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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규 수사 |
장터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 남짓, 나는 학교 등 인위적인 조직이나 사회에서 사람을 대하면서 굳어졌던 마음이 열리고 풀리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오랫동안 고생했던 위장병도 다 나은 것 같다.
“으메, 은제 다 폴고 가까잉~”
“아이고, 인자 아침 묵는갑다~”
“오늘도 나왔소잉. 마수는 했소 그래서?”
좌판 앞에 앉은 나에게 지나가는 엄매 아베들이 하는 말씀들이다. 다시마나 돌미역을 사든 안 사든.
유난히 펑퍼짐한 엉덩이가 이쪽저쪽 바삐 흔들리던 중년의 여자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벌써 열한 시가 다 되가네잉~”
하고 무담시 배실배실 웃고 지나간다.
“진도에서 왔습니다. 청정 다시마! 돌미역!”이라고 쓰인 현수막을 보고는
“으메, 진도서 왔소? 나도 시댁이 진돈디. 돈지요, 돈지.”
라고 말을 붙이기 시작한 말라깽이 여자는 좌판 앞에 서서 자기가 아는 진도 사람 열댓을 주워섬기며 아느냐고 묻더니 시댁 자랑에 흉에 족히 삼십 분은 떠든다. 나는 당연히 장단을 맞춘다. 다시마랑 미역은 시댁에서 보내준 것이 쌓여 있다면서 많이 파시라는 인사는 챙기고 간다.
장사가 신통치 않은 날,
“으메, 진도서 여까지 차 끅고 와서 지름값도 안 나오것네...”
하고 초보 미역 장시 걱정을 태산같이 하던 고추 장시 엄메가 먼저 마수를 해준다. 단감 장시 아베는 오후에 기어코 단감 판 돈주머니를 열어 미역 두 가닥을 갈아준다.
당신은 종일 파리나 날리고 있으면서도 이웃 장꾼 마늘 장시 엄매는
“진도각 묵다가 다른 미역 못 묵어. 아, 나도 한 가닥 사서 낋에 묵어 봤는디, 와따 겁나게 맛나드랑께. 한 가닥 사가아~”
하고 손님을 잡는다.
빗방울이 한두 방울 떨어져서 부랴부랴 다시마와 미역을 거두는 어느 날에는 지나가던 아저씨 손이 저절로 미역 싸는 비닐을 잡아준다.
장바닥에 모자 하나가 떨어진 것을 보고 지나가던 엄매가
“옴메, 누가 모자를 떨쳐불고 갔네. 누것이까잉~”
하고 내 일인양 안쓰러워한다.
나는 장터에서 이런 내남 없는 말과 마음들을 만난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든 아는 사람이든 그냥 ‘우리’니까 그냥 말 건네고 참견하고 챙겨준다. 경계가 없다. 내 마음이 네 마음이고. 네 마음이 내 마음이다. 우리 마음이다. 한 마을에서 남의 애가 울고 있으면 데려다 밥 멕이고 얼려 보내고, 스쳐가는 바람 한 점 남의 일일 수 없었던 우리네 엄매, 아베들의 심성이다.
고 김남주 시인은 “감나무 끝에 까치밥으로 홍시 하나 남길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을 단 두 줄 시로 노래했다. 나는 장터에서 그런 ‘조선의 마음’을 만난다.
서울 살다 시골로 내려온 뒤로 15년 동안 산골이나 바닷가에 박혀서 살면서 나는 우리 땅 위 최후의 원주민인 우리 엄매, 아베들의 삶과 심성을 보았다. 조상대대로 이어져왔던 삶의 방식과, 그 삶의 방식에서만 지닐 수 있는 심성들을 만났다. 거의 끝물에. 우리 엄매, 아베들이 지닌 그 심성은 그 자체가 ‘인간문화재’다.
이제 시골 마을에서도 점점 변해가는 그 ‘조선의 마음’을 나는 장터에서 만난다. 평생 그리던 사람들, 정말 만나고 싶었던 마음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만나는 그 ‘조선의 마음’, 본래 ‘우리의 마음’들을 증언하고 싶다.
장진희 (진도군 임회면 섬골)
<가톨릭뉴스 지금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