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9일(화)
* 시작 기도
(시 144: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사람은 과연 겨울에 입에서 나오는 입김과 흩어지는 한숨과 같은 존재입니다.
게다가 지나가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내세우는 자들은 도무지 인정하지 않을 말들이지만 진흙이요 먼지로 지음 받은 자로서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리입니다.
사람 중심의 세상은 나를 확실히 드러내어 존재감을 확증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세상은 나는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영원의 시간이요 카이로스임을 믿습니다.
내가 사는 이 세상은 그림자일 뿐이며 창세전 곧 만물 위의 세계가 우리의 현실임을 믿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그 나라를 소망 가운데 바라봅니다.
하여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오늘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길 원하오니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의 권능의 날에 새벽이슬 같은 청년들이 주께로 나오는 것처럼 주의 백성들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겁게 헌신하게 하소서.
멕성신학교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주의 종들 역시 기쁨과 즐거움으로 헌신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하 9:1-13
제목 : 무리가 각각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3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4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5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하는지라.
6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8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 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10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11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북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12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 나의 묵상
언약 백성 이스라엘이 아닌 이방나라 아람의 왕 벤하닷까지도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폐위시키고 하사엘을 왕으로 삼으셨다.
이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왕 요람을 폐위시키고 예후를 왕으로 앉혀서 아합의 집에 대한 심판을 단행하려 하신다.
현재 요람이 북이스라엘의 왕이지만 그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이는 예후가 왕이 되어 그를 심판할 것이기 때문이다.
예후는 왕이 되면 왕의 명령으로 아합의 집을 멸하도록 명할 것이다.
그 역시 자기의 이름으로 명령하지만 그것은 그보다 위에 계신 진짜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왕의 명령으로 하나님의 뜻은 일사불란하게 진행되어 간다.
예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한 선지생도가 돌아간 후에 예후가 나와서 동료 군대장관들에게 그 뜻을 전하자 그들은 돌층계 맨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깔고 예후를 그 위에 앉힌 다음 “예후는 왕이다.”라고 외친다.
이와 같이 왕의 명령은 지체 없이 진행된다.
그 명령은 거역할 수 없기 때문이다.
누구라도 왕의 명령을 어기는 자의 최후는 죽음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왕의 명령을 감히 어기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심지어 사약을 받은 자라도 왕의 명령이기에 유배지에서 사약을 받고 왕에게 절한 후에 그 사약을 마시는 것이다.
왕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향한 왕의 명령, 이를 일컬어 케리그마라 한다.
그것은 나에게 있는 아담의 본성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죄의 몸은 장애자 선언을 하는 것이다.
죄의 몸을 장애자 선언하는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는 왕의 명령으로써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왕 되신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복종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하나님께 계명을 지켜 복종하심으로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셨다.
(요 15:10)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이 땅에서만 아니라 창세전 아버지와 함께 계실 때도 철저하게 복종하심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으며 받으신 사랑의 본질이 바로 영광이다.
(요 17: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애 기간 자신의 뜻을 행하신 것이 아니라 보내신 이, 즉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다.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아들에게 하신 아버지의 뜻과 명령은 다름 아니라 영생이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이를 위하여 주님은 자신의 뜻을 행하지 않으시고 오직 아버지의 뜻을 행하신다.
바울은 이런 하나님의 뜻으로 인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대로 생명을 얻었고 이를 위하여 반포자와 교사와 사도가 되었다.
(딤후 1:11)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영적 소경이었다.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의 약속은 고사하고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조차도 까맣게 몰랐다.
그래서 끊임없이 죄를 먹고 마시는가 하면,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고 회개하기를 계속 반복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생명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종교인으로 살아온 것이다.
새 생명을 가졌으면 마땅히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땅의 것이 아니라 위의 것을 찾으며 창세전 그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옛 사람을 벗는 방법도 몰랐고 위의 것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목회를 하면서도 여전히 땅의 것을 구하며 나의 유익을 취하기 위하여 자기주장의지로 사역할 뿐이었다.
그런 나를 주님은 당신의 공의로 심판하셨고 나는 그 심판의 복음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심판을 인정하고 그 앞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왕의 명령으로 받은 말씀 앞에 심판의 칼날은 내 자신이 비참하리만치 혹독하였다.
그러나 그 심판은 죽었던 나를 살리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이었다.
주님은 나의 왕이시다.
왕의 명령 앞에서 나는 이제 옛날처럼 살 수 없다.
죄의 몸으로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몸, 의의 무기로 주님께 드릴 뿐이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제 나는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요 주님의 종이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영생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도적 사명을 가진 자로 살아간다.
이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나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고난이 따른다.
그러나 그 고난이 복음 전하는 일을 막을 수는 없다.
주님은 생명 주시기 위하여 복음을 전하실 때 수많은 방해자들이 훼방하곤 하였다.
심지어 주님은 그들의 손에 죽기까지 하셨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관문이 되었다.
(요 12:32-33)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은 반포자와 사도와 교사에게 있어서 마땅한 일이다.
고난은 나의 절친이다.
무덤으로 들어가는 자의 친구는 아무도 없고 오직 흑암만이 절친인 것처럼 말이다.
(시 88:18) 주는 내게서 사랑하는 자와 친구를 멀리 떠나게 하시며 내가 아는 자를 흑암에 두셨나이다.
왕의 명령이 예후에게 임하고 그가 그 명령을 선포했을 때 일이 일사불란하게 지체 없이 진행되는 것처럼, 오늘도 아들의 생명을 얻게 하는 복음 전하는 일은 지체 없이 진행된다.
내가 아니면 주님은 또 다른 누군가를 통하여 일하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영광에서 비켜가게 될 것이다.
나는 복음을 통하여 얻는 생명으로 인하여 나타날 영광을 결코 빼앗길 수 없다.
요셉을 통하여 입애굽을 이루시고,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을 이루신 주님께서 오늘 이 시대의 복음의 사명자로 나를 부르셨으니 내 목숨 다하는 그 날까지 복음을 위하여 나아갈 뿐이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를 때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유익을 구하고 땅의 것을 구하는 자였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령을, 보내신 이의 뜻을 따라 순종하시는 아들의 행동 앞에서 나를 향하신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내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케리그마, 즉 왕의 명령임을 알게 되었나이다.
사약이 아니라 복음 전하는 일을 왕의 명령으로 주셨사오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지요.
나의 생명 다하는 그 날까지 이 복음 위하여 살겠나이다.
아들의 생명을 얻어 영생의 삶을 사는 자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그 날까지 이 복음을 위하여 살게 하소서.
내게 주신 아들의 생명만이 나의 복음의 자원이오니 이제는 그 일에 주님의 영광이 곧 나의 영광이 되게 하소서.
오직 주를 위하여 살리는 일과 죽는 일에 쓰임받게 하소서.
멕시코 멕성신학교에서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에게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넘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