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
각 교회들마다 여러 모양들로 말씀을 가까이하는 몸부림들을 운동처럼 결단해야 합니다..
설교나 특강이나 부흥회 등에 있어 인간적인 재미들이나 세상적인 감흥들에 주목하고 치중하게 되면 말씀의 치열함이나 죄악의 심각성, 참회의 긴급성, 십자가의 길 등의 설 자리가 생각 이상으로 줄어들게 되고, 갈수록 사람들이나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으면 안 되게 됩니다..
웃음이나 흥미도 좋고 필요하겠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질과 신령함에 집중해야 하고, 그에 있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수밖에 없을 정도인 것이며, 마치 좁은 길처럼 사모하고 또 사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속에서의 성령님의 권능으로 인한 세상이 주지 못할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을 갈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죄악들과 싸우는 일에 시급해야 하고, 돌이켜야 하는 일들에 있어 더 늦기 전에 자복하기 시작해야 하며, 속히 애통해 하고 참회하는 심령과 영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증거되어 있는 대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심이 하나님께 있어서 복 있는 자이고, 실제로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라고 증거되어 있는 대로 온갖 모양들로 복을 누리게 됨이 심히 당연하고 마땅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단적으로 예를 들면 우리들이 사모하고 의지하며 간구하는 하나님 아버지, 곧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이시자 생사화복과 흥망성쇠와 희로애락의 주인이시며 선악 간 심판하시는 심판주이시고 우리들이 기도한 것 이상으로 응답하시고 예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하나님 아버지께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그를 의지하며 나아가고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구주 예수님,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어 말씀을 보이시고 말씀의 나라를 경험케 하시며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더 나아가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무엇보다 말씀을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고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게 하신 직접적, 실질적인 힘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누리고 증거하며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현실적, 경험적인 힘이신 분인 것입니다..
근원적으로 그렇듯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일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는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분인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며 다 이루시는 분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도 본질적으로는 말씀과 전적으로 직결되는 것이고 오직 말씀이 생각 이상의 전제와 근본과 시작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잘 통찰해 보면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곧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던지, 또는 오늘날의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인해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는 것인데..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실제로 인해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가 아닌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된 자가 말씀의 신앙, 곧 말씀으로 살아 있고 깨어 있으며 치열해 지고 뜨거워지는 믿음이 됨에 있어서도, 사실은 아래 본문에서와 같이 말씀 한 두 구절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묵상할 수 있는 자체부터도 결코 인간적인 힘이나 세상적인 능력들로는 가능할 수 없는 것으로 원론적으로는 오직 한 가지 방법과 통로 외에는 달리 있을 수가 없는 것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특히 사도 바울과 같이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 악한 세력들, 온갖 유혹들, 시험들, 잡생각들, 자기 소견들, 불신앙들 등과 싸울 수 있는 것이고 그러면서 실제로 이길 수도 있는 것이며, 혹 범하게 된 죄악들에 있어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정말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대로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이 가능한 것이고 그로 인해 가면 갈수록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생생하고 충만케 될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됨과 함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특히 응답과 이적들, 보호와 예비들, 승리와 역전들, 열매와 부흥들 등과 같은 온갖 복들로 차고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시편1:1~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1월 22일(금)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