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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가 오늘 찬양 가운데 드렸듯이 여러분의 인생이 주의 나라와 뜻이 임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찬양할 수 있는 여러분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대림절에 셋째 주일이죠. 대림절의 초로 말하면 핑크색 초에다가 불을 붙이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핑크는 다른 것 중에서도 기쁨을 상징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에 기쁨이고 또 그 그 날을 기다릴 때 갖는 기쁨입니다. 성탄절은 크리스마스는 세상에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이 분명하고요. 그렇게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날에 다가옴을 앞에서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대림절을 지나고 또 성탄절이 되어도 기뻐하지 않는 기뻐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을 먼저 보게 자면 가난한 사람들, 성경이 말하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먹을 것조차 넉넉하지 않습니다. 병으로 아픈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을 같이 먹을 수 없습니다. 근심 걱정, 불안, 두려움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무거운 짐에 눌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가족과 멀어지고 또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이 너무 큽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이 축제의 분위기가 되는 쇼핑의 시대가 된 때가 되는 이 크리스마스가 상대적으로 더 힘든 때가 될 수가 있어요. 지금 내가 그런 상황에 있을 수 있고 또 그런 처지에 있는 이웃이나 성도가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생각해 보면 바로 그런 사람들, 좀 아까 생각해 본 그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시고 계획하시고 이루신 날이 바로 성탄절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죠.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약속하신 빛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빛은 어둠의 땅을 밝히는 빛이고 흑암에 사는 자에게 비출 빛이에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 그래서 불의를 당하는 사람들, 그래서 마음에 괴로운 것들이 많은 사람들, 그래서 세상의 임금이신 하나님의 공의를 절대적으로 피로 하는 사람들, 그와 같은 이들에게 비춰질 빛이라는 것이죠.
그것이 성탄절에 다가오는 빛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에 오심으로 크리스마스에 성탄절에 가장 기뻐하고 즐거워할 사람들이 바로 앞에서 말한 기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죠. 이것은 오늘 우리가 함께 보는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전해지는 말씀에서도 같습니다. 스바냐 스바냐는 이 첫 번째 성탄절이 있기 전에 600여 년 전에 이스라엘 땅에서 활동한 왕족 출신의 선지자인데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스라엘의 죄에 대해서 고발하고 또 이스라엘의 회복을 예언을 했습니다.
본문은 회복 부분에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는 부분에 속하고 여기서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는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14절인데 함께 읽겠습니다.
시온에 따라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따라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이렇게 선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스바냐의 입에서 나오는 이 말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가 않았어요. 이스라엘이 큰 죄를 범했다. 아니면 이스라엘 안에 큰 죄가 있었고 그에 대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앞에 있고 다가오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누구든지 물을 수 있고 오늘 본문에서의 답은 이어지는 말씀에 있습니다. 15절인데 19절도 같이 읽겠습니다. 시작
여호와가 내 형벌을 제거하였고 내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내 가운데 계시니 내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아멘 너무 좋은 말씀이죠. 너무 힘이 되는 말씀이죠. 죄와 심판을 이기는 용서와 사랑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금 말씀하시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입니다. 지금 말씀하는 모든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앞으로 일어날 일 미래에 관한 일이에요.
그런데 14절에서 주신 명령은 지금 해야 할 거예요.
지금 노래하라 지금 즐거워하라. 지금 기뻐하라.
그런데 그 근거는 지금 주어지지 않았고 저 앞에 있다는 것이죠. 무슨 뜻인가요?
이 말씀을 듣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근심하고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정말로 당연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더라도 아니면 그러한 상황이 지금 앞에 있을지라도 그 너머에서 그 너머로부터 다가오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보고 믿음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하는 말씀이에요.
