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론 태생자
삼하 3:2-5
주요내용 = 영권의 유익
본문은 다윗이 여러 아내들에게서 아들들을 낳은 구체적인 기록입니다.
본장에 나타난 다윗의 아내는 미갈까지 모두 일곱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자 여섯사람 모두 자녀를 생산하게 되고 장인인 사울 왕에 의해 발디에게 주었던 미갈까지 다윗에게 돌아옵니다. 여기 다윗의 일부다처의 문제에 대해서는 오늘 본문의 강해 방향과 다르므로 여기서 다루지 않고 본문을 기록한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에 관해서 말씀을 먼저 드리고자 합니다.
본문을 보면 다윗의 모든 아내들이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녀들을 낳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이렇게 다윗의 왕자들의 출생기사를 기록한 목적은 당시 기울어져 가는 사울 왕가와 번성하여 가는 다윗 왕가를 대조적으로 묘사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자식은 가세 흥왕을 나타내는 하나의 중요한 상징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푸는 열쇠가 바로 시 127편과 128편입니다. 참고로 시 127편을 읽어드리면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너희가 일찌기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 했습니다.
또 시편 128편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집 내실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상에 둘린 자식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복을 보며 네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했습니다.
이 두 편의 공통점은 여호와의 주권과 가정의 복락을 노래함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왕자들의 출생은 이 시편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견고히 세워 가심과 또한 다윗의 집을 견고히 지켜주심과, 또 다윗을 이어갈 사람이라는 점에서 다윗의 수고가 조금도 헛되지 않게 해 주시고, 그리고 다윗에게 아름다운 기업과 상급과 영광과 권세를 주시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가정의 아름다운 행복을 허락하심은 곧 다윗이 여호와를 진실로 경외했음을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인 의미는 이제 하나님의 역사는 결코 사울의 자손으로 흐르지 않고 다윗에게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자손이 아주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래서 자손의 문제를 가지고 씨름했고, 그래서 야곱도 장자권을 갖기 위해서 몸부림쳤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은 약간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은 구속사의 줄기를 이어간다는 점이지만 다윗은 그 자손이 하나님의 축복과 권세와 번영을 상징한다는 점입니다.
또한 이러한 다윗의 번영은 예표적으로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누리는 영적인 풍성함을 의미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은총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10:10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럼, 그리스도 안의 영적 권세 안에 있으면 어떤 복이 임하게 될까요?
1.다윗은 아히노암이 낳은 아들을 암논이라 지었습니다.
2절 "다윗이 헤브론에서 아들들을 낳았으되 맏아들은 암논이라 이스르엘여인 아히노암의 소생이요"
우리는 여기서 다윗이 여러 아내들의 아들이 이름을 지을 때 의미 없이 지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에 그들의 삶의 배경과 인물의 특징과 가진 이름의 뜻 등이 비교적 상세히 나열되고 있고, 또 자세히 보면 왕자들의 이름을 그것과 꼭 부합하게 짓고 있다는 점에서 꼭 그렇습니다.
먼저 다윗은 아히노암이 아들을 낳자 '믿을 수 있다' 는 뜻의 암논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아히노암은 이스르엘 사람으로 그곳은 유다지파 다윗의 고향이요, 정겨운 형제들이 사는 곳이며, 피난시절에도 끝까지 도왔던 곳입니다. 그리고 아히노암이라는 이름마저도 '형제는 우정이라'는 뜻이요, 또 이스르엘 마저도 '하나님께서 심으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사랑 속에 믿음은 깃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크신 사랑 받는 비결은 그리스도 안에 잘 있는 것입니다.
2.다윗은 아비가일이 낳은 아들을 길르압이라 지었습니다.
3절 "둘째는 길르압이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 되었던 아비가일의 소생이요"
갈멜은 과수원이 많은 곳으로 성경에서는 다가올 신천신지의 상징으로 종종 쓰이고 있습니다. 다윗은 지혜로운 여자 아비가일이 아들을 낳자 그 이름을 지혜를 나타내는 길르압이라고 지었습니다. 그것은 길르압이 대표적인 지혜의 사람인 다니엘(대상3:1)로 불려졌는데 그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재판관이시다' 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백성들을 올바로 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까? 그러므로 이는 곧 그리스도 안에 무궁한 지혜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3.다윗은 마아가에게서 압살롬을 낳았습니다.
3절 "세째는 압살롬이라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의 아들이요"
압살롬은 '아버지는 평화'라는 뜻입니다. 다윗은 바산 북쪽에 있는 작은 아람나라인 그술과 평화롭게 지내려고 정략결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공주가 낳은 아들을 압살롬이라 즉 다윗은 그 아들을 평화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니까 자식들의 이름을 그냥 뜻없이 지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아히노암의 아들은 믿음이라고 지었고, 지혜로운 아비가일의 아들은 지혜라고 지었으며, 그술 왕의 공주의 아들은 평화라고 지었습니다. 이것은 곧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믿음과 사랑과 지혜와 넘치는 평화를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4.다윗은 학깃이 아들을 낳자 아도니야라고 지었습니다.
4절 "네째는 아도니야라 학깃의 아들이요"
아도니아는 '야훼는 나의 주님이시다', 학깃은 '축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를 주로 섬기면 날마다 축제하는 기쁨의 삶이 계속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입으로만 주여 주여 부르지 말고 진정한 나의 주로 바로 모시기 바랍니다.
마치 가나 혼인집에 예수님이 손님이셨을 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예수를 주로 받들었을 때 포도주가 넘치는 축제의 기적이 벌어졌던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섬기는 자는 이제는 염려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인생과 만사의 주인이시므로 우리는 염려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그것을 믿고 감사하고 그의 뜻에 순종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매일의 삶이 축제가 이루어집니다.
5.다윗은 아비달이 아들을 낳자 스바댜라 지었습니다.
4절 "다섯째는 스바댜라 아비달의 아들이요"
아비달은 '나의 아버지는 이슬이시다' 스바댜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셨다' 라는 뜻입니다. 이슬과 심판은 서로 어울리지 않은듯이 보이지만 복음적으로 풀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이슬은 성령의 은혜의 상징이요, 심판은 죄를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권 안에 서면 거룩의 열매가 맺여집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칭합니다.
마치 시110:3의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히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이는 오순절 성령강림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 안에는 성령으로 말마암는 거룩하심이 충만합니다.
6.다윗은 에글라가 아들을 낳자 이드르암이라 지었습니다.
5절 "여섯째는 이드르암이라 다윗의 아내 에글라의 소생이니"
이글라는 '어린 염소'라는 뜻입니다. 이드르암에 대해서는 아직 그 의미가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의 문맥 속에서 이글라의 의미를 찾아보면 그 의미를 알게 됩니다.
성경은 1년된 것들을 어린 염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염소는 왕에게 갖다 바치는 귀한 선물이었습니다. 즉 이 선물을 보통 선물이 아니고 특별한 선물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은 바로 성령의 은사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이드르암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요 상급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는 죄에게 쫓겨 다니는 방랑의 사람이 되지 말고 다윗과 같이 헤브론 사람이 되십시다. 다윗처럼 영적으로 더 올라가십시다. 예수 안에 견고히 서십시다. 그래서 그 안에 견고히 설 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지혜와 평화와 형통과 성령과 상급이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날로 육적인 세력은 약해지고 영적인 세력이 풍성해질 것입니다. 이 귀한 예수 안의 헤브론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