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사초
장영랑
거베라. 장미, 카네이션 튤립. 알스트로메리아 리시안셔스, 소국. 이름처럼 고유한 모양새에 강렬한 색감을 지닌 화려한 꽃들이 내 앞에 놓여 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하는 꽃꽂이 수업이 있는 날이다. 강사가 이 번에는 작은 꽃바구니를 만들어 보자고 했다. 바구니 안 꽃꽃이용 스펀지인 오아시스가 제 몸에 꼽힐 꽃을 기다리고 있다. 줄기가 꺾인 꽃이 땅을 떠나서도 살 수 있게 이름처럼 오아시스는 흠뻑 물을 품고 있다. 첫 작업은 꽃들이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피어날 수 있도록 터전을 잡는 일이다. 향나무와 삼나무, 구상나무 잎을 잘라서 나무를 심듯 오아시스에 꽂으니 초록 들판의 모습으로 변한다. 꽃의 배경이 되는 자연속 작은 세상이 만들어진 듯 보인다.
이제 꽃을 꽂을 차례이다. 장미 세 송이를 집어 든다. 꽃바구니의 전체 모습을 잡는 중요한 꽃이라 신중하게 자리를 가늠해 본다. 많은 꽃증에 은근 하게 자신이 돋보이도록 꽂아야 한다. 송이송이 예쁜 꽃을 한 아름으로 더 어울리게 만드는 것이 꽃을 꽂는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때는 학교에 급식실이 없어 학부모가 2인 1조가 되어 배식 당번을 도왔다. 교실에서 밥을 퍼 주고, 같이 점심을 먹으며 학교생활을 볼 수 있는 그날을 나는 무척 기다렸다. 많은 아이 중 꽃바구니의 장미처럼 내 아이가
돋보이길 기대하며 학교로 갔다. 먹는 것에 관심이 없는 큰애는 밥도 느리게 먹고, 짝궁이랑 떠드느라 식판도 꼴찌로 가져왔다. 똘뜰한 아이들이 선생님의 칭찬을 받으며 알림장을 쓸 때까지 가방도 겨우 챙겼다. 교실 청소를 마치고 나니 담임 선생님은 '수업 준비도 잘 못하고, 행동이 느려서 걱정된다'라며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아들이 장미처럼 빼어나기를 바란 것은 내 욕심이었다. 선생님의 염려가 아니더라도 잠깐 지켜본 아들은 오아시스를 가려주는 용도의 소위 '속박이꽃'이라 불리는 작은 소국처럼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4학년 때 시 학력평가가 있었다. 같은 시에 있는 초등학교끼리 학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라 선생님들도 신경을 바짝 쓰고 아이들을 닦달하며 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느리지만 침착한 큰애는 모든 과목에 백 점을 맞아 소위 '올백'이라고 전교에 소문이 났다. 느닷없이 똑똑한 아이가 되어버린 아이는 어디에 꽂혀 있었는지도 모르는 소국에서 갑자기 모두가 주목하는 장미가 되었다.
장미나 튤립, 카네이션같이 꽃대가 똑바르고 큰 꽃은 보통 세 송이씩 꼽는다. 키와 각도를 다양하게 구성해서 어느 꽃과도 잘 어울리게 자리를 잡아 줘야 한다. 세 송이 중 꽃송이가 제일 큰 꽃을 어디에 꽂느냐에 따라 꽃바구니의 모양새가 달라진다. 큰 꽃이 너무 눈에 띄면 보는 이도 부담스럽다. 다행히 아들은 바구니의 아래쪽에 짧게 꽂힌 장미가 되기를 원했던 것 같다. 또래의 아이들과 학교생활을 즐기며, 혹여 누군가 똑똑하다고 칭찬하면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중학교 때까지 반장 같은 임원을 맡거나 앞에 나서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수업 시간이 재미 있고 책 읽고 이야기하며 노는 것이 좋은 아이였다.
