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면
행정리구역 : 법정리 9개 / 행정리 17개 (2013.8.30현재) |
인구수 : 1,648명 (남 781명/ 여 867명) |
가구수 : 885호 |
면 적 : 38.01㎢ |
읍면장 : 장공준 |
주 소 : 전라남도 장흥군 부산면 부유로 30 |
◆ 부산면 내안리 안곡마을
■ 인구현황 - 세대수 : 50세대 - 인구수 : 90명 - 이 장 : 김유문(☏016-928-6574) ■ 마을소개 - 가는골, 구녕박골, 도깨비보, 범박등, 한들보등의 지명이 얘기해주듯 본 마을은 평야가 넓고 기름져 예로부터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 마을입구 청풍김씨 세장비 옆 밭에 돌 2기가 세워져 있는데 고인돌로 추정되며, 옛날에 그 돌 사이로 길이 나 있어 안곡, 내동으로 통하는 마을어귀로 사용 되었으며 길가에 주막 하나가 있어 잠시 그 돌에 말을 매 놓고 술 한잔 하던 곳이라 전해진다 - 현재 1기는 파괴되어 원형을 상실했고 주위에 상석편과 하부구조로 보이는 돌들이 놓여 있다 마을뒷산의 형국이 말의 안장과 같다하여 「질마재」라 하고 鞍谷이라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安谷이라 고쳐 불리며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 부산면 내안리 내동마을
▣ 인구현황- 세대수 : 44호 - 인구수 : 85명- 이 장 : 김영환(☏010-9625-5060)▣ 마을소개-장흥읍에서 북서쪽으로 4km에 위치해 있고 면소재지에서는 서남쪽으로 3km 지점에 있으며, 삼면이 산으로 둘러 있고 동쪽으로는 부산평야와 접해있는 해발 약50m의 중산간 마을이다. -이 지역은 자갈이 있는 양토로 지질이 좋은 밭이 많아 마늘, 고추등 밭농사가 잘되는 지역이어서 토요시장과 5일장인 장흥장에 밭작물을 판매하여 소득을 올리고 있다. ● 마을의 형국을 나는 기러기가 내려앉은 형국이라 하여 비안낙지(飛雁落地) 라 하고 승려가 예불을 드리는 형국이라 하여 호승예불(胡僧禮佛)이라고도 한다● 마을 뒷산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오르는 모양이라 하여 마을이름을 흥룡동(興龍洞)이라 불리기도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이후 내안리 내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 1996년부터 출향향우들이 주체가 되어 고향을 지키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긍지를 심어주기 위해 매년 경로잔치와 주민화합을 위한 행사를 거행하고 있다.
◆ 부산면 구룡리 자미마을
▣ 인구현황- 세대수 : 52세대 - 인구수 : 100명- 이 장 : 김사환(☏010-9699-4806)▣ 마을소개-국도 23호선을 따라 부산면 소재지를 가기전에 내안리를 지나 서쪽으로 접어 드는 산밑마을로 해발 40m의 평야 마을이다-기암절벽의 산세가 수려한 수리봉아래 아늑하게 자리잡은 마을로 남쪽으로 장흥읍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예전에는 강자미로 불리우며 길쌈으로 유명하였으나 지금은 그 명맥이 단절되고 주로 미맥을 경작하고 있다. ● 독수리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형상의 수리봉 아래에 아늑하게 자리 잡고있는 마을이다● 社子微가 살았다 하여 社子微라 불리우다가 후에 康富者가 살게되어 康子美, 병마나 환란이 피해갔다하여 江子美라 했다고 전하나 1914년 행정개편이후 子美 라 부르고 있다. ● 마을입구에 있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는 농사일에 지친 이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며 매년 은행을 수확하여 10~20만원의 소득을 얻게 하여 복날이면 어른들을 모시고 복달임을 하는등 어른들의 건강을 기원하고 있다.
