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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3장 4-12절. 구브로 전도
설교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를 두 사람 파송을 했다는 것이 무엇이 대단한 것이냐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순절 사건만큼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가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두 선교사를 보낸 사건은 세계선교의 문을 열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공식적인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을 받고 안디옥 교회를 설립하여, 안디옥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한다고 하는 이 구조가 바로 사도행전의 전체의 구조입니다.
이처럼 지상의 모든 교회들도 성령 받고 교회를 개척하며 이방인 선교를 담당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그 즉시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을 합니다.
4절.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 being sent out by the Holy Spirit, they went down to Seleucia and from there they sailed to Cyprus.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Αὐτοὶ μὲν οὖν ἐκπεμφθέντες ὑπὸ τοῦ Ἁγίου Πνεύματος, κατῆλθον εἰς Σελεύκιαν,
they indeed therefore having been sent forth by the Holy Spirit, went down to Seleucia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들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로 내려갔다’는 뜻입니다.
‘보내심을 받아’(ἐκπεμφθέ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이고(having been sent forth), ‘내려갔다’(κατῆλθον)는 부정과거로서(went down) 과거에 내려간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실루기아’는 안디옥의 외항으로서 안디옥 서쪽 26킬로 지점에 있는 항구입니다.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ἐκεῖθέν τε ἀπέπλευσαν εἰς Κύπρον,
from there then they sailed to Cyprus
직역하면 ‘거기서 그들은 구브로로 항해했다’는 뜻입니다.
‘배타고 가서’(ἀπέπλευσαν)은 부정과거로서(they sailed) ‘배타고 갔다’는 뜻이고, 원형(ἀποπλέω)은 ‘배타고 가다, 항해해 가다’(sail away)는 뜻입니다.
‘구브로’는 섬이고, 바나바의 고향이었고, 많은 유대인이 거기 살고 있었고, 이미 복음이 전파된 곳이었습니다(행 1:19-20).
1. 교회가 선교하는 것과 선교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성령님의 보내심을 따라 움직인다는 원리입니다.
우리들의 문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 자기 혼자 결정하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하고 성령님의 감동을 받으면서 확인하고 의논하고 이것이 정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각인가 검토하는 그런 조심스러운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2. 그리고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성령님께서 우리들에게 바나바와 사울에게 선교사로 가라는 분명한 메시지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두 사람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성령님의 보내심을 따라 실루기아라는 항구를 거쳐서 구브로라는 섬으로 들어갔습니다.
구브로라는 섬으로 가도록 누가 결정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분명한 것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확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 의해 확인이 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 의해 확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도요 선교입니다.
우리는 전도하고 선교한다는 것은 같은데 그 과정에서 성령님의 음성에 예민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비록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단독으로 혼자 결정하고 혼자 밀고 가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확신을 가졌더라도, 다른 사람들까지 성령님의 감동을 받아서 서로 의논하는 중에 원만하게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의논과 확인 과정을 무시함으로써 교회의 분란이 많이 일어나게 되고, 복음 전도와 선교에서 실패를 많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5절.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reached Salamis, they began to proclaim the word of God in the synagogues of the Jews; and they also had John as their helper.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καὶ γενόμενοι ἐν Σαλαμῖνι, κατήγγελλον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ἐν ταῖς συναγωγαῖς τῶν Ἰουδαίων·
and having come into Salamis, they began proclaiming the word of the God in the synagogues of the Jews
‘이르러’(γενό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이고(having come), ‘전할새’(κατήγγελλον)는 기동의 미완료과거로서(inceptive impf: they began proclaiming) ‘전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살라미’는 구브로 섬의 동쪽에 있는 성읍이었습니다.
이 살라미에서 바나바는 고향 사람들과 옛정을 인사를 나누고 옛정을 나누었을 것입니다(the life and work St, Paul. 1권 347).
