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료사
김민서
어땠어?
신기했어.
모든 것들이 감사해서 신기했어.
사랑하게 돼서 신기했어.
뜻을 가지고, 중심을 잡고 산다는 말을 이해하게 돼서 신기했어.
올해 알게 된 철암도서관, 가볍게 참가한 철암 학습여행, 그러다 문득 준비한 광활.
우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이를 우연이라고 해석할 수 없습니다. 완전한 은혜였습니다.
1. 철암도서관을 알게 되다.
올해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처음 시작했습니다. 어떤 뜻이 있어 복수전공을 신청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러 이유는 있었지만 뜻은 없었습니다. 미래 진로의 안정 장치로서, 자격증이 나오는 사회복지학과를 택했습니다. 그런데 3월 16일 노혜련 교수님 아동복지론 수업 특강으로 김동찬 선생님과 철암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연이은 수업에 졸음이 쏟아져 무거워졌던 눈꺼풀이 금세 가벼워졌습니다.
화면 너머 인정이 넘치는 마을을 보았습니다. 우리 손으로 지은 도서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말도 안 돼!
도서관을 세울 때 방송국의 제안을 거절했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돈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있었습니다.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가치였습니다. 돈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하고 외쳤던 적은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저는 결국 사회 속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사회 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할 때도 어차피 결론은 막대한 돈이 있으면 해결되는 문제라고 정리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돈을 거절할 줄 아는 철암도서관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김동찬 선생님께서 특강을 마치시며 학습여행과 광활에 대해 소개해주셨습니다.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알려주신 전화번호를 노트에 적었습니다. '그런데 설마 연락을 하겠어.' 하며 적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설마
강의를 듣고 이틀이 지났는데도 제 머릿속에 철암도서관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궁금했습니다.
2. 철암 학습여행에 참가하다.
4월 철암 학습여행에 참가했습니다. 학습여행 전날까지 제가 정말로 철암에 가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전날까지 별다른 공지사항이 없어 이러다 철암에 홀로 가서 어디 납치를 당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상상도 했습니다. 당일 아침에 학습여행 신청자 명단과 환영 인사 및 공지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학습여행 신청자 명단을 살펴보니 모두 사회복지 길의 선배님들이셨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저야 뭘 모르니 알고 싶어 참가하는데 선배님들은 무엇 때문에 귀한 시간을 내어 이 여행에 참가하는 것일지 궁금했습니다.
도서관에 도착했습니다. 당시 별 내색은 안 했지만 저는 입구에 들어가면서부터 도서관에게 반했습니다. 철암도서관 문패, 반겨주는 인사 소리, 포옹, 주먹 악수, 잔잔한 불빛, 동화책들, 식물들, 그리고 따뜻한 음식 냄새. 처음 오는 곳,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를 낯설지 않게 만들어주는 철암도서관만의 정겨운 분위기에 매료되었습니다. 준비해주신 닭칼국수를 맛있게 먹으며 다른 선생님들의 오고 가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녁을 다 먹고 도서관 1층에서 17명의 선생님들이 둘러앉아 서로 소개를 했습니다. 김동찬 관장님에게 철암도서관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특강에서 줌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도 있었지만 도서관에서 직접 전해 듣는 이야기였기에 느끼는 바가 또 달랐습니다.
밤 11시 쿡쿡방에서 다른 선생님들의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유혜숙 선생님의 강점 편지 이야기, 강연진 선생님의 코로나 상황에서 아동과 일대일로 떠난 여행 실습 이야기, 조민지 선생님의 떡 나눔 사업 이야기, 소원 나무 이야기, 김규리 선생님의 지역밀착형 사회사업 공부 이야기, 조다슬 선생님의 노인 복지관 이야기, 권대익 선생님의 종합사회복지관 이야기. 저는 귀를 최대한 쫑긋 열고 선생님들의 이야기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모두 새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재밌어 보였습니다.
