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국민학교 다닐 적 꽃밭(그때는 '화단'이라고 했었다)에는 봉숭아와 백일홍, 나팔꽃을 기본(?)으로 심었다.
그러던 것이 근래 들어서는 차츰 다른 화려한 꽃, 외국에서 들어온 꽃, 아니면 야생화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 손톱 끝에 봉숭아 빨개도 몇 밤만 지나면 질 터인데
손가락마다 무명실 매어주던 그리운 내 님은 어딜 갔소......
<부부 가수 박은옥-정태춘의 노래 ☞♪봉숭아♪ 중에서>
울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홍난파 작곡 ☞♪봉선화♪ 증에서>
손대면 톡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
봉선화라 부르리까.....
<가수 현철의 ☞♪봉선화 연정♪ 중에서>
우리 생활과 가까웠던 꽃으로 봉숭아 말고 또 어떤 꽃이 있었을까.
봉숭아는 늘 우리 생활 주변에 함께 하며 살아왔다. 시골집 화단과 담장밑은 말할 것도 없고 학교 화단에도 단골로 심어졌다. 가을에 받아 둔 씨를 뿌려 모종을 키우기도 하지만 저절로 떨어진 씨앗은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고 이듬해 봄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싹을 내밀어주기도 했다.
잘 자라나서 진홍색 꽃을 피우면 그 꽃을 몇 장의 잎과 함께 따서 짓이긴 다음 헝겊에 싸서 열손가락 끝에 칭칭 동여매어 물을 들이는 것을 보며 자랐다
여자들이라면 이 꽃물들이기에는 노소가 따로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메니큐어(manicure)로 손톱을 칠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고 손톱-발톱까지도-을 전문으로 관리해주는 네일샵(Nail Shop)에서는 갖가지 색깔과 무늬로 꾸며주고 있다.
그래도 봉숭아꽃으로 손톱에 물들이기는 면면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일하기에도 불편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조심해야 하는 그 번거로움도 마다하고 굳이 꽃물을 들이는 건 왜일까? 아마도 어린 시절의 추억에 대한 향수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는 지난 봄에 어렵게 봉숭아 모종 여남은 포기를 구하여 내가 가꾸고 있던 부용 주위에 심고 때를 맞추어 물을 주고 잡초도 뽑아주면서 정성을 들여 가꾸었다. 그런데 사정이 있어 집을 떠나 일주일쯤 뒤에 돌아오니 혹독한 가뭄을 견디지 못하고 대부분 말라 죽고 겨우 세 포기만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그도 내 정성이 부족하였던지 단지 몇 송이의 꽃만 피울 뿐 고전하고 있어 안타깝다.
봉숭아는 무환자나무(1)目 봉선화科의 일년생풀이다. 학명은 Impatiens balsamina이고 인도, 동남아시아 원산이다. 영문으로는 'Garden Balsam'라 표기한다.
어릴 때는 ‘봉숭아’라고 불렀었는데 ‘봉선화(鳳仙花)’도 표준 이름이라고 한다. ‘봉숭아’, ‘봉숭화’, ‘봉선화’ 중에서 ‘봉숭아’와 ‘봉선화'가 표준어로 된 이유는 이렇다.
<표준어 규정>에 ‘비슷한 발음의 몇 형태가 쓰일 경우, 그 의미에 아무런 차이가 없고, 그 중 하나가 더 널리 쓰이면, 그 한 형태만을 표준어로 삼는다’는 규정에 따라 ‘봉숭아’만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봉숭화’는 표준어로 인정하지 않았다. 또 <표준어 규정>의 다른 조항에서는 ‘한 가지 의미를 나타내는 형태 몇 가지가 널리 쓰이며 표준어 규정에 맞으면, 그 모두를 표준어로 삼는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봉선화’도 표준어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봉선화 보다는 봉숭아에 더 정감이 간다.
햇볕이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나쁜 환경에서도 비교적 잘 자란다. 습기가 많다 싶은 찰흙에 심고 여름에는 건조하지 않게 한다. 높이 60cm 이상 되는 고성종(高性種)과 25~40cm로 낮은 왜성종(矮性種)이 있으며 열매는 삭과(2)로 타원형이고 털이 있으며 익으면 탄력적으로 터지면서 씨가 튀어 사방으로 퍼진다. 공해에 강한 식물로 도시의 화단에도적합하다.
(1) 무환자(無患者)나무 : 이 나무를 심으면 자녀에게 화[患]가 미치지 않는다 하여 무환자라 한다.
(2) 삭과(蒴果) : 익으면 과피(果皮)가 말라 쪼개지면서 씨를 퍼뜨리는 열매로 세로로 벌어지는 나팔꽃, 가로로 벌어지는 쇠비름, 구멍을 여는 양귀비 등이 있다.
