 나는 단편을 100편 넘게 썼다.
[미완성작]
죽음과 경솔은 우리를 미완성으로 몰고 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넘어가보자. 일부가 유작인 이 작품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완성 혹은 미완성으로 간주될 수 있다. 저자가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을 더 살았더라도 끊임없이 작품을 고치고, 또 고치고, 늘렸으리라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되찾은 시간>의 화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엄청난 책들 속에는 초벌 스케치를 하는 시간만 투자된 부분들이 있다. 건축가의 설계도 규모가 방대해서 그 부분들은 아마도 결코 완성되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대성당들이 미완으로 남았는가!”
[나에게 아직 할 말이 남아 있을까?]
한 작가의, 혹은 더 일반적으로 한 예술가의 마지막 작품은 그 예술가나 다른 사람들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일까? 자신의 창작에 자발적으로 마침표를 찍는 사람은 드물다. 생 존 페르스의 시적 힘을 빌려 이렇게 주장한 사람도 드물다. “노년이여, 우리 여기 왔노라.... 우리가 남길 장소가 여기에 있다. 땅의 거실들이 우리 담장 아래에 있고, 하늘의 물은 우리의 물탱크 안에 있다. 반암 맷돌은 모래 위에서 쉬고 있다~~~”
“오, 밤이여 들어라. 황량한 안마당과 고독한 아치 아래, 성스러운 폐허와 무너진 낡은 개미집 사이, 은신처 잃은 영혼의 당당한 발걸음을.”
대개 창작자는 고갈 상태가 된다. 1924년 8월 3일에 죽은 조지프 콘래드는 죽기 두 달 전에 앙드레 지드에게 편지를 보냈다. “내가 가치 있는 일을 전혀 하지 않은 지가 벌써 사 년째라네. 이런 생각이 들어. 이걸로 끝인가?” 그리고 윌리엄 포크너는 이렇게 털어 놓았다. “내가 끝에 다가가고 있다는 걸 알아. 통 밑바닥에.” 더 이상 할말이ㅐ 없는 사람들도 있지만 단두대의 칼날이 떨어질 때까지 계획을 잔뜩 품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다시 말해 창작이 끝났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톨스토이는 메모와 계획, 구상을 계속 쌓아가다가 갑자기 집을 나서 어딘가로 죽으로 갔다.
차이코프스키는 6번 교향곡 <비창>을 작곡하던 중 조카 블라디미르 다비도프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끝나지 않았다는 확신이 들어 내가 얼마나 기쁜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그러나 작곡을 마치고 9일 후, 그는 콜레라 혹은 비소 때문에 죽었다.
클로드 루아는 소동파(1037~1101)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생에 마지막 해 7월 26일, 이 중국 시인은 마지막 시를 쓴다.
“이 하이난 마을에서 생을 마치려 하는데
하늘이 선녀를 보내 내 영혼을 부른다.
멀리, 아주 멀리, 그러나 정말 보았다.
송골매가 날고 있는, 하늘 낮은 곳에서
땅의 푸른 머리칼을.
중원을!“
7월 28일, 유배지에서 그를 실어 나른 배는 무척 더웠다. 그는 간이침대에서 벽 쪽으로 돌아누워 죽는다.
유서 같은 책을 쓰려는 유혹은 어느 순간이고 불쑥 생겨날 수 있다. “이 책은 죽은 이의 책을 읽을 때처럼 읽어야 한다.” 빅토르 위고는 <정관시집>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그는 쥘 자내에게 알린다. “이 책은 네 개의 부로 나눌 수 있을 걸세. 그리고 각 부의 제목은 이러해야 할 거야. 나의 죽은 청춘기 -나의 죽은 심장- 나의 죽은 청춘기 -나의 죽은 조국. 슬프지만!”
알렉상드르 뒤마는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끝날지 내가 결코 알지 못하겠군.”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유작이 될 <철학적 탐구>의 서문에서 아쉬움을 표한다. “좋은 책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운명은 다른 결정을 내렸다. 책을 개선하도록 내게 허용된 시간이 다 흐르고 말았다.”