다음 날 철암 아이들을 만나 함께 세평하늘길을 걸었습니다. 걷는 행위 자체도 좋아하는 편인데, 좋은 사람들과 좋은 대화를 하며 걸을 수 있어 많이 즐거웠습니다. 안연빈 선생님에게 겨울 광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주 소중한 경험이었다며 광활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의 목소리에는 즐거움이 묻어있었습니다. 광활이 궁금해졌습니다. 아이들과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어색하기도 했지만 먼저 다가와준 아이들 덕분에 금세 가까워졌습니다. 아이들의 당참에 덩달아 저도 힘을 얻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집에 가기 아쉬웠습니다. 갈팡질팡하다 하루 더 철암에 있기로 했습니다. 덕분에 민둥산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올라가는 길이 험해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하고 등산에만 집중했습니다. 아름다운 일몰을 보았습니다. 꼭 말을 나누지 않더라도 그저 자연을 함께 누림이 주는 벅참이 꽤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산을 하고 짧은 사이 정이든 사람들과 헤어졌습니다. 그때 나누었던 포옹이 기억납니다. 낯선 이인 저를 반갑게 마주해주시고 사랑으로 헤어짐의 인사를 나누어주셨습니다.
3. 광활에 지원하다.
광활에 지원했습니다. 지원 동기를 정리해 말하기는 아직도 어렵습니다.
그저 광활에 지원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어떤 결단이었기보다는 이끌림에 가까웠습니다.
권대익 선생님의 '가슴 뛰는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읽었습니다. 철암에 갔다 온 이후로 가슴이 콩콩 뛰었기 때문에 이 책을 안 읽을 수 없었습니다. 공부, 사람, 추억, 기록 네 가지 핵심어로 이루어진 사회사업 실천 이야기였습니다. 사회복지를 제대로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사회복지 길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추억을 쌓고 기록하고 싶어 졌습니다.
자기소개서 양식을 다운로드했습니다. 난생처음 보는 양식이었습니다. 글이 쉽게 적어지지는 않았지만 자기소개서를 채우는 과정이 재밌었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고작 21년 인생을 두고 돌아봤다는 표현이 조금 웃기기도 하지만 까먹고 있던 저의 모습들을 발견했습니다. 학창 시절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때는 미래 진로의 안정 장치로서 사회복지를 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속 불의한 소식에 약자가 살만한 사회를 원하며 기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회 속 여러 문제, 갈등, 분열을 생각하면 머리가 복잡해지고 무력해졌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안연빈 선생님의 겨울 광활 지원사를 읽었습니다. 어려움 앞에서 열심히 딴청 피우겠다는 말이 새로웠습니다. '왜 어려움 앞에서 딴청을 피우지?'
복지요결 앞부분을 얼핏 읽었습니다.
사람답게 돕고 싶습니다.
사람 사는 사회 같게 하고 싶습니다.
어찌해야 사람답다 하며 사람 사는 사회 같다 할 수 있을까요?
제가 포기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지요결은 참 명료하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가고 있었습니다.
콩콩 뛰던 가슴이 쿵쿵대기 시작합니다.
4. 광활을 마치며
광활 모집글에 '마음의 고향 철암!'이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처음 그 문구를 볼 때 괜스레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6주 있는데 마음의 고향까지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제 오만이었습니다. 벌써 그립습니다. 꿈같은 6주였습니다.
면접, 합동연수, 마을인사, 책 읽어주기, 짝꿍활동, 싱글벙글 자전거 여행, 청소년역사책모임, 도란도란 여름 야영, 걷기 여행, 선배님들과 만남, 도서관 일상, 웃음꽃 피는 집, 교회, 마을 축제…
그 속에서 많은 것을 누리고 배웠습니다.
누림 0. 사랑
사랑을 누렸습니다. 사랑받았습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환영받았습니다. 인사만 드렸을 뿐인데 조카, 손녀 대접받았습니다. 눈만 마주쳤을 뿐인데 멀리서 달려와 안아주는 아이들을 만났습니다. 자꾸 먹거리를 가져다주시고 이리저리 챙겨주시는 이웃들을 만났습니다. 가만히 있었는데 함께 있는 시간이 즐겁다고 말해주는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광활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선배님들에게 내리사랑 많이 받았습니다. 부족한 학생인 저를 귀하게 대접해주시는 선생님들을 만났습니다. 찾지 않았는데 찾아와 주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배움 1. 소박하게 사는 법
소박하게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삶이 물질이 넘치는 삶보다 재밌었습니다. 근사한 놀이기구 없이 그저 옥수수 껍질만으로도 신나게 놀았습니다. 근사한 놀이기구보다 자연은 더 재밌는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옥수수 껍질로 인형 만들기, 수박 누가 빨리 먹나 시합하기, 강아지풀로 풀피리 불기, 네 잎 클로버 찾기, 계곡물에서 놀기, 뱀 구경하기, 비 맞기 등등. 멋들어진 놀이명도 없고 새로운 놀이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재밌었습니다. 의식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옷 몇 벌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 채워지는 재료로 요리해 먹었습니다. 한 공간에서 4명이 지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벼룩시장에서 창민이와 서로 옷을 선물해주는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가지볶음의 맛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늦은 밤에 언니들과 함께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었습니다.