◆ 부산면 구룡리 용두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91세대 - 인구수 : 166명- 이 장 : 김용연(☏016-9887-5239)▣마을소개-원래 용두리는 용두 본 마을을 비롯해서 등구정과 거동, 가정사거리등 자연마을이 합해져 이루어진 마을이다-부산들을 끼고 있어 옛부터 농사짓기에 좋은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는 평야마을이기도 하다-조선초기 장(張)씨에 의해 성촌 되었다고 하며 지금은 강릉 유씨, 청풍김씨, 영광김씨등 다수의 성씨들이 서로 화합하며 미맥 경작을 위주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유치 국사봉으로 부터 수인산으로 이어지는 맥(脈)이 수리봉에 이어지고 이 맥이 마을 뒷산에서 머무는 지세를 이루고 있어 용의 머리에 해당 된다고 여겨 「용두」라고 부르고 있다. 속칭 뱀머리라 불려져 오기도 했다.
◆ 부산면 유량리 유량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23호 - 인구수 : 83명- 이 장 : 여용주(☏011-646-7632)▣마을소개-본마을은 부산면 소재지에 위치하고 있어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등 공공기관이 들어서 있다-옛날 유기하면 장흥 유량으로 장흥시장의 명물이었으며, 농악기의 장석 및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주문이 쇄도하여 장흥시장 경제에 한 몫 하였던 시절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선조 중엽 밀양박씨와 경주김씨가 성촌하였다고 함
●마을에 버드나무가 많고 마을형국이 꾀꼬리가 버드나무에 둥지를 튼 형국이라하여 유양리(柳楊里)라고 하다 광복후 행정구역개편으로 옛이름인 유량(有良)으로 부르게 되었다
◆ 부산면 유량리 양촌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31호 - 인구수 : 71명- 이 장 : 이정만(☏010-6472-7445)▣마을소개-양촌과 섭곡 두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면소재지에서 0.8km에 위치한 해발 90m의 중산간 마을이다-북으로는 빈재를 경계로 유치면 송락마을과 접해있고 남으로는 유량리, 동쪽으로는 성자리, 서쪽으로는 산을 넘어 유치면 수덕마을과 접해 있다-유치휴양림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가다보면 장흥댐의 수려한 경관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조선중기에 경기도 양주목사를 지내던 임계을(林桂乙)이 내직을 그만두고 난을피해 낙향하여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양촌마을 중앙에는 은행나무와 사작나무가 나란히 서서 마을을 지켜주고 있는데 이 은행나무는 임계을이 양주목사를 그만두고 이곳에 와 터를 잡고 심은 나무로 이 나무를 주민 한사람이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하여 베어내다가 즉사 하자 그 후보터 이 나무를 신목으로 여기고 있다그때 베어진 나무 밑둥에서 곁순이 자라 지금은 20m정도 성장하였고 임씨종가 에서 보호림으로 보호받고 있다. ●천연기념물- 은행나무 : 높이 20m, 둘레 3m로 수령은 약 200년- 팽 나 무 : 높이 20m, 둘레 4m로 수령은 약 80년
◆ 부산면 유량리 용동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50호 - 인구수 : 94명- 이 장 : 백종기(☏010-2463-1227)▣마을소개-부산면 소재지 사거리에서 동쪽으로 금자, 호계로 가는 첫 입구에 있으며 마을앞으로 탐진강이 흐르고 곡창 부산평야가 여유로 왔으나 개발로 인한 국도 23호이 기존도로에서 3m이상 높이로 포장되면서부터 외관상 마을이 둘로 나눠진 듯 한 마을이다-현재 마을 주민대부분은 농사를 경작하며 생활하고 있다. ●수인산에서 수리봉을 거쳐 구룡리로 내려앉은 지맥이 용두마을에서 용의 머리가 되고 용동마을은 용의 몸체가 된다고 마을이름도 속칭 「용구레」라 하고「용본」이라고도 불렀다●조선조 중기 진주강씨 우성이 난을 피해 남쪽을 내려오던중 이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강씨성 자자유촌을 이루며 성촌하였다 외촌인 백씨가 마을로 입주하면서 지금은 강씨, 이씨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마을내에는 옛부터 벼락바우 전설과 아들바우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벼락 바우가 묻혀있는 어인보는 그 전설과 관련해서 명명된 것이라 전하여진다.
