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암항(東岩港) : 부산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 664-6번지
동암항에서 오시리아 해안산책로를 통해 오랑대로 갈 수도 있지만 반대편으로 가면 해동용궁사로도 연결된다.
기장군 기장읍 시랑리에 있는 동암항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공수포로 기록이 있고,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는 기장형 남면 비옥포로 기록된 오래된 포구 지역이다.
기장군 해안가에 예부터 있던 포구가 2001년 1월 29일 「어항법」 개정으로 어촌정주어항(漁村定住漁港) 지정 근거가 마련되어,
2004년 12월 27일 어촌정주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어촌정주어항은 어촌의 생활 근거지가 되는 소규모 어항이다.
방파제 225m에 물양장 323m를 갖추고 있는 어항으로 어업 인구 3,000여 명으로 부산광역시 총 어업 인구의 31.7%에 해당하며,
19개의 어촌계가 구성되어 있는 기장군의 연안 어업 지원의 근거지로 조성된 어항으로 최근 도심형어항으로 탈바꿈하여
해양관광어항으로의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왼쪽으로 힐튼호텔부산과 아난티코브, 그리고 오랑대로 연결되는 오시리아 해안산책길과 연결되고
오른쪽으로 국립수산과학관과 해동용궁사와 이어져
중간 가교역할을 하는 중요한 거점으로 자리잡을 듯 하다.
오늘은 동암항에서 해동용궁사까지 이동할 예정이다.
해동용궁사 주차장은 유료이긴 하지만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편하게 주차할 수 있다.
평일에는 선불로 3,000원을 지불하면 되고...
주말에는 기본 30분 2,000원에 매 10분마다 500원 1일 주차는 20,000원이다.
오전9시30부터 오후5시30분까지는 옆에 붙어있는 국립수산과학관에 주차를 하면 무료주차를 이용할 수 있다.
더불어 국립수산과학관을 무료 관람하는 것도 좋다. 특히 아이들과 방문하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른 시간에 방문하고자 하면 동암항에 무료주차를 하고 갈맷길을 조금 걸어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약 7~8분정도 걸어야 하지만 평지길이고 바다를 끼고 산책삼아 시간적 제약없이 여유롭게 즐기며 걷기를 추천한다.
청사포에서 일출을 보고 바로 왔기 때문에 조금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중간 벤치에서 잠시 쉬고계시는 노부부 만을 뵐 수 있었다. 갈맷길은 한적한 해안산책길이었다.
해동용궁사의 출입문이 늘 열려있는 것은 아니고 오전4시에 문을 열고 저녁8시에는 문을 닫는다.
드디어 용문석교를 지나고 맞이한 만복문(萬福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찰 The Most Beautiful Temple in Korea"
600여년 전인 1376년(우왕 2)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였던 나옹대사(혜근, 惠勤 1320-1376)가 창건하였으며,
임진왜란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대 초에 통도사 운강(雲崗)스님에 의해 보문사(普門寺)로 중창되었고,
1970년대 초 주석하시던 정암화상(晸庵和尙)이 관음도량으로 복원할 것을 발원하고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꿈에서 흰옷을 입은 관세음보살(백의관세음보살)이 용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
산 이름을 보타산(普陀山), 절 이름을 해동용궁사(海東龍宮寺)로 개칭하였다.
최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본사인 화엄사의 말사로 등록하였다.
만복문 왼편에는 사찰이나 불전의 문 또는 불상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인 금강역사(金剛力士)가 우뚝 서있다.
해동용궁사는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데,
특이하게 산속이 아닌 바닷가에 지어져 바다와 절이 어우러진 멋진 풍광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사찰이 바다에 인접하고 있어서 양양 낙산사와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를 꼽기도 한다.)
해가 제일 먼저 뜨는 절인 해동용궁사에서 진심으로 기도하면 누구나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소위 기도빨이 알려지자 요즘 외국인 참배객들도 줄을 잇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복스럽게 웃고있는 황금돼지 두 마리다.
왼쪽이 숫돼지이고 오른쪽이 암돼지로 보인다. 숫돼지는 직업과 재물의 복을 가져다주고 암돼지는 건강과 다산을 의미한다.
뒷편으로 가면 꼬리의 모양도 다르다. 숫돼지는 동전모양으로 안으로 말려있고... 암돼지는 퍼져나가는 의미로 밖으로 퍼져있다.
