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전씨 중앙종친회 원문보기 글쓴이: 전과웅
월남 종전 50주년 기념소설
세 남자 (이철호 장편소설)
그동안 사이공 시장 내에 있는 그의 가방 가게로 아내가 서너 차례 장거리 전화를 걸어오기는 했었다. 무사히 도착했다는 것, 부친의 병세가 조금 호전되었다는 것 등이었고, 마지막으로 걸려 온 전화는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으니 곧 사이공으로 돌아가겠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것은 벌써 한 달 전의 일이었고. 그 이후로 그녀의 소식은 완전히 끊겼다. 처갓집에 전화가 없었으므로 그가 연락을 취할 방법이 없는 형편이었다. 더욱이 퀴논은 얼마 전 공산군 수중으로 넘어가고 말았다고 하니 안재영은 불안하 기 그지없었다.
"안 병장, 자네한테는 좀 안 된 얘기겠지만 내일까지만 기다려 보구 그 때까지도 안 오면 우리와 함께 떠나야 해. 자네도 알지? 내일모레 사이공 항에서 우리 해군 LST로 마지막 남은 교민들을 모두 철수시킨다는 거. 오늘이 4월 27일이니까 꼭 이틀밖에 안 남았군." 신덕규는 초조한 낯빛을 지으며 벽에 걸린 달력을 흘끗 바라보았다 "난 원래 어제 떠난 IST 편으로 철수하려 했는데, 아직 이곳 정리가 되질 않아 이러구 있는 중이라구. 그렇지 않으면 지금쯤 남지나南支那 해상에 떠 있을 텐데 말야. 월남 놈들 철수한다니까 피땀 흘려 모은 우리 재산을 거저 먹으려 들구 있다니까. 웬만한 값이면 이 식당을 넘겨 버리려고도 했지만, 이건 값을 후려쳐도 보통 후려치는 게 아냐. 그동안 고생한 걸 생각하면 억울해서 혈값으로 팔 수가 있어야지.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
안재영은 그의 말에 수긍이 가고도 남았다. 그가 이만한 식당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터였다. 수십 차례의 매복과 정찰을 나가고. 목숨 건 아슬아슬한 전투를 벌이고, 사나운 모기와 찌는 듯한 더위와 싸우면서 한 푼 두 푼 모은 달러가 이 식당의 밑거름이 아니었던가. 안재영 자신도 그와 똑같은 과정을 겪었기에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나 지금 안재영에게 재산 따위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내와 아들이 무사히 돌아와 주기만 바랄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미군 애들이 개입해 주면 좋으련만. 아니, 남지나 해상에 떠 있는 미 제7함대의 폭격기들이 사이공 외곽에 몰려 있는 월맹군 놈들 머리에 맹폭을 퍼부어 주기만 해도 월남군 애들 사기가 되살아나 반격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야."
신덕규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잠자코 앉아 술만 홀짝이던 최광옥이 그를 건너다보며 툭 쏘았다
"형님두 참. 미군이 이제 와서 이 지긋지긋한 월남에 다시 발을 들여 놓으려 하겠어요. 지금 발을 빼낸 것만 해도 크나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는 판국에.. 보세요. 월남 천지가 시뻘겋게 물들어가고 있어도 미국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있잖아요? 이제 월남은 고양이 앞의 쥐 꼴이니 다름 없다구요."
그의 말대로 그 무렵 월맹군과 베트콩은 사이공 일대를 제외한 월남의 거의 전 지역을 수중에 넣고 마지막으로 사이공에 총공세를 취하고 있었지만, 미국은 강 건녀 불을 보듯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것은 미국이 이미 월남을 포기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이 고작 취하고 있었던 행동이란 월남 내의 미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월남의 고위 간부나 고급 장교, 반공주의자들, 각종 무기와 비밀서류 등을 안전하게 철수시키 려는 것뿐이었다.
미국은 이미 1773년 1월에 월맹 측과 체결된 휴전협정 이후 곧 월남에서 미군을 철수시킴 으로써 월남에서 서서히 발을 빼 왔다. 물론 미국은 휴전협정 때 월맹 측에게 '만일 휴전협정을 위반한다면 미국은 즉각 공격에 나설 것이다'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고, 어떠한 휴전협정의 위반도 미국의 무시무시한 응징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 파리 휴전협정의 기본 약속이었다. 또한 미국은 월남에 대해 '만일 월남이 위기에 처하면 미국이 도와줄 것이다'라고 암시해 왔었다. 그러나 이러한 약속들은 지켜지지 않았다.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민은 월남에서 더 이상의 피를 흘리기를 원하지 않았고 월남을 돕기에는 법적인 제약이 많았으며 더욱이 미국은 국내적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사실상 월남을 도울 수가 없었다.