배움 2. 숙면하기
방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열심히 뛰어놀면 됩니다. 하루를 아이들과 뛰어놀면 밤에는 어김없이 거부할 수 없는 잠이 찾아왔습니다. 웃음꽃 피는 집에서 얼마나 잠을 잘 잤는지요. 눈을 붙이면 이런저런 걱정할 세 없이 바로 잠이 들었습니다. 개운하게 맞는 아침은 또 얼마나 상쾌했는지요. 가끔 아이들과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할 때도 숙면했습니다. “선생님 일어나셨어요?” 먼저 일어나 아침 인사를 해주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야영 중에도 잠을 잘 잤습니다. 침낭 속에 들어가 꾸물거리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텐트 안에서 맞는 아침, 바깥에서 들리는 아이들 소리를 들으며 여전히 침낭 속에서 꾸물거렸습니다. 한 숨 더 잤습니다. 달콤한 잠이었습니다.
배움 3. 대우의 힘
"어떤 사람의 현재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를 망치는 길이다. 그 사람의 가능성이 이미 발현되었다고 믿고 그를 대하면 정말로 그렇게 된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말입니다. 이러한 대우의 힘을 배웠습니다. 아니, 몸소 느꼈습니다. 철암에서 저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이라고 불렸습니다. 처음에는 이 호칭이 낯설었습니다. 지금까지 학생의 신분으로 살아온 저를 동생 또래의 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니 어색했습니다. 그렇지만 철암에서 아이들과 부모님들께 선생님 대우를 받고, 언니들에게 동료 대우를 받고, 김동찬 선생님, 박미애 선생님께서도 저를 선생님 대우해주셔서 점차 선생님이라는 호칭과 그 역할에 익숙해졌습니다. 일종의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으니 어른됨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좋은 어른들께 어른 대접을 받은 그 경험이 낯설었지만 덕분에 좋은 어른의 본을 한 획 따라 그려볼 수 있었습니다.
배움 4.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를 배웠습니다.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기는 제가 정말 못하는 행동이었습니다. 묻지 않고 의논하지 않고 부탁하지 않고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하는 편을 선호했습니다.
알아서 제가 다 해요~
알아서 할게
혼자서 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깔끔해
제가 철암에 오기 전 일상에서 자주 했던 말입니다. 그 편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녔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묻지 않고 의논하지 않고 부탁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나의 편의? 나의 성과?
부끄럽습니다.
철암에서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는 연습을 했습니다. 동료들, 선생님들, 아이들보면서 배웠습니다. 묻고 의논하고 부탁할 수 있는 철암에서 저는 비로소 '더불어 산다'는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배움 5. 그런대로 마무리하기, 그런대로 표현하기
광활을 하면서 마무리를 완벽하게 하고자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법을 배웠습니다.
완벽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무것도 표현하지 못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전한 수료증과 헤어짐의 연락, 사랑하는 마음에 비해 부족합니다.
부모님들께 전한 감사, 감사하는 마음에 비해 부족합니다.
이웃 붓들께 드린 인사, 감사하는 마음에 비해 부족합니다.
동료들에게 표현한 사랑, 사랑하는 마음에 비해 부족합니다.
선생님들께 표현한 감사, 감사하는 마음에 비해 부족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철암에서의 누림과 배움 그리고 성장을 모두 말하기에 부족합니다. 그래도 그런대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런대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사랑과 단호함 배워갑니다.
사람다움, 사회다움 좇아 살고 싶습니다.
|
|

첫댓글 민서!
민서 글 읽는데 왜 이리 눈물이 차오르는지...
귀한 시간 함께 보내 감사했습니다.
앞으로도 함께 귀한 시간 많이 보내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민서와 기적 같은 만남,
민서와 지낸 기적 같은 여름방학,
고맙고 고맙습니다.
"어땠어?
신기했어.
모든 것들이 감사해서 신기했어.
사랑하게 돼서 신기했어.
뜻을 가지고 중심을 잡고 산다는 말을 이해하게 돼서 신기했어."
배움과 추억을 기록해서 낭독해 주던 민서.
민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읽고 또 읽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