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모럴 홈 (김정희)
꿈에도 그리던 모럴홈을 장만했다. 남편이 가장 원하는 버킷리스트 중의 하나였다. 20년 남짓 된 낡은
버스였지만, 상대적으로 마일리지가 많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름대로
품어 본 캐나다인들의 겨울 철새 행렬에 끼는 자부심으로 벌써 일찌감치 여행 리스트를 짜 놓았다. 처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해피보이마냥 벌어진 입을 귀에 걸고, 남편이 짬짬이 쓸고, 닦고, 곱게 광을 낸 버스가 안팎으로 윤기가 잘잘 흐른다. 부러움에 젖은 상냥한 얼굴로 동리 사람들이
배웅의 손을 흔든다. 찬 서리의 거친 숨을 고르며 모럴홈이 거세게 움찔거린다. 다섯 식구를 태운 커다란 집 한 채다. 보보, 도리( 저의 고양이)도
당연히 당당히 여행 대열에 합류했다. 보보는 버스가 움직이자마자 이불속에 숨어서 온종일 꼼짝을 하지
않는다. 도리는 그 작은 세면대 밑 캐비넷에 숨어 옴짝도 않는다. 다만
강아지 쵸코만 종일 나의 무릎을 차지하고 편안히 낮잠까지 청한다. 이웃 동리 메시건 주, MICHIGAN를 지나, OHIO, WEST VIRGINIA,
VIRGINIA, NORGTH CAROLINA에 접어들었다. 벌써 대지는 완연이 녹색이
비치기 시작했다. 매직을 부리듯이 몸에 걸쳤던 두꺼운 솜옷들을 하나,
둘, 벗어 버렸다. 확 트인 차창 밖으로 봄빛이
물결마냥 쏟아져 내렸다. 느긋이 핸들을 잡은 남편 모습이 순간 더욱더 멋져 보였다. 수십 년 장거리 트럭 운전을 하는 남편이 순간순간 안쓰럽고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 이 순간만은 참으로 믿음직스럽고 자랑스러워진다. 그것도
그렇듯이 이렇게 웅장한 집 한 채를 떠안고 다섯 명을 거느린 커다란 버스를 자유자재로 노련하게 조정을 하니 말이다. 그 덕에 나와 쵸코는 넋을 놓고 편안히 낮잠까지 자는 모습을 그이한테 몰래 사진 속에 찍히고 말았다. 목적지는 플로리다 남부다. 남편은 직업상 여러 번 거쳐 다닌 곳이다. 그이는 이곳이 처음인
나를 배려하여 해변도로를 택했다. 해변을 따라 고급 빌라 주택들이 부의 상징으로 물들인 그림들을 수놓았다. 이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을 하여 이처럼 잘살고 있는지? 의문이 잠깐 뇌리를 스쳤다. 이틀 정도 지나서 미국 남부 제일 끝자락 키웨스트로
향했다. 끝없이 망망한 바닷속에 은띠를 수놓은 듯 길게 뻗은 다리와 작은 마을들이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어떻게 바다 한가운데 이렇게 수많은 다리를 놓고, 집을 짓고, 사람들이 살 수 있는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됐다. 인간의 지혜와 무궁무진한 힘의 상징이다. 캠핑은 Bluewater Kay RV park에 했다. 모럴 홈 여행이 처음인
우리는 행여나 하고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았다. 상상 밖으로 모든 캠핑장이 만원이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들이 너나없이 여유가 많아서 이곳으로 몰려든다? 고
조롱이나 하듯이. 이틀만 묵을 수 있는 곳에 겨우 비비고 들어왔다. 비용이 혀를 찔렀다. 캠핑장은 그림마냥 아름다웠다. 흥분을 둘러업고 파킹을 하는 순간, 주위의 풍경이 우리의 눈을 뒤집어
놓았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다른 세계에 들어 온 듯한 기분이었다.
