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애트워터의 두 번째 공격 - 국기에 대한 맹세 사건
듀카키스는 메사추세츠 주지사 재직 당시
교실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할 경우,
형사 처벌한다라는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습니다.
애트워터는 이 점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듀카키스의 합리적인 해설은,
헌법과 법률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있는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해명은 유권자에게는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듀카키스는 거센 네거티브 공격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지티브로 맞섰습니다.
그의 TV 광고 '새로운 시대'를 보면,
듀카키스는 유권자들이 그의 경력과 능력을 인정해 줄 것으로 굳게 믿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트워트는 신사가 아니었습니다.
4. 애트워터의 세 번째 공격 - 국방정책 사건
'미국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습니다.'
공포를 이용한 전형적인 네거티브 전략입니다.
애트워터는 미국의 모든 국방정책 목록을 보여주면서,
듀카키스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광고 내용과는 다르게, 듀카키스는 이들 대부분을 지지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듀카키스는 상대방의 거짓 광고가 판을 치고 있는데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상대방의 반칙에도 불구하고 홀로 페어플레이를 고수하는 선수와 같았습니다.
유권자들은 듀카키스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자 이 또한 사실로 믿어버렸습니다.
네거티브 전략에 대해 완강히 '부인'해도 상대방이 유리하게 되고,
'무대응'을 해도 우리가 불리해 집니다.
그렇다면 네거티브 전략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방식이 정석일까요?
5. 네거티브 전략에 대응하는 법
네거티브 전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는,
1978년 미국 맥도날드 햄버거의 지렁이고기 논란이 잠잠해지는 과정을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시 맥도날드 햄버거의 고기 원료가 지렁이고기라는 출처를 알 수 없는 괴소문이 돌았습니다.
맥도날드 출입문마다, '우리 햄버거는 지렁이가 들어있지 않습니다'라고 써 붙였지만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지렁이에 대한 연상작용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입니다.
맥도날드는 소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을 통해, 두가지 해결방법을 알아냈습니다.
하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지렁이 고기를 봤다."라는 헛소문을 퍼트리는 겁니다.
피실험자들은 더 큰 쇼크를 받아서, 맥도날드 햄버거와 지렁이와의 연관성을 망각하게 됐습니다.
다른 하나는, 밀크셰이크와 감자튀김에 홍보를 집중하여
햄버거고기에 대한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맥도날드는 후자의 방법을 택했고,
그 결과 맥도날드는 점차 타격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대통령 선거전에서 네거티브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처한 실례는,
1980년 레이건과 지미 카터의 선거전을 들 수 있습니다.
당시 지미 카터는 레이건을 전쟁광이라고 표현하며 위험한 인물로 묘사했습니다.
레이건은 아내 낸시 레이건을 내세워 반격합니다.
'지미 카터의 캠페인은 끔찍한 비난입니다.'
'선거의 승패가 달린 안건이 많습니다.'라고 하며, 논의를 전쟁광에서 다른 곳으로 교묘하게 옮겨 버립니다.
그리고는 이번 선거는 지미 카터의 지난 임기를 평가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재정의 해버립니다.
프레임을 바꾸어 버린 것입니다.
유권자들은 카터가 인신공격을 하는 치사한 후보자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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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996년의 옐친, 네거티브 전략을 쓸 수도 없을만큼 암담한 상황
1996년의 옐친은 어땠을까요.
1996년 당시 옐친의 지지율은, 집권 여당으로서는 zero나 다름 없다고 할 수 있는 6%에 불과했습니다.
사상 최대의 실업률, 인플레이션율 448%에 짓눌려, 도무지 정치적 돌파구가 없어 보였습니다.
제1 야당인 공산당은 해오던대로만 하면 총선의 결과가 그대로 대선에 이어져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옐친의 지지율은 처참할 정도여서, 네거티브 전략을 쓸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선 옐친의 선호도를 올려 최소한 2위를 만들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해답은 이미지의 힘이었습니다.
소규모 인원을 통한 실험 결과, 연설보다는 신나고 역동적인 이미지가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옐친의 첫번째 전략은 '구체적인 선거공약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옐친은 이전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대중유세를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연설을 하는 대신에 춤을 추었습니다.