돼지는 복을 기원할 때 꼬리를 만지는 법이다. 잘 구분해서 만져야 한다.
모르면 그냥 둘다 만지면 돼지~
대웅전 앞에는 높은 기단위로 3층 석탑이 있다.
원래 기단의 네귀퉁이에 4사자가 탑을 받쳐들고 중앙에 용왕님이 호법신장하여 4사자 3층 석탑이었으나
전통적 신라석탑 형식과 다소 다르다는 비판이 있어서 지금은 기단의 4면을 모두 막아 이제는 그냥 3층 석탑이 되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3m 높이의 용두암이라고 불리던 바위(미륵바위)가 있었는데
임진왜란때 절이 폐허가 되고 6.25전쟁 때 해안경비망 구축으로 파괴됨에 따라,
1990년에 정암화상이 파석을 모으고 손상된 암벽을 보축하여
이 석탑을 세우고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불사리 7과를 봉안하여 진신사리탑이 되었다.
그리고 바로 가람배치의 커다란 두 개의 석등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며 2017년 "평화의 불" 분등을 기념한 평화의 불 비석도 있다.
평화의 불은 전 세계 53개국에서 피워 올린 불을 하나로 합한 "UN평화의 불"과
히말라야에서 자연 발화해 3000년째 한 번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영원의 불"을 합친 불이다.
바다쪽으로 한걸음 다가서 암벽 위에 위치해 있는 3층석탑의 모습을 하늘과 바다와 함께 조망하면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이라는 닉네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는데...
원통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만날 수 있는 해수관음대불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바다의 파도와 해안의 바위들과 어우러지는 3층석탑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다.
해동용궁사의 아름다움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바닷가에 그대로 자리를 잡아 그대로 바다를 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찰이 주변경관에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삼청지(三淸池) 16나한석상(十六羅漢石像)
그런데... 나한석상이 16개가 아니라 14개다. 두개는 어디있는 거지?
나중에 용문석교에서 봤더니 왼쪽에 2개의 석상이 건물에 숨어져 있었다. 또 그때는 오른쪽 2개의 석상이 보이지 않았다.
사찰의 개보수 과정에서 나온 석물들을 버리지 않고 이렇게 모아 놓았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본존 불상을 모신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大雄寶殿)은 1970년경 정암스님이 중창한 이후 지난 2007년 재신축한 건물이다.
대웅(大雄)은 마하비라를 번역한 것으로 석가모니불에 대한 많은 존칭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를 모신 사찰의 중심 건물을 대웅전 또는 대웅보전이라고 한다.
대웅보전이라 할 때는 대웅전의 격을 높여 부르는 것으로 석가모니불의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를 모시고
다시 각각의 좌우에 보좌하는 보살을 모신다.
대웅보전 현판 양 옆에 여의주를 문 두마리 용의 머리가 매우 인상적이다.
석양모종이라고 해저문 석양에 들려와 듣는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그 종소리가 이 종소리인지...
가는 사람은 아쉬워 울고, 오는 사람은 좋아서 울고...
대웅보전을 오른쪽으로 돌면 정면으로 천도제를 올리는 장소인듯 보이는 공간이 보이고 옆으로 광명전(光明展)이 있다.
광명전에는 부처님이 누워계신 형태의 와불상인 광명전와불(光明展臥佛)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대웅보전에서 삼층석탑을 바라보면 마치 바다에 떠있는 배처럼 보이기도 한다.
대웅보전의 왼쪽편엔 미륵보살의 화신이라는 존경을 받는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짓고있는 포대화상(布袋和尙)이 자리하고 있다.
당나라 말기부터 오대 십국 시대까지 명주(현재의 중국 저장성 닝보시)에 실재했다는 전설적인 불승이다.
흔히 수묵화의 좋은 소재로 여겨지며 큰 포대를 멘 배불뚝이 승려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포대화상 앞 심상치 않아 보이는 양 옆의 소나무 사이길을 지나면...
비룡(飛龍)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무기도 아니고 여의주를 물고 있지 않고 드래곤볼처럼 손에 들고있다.
비룡의 입 형태로 보아 처음에 여의주의 존재는 고려치 않고 제작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손에 들고 있는 듯이 보인다.
아기부처를 씻기는 걸 관불의식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관욕불(灌浴佛)"이라고 쓰여 있다.
오른편에서 한 바가지 떠서 소원을 빌며 정성들여 세 번에 나누어 머리위에 부으면 된다.
