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고성이씨 귀래정파 손 이응태라는 사람입니다., 여자는 족보에 자료가 없어서(대부분 시집온 여자에 관한 자료가 올려져 있거든요..사돈어른이 뭐하는 사람인지 까지..) 어느집안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진보 홍구리로 간걸보아(아들 워니라는 분인지 모르지만 아들 성회라는 분이 홍구리로 간게 족보에 나와 있어요.) 그쪽 사람인듯 싶습니다.
전에 편지가 발견될 당시 그러니까 99년 4월쯤이지요. 삼촌이 안동갔다 오셔서 얘기 해주셨어요.
안동에 가면 잘 아시다시피 아직도 집안따지고 그런 문화가 많이 남아 있거든요.
집성촌같은것도 있구
유명한곳이 안동하회마을이죠 유성룡집안이 모여 살구 있어요. (동그라미 유가 아니라 류성룡인데..)
의성김씨들이 천전이라는 곳이 살고 있지요.
관주인인 이응태라는 분은 저한텐 한참 할아버지 되는 분이구요. 눈치채셨겠지만.. 제가 본관이 고성이거든요. 별루 많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아서..
안동에 가면 고성이씨 종가가 안동시 법흥동에 있구요, 그중 귀래정파가 모여사는 곳이 전에는 안동군, 지금은 시군 통합이 되어서 안동시 정상동이라는 곳에 모여산답니다.
제가 중학교정도 다닐때만해도 집성촌이 많이 남아있었는데 요즘은 다들 각자 뿔뿔이 흩어지더라구요.
어릴땐 동네가 다 일가 친척이고 해서 매일 인사하느라 혼났어요..
그 편지로 인해 두분의 <사랑과 영혼> 뿐만아니라 임난전까지는 꽤 남녀관계가 평등했다게 밝혀지게 되었는듯..
400년전에는 장성한 남자가 결혼하면 처가살이 하는게 보편화 되었었대요.. 나라에서도 그걸 조선의 나름의 풍습으로 여겼다나..
그리고..편지에서 보면 알다사피 서로 호칭관계도.. 아내가 남편을 더러 자네라고 칭하는걸 볼수 있구요.
사대부 집안에서 내려오는 분재기라는게 있는데요, 재산상속에 관한 기록을 일일이 적어놓는거에요. 예전엔 재산상속에 있어서도 남녀차별없이 골고루 나누었대요. 장자본인에게 특별히 주는건 없었구요. 다만 문중전답을 관리하는 정도..? 하여튼..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시대랑은 좀 다른점이 많아요.
재사에 관련된 봉사록 같은 것도 있는데요. 남녀가 나누어 재사를 지내기도 했답니다. 시집간 자식이 처가 제사를 지내는거 요즘 생각하면 정말? 그러기 쉬운데.. 정말 그랬답니다. 분재기 처럼 내려오는 봉사록 이 있는데요 거기 있어요.. ^^
하나 더.. 남녀 칠세부동석이 언제부터 나온지 알수 없지만.. 편지글 보면. 둘이 참 가까웠음을 알수 있지요. *^^*
..............이상 산슈여써여..
잡담.. 혹시 그 여인네가 남편을 넘 그리워해서 고성이씨 집안에 태어 나지 않았을까여? .....홍홍..