◆ 부산면 지천리 심천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24호 - 인구수 : 45여명- 이 장 : 김종송(☏010-6368-2083)▣마을소개-몇년전까지만 해도 부산면 소재지에서 약 4km에 위치한 산간마을로 교통이 매우 불편한 오지 마을이었다-장흥댐 건설이후 도시권과의 교통망이 개선되고 물문화공원 및 청소년아영장까지 들어서게됨에 따라 앞으로 관광수요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는 마을이다.-이곳 주민들은 심성이 매우 유순하고 부지런하여 나이많은 어르신들이 나물채취 및 마을공한지에 고구마등 농산물을 생산하여 소득을 올리기도 하였다. ●연화도지(蓮花倒池)형이라 하여 연꽃이 연못에서 피어나는 형국이며 21기의 고인돌이 널려 있는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됨●심천(深川)이라는 이름은 마을앞을 흐르는 냇물이 깊어 일찍부터 「깊으내」라고 하던것이 한자로 바꾸어 생긴 이름이라 한다. ●볼거리 : 장흥댐주변, 물문화공원, 청소년야영장등
◆ 부산면 용반마을
▣ 인구현황- 세대수 : 112가구 - 인구수 : 198여명- 이 장 : 김재근(☏011-633-7629)▣ 마을소개-본 마을은 주로 인천이씨가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과거에는 문`무관 효자(녀)들이 많았고 현대에 이르러도 공직자, 교육자등 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는 마을이며 용호정, 고문서 (교지등)와 각종 민속놀이 등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본 마을은 고려 성종때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기 시작하였으며 용이 서리고 있는형국이라 하여 용반리라 했다 한다. 용반리를 「지와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마을에 기와집이 많았고 기와 굽는 곳이 많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동학혁명 당시 화재를 입어 모두 소실되었다고 전하여 진다 -용호정
◆ 부산면 금자리 효자마을
▣ 인구현황- 세대수 : 66세대 - 인구수 : 125명- 이 장 : 공영주(☏010-6607-9986)▣ 마을소개- 텃논들, 새비둠벙, 가장골, 모정들등의 지명을 품고 있는 효자리는 위로는 호계, 아래로는 용반마을 사이에둔 교통사정 좋고 농사짓기 아주 좋은 마을이다-마을내 부산동초등학교가 창건되어 한때는 부산동부 교육의 요람이 되었던 적도 있었으나 학생수 감소로 '92년 분교로 격하 '93년에는 결국 폐쇄되고 부산교로 병합되었다 1525년 남평문씨 治周가 보성읍에서 분가하여 마을 안골에 터를 잡아 성촌하여 내동이라 부르다 1894년 안세룡의 효성을 기리는 효자비가 세워진 뒤부터 효자리로 불리게 되었다 옛부터 문기방장군의 忠, 안세룡선생의 孝, 백덕례씨의 烈의 정신이 전해내려오는 마을로 현 완도경찰서장 안동준씨를 배출해내든등 마을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 부산면 금자리 금장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39호 - 인구수 : 78명- 이 장 : 이홍래(☏010-7740-7287)▣마을소개-본 마을은 윗금장과 아랫금장의 두 마을로 나누어져 있으며, 부산면소재지에서약4km에 위치한 해발 약 80m의 중산간 마을이다-마을의 뒷쪽에 용두봉과 금장산이 둘러 있고 마을앞에는 금장천이 흐르며 들이 기름지고 넓어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형국은 황금색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전하며●마을뒷산에 황새가 숨어 있다하여 금장(禽藏)이라 하기도 하고 또 금굴(金窟) 이 있다하여 금장(金藏)이라고 하던것을 후에 金莊이라 명하였다 한다. ●독우재(篤友齋) : 1847년 4월 20일 창건한 건물로 인천이씨 32세손인 이권전(李權銓)이 학문과 선행을 중시하여 독우(篤友)의 덕을 쌓고 후생교육에 전심전력하여 그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한다