하늘하늘 흐느적거리는 야자수와 갖가지 꽃나무들로 바자를 친 주차장에는 차들이 오색영롱한 광을 뽐내며 즐비하게 서 있었다. 분명히 캠핑카는 같은데, 너무나 고급스럽고 멋진 것을 보고 이것들이
도대체 무슨 괴물이냐? 착각하기 십상이었다. 거기다 옆에
달린 고급 스포츠카에, 고급 오토바이 등...남편과 나는
우리의 버스를 둘러보고, 그것들을 보는 순간, 온몸이 싸늘해지며
몸 둘 곳을 몰라 했다. 그것은 바로 빈부의 차에서 온 히스테리 같은 것이었다. 자연 반사였다. 반사는 반사일 뿐이었다. 우리는 손에 손을 잡고 캥핑장을 활보하며 마음껏 기쁨을 누렸다. 이런
행렬에 잠시나마 끼게 해 준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키웨스트에 가면 세계 문학 명장 “헤밍웨이
집”에 꼭 가 보고 싶었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자처하는 나의 허영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공교롭게 날씨가 좋지 않았다. 온종일 찬비가 내렸지만 “헤밍웨이
집” 앞에는 관광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들도 모두 나처럼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면 그저 유명한 인물에게 따라붙는 관광코스? 아무튼, 백여 년 남짓한 한 소설가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관심사로 된다는 자체가 문학의 위대함에 경의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집 자체가 돈을 많이 벌어들이는 관리인들에
의해 잘 보존되고 잘 꾸며져 있었다. 꽤 크고 아담했다. 그때, 그 시절 이 정도 집에서 살았으면 대단한 부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숱한 기념품들과 사진 속에서 보여 준 그는 미남이었다.
그리고 동물과 ( 특히 고양이, 현재도 54마리나 있었다) 사냥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참으로 낭만적이고 멋진 남자임이 분명했다. 거기다 글까지 잘 쓰고, 그 집에서 나는 현대 쇄판 도장이 박힌 “노인의 바다” 단행본을 샀다. 마치
내가 진짜로 문학인이 된 듯이 기쁘고 뿌듯했다. 이튿날부터 천천히 꼼꼼하게 읽었다. 너무나 단조롭고 재미없어서 인내심이 필요했다. 이 이야기가 도대체
왜 세계 명작인지? 도저히 나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과는
나의 문학에 대한 인식과 개념의 빈약함에 안타까움과 실망만 더 안겨 주었다. 나는 흥분과 고민을 안은 채, 미국의 남부 끝자락 표시판인 SOUTHEN MOST POINT FOR US
MARKER (90 마일러지 밖 큐바이다)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사진 한 장을 찍고, 그곳을 떠났다. 뿌연 안개가 우리의 꽁무니를 깊게깊게 수놓았다. 플로리다 남부 도시 Naples이다. 모럴홈을 휘저으며 짧지만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이곳에
정착했다. 모조품 하우스와 모럴홈들로 이루어진 아담하고 예쁜 마을이다.
주로 미 동부, 캐나다 퀘벡, 온타리오 등 지역
사람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작은 연합국과도 같았다. 찬란한 햇빛이 그림처럼 수놓은 야자수들과 뜨거운 키스를
하면서 꽃 보라를 뿌린다. 사람들의 얼굴에 온통 행복의 미소가 찰랑거린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이색도시다. 모든 것을 싹 내려놓고 심신 건강만 챙기는
일과가 시작된다. 매일 아침 햇님과 어께동무하며 강아지를 앞세우고 산책을 한다. 그리고는 자전거에 신바람을 불어 넣는다. 15분 달려서 월마트에
가서 그로서리도 쇼핑하고, 30분 달려 바닷가에 가서 온종일 금빛 백사장에서 뒹군다. 대부분 사람은 버스 꽁무니에 차들을 달고 다니지만 우리는 자전거를 선택했다.
