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재미나는 인생] 中..]
나, 혼자서 가본 곳
오래 몸이 아파본 사람은 안다. 누구도 대신 아파줄 수 없다는 것을. 또 인간은 누구나 죽을 때는 혼자가 된다는 것을. 혼자 다니는 놈은 독하다고들 한다. 혼자 다니는 사람은 자유롭다고 한다. 떠도는 것은 누가 나 대신 가줄 수 없고 대신 느껴줄수 없는 삶을 확인하는 일아다. 지나고 보니 노다지 같은 곳이 있었고 지금은 아찔하게 번쩍이는 곳도 생겼다. 그래서 말인데....
별을 보면서 혼자 한숨짓기 좋은 곳
지리산 세석평전. 이십대에 네댓 번은 갔던 곳이다. 해발 천오백 미터쯤의 고원에 널따랗게 펼쳐진 초원인데 밤이 되면 대형 망원경 안에 들어가 있는 기분을 준다. 주먹만한 별도 잇고 역사 속 미희의 얼굴 같은 별도 있고 아득하고 희미한 별도 있는데 그 아래에 팔베개를 하고 누워서 한두 시간 있다보면 누가 불러내기라도 하는 듯이 따뜻한 한숨이 새어 나온다. 혼자서 단촐하게 준비해서 남원에서 마천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백무동 입구에서 하산. 세석평전에서 내려올 때가 가을이면 피아골로 간다. 계곡이며 땅바닥이 온통 단푼으로 물든 것이. 각혈 환자의 화장지가 깔린 듯하다. 하루 더 피아골산장에서 묵으려거든 머리맡에 잇는 작은 창으로 하늘을. 보라. 나무들이 허리를 흰 채 우듬지를 한껏 기울여 자신들의 머리 위 둥근 궁륭에 경배하고 있는 것을 보라. 직녀의 수틀속에 촘촘히 들어찬 별들을 숨쉬라.
양질의 광합성을 보장하는 강화
가을에 강화를 갈 때 까끔 나무가 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나무가 되어 국수집을 차리면 좋겟다. 햇빛 알갱이를 거둬들여 반죽을 하고 새털보다 가벼운 빛의 국수를 뽑아 벗들과 나누어 먹자. 강화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전등사로 갔다가 거기서부터는 초지진까지 걸어간다. 길이 잇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논둑 밭둑 아무데로나. 길에 널린 빨간 고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불숙 튀어나와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 꽃보다 예쁘고 고추보다 맵게 생긴 아이들. 초지진에서 버스를 타고 강화 터미털로 오면 터미널안에 비빔국수를 파는 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 개운하게 광합성을 마무리하면 조은데, 지금은 안 보인다. 이십몇 년동안 있어왔던 국수집이지만.
봄꽃 속에서 허무를 만끽한다
자동차를 타고 먼 곳으로 가는 일이 잦아지면서 길의 매력에도 빠진다. 고속도로를 잘 가다가 옥천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빠져나가 영동으로 시속 50킬로미터 내외로 가는것은 봄꽃이 주는 독한 향기와, 비길 데 없이 찬연한 허무를 겨우내 눅눅해진 허파에 넣어보려고 하기 때문. 자동차를 타고 달리는 길에는 유명한 곳이 많은 모양이다. 누구는 경남 하동 포구 언저리 길의 물빛 산색의 조화가 근사하다고 하고 누구는 충북화양 계곡 주변의 적요가 좋다고 한다. 누구는 단양의 구불구불한 길이 좋다고도 하고 누구는 군산과 장항 간의 벚꽃 길이 죽을 만큼 좋다고 한다. 그건 그것대로 좋고 이건 이것대로 훌륭하다. 이길에서 빠져나오면 인생이 한번 쉽세 흘러가버린 것 같아서 또 한숨을 쉰다.
들길
사내란 독하지 않으면 쓸데가 없다고 다짐을 하면서 살다가도 담양의 들에 가면 헷갈리고 흥분된다. 명옥헌, 송강정, 식영정, 면앙정, 환?당, 취가정, 소쇄원...별 달고 달 같은 들이면 정자들이 수두룩해서 하루 종일 돌아다녀도 물리는 일이 없다. 황지우 시인이 살던 명옥헌 근처 임립한 백일홍이 멋잇다는데 가본적이 없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정말 멋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 가서 밥 한끼를 제대로 먹고 왔을 뿐이다. 지금도 몹시 배고프면 들 가운데 잇던 그 밥집이 생각난다. 밥집 하니까 남원의 지산장도 생각나는데? 두 곳 다 기품이 있는 아주머니들이 수십가지 반찬으로 혀 끝에 선미(禪美)를 베풀어 주었다. 찾아갈 때는 근처에 가서 "택시!"하고 외친 다음, 운전기사에게 "이동네에서 제일 맛있는 밥집은?"하고 퀴즈를 내면 된다. 아직 있다면 말이지만.