이것은 성경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고 모든 믿음의 선조들이 따른 것이고 우리도 마음에 담아야 하는 교훈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할 이유가 15절에 있었는데, 16절 17절에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두 절이지만 우리가 또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날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내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아멘 성경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아주 잘 보여주는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정말로 큰 힘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의 가사로도 사냥 삼아서 이 가사로 노용으로 찬양을 하기도 하죠. 온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너를 잠잠히 사랑하신다.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름으로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얼마나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너 너라고 하는 말에 주인이 누구인지 중요합니다. 너라고 하죠. 본문에서 너는 이 단수로 표현돼 있어요. 복수가 아니고 단수로 표현돼 있지만 이스라엘의 어떤 한 사람을 가리키는 게 아니고 이스라엘을 한 사람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너입니다.
그런데 그냥 이스라엘이 아니고 조금 더 좁혀진 의미로서 이스라엘이에요. 본문 앞에 12절과 13절에 있는 말씀으로 하자면 하나님이 남겨두신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입에 거짓을 말하는 혀가 없는 사람들을 가리켜요. 하나님의 심판 전에 또 그랬던 사람들일 수도 있고, 심판 전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심판으로 변화를 받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첫 번째라면 아예 죄를 멀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라면 죄에서 이제는 씻김을 받은 사람을 가리키는 거예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아주 낮은 곳으로 떨어졌지만 그 안에서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선 사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이든 공통적인 것은 죄가 없다는 겁니다. 죄로부터 멀어졌다는 겁니다. 죄의 부재예요. 제가 다스리는 곳에는 어느 곳이든지 하나님의 평강이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너는 기뻐하라, 너는 즐거워하라, 너는 노래 부르라라고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나 죄에서 떠난 사람, 죄에서 씻김을 받은 사람 그들이 가질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가지라고 명하시는 즐거움과 기쁨이 되는 것이죠.
우리 하나님은 그 기쁨과 즐거움을 우리 모두가 다 갖기를 원하십니다. 믿으세요. 둘째로 살펴볼 것은 그날이에요. 그날 그날이라는 말인데 본문에는 이게 네 번 등장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날이에요. 본문의 앞인 1장과 1장에서도 그 날이 언급이 돼요. 여호와의 날이 언급이 되는데, 그날은 거기에서는 심판의 무서운 날, 심판의 날을 가리키는데, 여기 3장에서는 회복의 날을 가리킵니다. 회복하시는 날,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날입니다.
이 부분에서 유대 현대 유대인들과 우리 교회 다니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르는 차이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볼 수가 있어요. 유대인들에게는 특별히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는 지금 말씀하시는 그날, 이 날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의 어떤 날입니다.
하지만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든지 이방이든지 모두에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날입니다. 하나님의 그리스도가 되시는 이 안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죄인이 받을 형벌, 그들을 괴롭게 하는 원수,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 칭찬과 명성을 주겠다 하신 것, 이 모든 약속의 말씀이 완전하게 가장 확실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믿는 바이죠. 하지만 오늘의 말씀은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렇게 갈라지기 전에 나누기 전에 주어진 말씀이에요. 그래서 여기서 말씀하시는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노래를 부르라 하는 이 말씀은 현재 우리가 부르는 유대인들에게 속한 것만이 아닙니다. 구약 성경을 자기들의 성경으로 삼고 있는 그들에게만 속한 것이 아니라 먼저는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또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그들과 함께 이룰 새 언약 백성에게 주시는 말씀이고, 그리고 교회인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이다.