이 살라미에서는 각종 과일, 포도주, 꿀, 아마 등이 많이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이 살라미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어서, 회당도 있었습니다.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
εἶχον δὲ καὶ Ἰωάνην ὑπηρέτην.
they were having now also John helper
직역하면 ‘그들은 또한 요한을 수행원으로 가졌다’는 뜻입니다.
‘두었더라’(εἶχον)는 미완료 과거로서(they were having) 계속 수행원으로 데리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요한은 마가 요한을 가리키며, 바나바의 생질이었고(골 4:10),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마리아 집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요한 마가는 성령님이 파송하신 것도 아니고, 안디옥 교회에서 정식으로 파송한 것도 아니고, 다만 바나바와의 친척 관계와 예루살렘 교회가 그의 집이란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수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Ramsay, St. Paul the traveller. 71).
1. 선교의 일차 행동은 가깝고 익숙한 장소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시작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구브로라는 섬으로 갔는데 이 구브로라는 섬은 바나바의 고향입니다.
사도행전 4:36. 구브로에서난 레위 족속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
2. 그 구브로라는 섬에 ‘살라미’라는 항구 도시가 있는데 그 도시에 선교팀이 갔습니다.
그 도시에 가서 유대인의 회당을 찾았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의 경우는 유대인의 회당이라는 곳이 굉장히 익숙한 곳입니다.
3. 그 사람이 데려간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마가라 하는 요한입니다.
요한은 마가 요한을 가리키며, 바나바의 생질이었고(골 4:10), 예루살렘 교회로 사용되고 있는 마리아 집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요한 마가는 성령님이 파송하신 것도 아니고, 안디옥 교회에서 정식으로 파송한 것도 아니고, 다만 바나바와의 친척 관계와 예루살렘 교회가 그의 집이란 인간적인 관계 때문에, 수행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 마가라는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입니다. (골 4:10)
4. 바나바와 사울처럼 교회에서 파송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선교사로 간 뒤에도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기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보낸 안디옥 교회는 얼마나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겠습니까?
5. 선교사로 가기 전에 팀웍으로 제주도 같은 데로 선교할 사람끼리 육 개월 정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필리핀 가서 영어 연수하고 싱가포르에 가서 훈련받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거기 가기 전에 그 팀원들이 국내에서 서로 공동체 생활을 하고 난 다음에 팀웍이 다져지면 해외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살라미에서 반대편에 있는 항구도시 ‘바보’로 가게 됩니다.
즉 구브로 섬 동편에 ‘살라미’라는 항구 도시가 있고, 서쪽 끝에 ‘바보’라는 항구 도시가 있습니다.
6절.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had gone through the whole island as far as Paphos, they found a magician, a Jewish false prophet whose name was Bar-Jesus,
온 섬 가운데로 지나서 바보에 이르러
διελθόντες δὲ ὅλην τὴν νῆσον, ἄχρι Πάφου,
Having passed through now all the island, until Paphos,
직역하면 ‘바보에 까지, 그 섬을 모두 통과하여’란 뜻인데, 한글 성경은 좋은 번역입니다.
‘지나서’(διελθ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assed through) 섬을 완전히 통과한 것을 가리킵니다.
‘바보’라는 성읍은 구브로 섬의 서쪽 끝에 있었고, 로마 총독부가 있는 곳이었고, 살라미에서부터 바보까지는 160킬로나 되었는데, 바나바와 사울은 구브로 섬을 동쪽에서부터 서쪽까지 꿰뚫어 걸어갔습니다.
이곳은 아프로디테 여신을 숭배하는 신전도 있었습니다.
바예수라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인 마술사를 만나니
εὗρον ἄνδρα τινὰ μάγον, ψευδοπροφήτην Ἰουδαῖον, ᾧ ὄνομα Βαριησοῦς,
they found man certain magician, false prophet Jewish, whose name Bar-Jesus
직역하면 ‘그들은 바예수라 이름한 유대인 거짓 선지자, 마술사란 사람을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만나니’(εὗρον)는 부정과거로서(they found) 과거에 만난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바 예수’에서 ‘바’는 아람어로 아들이라는 뜻이고, ‘예수’란 말은 구약의 여호수아에서 나온 헬라어였습니다.