숨어서 술 마시기 좋은 곳
경기도 인근에는 시골 농가를 개조해서 작업실로 꾸민 곳이 꽤 있다. 요즘은 전원 주택이니 뭐니 하는 미친 바람이 불어서 다 쓰러져가는 농가 주택 하나를 장만하기도 쉽지 않지만 그런 걸 미리 장만해놓은 사람도 있겟지. 나도 그런 지인이 있어서 가끔 신세를 진다. 구체적인 주소는 경기도 안성군 죽산면 용설리에 사는 그선배에게 누가 될까 싶어 말하지 않겠고, 주변 정황이나 설명해볼까 한다. 우선 그 지역에 나는 막걸리 맛이 좋다. 좋은 막걸리는 술도가에서 한꺼번에 받아와서 땅속에 들어앉힌 독에서 한 이틀 묵혀 서늘한 기운을 갈무리한 것이다. 이걸 두 되씩 들어가는 국자로 퍼서 한 말짜리 통에 넣은 다음 그 집으로 달려와 식기 전에 드셔야지. 날고구마, 김치, 콩자반에 술이 들어가서 밤이 깊으면 때가 된 것이니 노래가 나오는데 요즘 내게 잘 받는 노래는 홍서범의 노래를 노가바한 `오오오, 나는 당신이 사랑을 먹는 줄 몰랐어요"혹시 앙코르를 받으면 `영원히 사랑한다던 그 맹세. 잠 깨어보니 사라졌네`라는 원한에 찬 노래([에레스투])를 2절까지.
호숫가의 저녁
한밤에 배를 띄워 기생 대령시켜 올라타서 만화방창 시끌벅쩍 꺼드럭거려가며 술 먹는게 인생의 진미라고 하는데 그 전에 호숫가 고즈넉한 저녁 노을에 지금껏 살아온 삶에 대한 반성을 공물로 삼아 천지신명께 기도를 바쳐야 한다. 나중에 물에 안 빠져 죽으려면 말이지. 그럴 만한 곳은 이승에 수도 없이 많은데 가령 캐나다의 그레이트 베어 호, 러시아의 바이칼 호, 중국의 동정호, 태호 등등. 내가 가본 곳 가운데 가장 훌륭한 곳은 경북 상주시 공검면 오태리의 용머리 낚시터 어르시느이 앞마당. 여름 저녁 슬슬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황홀한 노을을 향해 나는 기도한다. 오늘은 빠져 죽지 않게 해주셔요. 보트에 물이 새지 않게 해주시고 새도 발이 젖지 않게 해주시고 달은 영원히 떠 있게 해주셔요. 오바이트 안 하게 해주셔요...
아주 캄캄한 곳
손을 내밀어도 손이 보이지 않는 무간지옥 같은 어둠이 사는 동네가 있다. 소백산 아래 삼가동 달밭골이 그 동네인데 동네에 들어서면 알싸한 약초 냄새가 혼백부터 정화(靜化)한다. 밤이 되고 사람들이 일찍 잠자리에 들면 일어나서 어둠의 정화(情華), 요정과 만나고 친해진다. 그래서 무얼 하느냐고? 사람은 화장실에 가야 하니까. 부작용 주의 - 머리끝이 쭈삣거리는 증상. 무릎에 힘이 빠지는 증상. 온몸에 소름이 돋는 증상이 나타나면 친하기를 중단하고 전기 스위치를 누르시오.
