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는 15일 차재용 드라이브 레코더 메이커의 컨버즈에 대해 상장 폐지 기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5일 이내에 이의신청이 없으면 상장폐지 절차가 진행된다.
이 회사가 상장폐지 위기에 빠진 이유는 적자가 누적되어 자본 결손이 발생해 완전 자본금 균열 상태에 빠졌기 때문이다. 2020년 10월 이 회사가 자본금 균열 사실을 공시하자 거래소는 경영 개선 기회를 주었지만 결국 요건을 클리어할 수 없었다. 주주 게시판에는 "2년여에 걸쳐 희망 고문을 받았다"는 규탄이 이어지고 있다.
컨버즈처럼 자본금 균열로 상장 폐지 기로에 서는 기업은 더욱 늘어날 것 같다. 한계기업이 지불해야 하는 금융비용은 급증하지만 이익은 축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과 경기침체, 자금시장 불안이 한꺼번에 겹친 여파다.
한국거래소가 KOSPI 상장기업의 7~9월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상장기업 9개사가 이미 자본 결손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말을 앞두고 적자 누적으로 자본금을 소진한 상장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 상장규정상 자본금의 절반 이상이 결손되면 감리목표로 지정되며 이러한 상황이 2년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상장폐지 대상이 된다. 자본금이 전액 결손된 회사는 즉시 상장폐지심사를 받는다.
7-9월기 기준으로 자본 결손률이 가장 높은 KOSP 상장기업은 한화손해보험이다. 사옥 매각과 증자를 진행하고 있지만 7~9월기 자본 결손률은 93.4%에 달했다.
다만 한화손보 관계자는 “내년부터 국제회계기준(IFRS17)을 적용하면 부채가 줄어 자본 결손 상태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항공업계의 위기도 심화하고 있다. 티웨이항공은 자본금 결손이 66.9%로, 아시아나항공도 계열 에어부산과 에어서울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 자본금이 57.3% 결손하고 있다. 이 회사의 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2410.6%였지만 올 7~9월에는 1만298%까지 상승했다. 7~9월기 보고서를 검토한 삼일 회계법인은 “계속기업 관련 중요한 불확실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불충분한 재무상태에 따라 회사가 계속 사업을 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는 판단이다.
고려대학 경영학부 이만우 명예교수는 “항공사는 영업에서 버는 현금(영업활동 현금흐름)이 마이너스 상태로 기초체력 자체가 크게 악화된 상황. 원가로 외화부채가 늘어나 자금조달까지 엄격하기 때문에 이중고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 시장의 냉랭함과 자금시장 불안의 여파도 커지고 있다. 건설사 부동산 프로젝트 금융(PF) 상환 부담이 커지고 상장 계열사까지 불씨가 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18일 1조1000억원 규모의 주주 할당 방식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일진(일진) 머티리얼스 인수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서 롯데건설에 대규모 지원에 나서 자금 부담이 늘어난 영향이다. 재무부담이 그룹 전반으로 확대되는 상황에서 롯데건설 하석주 대표이사는 정기임원 인사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감리 종목 지정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KR 모터스가 38.5%, TBH 글로벌이 30.9%, 금호 타이어가 13.4%, HJ중공업이 7.0%, 평화산업이 5 .4%, 아센디오가 3.5% 등 KOSPI 상장 기업도 자본 결손 상태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내년에는 영업에서 벌어들인 돈(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돌려줄 수 없는 한계기업도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세대 경제학과의 성태윤 교수는 “물가가 계속 상승하면 금리 인상은 불가피하고 금융부담이 현재보다 늘어날 것이다. 부채가 많은 기업 상황은 더욱 악화되지만 이러한 기업에 투자한 금융시장 전반에 리스크가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계기업의 연쇄도산을 막기 위해서는 수익구조 자체를 바꾸는 근본적 처방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한다. 이만우 교수는 “한계기업이 금융지원에 의존하여 수명만 연장시키면 결국 불량규모만 확대하게 된다. 정부는 이들 기업들이 근본적인 사업구조 조정으로 이익률 자체를 높이도록 업종 전환을 유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