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세상을 실현하는 NGO. 행복한가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딱히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노는 학생도 아니었지만,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죠. 다만, 책을 좋아하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책은 많이 읽었습니다. 집에서 엄마는 늘 책을 읽었습니다. 집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을 때는 동네 도서관을 찾았습니다. 자연스럽게 TV보다 책을 더 재밌어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공부는 시험 보기 전에만 했습니다. 평소에는 빈둥거리다가 시험 일주일 전부터 교과서를 외우기 시작했다. 벼락치기만 했는데 성적은 곧잘 나오는 편이었죠. 엄마는 항상 '네가 노력만 하면 더 잘할 텐데, 왜 노력을 안 하니?' 라는 얘기를 달고 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벼락치기만 해도 성적이 잘 나온 건, 평소에 책을 많이 읽어서인 것 같습니다. 문제 이해력이 괜찮았던 것이죠. 객관식 시험은 문제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정답이 보였습니다.
회사에서 마지막으로 받은 쇼핑지원금으로 책을 잔뜩 샀습니다. 공부를 그렇게 싫어하던 학생이, 이제는 좋아서 공부를 합니다. 시험을 목적으로 하는 공부와 내가 재밌어서 하는 공부는 달랐습니다. 사회탐구 영역 중 가장 싫어하는 과목이 경제였는데, 스스로 경제 서적을 사는 날이 올 줄 몰랐죠. 재테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경제 흐름을 모르고 무턱대고 하면 안 될 것 같아 구매 한 책입니다. 용돈만 가지고 주식을 할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은퇴 후 생활비를 가지고 투자를 하려니 실패가 두려워졌습니다.
역사 공부가 하고 싶어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을 정리한 책도 샀습니다. 학생 때 배운 역사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전반적인 흐름 파악을 위한 책을 사고 싶어 골랐는데, 아직 다 읽지 못해 잘 산 건지는 알 수 없습니다. 좋은 책을 고르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이렇게 쌓인 책 중 아직 시작도 못한 것들이 많습니다. 책이 쌓여 있으니 마음이 급해집니다. 저걸 언제 다 읽지? 여유 있게 한 권씩 보면 되는데, 여전히 성급합니다. 책상 옆에 책을 쌓아두고 그때의 기분에 따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책 욕심은 아직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박경리 작가의 <토지>는 중학생 때 다 읽기는 했는데,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중학생 감성으로 읽을 때는 줄거리만 보였는데, 어른이 된 지금 읽는 <토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픔에 좀 더 공감하며 읽게 됩니다. 동학농민 운동 이후부터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픔에 공감하고, 복잡 미묘한 관계로 인한 주인공의 감정에 공감하게 됩니다. <토지>의 등장인물은 내가 아는 사람들인 것만 같습니다. 책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스스로 대화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묘사가 생생합니다.
꿈꾸던 일을 떠올리며 학생 때도 안 하던 공부를 이제야 시작했습니다. 나이 60, 70이 넘으면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될까요?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막힘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성급해하지 않고 공부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자고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