겨울 나그네의 천국
전남 해남. 한반도의 남단 토말로 유명한 곳인데 겨울에 가보면 바바리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찌른 채 곧 바다로 뛰어들 긋이 처참한 표정으로 해변을 걷는 아가씩들을 가끔 볼 수 있다. 어디 구멍가게에 앉아 동네 청년들하고 소주잔이라도 나누면서 그 연기를 보는 것도 재미있고 직접 바다로 뛰어드는 것도 나쁘지 안다. 단, 남자들은 삼갈 것. 그쪽은 여성 전용이니까. 해남에서는 한겨울에도 눈을 치밀고 돋아오르는 보리를 흔히 볼 수 있다.(그걸 가지고 국을 끓여 먹는다고도 한다). 그 사이를 거닐다 대설주의보라도 내리면 더욱 좋고, 버스가 끊어진 한밤이면 더더욱 좋은데 주머니에 돈이 몇 ㅍ푼 남아 잇지 않으면 일단 철없는 겨울 나그네의 자격은 된다. 처마 낮은 집, 불 켜진 곳에 간다. 동전까지 털어 마지막 술을 사고 내일 해가 뜨면 죽으리라는 비감한 느낌으르 술을 마신다. 이곳은 안주 인심이 후해서 파전을 시키면 다음날 아침까지 해결할 수 있다. 정확히 십 년 전에는 그랬다. 그러고도 제정신이 남은 사람은 방을 구해야지. 여인숙에서
멋모르고 넘는 준령
전북 진안에 운장산이라는 장려한 산이 잇다. 초보 운전 딱지를 드라이하고 화끈하게 떼고 싶은 사람은 차를 끌로 가보시라. 조난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적당량의 음료수와 식량, 취사도구, 연료, 야전삽 등을 준비하시오. 그 외 선택 사항으로는 방독면, 연발 가스총, 엽총, 공기총, 방타복, 방탄 헬멧, 판초우의, 텐트, 다용도칼, 소화기 같은 장비들이 있겠고. 무사히 산을 넘어가는 고갯길에 섰다면 그대에게도 운명의 여신이 초보 딱지를 때ㅔ도록 손짓을 한거라고 생가가하시고. 지금은 거기가 포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군. 좀 반반하기만 하면 포장부터 해버리는 나라니까. 그외에도 경북 문경의 주흘산이 있고 괴산의 쌍곡 계곡도 있는데 거기도 포장이 되었으면 미국의 데스 밸리나 투르판의 천산남로를 이용하시오(국제 면허증 챙기는 것 잊지 말고)
기타
옥천 금강 가의 염소들( 그 중에도 늙고 위엄 잇는, 지나가는 사람을 우습게 아는 듯한 눈초리를 가진 대장 염소). 양수리의 아침(진짜 산보다 더 맑고 푸르게 비치는 물그림자). 동해에서 강릉까지의 기차(가다보면 그 유명한 정동진이 있다던데. 정동진은 야구감독이 아니라던데. 드라마[모래시계]를 거기서 찍었다던데. 그래서 그런 이름의 카페도 있다던데. 그것보다는 기차에서 내다보는 바다가 좋다던데....). 단양에서 뜨는 달(칼칼하게 직립한 산 위로 노란 금화처럼 떠서 쳐다보는 사람의 얼굴을 누렇게 뜨게 만드는). 서울 변두리 시흥동의 옛날 무협지가 잔득 쌓인 만화방(전 5권에서 유독 1권과 5권이 많이 빠져 있는).
홀로인 유랑 끝에 나온 결론 : 누구에게나 `비트`가 있는 것. 제 앉은 자리라도 파고들면 만유가 다 비트인 것!
첫댓글 몽촌님 ! 혼자 여행하기 좋은곳의 제목을 보면서 마음의 외로움이 마음속에 밀려들어 오는것 같읍니다. 힘내십시요 건강한 웃음만이 행복을 줍니다
살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선배님 앞에서 죄송한 말씀이지만요.. )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곤 하네요. ㅎㅎ.. 죄송합니다. 그래두 늘 즐겁게 생활하려고 애쓰고 있답니다. 한마음 님께 감사한 말씀드립니다. 고맙습니다.
눈을 감고 그냥 그 땅속으로 음악에 묻혀 파묻힙니다. 고맙습니다. 언제 한군데라도 가봐야지요.
2008년에 올렸던 글인데.. 스크랲 한 글이라 수정을 할 수가 없습니다만.. 아직도 여전히 참고가 될만 합니다. ㅎ..
인터넷에서 자주 보는사진인데.......저역시 요즘 더욱더 외로움이.......형님 평안하시지요~~~근황이 궁금했는데....
소나무 님..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보내 주시는 글은 늘 즐겁게 받아보고 있습니다. 사업도 번창하시고, 자제분들도 모두 잘 성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모님께서 편찮으시다는 말씀을 들었는데.. 건강은 어떠신지요? 필에도 한 번 놀러 가야 되는데.. 마음 뿐.. 현실이 잘 허락을 하지 않습니다. ㅎ.. 모쪼록 건강하시고 날마다 즐거움이 넘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그때 왜 이 자료를 못보았을까나~ 어허허허~ 나같은 넘들이 다니기 딱이구먼유우~ 어허허헣~^&^~~~
ㅎㅎ.. 그런 때도 있으셔야지요. 늘 사랑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연말 정리 잘 하시구요. 새해에도 더욱 건안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고맙습니다.
쥔장님 어려운 걸음 하셨군요~ 님의 애로를 익히 알고 있습네다 ^&^~~~새해엔 더욱 건녕하시기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