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7일 성금요일
좋은 금요일 Good Friday
찬송 : 146장 / 저 멀리 푸른 언덕에
본문 : 요한복음 19장 23-30절
요절 : 요한복음 19장 26절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받고 돌아가신 성금요일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예수의 지상 사명을 끝내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되신 예수는 빌라도의 재판정에 서셨습니다. 빌라도는 질문을 합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18:33). 이 질문은 요한의 복음서가 시작 할 때 나다나엘의 고백에서 들려졌던 것으로 요한의 독자들에게는 익숙한 질문입니다(요 1:49).
예수의 대답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오” 였습니다(18:36). 이 대답을 통해 빌라도는 예수에 대한 재판이 자신에게 속한 문제가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빌라도의 질문은 재판이 진행되면서 깊어집니다. “진리가 무엇이오?”(18:38), “당신은 어디서 왔소?”(19:9),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19:10).
질문을 통해 빌라도는 예수의 죄를 발견하지 못했지만 채찍질하고 조롱합니다. 빌라도에게 예수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고발은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이니이다” 입니다(19:7).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 못 박도록 넘겨줍니다.
빌라도는 유대 지도자들처럼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있습니다. 빌라도는 자신의 판단대로 할 수 있는 로마의 권세자입니다. 비록 유대 지도자들이 그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그의 결정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빌라도는 결국 자신의 결정에 따라 죄 없는 분을 십자가에 넘겨준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서 기자들의 십자가 사건을 대할 때 일반적으로 빠져 있는 것은 잔혹한 십자가형에 관한 서술입니다. 복음서 기자들은 집단으로 십자가에서 일어나는 피 흘리는 모습 같은 잔혹한 부분에 관한 서술을 생략합니다. 대신 그 사건에서 일어나는 공개적 수치에 더 집중하는데,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의 가족과 친구를 언급하는 것입니다(19:25).
당시 관습에 따라 십자가에 못 박힌 자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 역시 큰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들을 공개하는 것은 매우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복음서 기자가 십자가 곁에 서 있던 사람을 공개하는 것은 예수를 부인하고 어디론가 사라진 베드로의 부재를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대신해 그 자리를 지킨 사람은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참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에게 커다란 위로였을 것입니다. 고통의 절정에 있을 때 -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라할지라도 - 누군가가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고통의 무게는 크게 줄어들 수 있습니다.
성금요일은 영어로 ‘Good Friday’ 입니다. ‘Good’ 이란 일반적으로 ‘좋다’ 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날 예루살렘의 오후는 ‘good’ 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서 죄 없는 분이 억울하게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good’ 사건이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희망과 목적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고통을 받는 자와 함께 있었던 여인들이 어두운 그 날을 ‘good day’ 좋은 날이 되게 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고통을 받는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공적인 수치였으나 예수께는 위로가 되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여인들은 고통을 받는 예수와 함께하므로 어둡고 끔찍한 그 날을 좋은 날이 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로 다가가 그 고난을 기억하고 감사하면 우리도 그분의 고난 자리에 함께하는 것이며, 어두운 그 날을 좋은 날이 되게 합니다. 오늘이 당신에게 좋은 날일뿐만 아니라, 좋은 날로 만드는 당신의 헌신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당신은 수치스러운 십자가의 자리까지 그분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2. 당신에게 오늘이 좋은 날인 것처럼 예수께도 좋은 날이 되게 하려면 당신은 어떤 부분에 더욱 헌신해야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