덕분에 운동도 되고, 비용도 아끼고, 일거양득이다. 이후, 남편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였다. 리조트의 시스템이 참 잘 짜여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단골들이다. 즉 오리지널 겨울 철새들! 메인홀에서는 각종 활동 프로그램이 열린다. 일주일 두 번 줌바 댄싱
클라스, Walking댄스 클라스. 우리는 왁킹 댄스 클라스에
들어가 땀을 뽑았다. 그리고 일주일 두 번 Pancake
Breakfast, Sausage Hamburger Break fast가 마련되어 있다. 단 $ 2.50에. 그것도 단골손님들로 이루어진 자원 봉사자들의 작품이다. 캠핑카들로 둘러싸인 작은 호수를 한 가슴에
품고 푸른 수영장이 누워 있다. 사람들은 온종일 번갈아 가며 비타민
D로 온몸을 적신다. 삶의 향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저마다
마치 오래된 옛 친구를 만난 듯이 가슴을 활짝 열고 허심 탄탄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렇게 편안하고 친절한
사람들과 만남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또 하루의 수영 레슨 시간이다. 내 생애 수영은 포기했었다. 하지만 물장구라도 치면서 수영장에서
놀기를 좋아하는 나를 보고, 일찌감치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남편이 보호용 누들( Noodle 긴 면발처럼 생겨서 지어진 이름?)를 챙겨주었다. 신기하게도 편하고, 차츰차츰 수영 흉내도 낼 수가 있었다. 오늘은 세 번째 주가 되는 날이다. 갑자기 남편이 나에게 오늘은
노, 눌드. 리얼 액션 날이라고 선포한다. 매일 어린애마냥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 주위 사람들이 옛스,옛스! 하고 바람을 넣는다. 나는 마치 무슨 정식게임에 나가는 선수마냥
긴장되고 흥분됐다. 그래, 하는 거야. 작은 개울물에서 물장구만 치던 이 갑순이가 끝내 진짜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거야. 내가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긴 숨을 들이쉬는 순간, 갑자기 남편이
나의 가슴에 드리웠던 누들을 확 빼버렸다. 때와 함께 나는, 힘차게
손을 헤가르며 물밑으로 내리꽂히며 헤엄쳐 들어갔다가 다시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 순간 온 수영장에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와, 그녀가 해냈다! 순간 카메라 셔터가 번쩍번쩍 거렸다. 그 새 단짝 친구 커플이 된
이웃집 신디가 기념사진 포착을 했던 것이다. 이튿날 우리는 또다시 아침 일찍 수영장으로
향했다. 벌써 사이좋은 이웃이 된 사람들이 한결같이 환한 아침 인사를 주고받는다. “헤이, 킴! 듣자니, 네가 끝내 수영을 해냈다면서. 축하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아주머니의 인사말이다. 나와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어떻게 저들이 그 사실을 알지? 우리가 수영장에 이르자 숱한 사람들이 나에게 축하의 메세지를 보내왔다. 그
오리엔토 워먼이 끝내 수영을 배웠대! ( 2달 간 모럴홈 여행 중, 동양여자는
나 밖에 없었다. )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온 리조트에 퍼졌던 것이다.
오, 마이 갓! 참으로 재미있고 신기했다. 인간의 정은 그렇게 서로서로 어울려 가슴을 촉촉이 적시였다. 2개월이란 시간은 나의 강아지의 꼬리만도 짧았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그곳을 떠났다. 이별과 만남에 익숙한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작별을 고한다. 한 여자는 우리를 향해 ‘킴, 집에
돌아가서 계속 수영 연습을 하라’고 하면서 팔을 저어 수영하는 모습을 그린다. 순간 가슴이 울컥한다. 안녕, 형제들, 자매들! 짙은 녹색이 물든 남부를 서서이 지나, 차츰 찬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 찐한 갈색 피부로 바뀐 어께에
스웨터를 걸쳤다. 확 트인 창가로 눈발이 흩날린다. 아, 집으로 간다. 따뜻한 여행은 잠깐이었지만 아주 즐거웠다. 생애에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겼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좋은 곳- 고향 - 집.
또다시 나의 보금자리로. 삶의 현장으로. 우리는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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