어느새 버번 위스키병이 하얗게 바닥이 났다. 신덕규는 허!' 하며 빈 술병을 들어 보더니, 주방에 있던 월남인 종업원을 불러 조니워커 블랙 한 병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때 검은 파자마를 입은 월남인 사내 둘이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왔다가 홀에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더니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그들이 약탈을 위해 염탐하러 온 것이라는 최광옥의 말에 신덕규도 고개를 끄덕였다 월남인 종업원이 조니워커 블랙 한 병을 가져오자. 신덕규는 병마개를 따면서 비로소 생각난 듯이 안재영에게 물었다. "참, 안 병장. 가게와 물건은 어떡했어? 처분했어' "예, 떨이로 넘겨 버렸어요. 안재영은 어설프게 웃었다 "왜? 좀 더 배짱을 튕기지 않구? 요즈음 가방이 불티나게 잘 팔리고 있을 텐데.' "억울한 건 저도 형님 못지않지만, 이런 판국에 이것저것 따지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전 아내와 애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바랄 게 없어요." 안재영이 심각해졌다. 신덕규도 금방 표정이 어두워지며 안재영의 어깨에 커다란 손을 얹었다. "하긴. .. 하지만 요즘도 매일같이 피난민들이 몰려오는 걸 보면:.. 혹시 누가 알아? 오늘이라도 좋은 소식이 날아올지. 너무 걱정하지 말라구.'' "저도 거기다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긴 하지만... 퀴논 쪽에서 오는 피난민은 별루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걱정이 더욱:.." 최광옥이 안재영에게 술을 따라 주었다. 안재영은 그것을 한 모금 마셨다. 신덕규가 와이셔츠 포켓에서 팔만 한 가치를 뽑아 물며 말했다.
"짐은? 가게두 팔았다면서? 어디다 두었지?" "뭐 짐이랄 것까지 있겠어요? 그보다도 제 아내가 이리로 오거나 전화를 할지도 몰라요. 가겔 산 사람한테 혹시 제 아내가 찾아오면 이리루 보내 달라고 부탁해 놓았거든요. 혹 제 아내가 찾아오면 꼭 좀 붙들어 두세요. 그래서 온 거예요" 안재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딜 가려구?"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돌아오겠어요." 한월식당을 나온 안재영은 사이공 시내를 배회했다. 사이공 외곽에 서는 여전히 요란한 포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때로는 가까운 곳에서도 총성이 콩 볶듯이 들려 왔다. 사이공 시내에 침투한 게릴라들과 월남군이 벌이는 총격전일 것이다. 독립군, 군총사, 사령부, 경찰총국, 사이공시경찰국, 방송국 등 사이공 시내의 주요 기관 건물 앞에는 무장한 군인들과 탱크, 장갑차 등이 에워싸고 적의 침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간간이 민간인이 접근할라치면 위병소의 위병들은 소리를 치면서 돌아가라는 손짓을 하거나 때로는 아스팔트 위에 위협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월 남군 지프와 트럭, 구급차들이 무서운 속력으로 질주하는 것이 곧잘 눈에 띄었다.
사이공 시내의 병원은 쏟아져 들어오는 부상병들로 일대 혼잡을 이루고 있었다. 구급차와 트럭에서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들과 전사자들이 계속 내려졌다. 월남 경찰들이 지프를 타고 돌아다니며 '사이공 시민은 동요하지 말고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하고 돌아다니지 말 것' 을 확성기를 통해 외쳐대 고 있었지만, 별 소용이 없는 듯했다. 사이공 외곽에서 몰려온 피난민을 수용할 곳도 없었다. 학교 운동장, 공공건물, 거리에 피난민들이 넘쳐났다. 그들은 아무 곳에서나 불을 피우고 음식을 해 먹었다.
안재영은 그들 사이를 헤치고 다니며 아내와 아들이 있는지 살폈다. 사실 그는 그 속에서 아내와 아들을 찾으리라는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다. 만일 아내와 아들이 사이공에 와 있다면 무엇 때문에 거리에서 방황 할 것인가. 살림집이 있는 그의 가방가게나 신덕규의 한월식당에 올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 오지 않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새들은 야자수 숲 위를 낮게 날고 있었다. 안재영은 야자수 그늘 밑에 있는 벤치에 가 않았다. 전쟁 중에도 남녀의 연정은 불타오르는가. 옆 벤치에 젊은 남녀가 나란히 앉아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 곧 그들의 사랑이 깨질지도 모르지만, 불현듯 그들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저들은 오늘 사랑을 속삭이고 있지 않은가. 외롭다는 생각이 문득 안재영의 가슴 깊이 파고들었고, 길 건너편 야자수 숲 위로 아내와 아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른 월남 여인보다 제법 살집이 많은 아내가 언젠가 속삭이듯 한 말이 생각났다. "한국엘 가 보고 싶어요. 거긴 틀림없이 아름다운 나라일 거예요." 그때 그는 그녀의 손목을 꼬옥 쥐며 말했었다. "꼭 보여 주지. 아니, 언젠가 때가 되면 함께 가서 살자구. 거긴 총소리가 들리지 않는 아주 아름다운 나라이지." 이제 그녀를 한국에 데려갈 때가 되었건만 그녀는 곁에 없었다.어디에 있는가 돌아오렴. 가고 싶던 한국에 가자구!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 혔다. 잠시 뜸했던 총성이 다시 기세를 올린다.
