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골 딱새 이웃
박경선
수필-
여우골 딱새 이웃
박경선
조선시대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은 거처를 정하는 으뜸 요건으로 수화(水火)와 오곡, 풍속과 산천의 아름다움을 꼽았다. 하지만 남편의 퇴임을 앞두고 시골집을 찾을 때는 그런 거창한 경위가 염두에 없었다.
오직 도심에서 마주 오는 길목, 흙을 만지며 일할 수 있는 조그만 텃밭과 소나무, 단풍나무들이 울타리를 두른 풍경이면 족했다. 조금만 걸어 나가면 낙동강 강물 소리가 산책로를 감싸안았으니, ‘어느 조그만 산골로 들어가 부엉이가 우는 밤에도 내사 외롭지 않겠소’라던 노천명 시인의 시 속 마을에 온 듯했다. 대구 집 베란다의 좁은 구석에서 붓을 들던 남편에게 탁 트인 화실을 안겨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낮게 엎드린 낡은 기와지붕과 흙이 뚝뚝 떨어지는 황토벽조차 멋스러운 낭만으로 다가왔다.
집 뒤편으로는 철마다 유실수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풍경이 펼쳐졌다. 우리는 여우 골의 여우에게 홀리기라도 한 듯 홀린 발걸음으로 정원을 거닐었다. ‘여기가 꿈의 궁전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우리는 황홀감에 취해 한 달 만에 덜컥 집을 매입하고 퇴임식을 준비하였다. 퇴임식 날, 잔디밭 위에 남편이 빚은 도자기와 유화 작품들을 펼쳐놓고 지인들과 동네 어르신들을 모셔 입주식을 겸한 잔디밭 전시회도 함께 열었다. 그렇게 5도 2촌의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손님을 대접할 그릇을 사 모으느라, 남편은 전지가위와 잔디 깎는 기계를 사 모으느라 손길이 바빴다.
풍수 나뭇가지 사이와 텅 납 새(처마 안쪽 지붕)에 제 집을 지었다. 새장에 키우던 앵무새가 날아가 버려 속을 태우던 도시 생활과 달리, 이곳에서는 사료를 챙기거나 둥지를 청소해 주지 않아도 새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와 노랫소리를 공으로 누렸다. 오히려 대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잔디밭을 한가로이 거닐던 새들이 침략자라도 만난 듯 놀라 날아오르면, 미안한 마음에 발소리를 죽이게 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뿐사뿐 들어서는데 발끝에서 딱새 한 마리가 푸드덕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어라, 딱새가 어디 숨어 있었지?”
무심코 부엌 쪽 신발장 위를 바라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커다란 종이상자 구석 안쪽에 둥지가 틀어져 있었다. 세상에나, 메추리알보다 작은 분홍빛 알 여섯 개가 동그란 무늬 옷을 입고 옹기종기 놓여 있었다. 어딘가에서 물어온 하얀 실오라기들을 오밀조밀 엮어 만든 둥지는 그 자체로 보송보송한 솜이불 포대기였다. 알이 굴러도 상처 하나 나지 않을 온기 어린 아늑함에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감탄도 잠시, 걱정이 앞섰다. 안전한 나뭇가지를 두고 왜 이리 낮고 트인 상자 속에 집을 지었을까. 우리야 발걸음을 우회하면 그만이지만, 코털을 세우고 킁킁거리며 영역을 탐색하는 고양이가 문제였다. 나는 고양이 밥그릇을 멀찍이 텃밭 쪽으로 옮겨놓으며 녀석들의 안위를 빌었다.
모내기를 마친 논물에 파란 벼들이 발을 담그고, 백로가 너울너울 하늘을 그리는 6월. 붉은 자두가 단내를 품으며 몰랑하게 익어갈 즈음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정원에 달린 싱그러운 자두를 함께 나누는 풍요를 꿈꾸며 대문을 열었을 때, 자두나무에서 새 몇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나무로 다가가 보니 정작 자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고, 나무 아래 씨앗만 소복이 널브러져 있었다. 새들이 먼저 알고 맛있는 성찬을 끝낸 뒤였다.