<최초의 인간>을 위한 노트에 카뮈는 이렇게 썼다. “ 이 책은 미완으로 남아야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는 도스토엡스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x라고 한 책상을 보았다. 그는 열두 번째 책과 에필로그를 쓰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책상을 지키고 앉아 말 그대로 밤낮으로 글을 쓴다.” 이 소설은 1880년 12월에 출간된다. 그는 후속 작품을 생각하지만 1월 28일에 사망한다. 책상 바로 뒤에는 칙칙한 소파가 하나 있다. 도스토엡스키는 그 소파 위에서 죽었다. 책상과 소파는 떼어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문학 출판 편집위원으로 일하다 보니, 나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않은 뜻밖의 일이 생기기도 했다.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고 있던 한 작가가 나에게 원고 세 편을 가져왔다. 내가 다 읽고 나자 그가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이 원고는 내가 죽기 전에 출간할 겁니까? 아니면 죽고 나서? ~~~요것은 요?~~~ 그리고 저것을요?~~~” 요컨대, 어떤 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 결정할 사람이 바로 나였다.
[사랑받기 위해]
글쓰기가 살아가는 이유가 될까?
~~~<덧없는 인간과 문학>에서 앙드레 말로는 도서관 없이는 소설가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이전 사람들이 쓴 글에 젖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으며, 모든 책은 앞선 책들과 이후의 책들을 고려한다는 의미이다.
발레리 라르보는 한층 더 멀리 나아간다. “{한 작가의 전기의 핵심은 그가 읽은 책들의 목록에 있다.” 그리고 화가의 전기는 그가 본 그림들의 목록에 있다. 프랑스 작가는 항상 자신을 창작자보다는 계승자로 본다. 다른 나라들, 이를테면 아메리카에서는 창작한다는 감정이 우세하다. 우리 안에 표현하고 싶은 뭔가가 존재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형태를, 요컨대 하나의 모델을 찾아야 한다.
카뮈는 자신의 초창기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는 고등학교에서 고전ㄷ르을 공부했다. 그리고 그에게는 괴짜 삼촌이 있었는데, 직업이 푸추한이지만 문학적 소양이 높았던 그 삼촌이 그에게 지드를 읽게 했다. 청소년이었던 카뮈에게는 모든 것이 경이롭고 흥미로워 보였으나 감동을 주지는 않았다.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앙드레드 리쇼의 소설<고통>을 읽게 된다. 카뮈는 이렇게 썼다. “나는 앙드레 드 리쇼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아름다운 책은 결코 잊지 못한다. 내가 알고 있던 것, 어머니, 가난, 아름다운 저녁 하늘 등에 대해 나에게 처음으로 말해준 책이었기 때문이다. 그 책은 칙칙한 선들로 얽힌 내 마음속 매듭을 풀어주었고,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른 채 속박을 느꼈던 족쇄들로부터 나를 해방해주었다. 나는 그 책을 하룻밤 만에 읽었고, 낯설고 새로운 자유를 품고 깨어나 낯선 땅 위를 머뭇거리며 나아갔다. 그때 나는 책들이 그저 망각과 기분전환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니까 나의 집요한 침묵, 막연하지만 당당한 고통, 나를 둘러싼 야릇한 세상, 내 가족의 고결함, 그들의 가난, 그리고 나의 비밀들이, 이 모든 것이 이야기 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해방이, 진실의 명령이 있었다. 그러나 이를테면 가난이 문득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내가 의심하고 남몰래 꿈꿨던 얼굴을. <고통>은 나로 하여금 창작의 세계를 얼핏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문학도
-글을 쓰려는 욕구
젊은 시절 루이 아라공과 앙드레 브르통, 필리프 수포는 1921년에 반어법으로 <문학>이라고 이름 붙인 잡지에서 앙케트를 실시했다. “왜 글을 쓰십니까?” 그러자 도발적이거나 평범하거나 무의미한 대답들이 나왔다.
몽테뉴는 글을 쓰도록 그를 이끈 것은 고독이라고 주장한다. “우울한 기분 때문이다. 내가 몇 년 전 빠져든 고독의 슬픔에서 생겨난, 나의 타고난 기질과는 상반되는 기분이 처음으로 글 쓰는 일을 하겠다는 황당무계한 생각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
모든 인간은 자기의 고독 속에 갇혀 있다. 글 쓰는 것이 거기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혼자 있고 싶어서, 백지를 마주하고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향유하기 위해서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우리가 글을 쓰는 건 지나치게 혼자서여다.