◆ 부산면 금자리 관한마을
▣ 인구현황- 세대수 : 19호 - 인구수 : 43명- 이 장 : 노영기(☏010-4633-1675)▣ 마을소개-군청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약 9km, 부산면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4km에 위치한 해발 100m의 산간마을이다-동·서와 북쪽은 높은 산으로 둘러 쌓여있고, 남으로는 금장·효자마을이 있으며 마을앞으로는 관한천이 흐르고 있다.-'05년부터 마을뒷산에 자생녹차단지를 개발 조성하여 매년 4월~6월에는 녹차제조체험을 하기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자생녹차 생산현황 ㅇ 재배단지 : 4.5 ha ㅇ 연간생산량 : 600kg ●갈마을수형(갈馬飮水形)이라고 해서 목마른 말이 물을 마시는 형국이라 전한다●마을 앞산이 황새가 우렁을 먹을려고 하는 형국이라 하여 관한이라 하였다가 조선조때 용계면에서 장평면으로 이어지는 교통로가 되어 어느 관장이 이 길을 지나가던 중 마을앞 정자에서 쉬어 갔다하여 관정(觀亭)이라 하였다가 후에 관한(觀閑)이라 고쳐 불렀다 한다. ● 관한 「야생녹차」산에서 채취하여 제조까지 직접 체험 할 수 있음
◆ 부산면 호계리 호계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63호 - 인구수 : 122여명- 이 장 : 최양기(☏011-626-2893)▣마을소개-군소재지에서 북쪽으로 8km, 부산면소재지에서 동쪽으로 3.5km지점에 위치한 발 55m의 중산간 마을이다-동북쪽으로는 장동면 장항마을과 접해있고 서북간으로는 금자리 마을과 접해 있으며 남쪽 안산너머로는 기동리와 접해 있다-본 마을에는 500년을 이어 온 마을의 안녕과 수복을 기원하는 대동별신제가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행해지고 있다별신제란 신격인 삼신(三神) 天`地`人에게 농사의 풍년, 가족의 건강과 화목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그 전통성을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2006년 전통문화마을로 지정되어 2007년 4월 문예회관이 건립되었다. ●조선조 태종때 숭정대부 의정부 좌찬성 김린(金麟)이 단종때 사육신과 함께 못함이 한이 되어 현 동백정으로 은거하면서부터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 한다●일제때 일본장수 한사람이 이곳에서 큰 사람이 태어날 땅이라 하여 학의 목을 잘라 혈을 끊어 놓았다고 한다●국도가 개설되기 전에는 대숲이 무성하여 깊은 밤에는 호랑이가 눈에서 불을 비추고 있어 주민들이 불안하여 방문 앞에 큰대를 걸쳐놓고 생활하였다 전한다 ● 장흥호계리 별신제 및 동계문서 : 도지정 민속자료 제43호 지정(2008. 4. 3)오는 별신제(음력1.15)
●동백정 : 숭정대부이신 金麟公께서 은거지로 삼고 이곳에서 평생을 지내던 곳으로 7대손 成章公이 1584년 주변에 소나무와 동백을 심어 불변의 절의를 나타내고 동백정이라 하였다.●호계 문예회관
