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부르크시의 옛도심에 위치한 자유발도로프학교를 찾은 날은 마침 어린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독일판 산타클로스인 니콜라우스가 오는 날이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교정에는 학교 가장자리를 감싸 듯 흐르는 맑은 시냇물과 수백년은 족히 됐을 법한 이끼 낀 아름드리 나무들이 청량한 겨울 아침을 연출하고 있었다.
본관 3층에 있는 십여평 남짓한 방. 길쭉한 탁자를 5각형으로 연결한 것이 전부인 단촐한 공간에서 교사들은 차를 마시면서 하루 일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따뜻한 커피를 한 잔씩 얻어마신 필자 일행은 안내를 맡은 영어담담 딤미히 선생을 따라 3학년 교실을 찾았다. 교실로 향하면서 그녀는 니콜라우스가 아이들을 찾아올 때까지 사진 촬영을 자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아마 선물을 들고 나타날 니콜라우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의 신비감에 대한 방해를 염려한 것이다.
꼬불거리는 복도를 따라 1층에 위치한 3학년 교실을 찾으니 키가 크고 선량한 인상을 한 30대 초반의 케를레 선생이 우리를 맞았고, 어린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우리에게 일제히 쏟아졌다. 니콜라우스를 맞기 위해 켜놓은 두 개의 촛불과 크리스마스트리, 창틀과 천장에 매달린 장식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교실 안은 포근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교실이 사각형이 아니라 원형에 가까운 팔각형이란 사실이었다.
뒤에 확인한 바로는 발도로프학교는 교실의 모양과 크기, 조명빛깔과 벽의 색깔까지도 아이들의 심리발달 단계를 고려한다고 한다. 아울러 학교 건물도 철저하게 지역의 자연환경에 맞추어 짓고, 가급적 곡선을 많이 도입한 설계를 해 학생들의 심성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게 한다고 한다. 탁자 위에 촛불이 교실을 밝히고 있었고 케를레 선생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아이들에게 속삭이듯 수업을 이끌고 있었다.
구김살 없이 자연스럽게 하루 수업을 시작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평화롭고 맑았다. 아이들은 경쾌한 목소리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불렀고, 사이사이 니콜라우스의 날과 관계되는 기도문을 암송했다. 그러는 동안 교실 문이 열렸고 아이들의 눈길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주교 복장을 한 니콜라우스가 교실 밖에서 아이들에게 미소를 듬뿍 머금고 인사를 했고 그의 시자가 아이들에게 선물 꾸러미를 전달하고 사라졌다.
교실에 다시 조명이 들어오고, 니콜라우스를 맞은 기쁨과 낯선 방문객들로 인해 약간을 들뜬 가운데 수업이 시작되었다. 케를레 선생은 월요일에 태어난 아이들을 불러내어 친구들 앞에서 장래 희망을 발표하게 했다. 옆자리에 앉아 친절하게 수업 내용을 설명하던 담미히 선생은 “3학년 아이들은 매일 첫 수업시간에 요일별 생일에 맞춰 좌우명, 장해희망 등을 발표하는 데, 이는 아이들에게 자기 삶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대중들 앞에서의 발표력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모두 6명의 아이들이 자신의 장래 희망을 발표를 했다있었다. 훌륭한 기술자가 되겠다는 꿈을 가진 아이는 손의 귀중함을 읊은 시를 낭송하였고, 성악가가 꿈인 여자 아이는 아름다운 노래를 찬양하 괴에테의 서정시를 외웠다. 농사꾼이 꿈인 아이는 전원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다.
