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기어간다. 목표물을 목전에 두고는 손바닥을 비비적거린다. 따뜻해진 손으로 그놈의 날갯죽지를 살포시 잡는 순간, ‘꼬꼬댁 꼬꼬댁’하고 난리를 친다. 사랑채에서 ‘으흠’하고 기침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도둑이야, 도둑이야’ 하고 온 동네가 떠나갈 듯 고함을 질러댄다. 후다닥 도망칠 수밖에. 오십 오 년 전 내 나이 스무 살 때 닭서리 실패의 한 장면이다.
닭서리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따뜻해진 손으로 날갯죽지를 살며시 잡아채는 방법은 실패율이 높았다. 어떻게 하면 소리소문없이 성공할 수 있을까. 연구를 거듭한 끝에 닭집을 통째로 들고나오면 닭들이 꽥 소리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험을 통한 연구 결과이다. 옛날 닭집은 각목으로 다릿발을 세우고 대나무 쪽을 엮어 집을 만들었기에 가볍다. 두 사람이 마주 들면 달랑 들린다.
대학 1학년 겨울 방학이었다. 의령 산골동네 소꿉친구 네 명이 호롱불 등잔 아래에 모여 앉아 닭서리 모의를 했다. 이번에는 산 고개 넘어 상촌마을 닭을 서리하기로 했다. 달빛 고운 밤, 기억자 군용 손전등으로 길을 밝히며 산 고개를 넘는다. 맹숭한 기분으로 거사를 치르기엔 두려움이 앞서 막걸리 몇 잔에 반쯤 취한 상태다. 상촌 마을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그때만 해도 산골동네에는 텔레비전도 없어 저녁상을 물리면 바로 숙면에 들었다. 숨을 죽이고 까치발 걸음으로 살금살금 너댓 마리 들어있는 닭집을 고른다. 개가 있는 집은 피한다. 목표물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행동 개시한다. 먼저 닭집을 통째로 들고나와 외진 곳으로 이동시킨다. 닭들을 큰 보자기에 담는다. 여기까지이면 일단은 닭서리 작전 성공이다.
방심은 금물이다. 완전 범죄를 꾀하기 위해서는 증거물을 남기지 말아야 한다. 갈림길에 들어서면 닭털을 뽑아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띄엄띄엄 뿌려 놓는다. 기만 작전이다. 서리한 닭을 그날 밤에 바로 잡아먹지 말아야 한다. 그때만 해도 농촌에는 전깃불도 없었던 터라 캄캄한 밤중에 불을 지피면 십 리 밖에서도 불빛이 보인다. 그것은 ‘닭 도둑놈이 여기에 있어요.’라고 자수하는 것과 진배없다. 며칠을 두고 숨겨 놓았다가 잠잠해지면 그때 잡아먹는다. 야간작전의 수칙이다.
육십여 년 전 그때는 닭서리를 하게 되면 온 동네 아지매, 할매들과 동네잔치를 벌였다. 귀한 쌀밥에 닭국이 어우러진 꿀맛 같은 회식이었다. 때로는 서리한 닭을 가방에 넣고 원정을, 가기도 했다 의령에서 강을 건너 함안에 있는 친구에게 간다. 고급안주를 가져갔으니 술은 당연히 그 친구 몫이다. 한번은 우리 집 고장에 가두어놓은 닭들이 탈출하는 바람에 그놈들을 잡느라고 공범자들과 온 동네을 뛰어다녔던 기억은 지금도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겨울 방학이 되면 소꿉친구들과 한데 어울려 심심풀이 닭서리 놀이를 했지만 한 번도 발각된 적이 없었다. 완전 범죄였다. 남의 집 귀한 생물을 훔쳐 몸보신한다는 것이 범죄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반백 년 전 그때 그 시절에는 일말의 죄의식도 없었다. 이웃 동네라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을 알고 지내는 사이였기에 두렵지도 않았다. 철부지 장난이 아니었나 싶다.
닭서리도 기술이다. 완전 범죄를 꾀하려면 닭서리 4대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
첫째: 근동(近洞)보다 원동(遠洞)을 택하라. 그래야 스릴 넘친다.
둘째: 닭집을 통째로 들고 나와라. 그래야 꽥 소리를 안한다.
셋째: 서리한 닭을 그날 밤에 바로 잡아먹지 마라, 밤중에 불 밝히면 잡힌다.
넷째: 닭털과 닭 뼈는 땅속에 묻어라. 증거인멸 작전이다.
완전 범죄는 죄가 될 수가 없다. 닭서리를 한 행위가 반백 년을 넘겼으니 공소시효가 소멸 된지도 한참이다. 그래도 하룻밤 사이에 쥐도 새도 모르게 닭집을 통째로 서리를 당했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파하셨을까. 때 늦었지만 이제사 그분들에게 고개 숙여 용서를 구한다. 닭값을 물리겠다고 하면 아주 후하게 쳐줄 용의도 있지만, 지금은 모두가 먼 곳에, 계신다. 아득히 손짓하는 동심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마음속으로 부디부디 용서해 주십사 하고 청원할 수밖에.
소싯적 닭서리 수박 서리 참외 서리는 장난삼아, 해본 소꿉장난이었으며 옛날부터 전래되어 온 일종의 전통놀이가 아니었나 싶다. 면책특권을 주면 좋겠다. 메마르고 각박해진 오늘날의 고향 인심으로는 어림도 없는 얘기겠지만,
닭서리 공범자였던 그때 그 시절, 소꼽장난 우정이 그리워진다.
첫댓글 그 옛날 서리 한번 안 해 본 사람 있을까요. 잃은 사람은 마음 아프고 공짜로 남의 물건을 가져온 사람은 그저 재미있고 즐거웠던 시절이었지요. 생각해 보면 참으로 좋은 시절 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 하 하. 재미있던 시절입니다.
누구나 한번씩은 다 겪어본 이야기를 맛갈나게 쓰셨지요? 많이 웃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