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9편. 백두대간에 살어리랏다
백두산부터 지리산까지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우리나라의 고유 산줄기, 백두대간.
여기 백두대간 산자락 사이사이 자신의 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너른 품, 백두대간에 깃들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의 백두대간을 들여다본다.
1부. 백두대간 능선에 서서 – 5월 8일 (월) 밤 9시 35분
백두대간이라는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1984년, 여성 산악인 최초로 백두대간을 단독 종주하며 산악계의 샛별로 떠올랐던 남난희 씨. 이후, 세계 여성 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를 등정하며 산악계의 전설이 됐다. 하지만 지금은 백두대간의 끝자락인 지리산에 터를 잡고 산을 정복하던 산악인에서 산과 함께하는 산 사람으로 살아간다.
자연에게 받은 게 많아, 자연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적게 쓰고 작게 살고자 하는 지리산 살이. 사시사철 자연이 주는 대로, 집 주변에서 나는 푸성귀를 캐고, 따고, 뜯어서 산이 내어 준 밥상을 차린다.
남난희 씨는 5년째, 미국 서부를 종단하는 4,300km에 달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40일씩 나눠 걷고 있다. 그녀가 매해 긴 여정을 떠나는 이유도 언젠가 우리의 백두대간이 열렸을 때 도움이 되고 싶어서다.
그녀의 마지막 바람은 그 옛날 백두산 호랑이가 백두대간을 타고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오갔듯, 지리산에서 백두산까지 백두대간을 걸어가는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100여 년까지 백두대간을 누볐던 산군, 백두산 호랑이가 100여 년 만에 백두대간으로 돌아왔다. 백두대간의 깊은 숲, 봉화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백두산 호랑이를 만나본다.
2부. 여우를 기다리는 숲 – 5월 9일 (화) 밤 9시 35분
깊고 황홀한 숲에 이끌려 숲으로 들어 온 두 남자가 있다. 주목받던 벤처 기업의 CEO였던 김용규 씨. 성공한 도시에서의 삶이 어느 순간부터 버겁고 허무해 숲으로 들어와 숲의 생태를 가르치는 숲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명. 해외 영업을 다니던 잘나가던 직장인 김주한 씨. 나답게 살고 싶어 숲으로 가고 싶다는 남편을 아내는 격려해 줬다. 그렇게 가족의 응원으로 주한 씨는 2년 전, 속리산 외딴 산자락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올 수 있었다.
주한 씨는 숲에서 먹고 살기를 결심하고 숲에서의 삶을 차근차근 준비했다. 2년 동안 목공을 배우고, 줄을 타고 나무 높이 올라가 병해충 목과 위험 목을 제거하는 아보리스트(수목관리 전문가) 자격증까지 땄다. 임업 선진국에서는 고소득 직업군으로 유망한 직업이지만 아직 우리에겐 이름도 생소한 아보리스트. 나무의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다양한 수목의 생리와 숲의 생태계를 공부하고 있지만, 17년 차 숲지기 선배인 용규 씨 눈에는 아직 일러 줄게 많다.
시시각각 변하는 숲을 오롯이 만끽하며 숲의 떨림까지 느끼는 두 남자. 사라진 여우가 돌아오길 기다리며 숲의 생명력을 지켜내는 두 숲지기를 만나본다.
3부. 천왕봉 사람들 – 5월 10일 (수) 밤 9시 35분
지리산 천왕봉(1,915m) 일출을 맞이하려는 이들이 꼭 머무는 곳이자, 하늘 아래 가장 가까운 집, 장터목 대피소.
이곳엔 백두대간을 지키는 산 사나이들이 있다. 그들의 출근길은 오로지 걸어서만 갈 수 있기에 특별한데, 지리산에서도 악명 높은 백무동 코스로 3시간 걸어야 할 뿐만 아니라 한 번 출근하면 6일 뒤에야 퇴근이 가능하기에 대피소에서 머무는 동안 먹을 수 있는 부식 거리를 배낭 가득 채워 올라간다.
천왕봉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산에 오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고 머무는 장터목 대피소.
그런 대피소가 위치해 있는 지리산을 지키는 사나이들의 하루를 들여다본다.
4부. 지리산 자락에 깃들다 – 5월 11일 (목) 밤 9시 35분
‘구례 가서 살까?’ 구례에서 혼자 사시는 시아버지가 눈 수술을 하고, 매주 서울에서 구례까지 다녀오는 남편이 안쓰러워 뱉은 아내의 한 마디였다.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부부는 그 주 주말, 짐을 싣고 구례로 내려왔다.
사실, 아내가 구례군에서 지원해주는 귀촌 시스템을 미리 알아뒀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구례군의 귀촌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1년 간 살 숙소를 배정받고 귀촌 지원자들과 함께 절기에 맞춰 1년 농사를 배웠다.
그렇게 시아버지 기력이 회복될 때까지 1년을 계획하고 내려온 부부는 1년의 귀촌 생활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본격적으로 집을 구해 눌러앉았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는 도시 여자인 아내는 구례에서 재택근무 중이다. 밭에서 호미질을 하다가 영어로 업무 전화를 받고, 재택업무가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 시아버지의 고사리밭에 가 고사리를 끊고, 점심시간을 틈타 고사리를 데치고, 짬짬이 집 닭 산책도 시켜야 하고, 해 질 녘에는 노을 맛집인 뒷산에 올라 남편과 노을도 구경하느라 지리산에서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너른 지리산 자락에 깃든 동갑내기 부부의 지리산 적응기 생활이 공개된다.
5부. 첩첩산중 산골 주치의 – 5월 12일 (금) 밤 9시 35분
지리산 첩첩산중에 문을 연 한의원을 찾아가는 길. 구불구불 보기만 해도 스릴 넘치는 고갯길인 지안재를 올라 오도재를 넘어서면 보이는 한의원 간판. 하지만 간판 따라 들어선 길은 인가 없는 외딴 산길. 덜컹덜컹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이런 곳에 한의원이 있을까? 길을 잘못 든 게 아닐까...’ 하는 순간, 더 이상 갈 곳 없는 오솔길 끝에 한의원이 보인다.
부산에서 45년간 한의사로 살아온 허정구 씨는 은퇴와 동시에 첩첩산중 지리산 산중으로 들어왔다. 젊은 시절부터 산을 좋아해 백두대간을 모두 올라봤다는 자칭 산 사나이였던 허정구 씨는 결혼할 때 아내에게 ‘나중에 한의원을 그만두는 날, 지리산에 들어가 살겠다’고 선포했다. 그리고 그 약속대로 부부는 지리산으로 들어왔다.
은퇴하고 나면 마음 편히 즐기며 쉬리라 다짐한 그였지만 그는 지리산 첩첩산중에 한의원을 다시 열었다. 교통이 불편해 읍내 병원 한 번 나가기도 쉽지 않은 산골 할머니들의 주치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허정구 씨의 왕진은 거동이 불편한 산골 할머니들에게 단비와 같다. 무릎 통증에 걷기도 쉽지 않아 버스 타고 가는 길이 엄두도 안 났지만 집에서 한의사 선생님의 침을 맞을 수 있어 살 것 같다.
첩첩산중 산골주치의로 의술을 베풀며 살아가는 허정구 씨의 따뜻한 일상을 만나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