7절.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o was with the proconsul, Sergius Paulus, a man of intelligence. This man summoned Barnabas and Saul and sought to hear the word of God.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ὃς ἦν σὺν τῷ ἀνθυπάτῳ Σεργίῳ Παύλῳ, ἀνδρὶ συνετῷ.
who was being with the proconsul, Sergius Paulus, man intelligent
‘있으니’(ἦν)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being) 계속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총독’이란 구브로 섬이 로마 원로원이 지배하는 식민지의 통치자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지혜 있는 사람’이란 것은 서기오 바울 총독이 올바른 진리를 알고자 하는 열정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의미하고, 그래서 이 열정으로 인해 그는 바나바와 사울의 복음 전도를 듣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οὗτος προσκαλεσάμενος Βαρνάβαν καὶ Σαῦλον, ἐπεζήτησεν ἀκοῦσαι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he having called to [him] Barnabas and Saul, desired to hear the word of the God
‘불러’(προσκαλεσάμενο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alled) 단호하게 부른 것을 가리킵니다.
‘듣고자 하더라’(ἐπεζήτησεν ἀκοῦσαι)에서 앞의 단어는 부정과거로서(desired) ‘간절히 원했다, 바랐다’는 뜻이고, 뒤의 단어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hear) 단호하게 듣기를 간절히 원했다는 뜻입니다.
1. 여기 또 굉장히 중요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바보’라고 하는 도시에 일어난 사건은 선교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무슨 사건에 부딪치느냐 하는 전형적인 모델이 여기에 나옵니다.
2. 즉 선교지에 가면 무당을 만나게 됩니다.
이것은 오대양육대주 어느 나라에나 다 부딪히는 사건입니다.
그 지역의 토속신앙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지역의 전통적인 종교를 만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불교 유교 천주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당 즉 무속신앙이 문제입니다.
이 무속신앙은 우리 민족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정신체계입니다.
불교가 들어와도 무당이 다 잡아 먹어버립니다.
유교가 들어와도 무당이 다 잡아 먹어버립니다.
심지어 기독교가 들어와도 무당이 다 잡아 먹어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복신앙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속화 된 기독교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어느 나라에 가든지 이런 무속신앙을 맨 먼저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6절에 보니까 <바예수라 하는 거짓 선지자 박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1. 바예수의 '바'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무당이었습니다.
2. 두 번째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어느 곳에 가든지 예수님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이 꼭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7절에 나오는 <서기오 바울>입니다.
이 서기오 바울에 대해서는 성경에 ‘총독’이라고 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총독은 로마의 원로나 황제가 임명하는 지방 통치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권력이 있고 군사를 가지고 식민지 통치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총독이 자기 아래에 박수무당을 하나 데리고 있었는데, 바울이 전하는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총독이 <예수>에 대해서 들었는데, 누가 나에게 예수란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서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고 했습니다.
3. 무당이나 전통 세력은 언제나 복음에 대해서 방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진 사람을 예수 못 믿도록 전통적인 무당 세력이 개입을 해서 방해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8절의 말씀입니다.
8절. 이 마술사 엘루마는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그들을 대적하여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Elymas the magician (for so his name is translated) was opposing them, seeking to turn the proconsul away from the faith.
이 마술사 엘루마는 그들을 대적하여
ἀνθίστατο δὲ αὐτοῖς Ἐλύμας ὁ μάγος,
Was opposing but them Elymas the magician
직역하면 ‘그러나 마술사 엘루마가 그들을 계속 대적했다’는 뜻입니다.
