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엔 초승달 뜨고
이 건 애
“둥둥둥둥...”
빠르게 넘나드는 소리는 넘실대는 파도처럼 격렬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바위를 끌어
안듯 점점 잦아진다, 저녁예불을 알리는 법고(法鼓) 소리가 산 속 암자 구석구석에 가
닿는다.
정말 운이 좋은 날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에 연등식 구경가자 해서 느지막이 떠난
속리산 법주사 길, 사천왕 문턱을 넘어서자 때맞춰 범종각에서 울리는 법고 소리를 들
을 수 있다니………….
특별한 날이어서 일까. 여러분의 스님이 법고 가장자리에 서 있다가 바톤을 이어받
듯 차례대로 북을 치신다. 나무로 된 북채 두 개를 양손에 나누어 쥐고, 북면과 북통
의 모서리 부분을 치기도 하고, 때로는 모서리에 박힌 못을 돌려가며 훑어내려 소리를
내기도 한다. 북의 위치, 치는 이의 강약의 변화와 다양한 리듬에 따라 소리와 울림도
각각 달라 보인다. 마음 심(心)자를 그리며 북채를 내리치시는 스님들의 힘찬 동작이
짐승을 비롯한 땅에 사는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려는 듯 듣는 이의 마음속을 사정
없이 휘돌아 친다.
모두가 숨죽여 법고소리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몸을 돌려 높고 거대한 부처님
(청동불상)을 바라본다. 절집에 모인 사람들뿐만이 아닌 하늘땅에 존재하고 깨어있는
모든 것들은 이 순간, 부처님의 자비아래 이 울림을 들으리라! 하늘밑에 오로지 그 모
습뿐인 듯 한눈에 볼 수조차 없는 부처님이 넉넉하게 땅 아래를 내려다보고 계셨다.
내가 갖고자 했던 것들은 과연 무엇이었나. 돌이켜보면 그토록 소유하고자 집착하
던 것들은 욕심이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은 채 무한정 내 욕심을 채워줄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고, 채워지지 않은 욕망은 끝없는 괴로움만 더했을 뿐이다.
내가 가진 것들은 인연 따라 잠시 내게 왔던 것일 뿐 내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
애써 놓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건 부질없는 집착이고 욕심인 것을, 난 어느 세월에 공
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인가 아득하기만 하다.
그런 끝없는 욕심을 잠재우고 거둬들이면서, 산다는 건 끝없이 변하는 나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아닐까? 그러려면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바로 보아야 한다. 찰나생(利
那生) 찰나(刹那滅). 불교에서는 실체를 지니고 있는 듯 보이는 세상의 존재물은,
실제 한 찰나마다 생멸을 반복하고 있으므로 실체는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무엇일까? 순간순간 인연따라 변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거라면 현재의 마음을 중히
여기며 살 일이다. 과거에 얽매이지도 말고 미래 또한 걱정하지 말며 현재 내가 존재
하는 매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닐런
지……….
외국인들의 감탄과 요란한 셔터소리가 경내에 가득찬 가운데 목어(木魚)를 두드리
고 운판(雲版)을 치는 것으로 의식은 끝이 났다.
'부디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소서.'
법당 안에는 저녁 예불을 올리는 스님들과 불자들의 불경소리로 가득 차고 절마당
에서는 악단의 찬불가 연주가 울려 펴졌다. 무게조차 느낄 수 없는 어둠이 서서히 경
내에 밀려들 즈음 예불을 마친 스님들이 연단 가까이에 자리를 잡으시고 절 마당엔
등을 밝힐 촛불이 바람에 춤을 추는 가운데 이윽고 법요식이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똑같은 새소리라도 다르다 합니다. 어떤 이는 새소리를 지저귄다 하고
어떤 이는 새가 운다고 합니다. 이는 마음이 모두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건
내 마음에 달려 있…”
스님의 법문이 내 가슴에 와 닿는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불행과 행복은
공존한다. 내 마음의 무게를 어느 쪽에 두느냐에 따라 새소리는 분명 다르게 들릴 것
이다. 경내에 빼곡한 연등을 누가 다 밝힐까 걱정스러운데 다행히 점등을 알리는 사회
자의 목소리와 동시에 넓은 절 마당에는 환하게 연꽃이 피어났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 빠져나간 길을 촛불을 앉힌 연등을 들고 절과 점점 멀어진다.
오디처럼 까만 어둠 속에 화려한 색깔의 연등이 허공에 둥둥 떠 있는 풍선같다. 마음
에 모처럼의 평안을 담고 제각각 연등을 들고 산길을 내려오는 사람들의 수런거림이
정겹다. 불자든 아니든 부처님의 자비아래 오늘 잠시 함께 했던 시간 역시 인연이 아
니겠는가.
그런데 일주문이 가까워지면서 슬금슬금 걱정거리가 생겨난다. 손에 들고 있던 연
등 때문이다. 절 살림인 연등을 들고 오긴 했는데, 이걸 다시 제자리로 가져다 놓아야
하는지, 그런데 다시 돌아가자니 집으로 돌아갈 거리(距離)가 걱정된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앞뒤 사람들만 자꾸 살피는데 연등이 시작된 입구를 한참 전부터 지켜계셨던
듯한 노(老)스님이 한마디 하신다.
“차 가져왔으면, 등은 싣고 가시구려.”
구름 걷히듯 모든 갈등이 일시에 사라져 버린다. 그런 묘약이 없다. 마음속에 환한
등불을 매달고 내딛는 발걸음이 가뿐하기만 하다.
산길 내내 환히 밝히던 연등이 점점 빛을 잃어간다. 온갖 문명의 이기로 넘쳐나는
형형색색 세상 빛이 너무 강렬함이리라! 아쉬운 듯 세상 밖으로 나가기 전 고개 빼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언뜻언뜻 터진 숲 사이로 버선목 같은 초승달이 선명하다. 부처님
의 미소를 닮았다.
2005. 20집
첫댓글 세상의 존재물은,
실제 한 찰나마다 생멸을 반복하고 있으므로 실체는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무엇일까? 순간순간 인연따라 변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거라면 현재의 마음을 중히
여기며 살 일이다. 과거에 얽매이지도 말고 미래 또한 걱정하지 말며 현재 내가 존재
하는 매순간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닐런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