이 말씀이 우리 교회를 향해서 또 여러분 각 사람을 향해서 선포됩니다. 즐거워하고 기뻐하라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는 말씀이에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꼭 즐거워하고 기뻐할 일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고난 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이거는 구약 성경만 아니라 신약 성경 그리고 성경 전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울리는 하나님의 소리입니다. 이 말씀대로 여러분도 특별히 이 대림절 기간에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마음에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그래도 그래도 기뻐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여러 이유들이 많이 있지만 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중에 하나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을 형벌은 다 제거가 되었어요. 그리고 우리의 원수 마귀도 추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우리에게도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도 어려운 일들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것과 관련돼서 부정적인 감정들이 안에서 일어나지 마음은 노래를 부르고 싶으나 부를 수 없고, 마음은 기뻐하고 싶으나 기뻐할 수 없고, 즐거워하고 싶으나 즐거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가 있습니다. 누리 중 누구에게도 저에게도 또 여러분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믿는 사람이라면 알고 그에 따라서 행해야 할 수 있는 행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요. 그것을 우리가 세 개만 살펴본다면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이 기쁨과 즐거움은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향해서 가지신 영원하신 생명과 구원의 뜻에 근거하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기쁨과 즐거움의 근거가 제 시각과 바뀌는 상황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우리를 향하신 사랑 안에 있다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지라고 명하시는 이 기쁨과 즐거움에는 꼭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속으로 이 속에 있는 고유함과 잔잔함이 있어요. 밖으로 표현한 것보다 더 크고 더 높은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은 많이 웃지 않아도 그 안에 참 기쁨과 참 평안이 있는 경우가 참 많은데, 여러분도 그것을 잘 생각하고 오늘 말씀을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이 기쁨과 즐거움은 그의 말씀에 대한 믿음의 반응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라, 즐거워하라 이렇게 말씀하실 때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종류의 기쁨과 즐거움이에요.
오늘 말씀을 처음 받은 그 이스라엘 백성 중에는 선지자의 말에 믿음으로 반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지만 아무리 적은 수라도 분명히 있다 하는 것이죠. 그들이 우리들의 본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삶의 문제가 많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자에게 위로부터 주시는 그 말씀을 말씀을 듣거나 받을 때 믿음으로 받고 그리고 그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뜻으로 우리가 17절 말씀과 19절 말씀을 다시 함께 보는데, 17절 말씀 안에 담겨 있는 이 부분만 봅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볼까요? 시작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보고 기뻐하시리라.
아멘 누구에게나 힘이 되는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본래는 이스라엘 공동체를 곧 이스라엘 전체에게 주어진 말씀이지만, 우리가 믿음 안에서 복음 안에서 우리 각 사람에게 여러분 각 사람에게 적용할 수도 있는 말씀이에요. 특별히 여러분이 지금 어렵고 힘든 상황에 있을 수가 있고, 앞으로 그런 날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마음에 더욱 담고 구원을 베푸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기뻐하고 여러분이 즐거워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기뻐하시고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노래 부르고 기뻐하신다 하는 겁니다. 얼마나 큰 힘이 되겠습니까? 이 하나님이 여러분의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끝으로 19절입니다. 다시 한 번 같이 읽을까요? 시작
그때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아멘 세상에는 믿는 자들을 괴롭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선한 자들을 괴롭게 하는 악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도 부당하게 괴로움을 당할 수 있고, 우리도 불리하게 수욕, 치욕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나의 잘못일 수도 있지만 남의 잘못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고 교회에서도 아주 적지 않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당하는 괴로움이나 수욕은 우리가 받을 전부가 아니고 우리 인생의 끝도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의 시작과 이 마지막은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시고 우리를 기뻐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노래 부르시는 그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괴롭게,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들을 그가 멸하실 것이라 말씀하시고 또 수욕을 당한다면 결국에는 칭찬과 명성으로 바꿔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는 우리가 예배하는 우리가 경배하는 우리가 송축하는 하나님은 진실하시고 그의 말씀은 영원하고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그를 경배하고 성축할 때에 스바냐 선지자를 통해서 주신 말씀 심판과 이 구원의 말씀도 우리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서 우리가 정말로 회개할 수 있기를 바라고 돌이킬 수 있기를 바라고, 내가 하나님을 등지고 가던 길을 떠나서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러게 죄에서 돌이키는 회개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평광과 기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 일이 있기를 바랍니다. 성탄절 앞에 있는 대림절에는 기쁨도 있지만 역시 우리를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는 하나님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의 시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예수님이 성탄절에 오시기 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한 마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양심이 우리의 양심이 거짓이나 불의로 더러워져 있다면 그것이 말씀 앞에서 주의 영으로 다 깨끗함을 받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가장 아름다운 준비가 될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