‘대적하여’(ἀνθίστατο)는 미완료 과거로서(Was opposing) 계속 대적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엘루마’란 이름은 셈어로 ‘점쟁이’(sorcerer)나 ‘마술사’(magician)란 뜻입니다.
이 이름을 번역하면 마술사라
οὕτως γὰρ μεθερμηνεύεται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thus for means the name of Him
직역하면 ‘그의 이름은 그렇게 번역된다’는 뜻입니다.
여기 동사(μεθερμηνεύεται)는 현재형으로서 ‘번역하다, 통역하다’( translate, interpret)는 뜻입니다.
총독으로 믿지 못하게 힘쓰니
ζητῶν διαστρέψαι τὸν ἀνθύπατον ἀπὸ τῆς πίστεως.
seeking to turn away the proconsul from the faith
직역하면 ‘총독으로 믿음에서 떠나도록 힘쓰니’란 뜻입니다.
‘떠나도록 힘쓰니’(ζητῶν διαστρέψ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분사이고(seeking)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turn away) 단호하게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유대인이면서 마술사인 이 엘루마는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죄수라고 하고,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면서, 총독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했을 것입니다. Baker.
1. 이 박수는 <엘루마>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이 박수 엘루마가 총독 서기오 바울이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적극적으로 방해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방해는 여러분의 주변에도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예수를 믿으려고 하면 그 주변 사람들이 못 믿게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괜히 난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역사입니다.
이상한 일들이 막 생깁니다.
어떤 성도가 예수를 믿지 않는 집에 시집을 갔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누가 예수를 믿으려고 하면, 주변에서 벌떼처럼 난리를 칩니다.
그것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3장에도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마을이나 기관이 기독교로 변신하려고 하면 그 지역의 귀신들이 대적합니다.
국가가 변하려고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바나바와 사울은 어떻게 대처를 했습니까?
9절.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Saul, who was also known as Paul, filled with the Holy Spirit, fixed his gaze on him,
바울이라고 하는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그를 주목하고
Σαῦλος δέ, ὁ καὶ Παῦλος, πλησθεὶς Πνεύματος Ἁγίου, ἀτενίσας εἰς αὐτὸν
Saul then, the also Paul, having been filled Spirit Holy, having looked intently to him
‘충만하여’(πλησθεὶ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filled) 갑자기 성령이 완전히 충만해진 상태를 가리킵니다.
‘주목하고’(ἀτενί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looked intently) 눈을 부릅뜨고 주목하여 바라보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사울’이란 이름은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여기서부터는 사울이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는데, 그 이유는 바울이 구브로 총독에게 성공적으로 복음을 전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 전파를 하기 때문에, 유대식 이름인 사울보다는 로마식 이름인 바울로 처신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바울(사울)이 서기오 바울이라는 총독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한 무당 엘루마를 기적적으로 처벌함으로써, 크게 명성을 얻은 사울이 총독의 이름을 따서 바울이라고 부르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Baker.
박수 엘루마를 대적하도록 사울을 충동시키신 이는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여기서 바울이 박수 엘루마를 주목하여 본 것은 바울이 자신의 몸에 육체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고 한 것이(고후 12:7) 바울의 눈병이 아님을 입증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Ramsay, ibid. 97)
1. 9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박수 무당을 제압하는 방법 세 가지가 나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도 가정과 직장과 사회의 마귀들을 다 쫓아내시기 바랍니다.
이 사회에 있는 모든 지역에도 예수님에 대해서 방해하고 대적하는 모든 대적들이 있습니다.
2. 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요?
어떻게 무당을 대적하는가요?
첫째 바울은 박수 무당을 ‘주목했다’고 했습니다.
즉 주저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다 뜻입니다.
이것은 영적 전투를 의미합니다.
마귀의 종들을 대적할 때는 겸손히 꼬리를 내리거나 등을 돌리거나 눈을 피하면 큰일 납니다.
싸우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눈을 뜨고 직시해야 합니다.