1973년 1월의 파리 휴전협정이 체결된 무렵, 월맹의 파리 협상 대표들은 휴전이 된다는 것이 감격스러운 듯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것은 곧 월남을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월남 땅에서 미군을 몰아내기 위해 휴전협정을 맺었던 것이며 휴전협정을 준수할 생각은 없었다. 공산주의자들이 원래 그렇듯이.. .따라서 그들은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얼마 되지 않아서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나섰다. 그들의 보급통로인 호지명 통로通路를 4차선 도로로 확장하여 월남의 중부 고원지대까지 깊숙이 연결시켰다. 소련으로부터 각종 최신형 무기들을 공급받고 병력을 증강시키는 군사력 확충 에도 열을 올리고 미국과 월남의 국내 정세를 살피며 호시탐탐 기회만 노렸다. 그런 그들에게 여러 가지 유리한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군의 월남 철수에 이어 미국 의회가 대월남 大越南 원조를 행정부 요청액의 절반밖에 안 되는 7억 달러 선으로 삭감한 조처.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생긴 미국 행정부의 위기와 닉슨 미국 대통령의 사임, 미국 의회가 의회의 승인 없이는 월남에 대한 미국 육.해:공군의 전투행위를 금지토록 하자는 처치 상원의원이 발의한 지출법 수정안을 통과시킨 사실, 월남의 국내 정세 불안과 연일 계속되는 데모. 미국의 군원軍援 감축으 로 인한 월남군의 장비 및 탄약 부족 월남 관리의 부패와 월남군의 사기 저하 및 각종 사회적 부패는 그들에게는 참으로 고무적인 것이었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월맹은 먼저 시험적으로 사이공 북방 40마일 지점에 있는 푸옥롱을 공격해서 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그들은 월남군의 군사적 약화와 미국의 개입을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어 월남 전역에 걸쳐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맞서 월남군이 대항했으나 그들은 이미 월맹군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월남군은 곳곳에서 패했다.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월남의 중요 군사지역과 막대한 무기며 탄약 등을 내버린 채 도망치기만 급급했다. 철수 작전 작전계통 통신 보급 등도 엉망이었고, 월남군은 수많은 피난민 대열에 끼어 후퇴를 거듭했다. 월남의 최정예부대로 일컬어져 왔던 월남군 1사단. 공정사단, 해병 사단들도 힘없이 붕괴되었다. 월남 공군은 부품과 연료 부족 기술 부족으로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고. 얼마 안 되는 능숙한 조종사들의 항공기마저 윌맹군의 최신형 미사일에 막대한 타격을 받았다. 물론 일부 월남 군은 목숨을 걸고 용감히 싸우기도 했으나. 그것은 달갈로 바위를 치는 격에 지나지 않았다. 월남의 주요 해안 도시인 후에∙다낭∙쾅가이 퀴논∙ 투이호아∙캄란만灣 판랑 - 판 티에트 등은 차례로 공산군 수중에 떨어졌고, 월남군의 13개 사단 가운데 6개 사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공군력은 거의 마비되었으며, 월남 국토의 3분의 2가 공산군에게 점령당 했다.
이제 월남군은 각지에서 후퇴해 온 패잔병들을 모아 사이공 주변과 메콩강 델타 지역. 그리고 월남에서 두 번째로 큰 공군 기지가 있는 비엔 호아 일대에서 최후의 항전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한 가닥 희망이었던 미군 폭격기들의 개입마저 배제된 채 월남은 이제 목이 졸려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4월 28일. 늦은 아침을 먹고 있던 신덕규는 요란한 비행기 소리에 깜짝 놀라 식당 밖으로 뛰쳐나갔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비행기 소리가 나는 동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십 대의 미군 대형 수송기들 이 남지나해 쪽으로 날아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간밤에 최광옥과 코가 비둘어지도록 마신 술이 일시에 확 깼다. 뭔가 심상치 않다. 요즘 매일같 이 미군 수송기가 미국인을 비롯해 월남의 고위 관리와 고급 장교들의 가족들을 미 제7함대 나 하와이.필리핀 등지로 실어 나르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있었다. 미군 수송기들을 자주 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날의 수송기는 다른 때보다도 훨씬 많았고, 왠지 불안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무심코 주일 한국대사관 쪽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는 가슴이 철렁했다. 어제까지 분명 국기 게양대에서 펄럭이던 태극기가 보이질 않고, 대사관 뜰 쪽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모두 철수해 버린 것이나 아닐까. 그렇다면ᆢㆍ성급한 판단을 내리며 그는 우산도 쓰지 않고 주월 한국대사관으로 달려갔다.