따로 기원하는 것이 없이 그냥 의식만 진행할 때는 세번 물을 떠서 그냥 부어도 좋다.
사실 부처님 씻기는 것이라기 보다는 본인의 물욕을 씻고 마음의 평안을 찾는 거겠지...
관욕불 바로 뒷편에는 신비하게도 절의 지하에 위치한 약수터 "감로약수(甘露藥水)"가 있다.
바닷가에 위치에 있음에도 바닷물이 아닌 민물이 흐르고 있어 신비의 약수터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전 넣지 마세요"란 문구가 있는 걸로 봐서는 동전을 던져 놓았던 모양이다. 오염되어서 감로약수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할 듯...
누가 그런 못된 짓을 했을까?
신비한 약수터이기는 하지만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으니 물을 마시는 일은 아무래도 삼가해야 할 듯 싶다.
대웅보전 좌측에 포대화상이 있고, 그 다음에 삼성각 대신 용왕을 모시는 용궁단이 있다. 그리고 원통문을 통해 계단을 오르면
10m 높이의 단일석재로 제작된 해수관음대불이 바다를 향해 자비로운 미소를 짓고 계신다.
해수(海水)는 바다물이라는 뜻이요 관음(觀音)이란 관세음 보살님의 약칭이니 바다에 계시는 아주 큰 관세음보살님이란 뜻이다.
해수관음대불은 단일석재로는 한국최대 석상이라고 한다. 양양 낙산사에 있는 해수관음상은 단일석재가 아닌 모양이다.
해수관음대불에서 바라보면 해동용궁사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저 멀리 오시리아 해안산책로까지 선명하게 다가온다.
관세음보살님은 33가지의 방편으로 중생들에게 나타나시는데 관세음보살님의 명호를 열심히 부르면
아무리 어려운 일도 안될 것이 없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님의 33가지 모습을 모두 뵙고 도움을 청할 것이 있어서 해수관세음대불을 33바퀴를 돌며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다음날 어김없이 그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셨다.
서울에서 급하게 부산으로 내려와 이틀동안 오랑대와 해동용궁사를 찾은 보람이 있었다.
불교신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현세구복적인 불교에 기대기 위해 가끔 해동용궁사를 찾는다.
누구나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데 누구나라면 불교신자가 아니라도 들어주지 않을까?
필요할 때만 찾는다고 너무 이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종교는 개인적으로 좀 이기적이었으면 좋겟다는 생각을 한다.
절과 교회를 위해서 스님과 목사님을 위해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종교활동 만큼은 오롯이 나 자신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희생하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도 사실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는 마음을 갖기 위한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한 것이더라...
해수관음대불에서 눈에 담은 모습은 사찰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자연의 정취다.
내려가는 길도 예사스럽지 않다. 아주 잠시지만 마치 산을 올라왔다가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다 내려와서 거꾸로 사진에 담아본다. 오른쪽으로 올라가서 왼쪽으로 내려온다.
해수관음대불로 가는 길 "원통문(圓通門)"
심성즉감(心誠卽感) 하시고, 유구필응(有求必應) 하시다.
영월당(迎月堂) 요사채(寮舍寨)로 가는 수인문(受仁門)은 스님들의 수련을 위해서 절대 출입금지다.
정말 바다를 그대로 품고 그림같은 풍광을 담은 아름다운 사찰이다.
다시 아치형의 용문석교를 반대로 건넌다.
용문석교 위에서 16나한상을 보면 오른쪽 끝 2개는 보이지 않고 역시 14개만 보인다.
그리고 삼청지(三淸池)를 만들어 놓았는데... 행운의 동전 점을 보는 곳이다.
첫번째 거북이 등위의 돌항아리는 그래도 큰데... 두번째 연꽃 위에 동자승이 무릎끓고 들고있는 돌항아리는 조금 작아 보인다.
그런데 주변 동전들을 보면 성공률은 그리 좋지 못한 듯 하다.
진짜 저 두 항아리에 순서대로 동전을 넣은 사람이 있을까?
동영상 촬영을 하다 지나친 바닷가 방생터 바위 끝자락에 모신 지장보살을 만나뵈러 간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중생을 모두 구제하고서 성불하시겠다는 원력을 세우시고 지금도 지옥에 계신다.
용문석교 지붕에도 많은 동전들이 올려져 있다.
용문석교 반대편 현판은 "해인삼매(海印三昧)"라 써있다.
