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의 전반기가 훌쩍 지나가고 본격적인 휴가철인 7월에 접어들었다. 오늘은 한 달 가까이 쉬었던 라이딩을 다시 시작하는 날이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꺼내들고 친구들과 함께 길을 나서니 마음부터 설렌다. 라이딩의 출발점은 안양역이다. 함께한 라이더 전사들은 모두 6명, 쉐도우수, 블랙캣, 바이크 손대장, 람보림, 오벨로 그리고 나였다. 특히 오밸로(람보림 부인)는 홍일점으로 함께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분위기를 한층 더 밝게 만들어 주었다. 오전 10시. 출발 신호와 함께 페달을 밟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없이 맑았고 태양은 눈부실 만큼 강렬했다.
바람마저 잠잠하여 한여름 라이딩으로는 만만치 않은 날씨였지만,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기분만큼은 상쾌했다. 시내를 벗어나 안양천으로 접어들었다. 충혼2교를 지나 박달로와 동서로, 목감둘레길을 따라 약 40분간 달리자 물왕저수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수지는 잔물결 하나없이 고요했고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였다. 왜가리들은 패러글라이딩처럼 커다란 날개를 펼친 채 수면 가까이 날아다니며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저수지 주변에는 수 십명의 강태공들이 텐트와 파라솔을 펼쳐 놓고 더위도 잊은 채 낚시에 몰두하고 있었다.
물왕저수지의 물은 보통천을 따라 흘러 소래포구 앞바다로 이어진다. 물왕저수지를 뒤로하고 동서로를 달려 연성초등학교를 지나 제3경인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니 연꽃마을 아파트 주변에 이르렀다. 왼쪽 야산에는 조선시대 문신 강희맹 선생의 묘가 자리하고 있었다. 양지바른 곳에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울타리가 둘러져 있어 가까이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강희맹 선생은 1424년에 태어나 18세의 젊은 나이에 과거에 장원급제했으며, 병조판서와 좌찬성 등을 지낸 인물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는 문장가이자 화가로 활동했으며,
농업에 관한 저술인 <금양잡록>을 남겼다. 특히 농사와 농촌생활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긴 인물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강희맹 선생의 묘에서 조금만 달리면 오늘 라이딩의 첫번 째 목적지인 관곡지, 즉 시흥 연꽃테마파크가 나타난다. 관곡지는 강희맹 선생이 중국에서 연꽃씨를 가져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그 연꽃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곳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은 여름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마침 7월의 연꽃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하얀 꽃잎에 연분홍빛이 살짝 물든 연꽃들이 푸른 연잎 사이에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있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 피어난 연꽃은 오히려 더 아름다워 보였다. 연꽃은 아침 햇살을 받으면 꽃잎을 활짝 열고 해가 기울면 다시 오므린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태양을 따라 펴고 지는 '태양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7월과 8월은 연꽃이 가장 아른다운 계절이다. 연꽃테마파크 주변은 주말을 맞아 찾아온 차량과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도로 양쪽에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주차장을 방불케 했다.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연꽃 사이를 누비며 여유롭게 감상하고 싶었지만,
무더위와 많은 인파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관곡지를 뒤로하고 보통천을 따라 다시 페달을 밟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포장도로는 비포장길과 자전거길로 이어졌다. 약 40분을 달리자 팔각형 모양의 정자가 눈에 들어왔다. 뜨거운 햇볕 아래 달리느라 땀은 비 오듯 흘렀고 얼굴은 화끈거렸다. 우리는 정자에 자전거를 세워 놓고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정자 주변은 온통 푸른빛이었다. 정면으로는 보통천이 갯벌을 드러낸 채 조용히 흐르고 있었고, 멀리 갈매기 몇 마리가 옹기종기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풍경을 바라보니 어린 시절의 기억이 문득 떠올랐다.
