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향한 보모들의 은혜 베푸는 것도 가히 병적이다. 주고 또 주고 온전히 주고도 모자란 듯 더 애걸하는 것을 볼 때면 이건 병이 아니고는 이럴 수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렇다. 이스라엘 왕 가운데 아합은 최고로 악하고 타락한 왕이며 그가 저지른 우상 숭배와 그의 아내 이세별의 말을 듣고 온 나라를 죄악으로 몰아간 죄는 당장이라도 심판을 받았어야 할 죄악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탐욕은 지나쳐 조상이 물러 준 왕궁 곁 나봇의 포도원을 탐하여서 탈취하기까지 하였다.
(왕상 21: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왕상 21:2)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왕상 21: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조상의 유산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아합은 자기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아내에게 말했고 이 간악한 이세벨은 거짓 증인들을 세워서 아합을 모함하여 돌로 쳐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아합에게 돌렸다.
(왕상 21: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이세벨이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왕상 21:16) 아합은 나봇이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아합은 어쩌면 요한의 목을 벤 헤롯처럼 탐욕스럽고 그러면서도 겁도 많은 참 못난 왕이었다. 스스로 죄악을 저지를 용기도 없으면서 아내 뒤에 숨어서 이세벨에게 더러운 일들을 시키면서 자신의 욕심을 채워 나갔던 것이다. 헤롯도 침례요한을 두려워해서 그를 처단하지도 못했던 것처럼 아합은 하나님의 선지자인 엘리야를 두려워했다. 헤롯에게는 간부 헤로디아가 있었고 아합에게는 이세벨이 있었다.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내려가는 아합을 만난 에리야는 (왕상 21:20) 아합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 대적자여 네가 나를 찾았느냐 대답하되 내가 찾았노라 네가 네 자신을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왕상 21: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왕상 21:27)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아합은 선지자의 말을 듣고 또 마음을 돌이켰다. 천하에 몹쓸 왕이며 그가 얼마나 발작적인 회개를 하는 사람인지 하나님이 너무 잘 아시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거의 병적이다. 이 탐욕스럽고 위선적인 왕의 가면을 벗겨서 그의 죄를 낱낱이 밝혀주어야 하지만 하나님은 오히려 이렇게 말씀 하셨다.
(왕상 21:28)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왕상 21:29) 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이렇게 하는데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병적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그분의 은혜는 핑계거리만 있으면 베풀려고 준비된 은혜다. 이 세상 누구라도 그가 만일 은혜 받지 못한다면, 그가 만일 구원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하나님의 병적인 은혜 베푸는 사랑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아버지!
아합에게 베푸신 하나님은 은혜를 봅니다. 이런 인생에게도 이렇게 베풀어 주셨건만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도 넘치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그 은혜의 품속에 빠져 살고 싶습니다. 그 은혜를 나누고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