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ing In The Chapel
Elvis Presley
You saw me crying in the chapel The tears I shed were tears of joy I know the meaning of contentment Now I'm happy with the Lord
제가 예배당에서 우는 것을 당신은 보셨지요 제가 흘린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었어요. 나는 만족이라는 말의 뜻을 깨달았어요. 이제 나는 주님과 함께 행복해요.
Just a plain and simple chapel Where humble people go to pray I prayed the Lord that I'll grow stronger As I live from day to day.
소박한 사람들이 기도하러 오는 그저 평범하고 검소한 예배당. 제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제가 더욱 강건하게 되도록 주님께 기도드렸습니다.
I've searched and I've searched. But I couldn't find no way on earth to gain peace of my mind.
저는 찾고 또 찾아 왔어요. 하지만 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을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Now I'm happy in the chapel Where people are of one accord. Yes We gather in the chapel Just to sing and praise the Lord.
사람들의 마음이 모두 하나로 일치되어있는 예배당에서 저는 지금 행복해요. 주님을 찬미하고 예찬하고자 우리들은 예배당에 모여요.
You'll search and you'll search But you'll never find no way on earth to gain peace of mind.
사람들은 찾고 또 찾겠지요 하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을 길을 결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Take your troubles to the chapel Get down on your knees and pray. Then your burdens will be lighter And you'll surely find the way.
당신의 모든 걱정거리를 예배당에 가져 오시고 무릎꿇고 기도 드리세요. 당신의 짐이 가벼워 질 것이며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을 꼭 찾을 거예요.
눈물의 교회[ Crying In The Chapel ]
1953년 아티 글렌(Artie Glenn)이 C & W 가수를 지망하는 자신의 아들 데렐 글렌을 위해 작사·작곡한 노래로, 데렐 글렌의 레코드보다 여성 가수 준 배리·C & W의 렉스 알렌(Rex Allen)·R & B의 디 오리올즈의 레코드가 대 히트했으며, 알렌과 디 오리올즈가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1965년에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불러 리바이벌 히트했고, 이것도 밀리언셀러가 된 바 있다. 렉스 알렌, 에디 아놀드, 엘비스 프레슬리, 로이 해밀턴(Roy Hamilton), 디 오리올즈 등의 노래가 알려져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 Elvis Presley ] 1935.1.8 - 1977.8.16 미국
1935년 1월 8일에 미국 미시시피주의 이스트 투플로에서, 쌍둥이로 태어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록큰롤의 역사를 이룩하여 놓은 로큰롤의 제왕이다. 쌍둥이 형인 제시 프레슬리(Jesse Presley)는 태어나자마자 곧 사망했으며, 엘비스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부모로부터 배우면서 성장했다. 1943년에는 국민학교 선생의 권유로 컨테스트에 나갔었는데, 거기에서 <Old Shop>을 불러 우승을 차지했다. 컨테스트에서 우승한 엘비스는, 부모로부터 기타를 선물로 받으며, 그는 재능을 키워 나갔다. 엘비스 가족은 1948년에 멤피스로 이사했으며, 그곳에서 학교를 졸업한 엘비스는 극장 안내원으로 취직했다.
1953년경에는 크라운 일렉트릭 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취직하고 여가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노래를 녹음하여 집으로 보내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어머니에게 생일 선물로 주기 위해 4달러 짜리 자작 레코드를 만들고자 선(Sun) 레코드사를 찾았는데, 선 레코드사의 경영자인 샘 필립스(Sam Phillips)는 엘비스의 노래를 들어 보고 곧 그를 스카웃하여 몇곡의 노래를 취입하였다. 이 노래들은 엘비스의 음악적 재능을 충분히 인정받게 하였으며, 당시 유명한 칸츄리 뮤직 매니저였던 톰 파커(Tom Parker)와 손을 잡고 RCA 레코드사와 전속 계약을 맺었다. RCA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데뷰 싱글 <Heartbreak Hotel>은 젊은 팬들에게 대단한 인기를 얻어냈다.
당시 빌 헤일리(Bill Haley)보다 더 박력 있고 섹스 어필하는 자신 특유의 스타일로 노래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엉덩이의 마술사’란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무대 위에서의 제스쳐는 전 세계의 10대 청소년들에게 더욱 열광적인 사랑을 받게 되었다. 계속해서 자신만의 스타일이 가미된 음악들을 발표하면서, 10대들의 우상으로 군림하였다. 1956년에는 영화 『Love Me Tender』에 출연하면서부터 계속해서 여러 차례 영화에 출연한 엘비스는, 10대들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1967년 5월 1일, 엘비스는 미 육군 대령의 딸인 프리실라 뷰리우(Priecilla Beaulieu)와 결혼해 한명의 딸을 두기도 했지만, 1973년에 이혼을 했다. 이때부터 엘비스는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건강이 악화되어 갔다. 여기에 마약까지 복용하는 등 최악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1977년 8월 16일 멤피스 침례병원에서 42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했다.
전 세계 팝 애호가들은, 비운에 간 그의 생애를 아쉬워 하였고, 그가 세상을 떠난지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멤피스의 엘비스 저택으로 객들이 줄을 이어 빈소를 찾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추모 5주년 행사가 벌어졌던 1982년에는, 미시시피강 주변에서는 추모 컨서트가, 멤피스 주립 대학에서는 그에 관한 강연과 감상회가 끊이질 않고 열렸는데, 감상회에 모인 팬들 대부분은 60년대 그의 사운드와 스테이지 매너에 황홀해 하던 중년 신사 숙녀들이 자녀들과 함께 참여해 젊은 시절의 낭만을 되찾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참고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히트 곡 중 싱글 챠트 넘버 원에 등장했던 곡들을 살펴 보면, 1956년에 데뷰 곡이라고 할 수 있는 <Heartbreak>, 그리고 같은 해에 <I Want You, I Need You, I Love You>, 1957년에 <Hound Dog/Don't Be Cruel>과 <Love Me Tender>, <Too Much>, <All Shook Up>, <Teddy Bear>, <Jailhouse Rock>을, 1958년에는 <Don't>와 <Hard Headed Woman>을, 1959년에는 <A Big Hunk O' Love>와 <Stuck On You>를, 1960년에 <It's Now Or Never>와 <Are You Lonesome Tonight>, 1961년에 <Surrender>, <Good Luck Charm>, <Suspicious Minds> 등 무려 17곡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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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난왜 지금도 엘비스아저씨 노랜 느끼하지 ..콤하긴 하지만....
부드럽고
러브미텐더는 빠다 끼가 다분하지만,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의 원곡은 다른 곡들과 다르게 좀 쓸쓸한 분위기 였지요. ^^*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목소리의 저음이 매력인 엘비스 지금 들어도 엘비스의 노래는 최고의 감동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