어릴 적 바다물이 빠지고 나면 소꼽친구들과 시냇가나 갯벌로 달려가 갯지렁이와 게, 뱀장어, 망둥이를 잡으며 신나게 놀곤 했다.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하면 참 낭만적이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나는 바다를 무척 좋아한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세상의 번잡함도 잠시 잊게 된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초승달 모양의 목재 다리를 지나 시흥갯골생태공원을 가로질렀다. 가족단위 나들이객과 연인들이 공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S자 모양으로 높이 솟은 전망대와 옛 폐염전의 흔적도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의 시선을 한순간에 사로잡은 독특한 다리가 나타났다. 자전거를 형상화한 듯한 아름다운 모습의 다리였다.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감탄했다. 바로 미생의 다리였다. 특히 밀물 때 바닷물이 들어오면 다리와 주변 풍경이 물 위에 거울처럼 비쳐 데칼코마니(decalcomanie)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일출이나 일몰과 어우러지면 더욱 황홀한 풍경이 펼쳐진다고 하니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촬영 명소가 아닐까 싶었다. "정말 멋진 다리네" 다음에 꼭 다시 와야겠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함께한 쉐도우수도 처음 보는 다리라며 연신 감탄했다. 미생의 다리를 뒤로하고 다시 20분 정도 달리자 드디어 소래습지생태공원에 도착했다. 광활했던 옛 폐염전이 생태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난 곳이다. 바둑판처럼 가지런히 나뉜 염전과 오래된 소금창고가 옛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넓은 갈대밭 한가운데에는 네덜란드풍의 커다란 풍차가 서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곳곳에는 방문객들이 쉬어 갈 수 있는 정자가 마련되어 있었고, 갯벌에서는 염생식물인 칠면초가 군락을 이루며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다.
어린 시절 들판과 갯벌에서 흔히 보았던 식물이었지만, 이제는 도시에서 쉽게 만나기 어려운 귀한 풍경이 되어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날씨도 너무 더웠다. 소래습지생태공원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발길을 돌렸다. "다음에는 시간을 넉넉히 잡고 꼭 다시 와야겠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소래포구를 향해 마지막 페달을 밟았다. 소래포구에 도착한 우리는 대복횟집에 자리를잡았다. 오늘의 주메뉴는 민어회였다. 민어는 예로부터 여름철 보양식으로도 사랑받아온 생선이라 그런지 살이 쫄깃하면서도 부드럽고 담백했다.
더구나 오늘 점심은 블랙캣 경흠이가 아들의 결혼 답례로 마련한 자리였다. 친구의 따뜻한 마음씨까지 더해져 음식 맛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졌다. 시원한 맥주와 소주도 빠질 수 없었다. 갈증을 달래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술잔도 자연스럽게 오갔다. 평소보다 술을 조금 많이 마셨고 나 역시 오랜만에 친구들과 분위기를 맞추며 한잔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경흠이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오후 4시가 다되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소래포구역에 도착해 서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나눴다.
오늘은 찜통 같은 무더위 속에서 무리하지 않게 라이딩하고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했다. 총 주행거리는 약 30km. 짧은 거리였지만 물왕저수지의 고요한 물결, 강희맹 선생의 역사적 자취, 관곡지의 아름다운 연꽃, 시흥갯골의 갯벌과 미생의 다리, 그리고 소래습지의 붉은 칠면초까지 참으로 많은 풍경을 만났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친구들과 함께 달렸다는 사실이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리다 보면 몸은 조금 힘들지만 마음은 오히려 가벼워진다.길 위에서 친구들과 웃고 이야기를 나누며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바라보는 순간, 그것이 바로 여행의 즐거움이고 인생의 작은 행복이 아닐까 싶다.
라이딩을 마치고 나면 늘 마음이 상쾌하다. 그리고 일주일이 다시 기다려진다. 다음에는 어떤 길을 달릴까.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까. 또 친구들의 밝은 얼굴을 언제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자전거와 함께 노년을 보내고 싶다. 건강도 챙기고, 아름다운 곳을 찾아 여행도 하고, 오렌 친구들과 덕담을 나누며 웃을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삶이 어디 있겠는가.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나에게 자전거는 건강을 선물하고, 여행의 즐거움을 안겨주며, 친구와 우정을 이어주는 소중한 동반자다. 뜨거운 햇살 아래 함께 달렸던 오늘 하루도 그렇게 한 권의 추억 속에 고이 담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