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따라 산길 따라
김 선 구
거실창문을 통하여 밖을 내다본다. 가까이에 있는 공원에는 햇볕이 창연하고 꽃들이 자태를 뽐내는 것 같다. 요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외출을 삼가 하다 보니 봄볕이 더 그려진다. 사람은 원래 자연에 동화되어 살도록 길들여져 있다. 아무리 궁궐처럼 잘 꾸며진 집이라 해도 방에만 오래 머물다 보면 이내 싫증이 나게 마련이다. 밖에 나가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자연경관도 접해 보아야 가정의 아늑함을 알게 되는 법이다.
아내와 함께 영천댐으로 갔다. 댐 주변으로 벚꽃이 만발하여 화사 했다. 지난해에도 왔었지만 그 때는 좀 이른 때여서 오늘처럼 만개한 모습이 아니었다. 꽃은 때를 잘 맞추어야 진가를 감상할 수 있다. 호수가 쪽으로는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어서 꽃길을 걸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차들에 밀려서 그냥 지나가야 했다. 오늘이 주말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야외로 몰려 온 것 같았다.
꾸불꾸불한 커브 길을 한참 달린 후 자양면사무소를 지나서야 차를 세울 수 있었다. 차에서 내려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니 호수 너머로 한 무더기 벚꽃군락이 보였다. 우리가 지나온 길이었다. 먼 길을 둘러온 것 같은데 얼마 되지도 않은 꽃밭 속을 헤쳐 나온 것 같았다. 숲 속에 있으면 주위에 나무밖에 보이지 않아 거리를 가눔 할 수 없지만 숲을 벗어나 보면 숲의 진짜모습을 보게 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은 편협한 사고를 경계하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꽃을 구경하는데 굳이 이 말을 되 뇌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꽃길을 둘러보는 것과 멀리서 꽃무리를 감상하는 것이 다르기는 하지만 즐겁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특히 영천호는 주변경관이 아름다운 호수였다. 주위의 산재한 산들과 잘 어울려 있고, 그 산봉우리에서 흘러내린 물이 모여 맑은 호수를 이루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뒤에 보이는 기룡산은 멀리 보현산의 맥을 잇고, 산자락이 좌우로 날개를 펴서 백학이 알을 품는 형국을 이룬다 하여 길지로 소문 나 있다. 이처럼 산수가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그 정취가 더욱 빛나는 것 같았다. 주위에 벚꽃이 만발하니 더 무슨 말을 보태랴!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영천호를 끼고 달리는 길이 “포은로”이다. 임고서원에 모셔져있는 포은 선생을 추앙하는 의미에서 도로명을 정한 모양이다. 포은 정몽주 선생은 동방이학의 선구자요 영천이 낳은 자랑스러운 인물로 존경받고 있으니 당연한 처사인 것 같다. 길가 강호정에서 임진란 때의 의병장 정세아를 만나고, 용계서원에서 계유정난 때 생유신의 한사람인 이맹전을 만났다. 산이 수려하고 물이 맑으니 인물 또한 많이 나오는 모양이다.
충효리 마을에서 길을 바꿔 별빛로로 들어섰다. 보현산으로 통하는 길이다. 이 길을 따라가면 별빛마을에 이른다. 보현산에 천문대가 생기고 별을 관찰하는 천문과학관이 생기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여겨졌다. 지난해 보현산에 올라 별빛로 주변마을을 내려다보았었다 경사지에 조성된 마을들이 마치 스위스 산간마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차이가 있다면 스위스 마을은 푸른 초원위에 서 있는데 비하여 별빛마을에는 황토색경지가 펼쳐져 있었다. 산위에서 내려다보는 산골마을들이 평화스러워 보였다. 보현산의 정기를 이어 받아서일까. 아니면 이름처럼 별빛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서일까.