‘주인 몫도 조금 남겨주지….’ 아쉬움이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농사하지 않고 곡식 모아 곳간에 들이지 않아도 주님이 먹이시나니….”
귓가에 익숙한 찬송가가 환청처럼 들려왔다. 이곳의 진짜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새 노랫소리를 공짜로 들었으니 저희들끼리 만찬을 즐겼다고 서운해하는 옹졸한 기색을 보여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가을이면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대왕 소나무로 날아드는 까치들이 우리에게 선물을 가져다준다. 까치들은 뒷집 이장님네 마당에 말리려고 널어둔 땅콩을 물고 와 소나무 가지에서 까먹곤 했다. 그러다가 실수로 땅콩을 떨어뜨리면 바닥으로 내려오는 대신, 다시 이장님 마당으로 날아가 더 튼실한 놈을 물어왔다. 덕분에 남편은 소나무 아래에서 까치가 떨어뜨린 통통한 땅콩을 주워 모으는 불로소득(?)을 누렸다. 이장님께 이실직고하면, ‘선생님네가 베풀며 사니 흥부에게 제비가 박씨를 물어다 주는 격이지.’ 하며 재미있어하셨다.
우리가 이렇게 자연과 어우러져 알콩달콩 살아가는 동안, 딱새 부부의 알들도 무사히 부화했다. 스무날쯤 지나자, 연노란색 부리를 뾰족하게 내민 새끼들이 갈색 솜뭉치 같은 털옷을 입고 꼬물거리기 시작했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입부터 쭁쭁 벌리는 모습이 안쓰럽고도 대견했다. 어미 딱새는 먹이를 물고 와서도 곧장 둥지로 들어가지 않았다. 맞은편 대추나무에 앉아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가, 안전함이 확인된 뒤에야 살며시 날아들었다. 지극한 모성이었다.
무화과가 초록 열매를 달고 옹기종기 맺히는 7월 초순, 딱새 둥지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솜뭉치 몸에 노란 부리만 보일 뿐 새끼들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살짝 건드려보아도 죽은 듯 포개져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포도나무에서 잡은 노란 벌레를 부리에 가져다 대어 보아도 입을 열지 않았다.
“어미 딱새가, 침입자가 오면 죽은 척하라고 교육했을 거야.”
남편의 말이 맞겠다. 어미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나누어 먹으며 날로 몸집이 불어나자, 셋째 녀석은 뒤쪽으로 밀려나 고개만 삐딱하게 내민 채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발장 상자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딱새 형제들이 마침내 푸른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았다. 빈 둥지만이 햇살 아래 조용히 남아 있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사라진 시골 마을, 새들의 울음소리와 날갯짓을 선물 받으며 살아가는 이 생태 속 삶이야말로 다산 선생이 말했던 명당보다 몇 배는 더 축복받은 보금자리가 아닐까. 우리는 오늘도 자연이 내어준 작은 마당에서 새들과 함께 계절을 건너고 있다.
(16쪽)
1. 작품의 문학성 및 생태문학적 특징 분석
자연주의적 관조와 관계의 역전:
인간이 집과 정원의 '주인'이라 착각하지만, 새들이 먼저 와서 자두를 먹거나 상자 속에 둥지를 틀 때 발소리를 죽이며 미안해하는 모습에서 지배자가 아닌 '이웃'으로서의 생태적 성찰이 잘 드러납니다.
감각적이고 세밀한 생태 묘사:
딱새 둥지의 실오라기와 솜이불 같음, 분홍빛 알6개, 털 옷을 입은 새끼들의 노란 부리, 까치가 땅콩을 물어다 떨어뜨리는 정경 등 현장감 넘치는 생태 관찰이 돋보입니다.
서사적 흐름과 계절의 순환:
모내기철(6월) → 무화과 열매 맺히는 시절(7월) → 가을 땅콩 수확으로 이어지는 계절감이 생명의 성장 및 이소(離巢) 과정과 자연스럽게 맞물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