◆ 부산면 호계리 월만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37호 - 인구수 : 71여명- 이 장 : 윤영규(☏010-6344-4870)▣마을소개-자연마을인 뱃골과 달만이를 합해 불려진 이름으로 군청소재지에서 국도2호선을 따라 7km, 면소재지에서 5km정도 떨어져 있는 중간 산마을이다-마을부녀회에서는 조미료를 가미하지 않고 표고가루를 첨가한 표고김장김치를 담아 판매함으로써 주민 스스로 소득을 올리는데 혼신을 다하고 있다. ●월만(月滿)은 망월형(望月形) 즉 보름달 모양이라 하여 이름짓게 되었다 하며, 뱃골은 본시 배나무가 많이 있어 부르게 되었다 한다
●조선조 중엽 죽산안씨 신(愼)이 장동에서 분가하여 입촌하였고 뱃골에서 1650년경 김해김씨가 터를 잡고, 후에 수원백씨등이 입촌하였다 한다. ●표고김장김치
◆ 부산면 기동리 기동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55호 - 인구수 : 106여명- 이 장 : 위주환(☏010-4160-7087)▣마을소개-맑은 물이 흘러 경치가 거울의 호수처럼 맑아 명명된 경호정등의 유적이 있으며, 부모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작지주혈(斫指注血)한 위계호등 예부터 효성이 지극한 이와 문무인을 많이 배출하였다 ●본 마을은 부지런한 소의 형국이라 하여 소말뚝, 골아실(소구시)등 주변에 이와 관련된 명칭이 남아 있고 예부터 천석꾼이 나온 마을이다●조선조 중기 칠원윤씨가 거주하면서 덕동(德洞)으로 불리우다가 장흥위씨가 입촌하면서 「터골」(基洞)로 불렀다 한다. ●세계적인 골프선수 미셀위(위성미)와 우리나라 우주항공박사 1호인 고 위상규 박사의 고향이다.
●억불영농조합에서는 토마토(방울토마토, 완숙토마토)를 생산 연간 약4억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 부산면 기동리 성자마을
▣ 인구현황- 세대수 : 19세대 - 인구수 : 38명- 이 장 : 김영인(☏017-331-6009)
▣ 마을현황-마을주변의 산세가 홍관단풍형(紅冠丹楓形)이라 하여 『홍단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면소재지에서 호계로 이어지는 군도 11호선을 따라가다 500여미터 용동마을에서 동쪽으로 성자교를 건너면 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마을앞으로는 탐진강 맑은 물이 흐르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기동 원마을에서 장흥위씨『啓昊』가 분가 입촌 하였고 그 후 김해김씨 장흥임씨가 들어와 20여호의 조그마한 마을을 이루었다.-70여년전에 마을의 호수가 적고 자손이 적어 ~마을이 번창하고 자손이 많아라〃는 뜻으로 『성자』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 부산면 부춘마을
▣인구현황- 세대수 : 47호 - 인구수 : 125여명- 이 장 : 김일근(☏010-6622-3679)▣마을소개-마을 모양이 산 밑으로 길게 펼쳐진 형국을 띄며, 마을 앞으로 탐진강이 흐르고 춘정 북동쪽 강가 노송의 품에 안긴 수려한 정자 한 채가 서 있는 곳이 바로 부산면 3대 정자중 으뜸가는 부춘정이다-마을뒷쪽으로 장흥군 쓰레기매립장, 장흥댐 정수장, 장흥노인전문요양원이 들어서 있다 ●본 마을은 춘정마을과 고개마을이 합해진 마을로 춘정(春亭)마을은 중국 후한의 고고한 선비 엄자릉이 은거하며 살던 곳이 이곳 지형과 같다하여 부춘산(富春山)이란 그 곳 지명을 따서 붙여진 이름이며,고개(高盖)마을은 높은 벼슬을 가진자(고려시대 노씨성을 가진 감사)가 이룬 마을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부춘정 : 도지정 문화제 67호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이곳에서 만년을 보냈던 문희개(1550~1610)가 1598년 창건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처음 명칭은 공의 호를 따서 청영정(淸潁亭)이라 부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