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마다 한 번씩, 보통 여덟 마리에서 열다섯 마리나 새끼를 낳는 돼지. 아무 거나 잘 먹는데다가 새끼를 많이 치는 돼지는 옛날부터 농가에 돈을 벌어다주는 중요한 가축이었다. 그런데 돼지가 하도 새끼를 많이 낳다 보니, 가끔은 불상사가 생기기도 했다. 뱃속에서 죽은 채로 태어나는 경우도 많았고, 잠든 어미 품에서 젖을 빨다가 깔려 죽게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돼지를 키우면서도 내다 팔 생각만 했지, 돼지고기 맛 한 번 보기 힘들었던 가난한 농가의 사람들은 막 죽은 새끼돼지라도 버리지 않고 요리를 했는데, 고기를 먹으면서도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이 요리를 ‘새끼돼지(兒猪)’를 먹는 것이 슬프다(哀) 하여 ‘애저(哀猪)’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가난한 농가에서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먹게 되었던 애저찜은 조선후기부터 변질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부 상인들은 금난전권(시전상인이 정부와 결탁하여 확보한 강력한 독점상업특권)을 이용해 많은 돈을 벌었는데, 돈 많은 상인들 사이에서 애저찜을 먹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단다. 애저찜의 맛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고 싶어서였다. 죽은 새끼돼지를 쉽게 구할 수 없어 아예 낳기 전의 새끼돼지로 요리를 하기도 했는데, 애꿎은 어미까지 덩달아 잡아야 하니 가격이 굉장히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애저찜은 진안을 비롯한 몇몇 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 산이 많아 농사지을 땅이 부족했던 진안은 예로부터 돼지를 많이 키웠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애저찜을 먹을 기회도 많았던 모양이다. 먹을거리 걱정 덜게 된 지금도 옛 맛을 못 잊는 사람들을 위해 애저찜을 내 오는 식당이 수십 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