번뇌가 끊어진 부처의 마음 가운데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법이 뚯렷이 나타났다 하여 일컫는 말로
대양의 모든 사물이 골고루 깊이 투영되는 듯한 마음의 고요함을 뜻한다. 해동용궁사를 떠날 때 마음이 평온하라는 말씀이다.
이어서 108 장수계단(百八 長壽階段)이 이어진다.
108번뇌를 참회와 정진으로써 보리(普提)로 승화시키는 수행방법인 108배에서 기인한 것이다.
108 장수계단을 오르는 중간에 "해가 제일먼저 뜨는 절" 일출 지상보살이 있는 해상법당을 가리키는 것이다.
동해 갓바위 부처님으로 불리는 약사여래불을 모신 독특한 약사불전(藥師佛展)이 있다.
좌우에 200년 된 향나무 두 그루가 있다. 오른쪽에는 음향수라는 향나무, 왼쪽에는 양향수라는 향나무가 자라고 있어
부처님을 "쌍향수불(雙香樹佛)"이라고도 부른다.
바다를 등지고 앉아 계시는 금빛 지장보살상이 있는 해상법당에서 보는 해동용궁사의 전경 모습도 인상적이다.
해수관음대불에서 보는 풍광은 자연미가 돋보였는데 거꾸로 이곳에서 보는 해동용궁사는 세상 사찰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대로 갈맷길로 주차를 한 동암항으로 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여유롭게 쭉 한바퀴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다시 108 장수계단 중간으로 가서 조금 더 오르면 학업성취불(學業成就佛)이 있다.
그리고 다시 108 장수계단이 이어진다.
내가 이세상에 올때는 어느곳으로 부터 왔으며
죽어서는 어느곳으로 가는고!
재산도 벼슬도 모두 놓아놓고
오직 지은 업을 다라 갈 뿐이네
<법구경에서>
용문석굴로 올라가는 108 장수계단을 다 오르면...
올라가는 왼쪽편으로 108 장수계단 표지석이 있다.
용문석굴(龍門石窟)은 짧지만 울림도 있고 이질적인 두 개의 세상이 만나는 접점이자 완충지로서의 역할을 한다.
용문석굴 입구의 모습이다.
돌을 쌓아서 만들었지만 정말 정교하고 튼튼하게 쌓은 것 같다.
돌아서면 멀리 일주문이 보이고 중간쯤에 득남불(得男佛)을 만나볼 수 있다.
남아선호사상 같아서 위화감도 있지만... 우연의 일치겠지만 나는 아들만 셋이다. 이후로 아내는 절대 만지지 않았다.
포대화상의 코와 배를 만지면 득남한다는 소문에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있다. 그런데 귀도 만지는 모양이다.
일주문 앞에 커다란 탑이 있다.
반대편에 가면 탑의 정체를 알 수 있는데... 알면 실망할 수도 있다.
바로 교통안전기원탑이다.
바다로 나간 고깃배의 안전을 기원하고 육지 자동차, 자전거, 버스 등의 교통수단의 안전도 도모한다.
현세구복 불교의 또 하나의 모습으로 이해한다.
너의 과거를 알고 싶거든 지금 네가 받고 있는 것을 보고
너의 미래를 알고 싶거든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보아라
어디 독서실이나 스터디카페에 써 있을 만한 글귀도 있다.
造一方淨土(조일방정토) 結萬衆善緣(결만중선연)
이 한곳에 부처님의 정토를 조성하여 만 중생에게 선연을 맺게한다.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靑山)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靑山)이 한 곳에 뫼단 말가
하물며 청풍명월(淸風明月) 있으니 여기곳 선경(仙境)인가 하노라
<춘원 이광수>
"용궁사의 밤" 작사 정암스님 작곡 작곡 배신영 노래 최유나
파도소리 철석 철석 밀려오는 용궁사에
수도승의 염불인가 용녀의 하소연이가
백팔계단 석불전에 슬피우는 여인은
꿈같은 첫사랑도 떠나버린 그 사람도
속세에 다 묻어놓고 백일정성 올리는데
아~ 아~ 용궁사에 풍경소리 나를 울리네
평일이고... 이른 시간이고... 그래서 아무도 업지만 원래 해동용궁사는 많은 관람객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제주도 돌하루방이 왜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에서 와도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게 해주는 모양이다.
십이지신상도 있고...
보리달마대사 옆으로 재미있는 의자도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