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41) / 그리스
밧새의 아폴로 에피큐리우스 신전
(Temple of Apollo Epicurius at Bassae; 1986)
그리스 서부 펠로폰네소스의 메세니아・아르카디아・일리아 주[Prefectures of Messenia, Arcadia, and Ilia in the Western Peloponnese]에 위치한 아르카디아 산의 정상에 있는 이 유명한 신전으로 기원전 5세기 중엽에 고대 도시 피갈리아 시민들이 태양의 신이자 치유의 신인 아폴로를 위해 지었다. 이 신전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코린트 식 기둥머리[柱頭]를 가진 신전이다. 고풍스러운 아르카이크(Archaic) 양식에 고요한 도리아(Doric) 양식이 결합되어 약간은 대담한 건축적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외따로 떨어져 잘 보존된 전원 경관 속에 세워진 밧새(Β?σσαι)의 신전은 고대 그리스 신들에게 바쳐진 신전의 전형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신전은 고대 그리스 풍의 건축양식을 통해 독특한 예술적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길쭉한 모양의 대지 위에 세워진 기둥은 도리아 식이며, 정면에 6열, 측면에 15열로 구성되어 있다. 탁월한 비율을 가지고 있는 이 신전은 남북 방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 신전은 도리아 식, 이오니아 식, 코린트 식 등 3가지 그리스 건축 양식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담하고 독특하다. 또 다양한 건축 자재를 사용했다는 점, 성상 안치소와 안채의 배치 등에 있어 매우 독특하다고 할 만하다. 신전은 기원전 420~기원전 410년경, 고대 도시 피갈리아 주민들이 전염병에 걸렸다가 낫게 되었을 때, 치유의 도움을 준 신 아폴로 에피큐리우스에게 지어 바쳐진 것이다. 신전 유적지는 안드리차이나(Andritsaina) 인근 펠로폰네소스의 중심부에 있는 아르카디아 산의 중턱, 해발 고도 높이 1,130m 지점에 있다. 후기 파르테논 식 건축물의 1세대에 속하는 이 신전은 매우 아름답고 균형미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자이자 여행가인 파우사니아스(Pausanias)는 이 모습을 보고 감탄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신전의 건축가는 익티노스(Ictinos)라고 전하지만 오늘날의 고고학자들은 건축가가 누구인지 아직 증명하지 못했다. 신전은 39.87m x 16.13m 모양의 기다란 대지에 건설되었다. 둥근 기둥으로 둘러싸인 건물은 주로 그 지역에서 나는 회색 석회석으로 만들어졌다. 신전 전면에 있는 6개의 바깥쪽 콜로네이드(colonnade; 列柱)는 사각 벽면인 메토프(metope)에 조각을 하지 않는 등 철저하게 도리아 양식을 따랐다. 그에 반해 내부는 좀 더 세련되고 섬세한 건축 양식으로 꾸며져 있다. 벽 끝의 기둥 사이에 정면 주랑이 있는 프로나오스(pronaos)와 오피스토도모스(opisthodomos)는 도리아 양식을 따르고 있다. 반면에 성상이 안치되는 내부에 있는 기둥들은 이오니아 식이며 낮은 지지벽을 향해 서 있다. 안채가 자리하는 남쪽 편에는 성상 안치실의 비스듬한 벽체 끝부분에 있는 마지막 2개의 이오니아 식 기둥이 신전 중앙부에 있는 1개의 코린트 식 기둥과 접해 있다. 장식은 특별히 다양한 재료들이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벽들과 기둥의 기초, 기둥머리 장식에는 석회석이 사용되었고, 이오니아 식과 코린트 식 기둥머리에는 돌리아나 대리석[Doliana marble]이 사용되었다. 성상 안치실 외부 프리즈의 조각된 메토프, 신전 내부를 따라 서 있는 이오니아 식 프리즈의 조각판, 도리아 식 물방울 장식, 지붕 지지부와 지붕 타일 역시 돌리아나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신전 중앙 기둥의 기둥머리는 지금까지 보존된 가장 오래된 코린트 식 기둥머리이다. 따라서 신전은 그 자체로 그리스와 로마 문명, ‘코린트 식’ 기념물들의 원형이 결합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져 오랫동안 발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었던 신전은 1765년 프랑스의 한 건축가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1812년에 최초의 고고학적 탐사가 이루어졌는데 성과는 있었지만 유적의 완전성에는 해가 되었다. 이때 발견된 이오니아 식 프리즈에 있던 22개의 조각품들은 훗날 영국의 왕이 된 조지 4세의 명령에 의해 1814년 대영 박물관으로 옮겨졌으며, 코린트 식 기둥머리도 함께 옮겨졌다. 이로 인해 프리즈에 조각된 그림[아마조네스와 싸우는 그리스 인과 켄타우로스들과 싸우는 라피테스족 등]을 잃게 되었지만 신전은 1902년에 정성 들여 복구되었다. 1965년에는 유적의 상태가 안 좋아져 다시 한 차례 보수되었다. 밧새의 신전 중앙 기둥의 기둥머리는 그리스와 로마 문명, 그리고 이후의 문명들에서 세워진 모든 코린트 식 기념물들의 원형으로 간주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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