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고궁-명과 청의 옛 궁궐 '자금성'
'자금성'(紫禁城)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고궁은 명/청대의 궁성으로서 1417년 명 태조(太祖) 영락제(永樂帝)가 남경에서 천도하면서 원의 궁성자리에 세운 것. 축성에는 20만명이상의 노동력과 15년의 세월을 들였으며 72ha라는 광대한 부지와 9000여실의 방있다. 자금성의 '자'(紫)는 천제의 좌(座)-'자미성(紫微星)'을 의미. 즉 이곳이 소우주의 중심이라는 뜻이다.
고궁은 외조(外朝)와 내정(內廷)으로 이루어져 , 외조는 황제가 대신들로부터 조하(朝賀)를 받고 정무를 집행하던 공식의 장소로서 자금성의 중심부에 있는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의 3대전각과 동서 양사이드에 위치한 문화전(文華殿), 무영전(武英殿)으로 구성. 내정은 건청궁, 교태궁(交泰宮), 곤령궁(坤寧宮)의 삼궁(三宮)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일상의 정무를 행하는 동시에 황제의 사적인 생활장소. 황후귀비들의 생활하던 후궁(後宮)은 대부분은 명말에 파괴되어 현재의 것은 청대에 재건된 것이다. 수장품은 90만점을 상회하나 알짜배기들은 국민당군에 의해 대만으로 후송되어 현재는 대만의 고궁박물원에서 수장전시중.
신해혁명후, 외조는 중화민국의 관리하에 놓이게 되고, 내정은 '마지막 황제' 선통제(宣統帝) 부의(溥儀)의 거처로서 전통적관제와 함께 남아있었으나, 1915년 쿠데타로 실권을 잡은 원세개(袁世凱)가 3개월만에 퇴위한후, 원세개의 뒤를 이은 부이도 국민당군에 의해 자금성에서 ?겨나고 만다.
자금성 접수후, 국민당정부는 내정관리를 위해 정부와 청조의 관료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설립. 문물의 점검과 관리를 행하고자 했지만, 종류와 수가 너무 많은데다가, 청조멸망을 코앞에 둔 관료와 환관들의 횡령에 극에 달해 작업은 지지부진. 어쨌든 1925년 9월, 고궁박물관이 설립되어 10월10일 신해혁명기념일을 기해 일반에 공개되었으나 1931년 만주사변의 발발로 수장품의 일부가 남경, 상해, 무한등으로 이송된다. 그후 1949년 인민공화국설립이후는 대만으로 ?겨난 국민당정부에 의해 대북시(台北市)에 고궁박물관이라는 명칭 그대로 수장전시되고 있다.
이렇게 넓은 궁전에서 수천명의 궁녀을 거느리고 천하를 호령하면서 산다면 황제라는 것도 정말 해볼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 한명의 황제의 호강을 위해 백성들은 노역과 세금으로 얼마나 힘들고 굶주린 ?을 살아야했으며, 황제의 자리를 빼았기 위해 형제간에 군신지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었는가. 그래서 세계의 역사가 전쟁의 역사라면 중국의 역사는 정권쟁탈의 역사였는지도 모른다.
경산공원의 만춘정(万春亭)에서 내려다 본 고궁
이 사진은 중국관광안내책자에 곧 잘 나오는 사진이다.
천안문 반대편으로 즉 고궁의 뒤쪽에 위치한 경산공원은 북해공원과 고궁 건설 때 나온 토사를 쌓은 작은 언덕을 중심으로 펼쳐진 공원. 경산은 원,명,청대에는 고궁을 지키는 진산역할을 하기도 했다지만, 명조말 북경이 이자성의 반군에 함락되었을 때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崇禎帝)가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는 고목이 공원 동쪽편에서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문(午門)
고궁의 정문. 이곳에서 입장권을 구입하여 입장한다.
오문은 높이 37.95m의 메인건물을 중심으로 양사이드로 凹자모양으로 세워진 성문. 성문으로는 세계최대 규모라 한다. 가운데문은 황제전용으로 황제외에는 과거급제자가 행차할 때만 통행이 허가되었다 한다.(물론 지금은 개나 소나 다 지나갈 수 있다) 우측문은 황족과 귀족용, 왼쪽은 문무관료용.
태화문(太和門)
금수하(金水河)위에 걸쳐진 내금수교(內金水橋) 뒤로 명대의 황제가 이곳에서 상조(常朝;일상의 업무집행)을 행했다.
태화전(太和殿)
외조(外朝)의 정전. 목조건물로는 중국최대규모.
황제는 이곳에서 즉위, 혼인, 황후, 연회, 출정, 황후의 책위등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였다. 옥좌의 위에 새겨진 금색의 용은 천자의 사자로서 천명을 어긴 황제가 옥좌에 앉으면 입에 물고 있는 거울을 떨어뜨려 황제를 죽인다는 풍문이 있다.
중화전(中和殿)과 보화전(保和殿)
중화전(오른쪽)은 태화전에서 의식을 거행하기전에 황제가 휴식하던 장소이고, 보화전은 전시(殿試;과거시험)을 행하던 장소이다.
건청궁(乾淸宮)
원래는 황제의 침궁이었지만 청 옹정제이후 일상의 업무를 행하고 연회를 벌이던 장소로 이용되었다.
북해공원(北海公園)
고궁의 인근에 위치한 궁정정원. 요, 금, 원, 명, 청의 5대에 달하는 왕조에 걸쳐서 만들졌으며 총면적은 71ha.
중심의 인공호 가운데에 떠있는 경화도(瓊華島) 정상에는 높이 36m의 티벳양식의 불탑이 세워져있다.
|출처: 사진으로 풀어가는 해외여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