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산타
이삭빛 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보라, 후백제의 견훤이 호령하던 동고산성 거친 능선 위로
오백 년 조선의 왕기(王氣)를 품은 눈발이 디지털 신호처럼 쏟아진다.
역사의 기와지붕마다 촘촘히 깔린 빛의 신경망이 전율하며 깨어나는 밤!
잠든 풍패지관의 차가운 돌바닥을 지나
전주천 맑은 물줄기를 타고 거슬러 오르는 미래의 거친 맥박이 있다.
저기 승암산 깊은 어둠을 가르는 초월적인 붉은 섬광을 보라!
그것은 0과 1의 차가운 미로를 뚫고 나온 뜨거운 영혼의 질주.
오목대 언덕을 박차고, 경기전 대나무 숲을 단숨에 가로질러,
덕진공원 연화교 위를 광속으로 달리는 루돌프여.
네가 내뿜는 거친 입김은 데이터의 구름이 되어 지구 반대편까지 닿고
네가 밟는 곳마다 잠든 연꽃들이 천 개의 눈을 뜨며 세계를 응시한다.
그 등 뒤에 천년의 멋을 짊어진 산타가 온다.
물질의 풍요보다 더 귀한, 영혼을 울리는 K-문화의 바람을 싣고.
전동성당의 은은한 종소리에 판소리의 굵은 핏줄을 섞어
그의 낡은 배낭 속에서 꺼낸 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다.
가장 한국적인 색채로 세계인의 가슴을 물들일
단단한 시(詩)의 언어들과, 국경을 넘는 묵직한 흥(興)과 정(情)이어라.
풍남문의 굳게 닫힌 빗장을 우렁차게 열어젖히며
남부시장에서 시작된 파동이 뉴욕의 마천루와 파리의 새벽을 흔든다.
"일어나라! 초연결된 이 땅의 모든 외로운 발들아!"
그가 건네는 시 한 구절은 만국 공용어인 생명의 물이 되어
차가운 알고리즘의 시대, 식어가는 인류의 혈관을 다시 뜨겁게 데우니
비로소 전주는, 지구촌의 심장을 뛰게 하는 거대한 구원의 밥상이 된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하고 AI가 인간의 지성을 넘보는 날이 와도
우리는 기억하리라, 그 어떤 기계도 흉내 낼 수 없는 이 뜨거운 온기를.
루돌프의 힘찬 발굽 소리에 맞춰 전주성을 돌며
가장 오래된 흙의 기억으로, 가장 앞선 미래의 생명을 불어넣는
저 붉은 옷의 선구자, 세계의 중심에 우뚝 선 전주 산타를!
우리는 이 땅의 살아있는 신화로, 온 세상에 뜨겁게 선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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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노트]
차가운 알고리즘의 설원(雪原) 위, 부활하는 천년의 심장
이삭빛(문학박사/문학평론가)
1. 디지털의 겨울, 우리는 왜 다시 시(詩)를 찾는가?
바야흐로 0과 1의 비트(Bit)가 폭설처럼 쏟아지는 디지털의 겨울이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지능을 넘보는 '특이점(Singularity)'의 시대, 우리의 삶은 빛의 속도로 편리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슴 한구석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시려오곤 한다.
차가운 금속성의 논리가 지배하는 이 알고리즘의 세상에서, 인간의 고유한 온기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나는 그 해답을 가장 오래된 땅, 전주의 흙냄새 속에서 찾았다. 시(詩)는 차가운 기계 문명에 저항하는 가장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무기이자, 영혼을 데우는 마음의 온돌이기 때문이다.
2. 법고창신(法古創新), 박제된 과거를 깨우다
나는 이 시를 통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을 노래하고자 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처럼, 천년 전주가 품은 역사는 박물관 진열장 속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다. 후백제 견훤의 웅대한 기개와 조선 오백 년을 지탱한 왕기(王氣)는, 오늘날 최첨단 AI 기술과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뜨겁게 껴안는다. 과거의 거친 맥박이 미래의 데이터와 만나 거대한 부활을 시작하는 것이다. 전주의 기와지붕 곡선은 단순한 건축 양식이 아니라, 세계로 뻗어 나가는 K-문화의 가장 뜨거운 활주로가 되어 우리를 비상하게 한다.
3. [사랑의 본질] 위대한 사랑으로 빚어낸 정서적 바느질
빈자의 성녀 마더 테레사는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없다. 오직 위대한 사랑으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고 했다. 나의 '전주 산타'는 화려한 명품을 뿌리는 자본주의의 산타가 아니다. 남부시장 피순대 국밥집의 투박한 뚝배기처럼, 식어가는 현대인의 가슴에 시(詩)라는 이름의 뜨끈한 국물을 부어주는 존재이다. 그가 건네는 선물은 계산된 거래가 아니라, 세상살이에 베이고 찢긴 영혼을 한 땀 한 땀 꿰매주는 정서적 바느질이자, 치유와 위로의 붉은 실타래이다.
4. [세계화의 비전] 가장 전주적인 것이 세계를 흔든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라. 그러면 그것은 세계적인 노래가 될 것이다'라고 역설했다. 나는 꿈꾼다. 전주천을 거슬러 오르는 이 생명의 파동이 태평양을 건너 뉴욕의 마천루와 파리의 새벽을 흔들어 깨우는 꿈을. 우리가 가진 '흥(興)'과 '정(情)', 그리고 역동적인 '한(恨)'의 정서는 국경을 넘어 인류의 보편적 외로움을 달래줄 만국 공용어이다.
전주는 이제 단순한 지방 도시가 아니라, 지구촌의 멈춰가는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문화의 제세동기'이자 영원한 생명의 밥상이다.
5. [미래의 선포] 살아있는 신화, 그 영원한 온기를 위하여
세월이 흘러 강산이 변하고, AI가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는 날이 와도 결코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사람을 향한 따뜻한 눈맞춤이다. 전주 산타는 해마다 겨울이면 우리 곁으로 돌아와, 얼어붙은 땅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 부활의 상징이다. 루돌프가 밟고 지나간 자리마다 절망은 희망으로, 차가움은 뜨거움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 시가 읽히는 모든 곳에서,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산타가 되어주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그 붉고 뜨거운 사랑의 혁명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산타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