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베드 5,5ㄴ-14; 마르 16,15-20ㄴ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성 마르코 복음 사가 축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마지막 부분인데요, 본래 마르코 복음은 16장 8절에서 끝이 나는데, 후대에 누군가 9~20절의 말씀을 덧붙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16장 8절이 어떻게 끝나는가 하면, 부활절 아침,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가 흰옷을 입은 웬 젊은이를 만나는데요, 이 젊은이가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그분을 거기에서 뵙게 될 것이다’라고 전하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두려워서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끝이 나는데요, 이렇게 끝나면 복음이 전해질 수가 없었겠죠? 그래서 2세기에 어떤 사람이 다른 복음서들을 참고하여 뒷부분을 덧붙였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은 ‘제자들의 실패기’라는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로 제자들이 계속해서 넘어지고 실패하는 장면들이 나오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이 선포되고 있으니, 복음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복음의 힘은 강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이는 겸손해야 합니다. 오늘 1독서에서 베드로 1서는 “모두 겸손의 옷을 입고 서로 대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들을 대적하시고 겸손한 이들에게는 은총을 베푸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서간은 잠언(3,34)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이는 ‘공동체 생활에서 서로의 마찰을 줄이기 위해 겸손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며, 그리스도와 같이 된다는 의미인데요, 겸손하게 봉사함으로써 우리는, 인간의 오만함을 당신의 순종으로 기워 갚고자 오신 그리스도를 닮게 됩니다.
서간은 이어서 “여러분의 모든 걱정을 그분께 내맡기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내맡기라’라고 번역된 ‘에피립산테스’라는 말은 다른 곳에 단 한 번 나오는데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제자들이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깔았다’(루카 19,35)라고 할 때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 즉 걱정거리를 조금씩 조금씩 맡겨 드리는 게 아니라, 겉옷을 나귀의 등에 얹듯이, 걱정을 한꺼번에 하느님께 ‘내던지라’라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서간은 말합니다. 이 말씀은 “네 근심을 주님께 맡겨라. 그분께서 너를 붙들어 주시리라. 의인이 흔들림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시편 55,23)라는 시편의 말씀과도 연관이 있지만, ‘지나친 걱정이 마음 밭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 13,22)과도 깊이 연관됩니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라고 서간은 말하는데요, 진리를 고백하고 실천하려는 이들을 박해하는 세력은 다름 아닌 악마라는 것을 서간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어서 “온 세상에 퍼져 있는 여러분의 형제들도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같은 믿음의 유대, 고난의 공통된 체험이 우리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한다고 서간은 말합니다.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고난을 겪고 있다면, ‘이거 뭔가 잘못된 거 아냐? 이거 믿어도 되는 거야?’라고 말할 수도 있을텐데, 오히려 그것이 격려가 된다고 말합니다.
서간은 또 “바빌론 교회와 나의 아들 마르코가 여러분에게 인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바빌론 교회’는 ‘로마 교회’를 의미합니다. 로마에서의 삶이, 그 옛날 조상들의 바빌론 유배와 비슷하다 생각해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가 말했던 제자들의 실패는, 단순한 실패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박해를 피해 도망가거나 원망하지 않고, 온 세상의 형제들이 같은 고난을 당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고난 중에 연대합니다.
우리도 저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을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간의 권고대로 겸손하게, 신뢰하며, 연대하며 어려움의 시기를 잘 이겨내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라고 서간을 경고합니다. 그러나 사자는 우리를 삼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걸고 우리를 지키시는 착한 목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성 마르코
출처: ORTHODOX CHRISTIANITY THEN AND NOW: Holy Apostle Mark the Evangelist (johnsanidopoul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