모방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도 있다. 뭔가를 증언하려는 사람들, 소통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 자신의 진실을 부르짖을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 거짓을 지어낼 욕구를 느끼는 사람들, 신들린 무당처럼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르한 파묵은 2006년 스톡홀롬 연설에서 이 문제를 돌아본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인 노동을 할 수 없기에 글을 씁니다. 내 책 같은 책들이 쓰이고, 내가 그것들을 읽을 수 있기 위해 글을 씁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에게, 온 세상 사람들에게 무척 화가 나서 글을 씁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온종일 방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바꾸지 않고는 현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 나는 우리가 어떤 유형의 삶을 살아왔는지,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는 모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온 세상에 알리기 위해 글을 씁니다. ~~~”
-종교가 없어서
-내면의 대중
작가의 역설은 고독 속에서도 대중을 상상해야 작업을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르트르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대중과 신화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다~~~”
-사랑받기 위해
롤랑 바르트는 1850년경 작가는 보편적인 것의 증인이 되길 그만두고 불행한 의식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사랑 받기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는 사랑답지 못한 채 읽힌다.”
-출간하기
글 쓰는 것이 사는 이유라고 일단 단정하자. 그렇다 해도 당신이 쓴 것, 당신의 지성과 감성, 당신의 예술적 취향은 다른 누군가가, 즉 편집자가 인쇄될 만하다고 판단할 때만 존재하고 구체화될 것이다. ~~~매년 거부당하는 수천 편의 원고를 생각해보라. ~~~
마지막이 가까워졌을 때 플로베르가 던진 외침에 대해 우리는 오래도록 숙고해볼 수 있다. “나는 곧 죽지만 저 빌어먹을 보바리는 살아 있을 거야!”
[Review]
지인으로부터 chatGPT가 쓴 시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80대 중반 친구들에게 위로가 되는 시 한수 지어 주세요."
(네, 정겨운 친구 분들께 따뜻한 위로가 될 만한 시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벗과 함께 걷는 길
세월은 어느새
팔십 고개를 넘어섰지만
우리가 함께 걸어온 길 위엔
아직도 푸른 바람이 불고~~"
(혹시 제가 조금 더 힘찬 분위기의 시로 다듬어 드릴까요?) “예”
(좋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힘차고 용기를 주는 분위기로 시를 지어 드리겠습니다.)
“여전히 빛나는 우리 세월은 우리 어깨에 흰 눈처럼 내려앉았어도
가슴 속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네.
넘어지고 일어서며
같이 웃고 울던 그 날들이
우리의 힘이 되어 주니
친구여,
오늘도 당당히 걸어가세.~~“
불과 1년 전만 해도 몇몇 특수층에서 입소문으로 전해지던 'ChatGpt' 가 이제는 노인층에게 까지 확산 되고 있다. 굳이 인터넷에서 이리저리 검색할 필요도 없이 간단하게 질문하면 요약된 정보를 친절하게 응답해 준다. 두꺼운 책의 핵심내용 뿐 아니라 소설까지도 요구하는 대로 써주는 세상이 되었다.
이제는 핸드폰 하나로 모든 것을 처리하는 세상이다. 독서에 대한 양상도 많이 달라지고, 가을이면 독서주간 켐페인을 벌이고 독서를 장려하던 분위기는 이제 찾아볼 수 없다. 차 안에서 책을 읽는 정겨운 모습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지고 어쩌다가 책을 꺼냈다가도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도로 슬그머니 집어넣게 된다.
가끔 도서관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하며 고를 때가 있다. 특별히 정한 책이 아니라면 이미 읽은 책에서 다양한 정보들을 메모해 두었다가 고르면 유익하다. 그래야만 관심을 갖게 되고 정성스럽게 책을 읽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책의 맛>이라는 제목에 묘한 끌림이 있었다.