고려 26대 충선왕(忠宣王)이 태자 시절, 몽고의 공주보다 조비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몽고에 볼모로 잡혀갔는데 그는 항상 고국을 그리워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태자는 한 소녀가 자기를 위해 가야금을 뜯는 꿈을 꾸었는데 줄을 뜯을 때마다 소녀의 열 손가락에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었다. 놀라 깨어난 왕은 너무나 이상하여 궁녀를 모두 조사했더니 열 손가락에 모두 흰 헝겊을 동여맨 눈먼 궁녀가 있어서 그녀의 신분을 알아보았다. 고려에서 끌려온 소녀인데 집이 그리워 울다가 눈병 끝에 눈이 멀게 되었고 손가락의 헝겊은 봉선화 꽃물을 들이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태자는 타국에서까지 고국의 풍습을 지키는 것이 기특해서 소녀를 불러 사연을 들어보았다.
태자를 따르던 소녀의 아버지는 반대파의 모함에 의해 관직에서 쫓겨난 뒤 태자에게 바치려고 지은 가락을 함께 끌려가는 딸에게 주었다. 꼭 고국으로 돌아와서 왕위를 계승하라는 내용의 가야금 가락이었다.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태자는 고국으로 돌아와 왕위에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왕은 몽고에 억류되어 있을 때 소녀의 일을 생각하고 불러오려고 했으나 이미 소녀는 죽은 후였다. 왕은 소녀를 생각하여 궁궐의 뜰에 많은 봉숭아를 심게 하였다. (편집자가 재구성한 것임)
☞홍난파의 '봉선화' 이야기
'꽃은 그 아름다움을 열흘을 채 넘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백일홍(百日紅)은 100일 동안을, 그것도 햇빛이 가장 강렬한 여름부터 초가을까지 꿋꿋이 그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만져보면 마른듯도 한 빳빳한 꽃잎을 하늘을 향해 꼿꼿하게 고개를 쳐든 모습은 자못 도도하기까지 하다.
심어만 놓고 무심한 듯 버려두어도 스스로 알아서 잘 자라고 꽃도 아름답게 피워주던 백일홍.....
어릴 적, 골목의 돌담 밑 작은 꽃밭에서, 국민학교 화단에서 봉숭아와 함께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그 백일홍은 근래 들어 봉송아 보다 구경하기가 더 힘들어 아쉬움이 많다.
특별한 향기가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호랑나비나 벌이 많이 찾는 이유는 아마도 그 선명한 꽃색깔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어릴 때 보았던 백일홍은 '紅' 이라는 말 그대로 붉은 계통의 색깔이 대부분이었지만 분홍색, 드물게 노란색이나 흰색, 자주색 등 여러 가지 색의 꽃도 많다고 한다.
백일홍꽃의 봉오리가 도톰해질 때의 모양은 시집갈 때 신부가 쓰던 족두리를 닮았다.
여기에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평화로운 바닷가 작은 마을에 갑자기 이무기(3)가 나타나서 행패를 부렸다.
마을에 횡액(4)이 생기니 고기가 잘 잡히지 않고 심지어는 고기잡이 나간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기도 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의논 끝에 이무기를 달래기 위해 한 처녀를 제물로 바치기로 하였다.
날을 잡아 제를 올리고 이무기에게 처녀를 바쳤다. 이무기가 제물로 바친 처녀를 잡아먹으려는 순간 한 장사가 나타나 이무기를 물리쳤다.
죽음을 면한 처녀는 자기의 목숨은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자기를 구해준 그 장사에게 시집가기를 청했다. 장사는 자신이 용왕의 아들임을 알리고, 이무기의 남은 짝까지 마저 물리친 후 흰 돛을 달고 백일 후에는 꼭 돌아오겠다며 떠났다.
백일 동안 기도하며 기다리던 처녀는 백일째 되는 날 화관(花冠, 족두리)으로 단장하고 절벽 위에서 장사를 기다렸다. 그러나 흰 돛이 아닌 붉은 돛을 단 배가 나타나자 처녀는 절망한 나머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죽고 말았다.
이무기의 피가 튀어 돛이 붉게 물든 줄 모르고 있었던 장사는 처녀의 죽음을 알자 크게 슬퍼하고 정성들여 장사지내 주었다.
그 후 처녀의 무덤에서는 족도리 같은 모습의 꽃이 백일 동안을 피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두 사람의 혼인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던 처녀의 정성이 꽃으로 피었다 하여 '백일홍'이라 불렀다.
(편집자가 재구성한 것임)
(3) 이무기 : 우리나라 전설에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이다. 용이 되기 전 상태의 동물로, 여러 해 묵은 구렁이를 말하기도 한다. 차가운 물 속에서 1000년 동안 지내면 용으로 변한 뒤 여의주와 굉음과 함께 폭풍우를 불러 하늘로 날아올라간다고 여겨졌다.
첫댓글 봉숭아, 봉선화 다 같이 표준말이라...
그래도 봉숭아 학당은 배우는 곳이라 선입견인지 좋은 것 같고...
울밑에 핀 봉선화 하면 더 선명한 꽃같이 정겨운 느낌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요....
분꽃이나 봉숭아는 다른 식물에 비해 발아가 매우 잘되 번식력이 강한것 같은데, 요사이 우리아파트 화단에서 몇해 관찰해보니까 백일홍이 오히려 더 생명력이 강하고 번식이 잘되는것 같네.
화단이 매마르고 척박하니 봉숭아와 분꽃은 다음해에 다시 번식되지 않는경우가 흔한데 백일홍은 꾸준히 대를 이어가는것 같더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