마귀가 피해 달아날 때까지, 주목하고 대적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쫓아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투이고, 복음 전도입니다.
야고보서 4:7.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피하리라.
10절. 이르되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said, "You who are full of all deceit and fraud, you son of the devil, you enemy of all righteousness, will you not cease to make crooked the straight ways of the Lord?
이르되
εἶπεν
said
‘이르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말했다’는 뜻인데, 단호하게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Ὦ πλήρης παντὸς δόλου καὶ πάσης ῥᾳδιουργίας,
O full of all deceit and all craft
‘악행’(ῥᾳδιουργίας)이란 단어는 ‘안이함, 게으름, 무도함, 악함, 교활함’(ease in doing, laziness, recklessness, wickedness, craftiness) 등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υἱὲ διαβόλου, ἐχθρὲ πάσης δικαιοσύνης,
son of devil, enemy of all righteousness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οὐ παύσῃ διαστρέφων τὰς ὁδοὺς τοῦ Κυρίου τὰς εὐθείας;
not will you cease perverting the ways of the Lord the straight?
‘굽게 하기를’(διαστρέφων)은 현재분사로서( perverting) 계속 굽게 하는 것을 가리키고, ‘그치지 아니 하겠느냐’에서 동사(παύσῃ)는 미래형입니다(will you cease).
‘주의 바른 길’이란 인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을 가리킵니다(신 32:4, 호 14:9).
1. 둘째 바울은 무당 엘루마에 대항하여 소리쳐 꾸짖었습니다.
<모든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
이처럼 마귀의 종을 대적하려면, 성령이 충만해야 됩니다.
성령 충만도 안 하고, 기도도 안 하고 마귀를 대적하려고 하면, 무엇이라고 하는지 압니까?
‘너나 잘해라’ 그럽니다.
마귀의 종도 영물이라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는 것을 너무나 잘 압니다.
여러분이 예수 잘 믿는 척 하지만 뒤에서 나쁜 짓하고 비신앙적인 행위를 한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너 어제 뭐했어, 그러고 날 쫓아’ 이러고 나옵니다.
그래서 마귀를 대적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많이 기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 많이 하고, 성령 충만해 있으면, 마귀의 종들이 애들 같이 약해집니다.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후 불면 훅 날아갈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고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얼마나 마귀의 종들이 무서워 보이는지 몰라요.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면, 담대히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2. 특히 음란한 마귀의 종은 부드럽게 대해서는 안 됩니다.
음란한 마귀의 종에게 인격적으로 대해서 이기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음란한 마귀의 종은 타협하지 말고, 단호히 꾸짖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랬습니다.
“너는 거짓과 악행이 가득한 자다”고 선언했습니다.
“너는 마귀의 자식이요, 의의 원수다”
“너는 주님의 길을 굽게 하는 마귀의 자식이구나”
이렇게 마구 야단치고, 대적했습니다.
우리는 하루를 시작할 때, 기도 많이 하고,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심방을 가도 성령 충만하고, 심방할 가정을 위해서 기도하고 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 집에 난리가 안 나요.
성령 충만하도록 기도하고, 마귀를 제압해야 합니다.
11절.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behold, the hand of the Lord is upon you, and you will be blind and not see the sun for a time." And immediately a mist and a darkness fell upon him, and he went about seeking those who would lead him by the hand.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καὶ νῦν ἰδοὺ, χεὶρ Κυρίου ἐπὶ σέ,
and now behold, hand of Lord upon you
‘보라’(ἰδοὺ)는 부정과거 명령형으로서(behold) 주의를 환기시키는 단호한 명령입니다.
‘있으니’란 동사는 원문에 없으나, 한글 번역은 올바른 번역입니다.