프랑스의 작가가 98세에 쓴 책으로 그는 그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 소설이라기보다는 기다림. 사랑, 사생활 등 아홉 가지 현상학적인 주제에 대해 작가가 소설 속에서 표현하고자하는 의미를 단편적으로 다루고 있는 산문형식의 책이다. 그래서 이 책 에는 수많은 작가와 이야기가 등장한다. 노년에 이렇게 책을 쓴다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어쩌면 그가 평생 읽었던 모든 책들에 대한 애착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러면서 그는 독서는 사랑하는 과거의 작가들과 전적으로 사적인 관계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오늘 우리는 그들을 결코 보지는 못하지만, 수 년 수 세기의 세월이 그들과 우리를 갈라놓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우리의 가족보다, 혹은 우리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우리와 더 가깝다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읽기는 더도 말고 적어도 글 쓰는 일만큼이나 사생활에 속하는 행위이다. 책 한 권 들고 혼자가 되는 시간, 어쩌면 우리는 다른 사람이 쓴 페이지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참으로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을 문득 이해할 것만 같다. 한 편의 허구가 우리 자신에 대해 현실보다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 (본문)
저자는 알베르 카뮈가 편집장으로 있던<공바>기자로 활동하다가 노후에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편집위원으로 평생을 보냈다. 수만은 책들을 썼으며 프랑스의 체호프라고 불릴 만큼 단편소설 분야에서 대가로 손꼽힌다. 한 평생 책을 사랑하고 책 속에서 사랑과, 고독과 ,자유를 그리고 이별과 만남... 을 함께 했던 노작가의 그리움이 이 책에 담겨 있다.■
(본문)
“모든 인간은 자기의 고독 속에 갇혀 있다. 글 쓰는 것이 거기서 탈출하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혼자 있고 싶어서, 백지를 마주하고 자기 자신과의 시간을 향유하기 위해서 글을 쓸 수도 있다. 그러나 대개 우리가 글을 쓰는 건 지나치게 혼자서여다.”
“대상 없는 기다림의 순간들을 아우르는 군인 상태의 언저리는 매우 긴 기다림의 기간, 우리가 살아볼 만하다고 여기지 않는, 나중에 다시 시작하거나 다시 살게 될 진짜 삶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괄호 속에 집어넣는 삶의 전형적인 파편 가운데 하나이다. 어디였는지 지금은 생각나지 않지만, 우리 두 졸병은 병영의 막사 주위에 화단을 파는 잡일을 맡고 있었다. 내 동료는 코르시카 섬의 목동이었는데 얼마나 원시인 같았는지 우리 사이에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무슨 이유인지 그가 삽자루에 턱을 얹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하사관 한 명이 지나가다가 그에게 물었다. 뭘 기다리고 있나? 그러자 엄청난 분노가 목동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는 웅변하듯 외쳤다. ‘내가 뭘 기다리느냐고! 내가 뭘 기다리느냐고 묻다니! 빌어먹을. 삼 년째 제대를 기다리고 있다고!"
“롤랑 바르트는 <비평 에세이>에서 사회 뉴스가 어떤 면에서 단편소설과 유사한지 보여준다. 둘 모두 모든 것이 주어진다. 상황, 원인, 과거, 결말....조금 더 나아가면 사회 뉴스가 단편소설이라는 문학 장르의 기원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인간의 삶에는 세상 무엇을 주어도 결코 말할 수 없는 비밀 한두 가지는 항상 있다. 비밀스러운 해변이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작가라면 소설 속에 감춰진 그 해변들을 아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는 도스토엡스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x라고한 책상을 보았다. 그는 열두 번째 책과 에필로그를 쓰면서 이렇게 선언한다. “나는 책상을 지키고 앉아 말 그대로 밤낮으로 글을 쓴다.” 이 소설은 1880년 12월에 출간된다. 그는 후속 작품을 생각하지만 1월 28일에 사망한다. 책상 바로 뒤에는 칙칙한 소파가 하나 있다. 도스토엡스키는 그 소파 위에서 죽었다. 책상과 소파는 떼어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덧없는 인간과 문학>에서 앙드레 말로는 도서관 없이는 소설가도 없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이전 사람들이 쓴 글에 젖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으며, 모든 책은 앞선 책들과 이후의 책들을 고려한다는 의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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