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현대불교신문에 실린 '김서정의 절집나무 이야기 23'은 경기도 파주시 심학산 약천사와 그곳에서 만난 생강나무 이야기입니다.
금년에 진행되었던 환경작가리더 양성과정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제가 했던 강의 내용을 축약한 동영상을 찍으러 갔다가 일을 끝내고 산책한 곳인데,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서너 번 다닌 길이어서 그런지 숲의 모양이 익숙한 것 같기도 한데 곧 겨울이다 보니 나무를 알아보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발 나무 좀 똑바로 알아볼 줄 아는 능력을 달라고 했고, 노력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난공불락입니다. 구분의 시선이 없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약천사의 상징, 남북통일 약사여래대불을 보면서 식물 인식 능력을 달라는 소원을 빌까 하다가 늘 해오던 대로 모두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는 소원만 빌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는 과정에서 헤세의 <싯다르타>에 나오는 다음의 문장을 인용하게 되었습니다.
"싯다르타 앞에는 한 목표, 오직 하나뿐인 목표가 있었으니, 그것은 모든 것을 비우는 일이었다. 갈증으로부터 벗어나고, 소원으로부터 벗어나고, 꿈으로부터 벗어나고, 기쁨과 번뇌로부터 벗어나 자기를 비우는 일이었다."
늘 극렬한 모순을 가진 내 모습 때문에 난감합니다. 빅뱅 이전의 물질적 정신적 공허가 삶의 진실이라며 그래서 나는 공허가 빚은 일시적 부유물이라며 비우고 또 비우는 사색을 한다고 하지만, 매 순간 벌어지는 목표 달성과 목표 탈락 때문에 부침하는 흉악한 정신력에 노골적 냉소를 보냅니다. 그러면서도 뜻한 바가 이루어지면 헤벌쭉 웃는 작태에서 돌이라도 들고 싶습니다.
의심하고 의심하고 탐구하고 탐구해도 그 모든 실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세상이 만들어낸 나의 이 스산하면서도 미칠 것 같은 삶, 그래도 숲을 다니며 절을 다니며 책을 읽으며 글을 쓰며 비우고 또 비우는 척은 계속해야겠습니다. 그래야 숨통이 트일 것 같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