3학년 교실에 이어 찾은 곳은 12학년 예술사 수업이었다. 학자풍의 부르크하트 선생이 회화 조각 음악 연극 등 타 장르와 비교해서 건축이 갖는 예술적 가치와 생활 속에서의 의미를 학생들과 토론하고 있었다. 이 학급 역시 수업 시작 전에 학생들이 노발리스의 시를 운율에 맞춰 암송했다. 수염이 거뭇거뭇한 덩치 큰 녀석들이 중저음으로 낭송하는 독일 초기 낭만파의 대표적 시인 노발리스이 시는 색다른 감동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연이어 1학년과 5학년의 불어수업 시간을 둘러봤다. 1학년 불어수업은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와 율동으로 진행되었다. 교사 두 명의 지도로 아이들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숫자 헤기, 색깔 배우기 등과 관련된 프랑스 동요를 불렀다. 리듬을 중시하는 발도로프 학교의 교육방법을 엿볼 수 있었다. 몇 개 학급의 수업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교사와 학생들이 교과서 없이 수업을 진행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수업 참관이 끝난 오후에 이 학교 교사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수 있었다. 45년간 이 학교에서 근무한 터줏대감 가이너 선생은 “교과서는 획일적 교육을 유발시키는 부작용과 더불어 교사를 게으르게 할 수 있다”며 “우리 학교는 교사가 몸으로 때워야 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교재 내용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 학생들과 교사들이 토론을 통해서 정한다. 따라서 커리큘럼의 범위는 아주 넓다. 가령 12학년의 예술사 수업은 이번 학기에는 예술통론을 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괴케와 쉴러, 브레히트 등의 작품으로 한 학기를 연극수업으로 진행하기도 한다고 한다.
발도로프학교는 교과서가 없듯이 시험도 없고 유급도 없다.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깨달아가면서 배우는 학교. 교사는 보조자의 역할을 하면서 아이들 스스로 자아를 발견하고 심성을 계발할 수 있게 돕는다. 발도로프학교는 이러한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교사가 1학년에서 8학년까지 같은 아이들의 담임을 맡는다. 8년이란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을 관찰하면서 개개인의 성격이나 욕구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고, 거기에 기초해서 아이들을 효율적으로 지도할 수 있다고 한다.
발도로프학교는 자연과학적 사고법과 정신적 직관을 중시한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인지학적 교육관을 바탕으로 학생 개개인의 내적 생명력과 자발성를 존중하는 교육방법론을 채택하고 있다. 최초의 발도로프 학교는 1차대전 직후 격동적인 사회 경제적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슈투트가르트의 담배공장 발도로프-아스토리아의 사장이자 소유주였던 에이볼트가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던 노동자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을 사내에 만들었고, 자녀들에 대한 양질의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노동자들의 요청으로 1919년 8개 학년 학생 256명 교사 12명 규모의 학교를 출범시켰다.
슈타이너는 인간을 본래적으로 가진 존엄성에 의해 스스로 변화 성장하는 존재로 해석하고 자발성을 통한 자아 실현을 교육의 지상 목표로 삼았다. 그는 인간의 발전 단계를 육체적 탄생으로 행위를 통해 사고하고 모방하는 단계(0~7세). 그림을 통해 생각하고 느끼는 단계(7~14세), 비로소 지성적인 사고를 통한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는 단계(14~21세)로 나누고 그에 따른 단계별 교육방법을 주장한다.
따라서 발도로프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심리발달 수준에 맞춰 건강한 몸을 가꾸게 하여 꿋꿋한 의지를 심어주고 다양한 예술 활동으로 풍부한 감성을 길러주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이끌어 올바른 가치 판단력을 갖추게 하는 단계적 학습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발도로프에서는 리듬을 특히 중요시하는 데 ‘훌륭한 교사는 훌륭한 연주자’라고 표현한 데서도 살펴볼 수 있다. 리듬을 통해 인간은 내재해 있는 영혼의 자유를 발산하고 이때 느끼는 동작감각을 통해 영적인 세계로 스며드는 자유스런 영혼을 구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했던 1학년과 5학년의 불어수업, 12학년의 예술사 수업에서의 노래와 율동, 시암송 등에서 리듬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육방법은 유치원과 1학년 수업에서 보여주기보다는 들려주기에 초점을 맞춰, 스토리에 꿰맞춰진 그림책 등을 피하고 동화 구연을 통해서 아이들의 상상력을 발동시킨다.