주월 한국대사관 뜰 한 모퉁이에 있는 휴지 소각장에서 대사관 직원들이 비를 맞으며 각종 문서들을 태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 주위에는 재월 한국인들 몇 명이 초조하고 불안한 낯빛으로 서 있었다. "어떻게 된 거요?" 숨은 헐떡이며 신덕규는 필짱을 낀 채로 문서 태우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내를 붙들고 물었다. 사내가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전에 몇 번 본 적이 있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오늘부로 대사관이 폐쇄됐대요."
"패쇄?"
아직 대사관 직원들과 재월 한국인들이 떠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에 다소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신덕규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렸다 "그렇다는군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모양이에요."
"그럼 내일 사이공 항에 입항하기로 된 우리 해군 LST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게 마지막 철수선이라고 하던데..."
"글쎄요. 대사관에서 곧 무슨 지시가 있겠지요." 그들이 잠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다시 몇 사람의 한국인이 몰려왔다. 그들 역시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각종 문서를 태우고 난 대사관 직원이 한국민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여러분도 이미 보셨다시피 오늘부로 주월 한국대사관은 폐쇄되었습니다.
지난 4월 24일 주월 호주대사관과 뉴질랜드 대사관 이 폐쇄된 것을 선두로 자유 중국대사관, 필리핀대사관 등 사이공 주재 자유 우방 대사관들이 차례로 폐쇄된 데 이어 오늘 우리 한국대사관이 문을 닫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월남의 사태가 매우 악화 되어 사이공이 언제 공산군에게 함락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사관이 오늘의 이 같은 사태를 에견해서 이미 한 달 전부터 교민들의 철수를 서둘러 왔다는 것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겁니다." 그 대사관 직원은 잠시 말을 끊고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을 뒤적여 서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약 한 달 전인 지난 4월 1일 현재 월남에 있던 한국인 수는 외교관 21 명 외교관 가족 59명. 농업사절단 20명. 의료사절단 21명,. 수자원 사절단 4명. 민간인 1,009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중 외교관 7명, 외교관 가족 전원, 각 사절단 전원, 민간인 약 452명은 4월 24일 까지 민간항공기 편으로 태국으로 철수하였고 엊그제, 그러니까 지난 4월 26일에는 우리 해군 LST 815함과 810함으로 한국 민간인 약 300명이 추가로 철수 하였습니 다. 또한 여기에는 한국인 외에도 우리 교민의 월남 부인 및 자녀 659명. 순수 월남 피난민 342명. 중국인 및 필리핀인 약 20명도 함께 승선하여 철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산 정리, 기타 사정으로 이때까지 떠나지 못한 교민 약 250명은 4월 29일. 즉 내일 사이공 항에 입항 예정 인 우리 해군 LST 한 척으로 전원 철수하고. 대사관 잔류 직원들은 민간인들을 모두 철수시킨 후 미군 헬리콥터 편으로 철수하도록 되어 있는 것은 여러분도 이미 아실 겁니다.
그런데 .. 월남의 상황이 예상외로 빨리 악화되는 바람에 해군 LST 편으로의 철수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순간. 모여 있던 재월 한국인들은 모두 놀라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수염이 텁수룩한 교민 하나가 다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그럼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대로 빨갱이 놈들한테 붙잡히는 신세가 된단 말입니까?"
대사관 직원들이 싱긋 웃었다. 서류철을 든 대사관 직원이 손을 옆으로 내저으며 얼른 대꾸했다. "아닙니다. 비록 상황이 악화하기는 했지만, 여러분을 무사히 귀국시켜 드릴 테니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이 말을 듣자, 교민들의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신덕규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팔만 한 가치를 꺼내 입에 물고는 라이터를 켰다. 담배 맛이 꽤 좋았다. "우리 교민들은 미군의 헬리콥터 편으로 철수하기로 이미 미국대사관 측과 합의되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각자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철수 집결지로 가서 미군의 헬리콥터 편으로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