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에스라 4:2)
아멘!
이는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고 그 땅에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들이 섬기던 우상을 겸해서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들도 같이 성전을 건축하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이들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이로 인해서 성전 건축이 방해를 받습니다.
결국 이로 인해서 성전건축이 멈추게 됩니다.
그냥 그 사람들하고 같이 성전을 건축하면 이런 일도 없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포로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했습니다.
그들은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들이 성전을 건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이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조금만 고난이 닥치면 타협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이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아직 신앙이 서지 않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직분을 줍니다.
교회를 잘 다니지 않아도 어느 정도 교회를 다니면 세례를 줍니다.
헌금생활만 잘하면, 봉사를 조금 하면 직분을 줍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시끄럽습니다.
어느 정도 문제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아니라 세상에서도 없는 싸움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다툼과 시기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정치를 합니다.
이는 아직 믿음이 서지 않은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직분을 주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믿겠다는 결단이 서지 않은 사람에게, 주님으로 살겠다는 마음에 서지 않은 사람에게, 주님 뜻대로 살겠다는 각오가 아직 없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직분을 주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단을 하고 이 길을 걸어도 믿음을 지키고 믿는 사람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결단을 하지 않는다면 아직 세례를 받을 준비도 직분을 행할 준비도 되지 않은 것입니다.
교회의 문턱은 낮추되 세례와 직분의 문턱은 성경대로 해야 성도가 성도답게 행하고 교회가 건강하게 자기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더디더라도 일꾼이 적더라도, 사람들이 떨어져 나가더라도 주님의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아무에게나 세례를 베풀거나 직분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기도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성도도 교회도 건강해지고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리라고 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