프라이부르크 발도로프학교 현관에는 12학년 학생들의 만든 30여 개의 조소 두상이 진열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개성적인 표정을 담고 있다. 안내하던 딤미히 선생은 "학생들의 작품을 통해 교사는 학생 개개인의 상활이나 내면적 염원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발도로프학교는 기본 교과와 더불어 실과교육을 중시함으로써 학생들의 균형있는 인성 가꾸기를 도모하고 있다. 실과교육을 통해 3학년까지의 놀이 중심의 교육에서 자연스럽게 일 중심의 교육으로 옮겨 가게끔한다. 발도로프학교에서는 공예와 정원 가꾸기 등 실과 수업을 4학년부터 일주일에 6시간씩 배정하고 있다. 6학년까지는 주로 수공예로 뜨개질 가방만들기 등을 하고 9학년에 올라가면 옷을 재단하고 마름질히는 방법을 익히고 10학년 때에는 옷감 짜기를 배운다.
5학년부터 시작하는 목공예 수업은 7학년에는 나무홈 파기를 배우면서 나무의 결에 대한 경험을 한다. 9학년 때는 대패질 못질하기를 배워 실제로 의자와 작은 목제 소품을 만들기도 한다. 심리적으로 복잡한 사춘기인 9~12학년에는 석공예를 배우는데. 치밀한 주의력과 인내가 필요한 작업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심성을 다스리는 부수적인 교육 효과도 얻는다.
정원가꾸기 수업은 노작교육에 무게를 도고 있다. 실제로 학교에서 조금 떨어진 농장에서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그곳에서 생산된 신선한 농작물은 학교의 급식에 사용된다. 자연은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는 노교사 가이너는 “아이들이 몸소 농사짓기를 하면서 생태순환의 이치와 자연과 인간의 공생 관계임을 깨닫는 기회를 갖는다”며 노동을 체험하는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발도로프에는 교과서와 시험이 없듯이 교장선생도 없다. 학교의 모든 의사결정은 일주일에 4~5시간씩 주어진 전체 교사회의에서 이뤄진다. 교사회의는 학교의 전반적 운영에 대한 결정뿐만 아니라 슈타이너 교육이념에 대한 공부, 수업 현장에서의 경험을 나누고 학생 지도에 있어서 심리적 기술적 문제들을 소로 보완하는 기회를 갖는다.
통상적인 학사운영은 3~4명으로 구성된 별도의 교사회의에서 꾸려나간다. 민주적 학교운영 체계와 더불어 눈길을 끈 것은 교사들의 보수 체계다. 연공에 따른 보수가 아니라 교사의 부양 가족수에 따라 월급봉투의 두께가 결정된다. 45년간 봉직한 가이너 선생이나 몇 년되지 않은 3학년 담임 케를레 선생의 월급이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프라이부프크 자유발도로프 학교는 2차대전이 끝난 해인 1945년 나치즘에 반대하던 이 지역의 인간학파에 의해 설립되었고, 1학년에서 13학년까지 한 학년에 30~40명씩 전교생이 500여명에 교사가 40명이다. 수업은 8시에서 10시까지 본수업을 나머지는 불어 영어 등 외국어와 공예 체육 정원가꾸기 음악 등으로 진행된다.
슈타이너의 교육이론은 지난 세기에 이어 새 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명에 속박된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더 그 가치가 빛을 발한다. 개인 중심의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삶이 극대화된 인간교육 부재의 시대에 우주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상과 인간상을 도모하는 발도로프 교육방식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현재 유럽 각국과 미국 일본 등 전 세졔계적으로 700여개에 달하는 발도로프학교는 정보화와 세계화란 허울아래 개개인의 경쟁력 키우기에만 급급한 채 참된 인성교육을 포기한 제도권 교육에 맞서 인간의 영성을 일깨우는 살아 숨쉬는 교육을 실천하고 있다. /1999년 12월 |
첫댓글 몇 년 전에 슈타이너 학교를 읽었는데... 우리도 그런 참된 교육을 실현할 수 없음에 안타까웠지요. 또한, 제 자신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것들에도 반성하기도 했지요.
교과서가 없는 대신 교사들의 노력이 더 필요하겠군요! 본받을 점이 많습니다!
교과서가 없는 학교에서 스스로를 다스리며 자기를 발견하는 아이들! 자연에 가장 가까운 학교! 인간의 영성을 깨워주는 학교! 꿈의 학교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