네가 맹인이 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καὶ ἔσῃ τυφλὸς, μὴ βλέπων τὸν ἥλιον ἄχρι καιροῦ.
and you will be blind, not seeing the sun during season
‘맹인이 되어’에서 동사(ἔσῃ)는 미래형이고(you will be), ‘보지 못하리라’에서 동사(βλέπων)는 현재 분사로서(seeing) 계속 보지 못하는 상태로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박수 엘루마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 아니고 일시적인 맹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와 헤롯 아그립바 왕은 죽음의 형벌을 당했으나, 이 박수 엘루마는 일시적으로 맹인 되는 형벌로서 비교적 가벼운 형벌이었습니다.
즉시 안개와 어둠이 그를 덮어
παραχρῆμα δὲ ἔπεσεν ἐπ’ αὐτὸν ἀχλὺς καὶ σκότος,
immediately then fell upon him mist and darkness
‘덮어’(ἔπεσεν)는 부정과거로서(fell) ‘덮었다’는 뜻인데, 갑자기 덮은 것을 가리킵니다.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καὶ περιάγων, ἐζήτει χειραγωγούς.
and going about, he was seeking someone to lead [him] by the hand
직역하면 ‘돌아다니면서 그가 손으로 인도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돌아다니면서’(περιάγων)는 현재분사로서(going about) 두리번거리면서 더듬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구하는지라’(ἐζήτει)는 미완료과거로서(he was seeking) 계속 구하고 있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1. 셋째 바울은 마귀의 자식에게 형벌(저주:아나데마)을 선포했습니다.
'네가 맹인이 될지어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박수 무당이 즉시 맹인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를 방해하는 박수 무당을 벌주었습니다.
2. 박수 엘루마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 아니고 일시적인 맹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12절.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n the proconsul believed when he saw what had happened, being amazed at the teaching of the Lord.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τότε ἰδὼν ὁ ἀνθύπατος τὸ γεγονὸς,
then having seen the proconsul that having happened,
‘된 것을’에서 동사(γεγονὸς)는 완료 분사이고(having happened), ‘보고’(ἰδὼν)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seen) 확실히 본 것을 가리킵니다.
믿으며
ἐπίστευσεν,
he believed
‘믿으며’(ἐπίστευσεν)는 부정과거로서(he believed) 확실하게 믿었다는 뜻입니다.
주의 가르치심을 놀랍게 여기니라.
ἐκπλησσόμενος ἐπὶ τῇ διδαχῇ τοῦ Κυρίου.
being astonished at the teaching of the Lord
‘놀랍게 여기니라’(ἐκπλησσόμενος)는 현재분사로서(being astonished) 계속 놀랍게 여기고 있는 모습을 가리키고, 원형(ἐκπλήσσω)은 ‘충격적으로 놀라다, 놀라서 공포에 사로잡히다, 놀랍게 여기다, 놀라다’(strike out, strike with panic, amaze, astonish)는 뜻입니다.
1. 마가복음 16:19. '믿고 세례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정죄가 이르리니 믿는 사람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귀신들을 쫓아내고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음을 얻으리라.
예수 믿는 것은 도덕이나 윤리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것은 구원이고, 마귀와 영적인 싸움에서 사람을 건져내는 것입니다.
2. 안디옥교회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이 등장한 것을 잘 압니다(행 11:26).
그런데 9절에서 처음으로 바울이라는 말이 등장을 합니다.
이제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바울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사울은 <큰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울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보잘것없는 사람, ‘나는 작은 자요’라는 신앙적인 겸손을 그가 갖게 됩니다.
바울의 신앙, 바울의 고백을 보면, 그는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지극히 작은 자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
이 말은 “나는 정말 부족한 사람입니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는 뜻입니다.
개인이나 교회가 이런 고백을 하고 있을 때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가 부흥할 때 갖는 실수는 자기의 과시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큰 교회이고, 대한민국에서 일 제일 많이 하는 교회다”고 할 때 끝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과 교회는 영원히 겸손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기도하여 늘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를 방해하고, 성도들을 대적하는 마귀를 물리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고, 날마다 복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