사춘기도 부드러운 꽃잎처럼 순하게 넘긴 아들은 전국의 수재들만 모이는 특목고에 입학해 큰 기쁨을 주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화려한 장미와 색 색깔의 카네이션이 지천이었다. 모두가 월등해서 꽃바구니는 꽃으로 가득 차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아들은 꽃을 돋보이게 해주는 나무잎으로 겨우 자리를 잡았다. 시간이 흘러 한 송이 두 송이 꽃이 시들어도 나뭇잎들은 꽃바구니에서 끝까지 시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일까. 아들은 변함없이 초록 잎을 유지하며 묵묵히 학업에 열중했다. 오아시스에 남은 물 한 방울까지 제 몸으로 끌어올려 늘 같은 모습을 유지 하기가 쉬웠을까. 가지 끝을 바짝 세우며 조바심치는 날도 있었으리. 작은 꽃바구니 안에서 누렸던 장미의 때깔과 영화가 그리워 눈물도 쏟았을 게다. 장미로 중심을 잘 잡은 후 핑크 카네이션으로 꽃바구니를 환하게 밝혀주었다. 볼록한 튤립의 꽃봉오리가 여기저기 솟아오르고 리시안셔스로 가날 픈 선을 그려낸다. 알스트로메리아와 소국으로 빈 공간을 채우고, 구슬 같은 체리 빛 베리로 포인트를 주니 꽃바구니가 거의 완성 되어간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꽃이 화룡점정을 기다리는 순간이 되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실거베라이다. 키가 훌쩍 크고 즐기가 굵은 거베라 중에서 꽃잎의 끝부분이 얇고 가는 실처럼 생겨 단연코 눈에 확 들어오는독특한 꽃이다. 바구니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꽃들과 눈맞춤을 하고 실거베라를 꽂았다.
어려운 고교 시절을 잘 견디고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아들처럼 실거베라는 화려하게 우뚝 섰으나 바구니 안에 자리 잡은 모든 꽃과 조화를 이룬다. 내 손에서 세상을 밝혀줄 환한 꽃바구니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호리낭창한 보리사초로 미처 채우지 못한 허전한 공간에 선을 넣어주어야 한다. 보리사초는 줄기를 꼿꼿하게 세우지 않고 하늘하늘 자기 몸을 늘어뜨려 바구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없어도 될 것 같은, 꽃도 아닌 흔해 빠진 보리사초가 자연스럽게 꽃바구니를 완성한다. 실거베라가 되어 높이 서본 아들은 진즉에 꽃바구니 속의 삶을 깨쳤던가. 수수하지만 자기만의 선으로 할 일을 담당하는 보리사초가 되어 살기를 원했다.
들판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튼튼한 보리사초처럼 아들은 밖에서 일을 한다. 말이 주인공이 되어 경주를 펼치는 경마장이 아들의 직장이다. 수의사인 아들은 경마가 있는 날이면 새벽부터 말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들판에 서 있다. 행여 뒷다리에 차일까 염려하며 말에게 바짝 붙어 걸음걸이를 보며 무릎과 말굽을 세심히 살핀다. 경주가 시작되면 기수와 경주마는 사람들의 환호 속에 피어오르는 꽃송이 같다. 모두가 주목하고 우러러본다. 사람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말이 꽃 바구니의 실거베라처럼 우뚝 솟아오르길 바란다. 사람들의 함성이 커질수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주마 뒤를 따르는 아들의 눈길은 더 바쁘다. 열광 하는 경마장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꽃바구니가 될 수 있도록 아들은 더욱 부드러운 보리사초가 되어 선을 그리고 있다.
꽂꽂이 수업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느닷없이 비가 쏟아져 꽃바구니를 우산 안으로 바짝 들여야 했다. 속이 비어 약한 실거베라의 줄기가 행여 꺾일까 손으로 보호막을 만들고도 안절부절이다. 바구니 바깥으로 몸을 늘어 뜨린 보리사초는 유연하게 찰랑이며 빗방울이 몸을 맡긴다 오늘처럼 폭우가 쏟아져 줄기가 쓰러져도,바로 다시 서는 보리사초처럼 아들은 줄곧 청보리의 싱그러운 삶을 살아가리라.
장영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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