꽃길이 계속 이어졌다. 길가에 핀 꽃들이 왕 벚꽃인지 몰라도 꽃송이가 더 커 보였다. 별빛로를 벗어나자 화북면 옥계삼거리에 이르렀다. 여기서부터 도로명은 천문로로 바뀌었다. 이 역시 보현산 천문대와 연결시켜 지은 것 같다. 보현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별이 잘 보이는 곳으로 선정되어 천문대가 세워졌다. 보현산 댐 공원을 지나 북쪽으로 가다가 군위군 고로면 쪽으로 들어섰다. 도로표시판에 삼국유사로란 명칭이 나타났다. 이 길을 따라가면 군위댐을 거쳐 삼국유사의 고향 인각사에 이르게 된다. 인각사(麟角寺)는 기린의 뿔에 해당하는 자리에 세워진 절이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한다. 일연스님이 말년에 인각사에 머무르면서 삼국유사를 완성했으니 도로명으로나마 그 업적을 기리는 것은 좋은 일이다.
삼국유사로에 들어서니 꽃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영천에서는 가는 곳 마다 벚꽃 일색인데 군위에서는 꽃을 가꾸는 일에 별로 신경 쓰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따금 개나리가 노랗게 얼굴을 내밀었다. 한참 가다보니 냇가에 넓은 주차장이 나타났다. 아미산 등산객을 위한 공간이었다. 아미산은 위천을 끼고 깎아지를 듯이 솟아있는 산이었다. 산의 형상이 웅장하고. 무슨 신기라도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산을 올려다보니 두 개의 뾰족한 바위산이 보였다. 하나는 송곳바위이고, 다른 하나는 애기랑바위이다. 송곳바위는 뾰족하다는 의미인데 애기랑바위는 무슨 뜻일까? 애기동자승 모습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암석으로 된 봉우리까지만 올라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산길은 험하고 거칠었지만 계단과 로-프로 안전장치를 해 놓았다. 로-프에 의지해서 산길을 타는 것이 힘들고 조심스러웠지만 무사히 마쳤다.
산을 내려오니 오늘의 목표는 다 이룬 것 같았다. 주차장 한편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잉어 빵 몇 개를 샀다. 주인이 반색하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코로나 때문에 손님이 없는데 가게를 찾아주는 것만으로 반가운 모양. 덤까지 얹혀주었다. 차 속에 앉아 아내와 함께 잉어 빵 한입을 입에 넣으니 세상이 낙낙하다. 삶이란 도전과 휴식이 조화를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이 건강한 삶의 자세가 아닐까?
오늘 꽃길과 산길을 다 누볐다. 꽃길을 갈 때면 앤돌핀이 흘러나오고, 산을 정복하고자 산길을 오르니 노르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을 것이다. 다시 잉어빵에서 자족함을 즐겼으니 세르토닌이 분비되었을 것 같다. 사람의 감정을 조절하고 면역력을 키워주는 호르몬들이 듬뿍 분비 됐으니 이제 코로나바이러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소파에 기대니 내가 편히 쉴 곳은 역시 나의 집임을 확인했다.
첫댓글 꽃길따라 산길따라 좋은 하루를 보내셨군요. 코로나로 집콕인 나에게도 덕분에 조금의 힐링은 된것 같습니다.
좋은 내용 잘 읽으며 함께 나들이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영천댐에서 아름다운 봄꽃을 감상하고 보현산 구경, 그리고 군위 아미산까지 여행하는 장면이 마치 내가 그 장소를 관광한듯 합니다. 부부간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셨군요. 잘 읽었습니다.
영천댐 안에 벚꽃길이 점점 소문이 나는것 같습니다. 좋은 여행에 좋은 글이 탄생했습니다.
영천댐 주변의 꽃길도 좋지만 몇 년 전 다녀온 기룡산 묘각사 생각이 나네요, 아름다운 산세, 의상대사와 용의 전설, 그리고 아득히 바라보이는 동해의 정경이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자양면 사무소 부근의 매운탕 집에서 마신 텁텁한 하산주 한 잔이 아직도 그리워 집니다. 좋은 곳 다녀오셨네요. 잘 읽었습니다. .
영천댐을 중심으로 명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명소를 잇는 코스를 알면 보고 먹는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