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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동화샘인터넷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호쉬아
반응이 없는 각종 '우상(idols)'에게 하는 기도이기에, '같은 기도'를 헛되게 반복합니다.
욕심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 기도자의 치성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치성이면 감천이다'라는 신념으로 정성을 더할 뿐입니다.(cf. 열왕기 상 18:25-29)
3. 어떤 내용을 반복해서 아뢴다고 해서 '중언부언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엘리야도 '비를 주옵소서'하는 같은 기도를 비가 내리기까지 일곱 번 반복했습니다.(cf. 열왕기 상 18:42-44)
이미 '비를 주겠다'는 약속을 가졌기에, '예 주님 이제 주옵소서, 속히 내려 주옵소서' 간절한 마음으로 믿음의 기도를 포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이 되기까지 기도를 반복했고, 기도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4. 얼핏보면,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옵소서'의 내용을 반복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라는 것이 매번 기도의 바탕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여쭙는 기도를 반복하며,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고 따르는 기도로 바뀌어 갔습니다.
결론(Conclusion)
대화 상대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첫 번째 지혜일 것입니다.
어떤 사림이 대화 상대의 표정이나 반응 등을 살피지 않고 혼잣말을 반복하는 것을 본다면 고개를 갸웃하게 될 것입니다.
대화 상대의 대답 등을 확인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 상식적인 대화방식입니다.
대화상대가 이미 분명하게 드러낸 호불호가 있다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망각하면 안 될 것입니다. 막무가내로 쏟아놓는 욕심은 상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것입니다.(cf. 잠언 28:9)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귀 기울이시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성품을 이미 계시하셨습니다.
'중언부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반복하는 기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