이 전략은 젊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먹혀들어갔습니다.
4월에 들어서면서 옐친의 지지율이 2위인 16%까지 상승했습니다.
네거티브 전략을 실시하기 위한 기반이 조성된 것입니다.
7. 옐친의 두 번째 전략, 강제유도 여론조사
옐친은 공산당 후보 주가노프를 겨냥한 네거티브 여론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여론조사는 '누구를 지지하느냐, 어떤 정책을 선호하느냐'라는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여론조사의 주 내용은 '공산당 지배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하십니까'라는 것이었습니다.
공산당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유도하고 공포를 자극하는 이런 방식의 여론조사를 강제유도 여론조사라고 합니다.
[ 인간의 뇌는 '만약 ~ 라면'이라는 가정상황과 현실상황을 엄격하게 구분하지 못합니다.
강제유도 여론조사는 이 점을 이용하여, '가정형'의 질문만으로 실제의 이미지를 형성시킬 수 있습니다. ]
강제유도 여론조사의 선구자는 리 애트워터였습니다.
일단 전화를 한 후, 일반적인 여론조사를 실시합니다.
그러다가 슬쩍 미끼를 던집니다.
'미 주지사가 아동성추행범이라고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를 지지하실 겁니까?
아, 지금 그렇다는 것은 아니구요, 만약에 그렇게 밝혀진다면 말입니다.'
가정형 질문이지만, 뇌는 이를 구분하지 못하고 마치 실제상황처럼 인식합니다.
부정적인 소문은 불처럼 번져나가게 마련입니다.
비열하다는 비난에 대해, 리 애트워터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선거에서 이기면 모든 것은 해결된다. 특히 대통령선거에서 이기고 나면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다.'
[ 뇌가 가정형 서술과 실제를 구분하지 못하는 재밌는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인터넷 소개팅이 유행할 무렵,
이렇게 적힌 자기소개를 보았습니다.
"내 생애 가장 멋진 날은 나일강을 가로지르는 크루즈 위의 수영장에서 시작되었다.
수영을 마치고 태양을 즐기고 있을 때, 그녀는 나에게 진한 키스를 선물했다.
그녀는 나의 가슴팍에 단어 하나를 적었다.
행복....
제가 행복하게 해 줄 그녀를 찾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더 멋진 날들을 그녀와 보내기 위해서."
어떻습니까, 이 남자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 여자도 있지 않을까요? ]
8. 옐친의 세 번째 전략, 공포
네거티브 전략 중 가장 효과적인것은 공포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전쟁에 대한 공포, 테러에 대한 공포, 다른 인종에 대한 공포, 이민자에 대한 공포.
공포는 반대하기 위해서 투표장으로 나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인입니다.
네거티브 광고의 역사 중 가장 성공적인 것으로 평가되는 1964년 미국 대선당시 광고를 보겠습니다.
당시 공화당 후보 골드워터는 필요할 경우에 핵무기도 사용할 수 있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강경 보수주의자였습니다.
린든 존슨대통령은 이를 겨냥해서 핵전쟁 공포를 자극하는 광고를 제작했습니다.
이 광고는 매우 충격적인 이미지 때문에 심야시간에 단 한번 방영됐을 뿐입니다.
그러나 워낙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언론에서 앞다퉈 보도했고 그 이후의 선거를 결정지어 버렸습니다.
존슨은 그리 지지율이 높은 정치인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득표율은 61%에 달했습니다.
옐친의 세 번째 전략은 바로 공산당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재벌의 소유였기에 공산당에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미디어의 조작을 통해, 옐친은 유권자들에게 공산당 시절의 암울함을 각인시킬 수 있었습니다.
방송에서는 연일 스탈린 시대의 무자비한 영상들을 송출했습니다.
옐친의 선거전략에 비해 주가노프의 선거전략은 뻔했습니다.
그것은 연설, 집회, 가두행진, 연설, 집회, 가두행진을 반복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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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에서는 네거티브 선거전의 결과와 후유증을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